게임 이야기/게임 리뷰



*스포일러 있습니다.


1.


이 리뷰의 요약이자 결론:EA는 데드 스페이스 시리즈를 완벽하게 끝장내는 멍청한 실수를 했고, 비서럴 스튜디오는 다가오는 모라토리엄을 막기 위해서 안간힘을 썼다. 이제 시리즈의 운명은 풍전등화라고 할 수 있다.





2.


너무 많은 포인트가 있어서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다.


데드 스페이스 1편은 도저히 예상치 못한 곳에서 튀어나온 복병이었다. 지옥에서 갓 건져올린듯한 끔찍한 우주선 이시무라 호에서 살아남기 위해 처절하게 발버둥 치는 아이작 클라크을 다룬 이 호러 액션 어드벤처 게임은, 점점 마이너해지고 안팔리는 장르에 자신만의 독자적인 자리를 꿰차는데 성공했다. 개성있는 적들과 적들에 대한 공략과 전략성, 그리고 폐소공포증이 느껴질정도로 꽉막힌 우주선과 독특한 분위기의 선내 구역들, 그리고 환상과 현실의 경계를 넘나드는 디멘시아 현상과 악의마저 느껴지는 스토리와 반전은 게이머들 사이에서 오랫동안 회자되었다.


2편은? 솔직히 이야기해서 2편에 대한 살짝이나마 우려섞인 평가를 내리기는 했지만, 2편 역시 결과적으로는 대단히 훌륭한 게임이었다. 1편의 전형적인 B급 호러물의 분위기를 탈피해서 헐리웃 블록버스터의 화법과 연출을 도입한 2편은 1편 만큼의 공포는 없지만, 스프로울이라는 도시의 몰락과 혼돈, 그리고 압도적으로 커진 스케일을 잘 다루어내었다. 새롭게 추가된 네크로모프와 무기들은 게이머에게 새로운 경험을 제공하였으며, 기존의 시스템을 계승발전 시킨 게임 시스템은 훌륭했었다. 스토리적인 측면에서도 평범한 소시민이었던 아이작 클라크라는 케릭터가 어떻게 1편의 트라우마를 극복하고 헐리웃 블록버스터에 부합하는 영웅으로 성장하는가를 적절하게 드러내었다. 물론 멀티의 삽입은 완벽한 실패였지만.




3.


3편은 웃기게도, 이 모든 1, 2편의 매력에 대한 안티테제를 취한다. 3편은 1, 2편의 전략성과 개성을 거세해서 평범한 TPS로 만드려는 시도를 하는데, 이는 1, 2편을 해본 사람이라면 도저히 이해할 수 없을 정도의 시리즈의 정체성 파괴라고 평가할 수 있을 정도이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비서럴은 이러한 과격한 컨셉 박살내기 속에서 어떻게든 게임 시리즈의 정체성을 유지하려고 했고, 이 시도는 아주 성공적이다.


3편의 가장 큰 특징은, 바로 기존의 개성있고 정형화된 무기를 분해, 커스터마이즈 해서 자신만의 무기를 만들수 있다는 것이다. 가령 플라즈마 커터의 회전 기능을 삭제하는 대신에, 소형 리퍼 톱날을 붙여서 근접전에 대비한다던가, 이번작에서 추가된 수압커터를 달아서 기어즈 오브 워 마냥 근접 닥돌을 할 수 있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전작이 각각의 무기를 네크로모프와 상황에 따라서 전략적으로 선택을 했어야 했었다면, 이번작은 전작과 다르게 '사기적'이라고 할 수 있는 무기조합이 가능하다. 실제 이러한 자신만의 무기 만들기는 상당히 재밌는 요소이며, 쏘는 맛도 훌륭해서 높게 평가해줄 부분이기는 하다. 하지만, 무기 제작, 커스터마이즈는 이하 후술할 치명적인 바보짓과 맞물려 들어가면서 좋게 평가할 수 없는 부분이 되고 만다.


무기 제작과 함께, 제작진들은 전작의 다양한 탄약들을 하나의 통합 탄약 시스템으로 개편해버린다. 문제는, 전작에서는 한정된 인벤토리 내에서 어떤 무기를 쓰고, 어떤 탄약을 쓸것인가(탄약마다 한슬롯을 차지하는 최대치가 다 달랐다)를 게이머가 판단했어야 했다. 이것이 어떤 무기를 업그레이드 하고, 회복약을 얼마나 챙겨야 하는가에 대한 전략에 대한 고민은 단 한가지의 탄종을 들고다니면서 순식간에 해결되버린다. 문제는, 이 통합 탄약 시스템으로 인해서 게이머의 화력은 시리즈 최강이라 할 수 있을정도로 끔찍하게 올라가버린다. 위력이 강력한 무기는 탄약소모량이 많긴 하지만, 공용탄약을 사용하기 때문에 탄약 관리가 매우 용이해진 점, 무기 커스터마이즈로 인해서 일정 수준을 넘어서면 엄청난 강력한 화력을 플레이어가 거머질 수 있다는 점 때문에 플레이어의 먼치킨화에 일조하고 만다.







4.


게이머 화력이 비약적으로 상승한 것에 대해, 게임은 네크로모프의 호전성과 속도를 비약적으로 상승 시킨다. 전작들의 네크로모프들이 중거리까지는 느긋하게 오다가, 중거리 이후에는 갑자기 달려드는 모습을 보여주었다면 이번작에서는 플레이어를 보자마자 무조건 닥돌하는 과격함을 보여준다. 심지어 달려오는 속력이나 기어오는 속력이나 전작에 두 세배 정도로 비약적으로 상승했는데, 다리를 빠르게 끊어내버려서 속도를 줄이고자 해도 기어오는 속도도 상당하기 때문에 차라리 다리를 끊어내서 속력을 줄이는 수고를 하느니 압도적인 화력으로 적을 작살내는 것이 훨씬 빠르다는 느낌이다. 이렇게 본다면 시리즈 컨셉인 전략적 사지절단은 거의 사라졌다고 할 수 있다.


전략적 사지절단의 메리트가 사라짐과 함께, 네크로모프라는 존재들은 게이머를 위협하는 괴물에서 단순한 잡몹수준으로 격하되어버리고 만다. 신체를 그로테스크한 형태로 비틀어버린 네크로모프라는 존재는 아이작과 함께 시리즈의 정체성을 상징하는 존재라고 할 수 있었다. 각각의 네크로모프 마다 특징이 있어서, 이를 이해하고 올바르게 적들에 따라서 싸우는 것이 데드 스페이스라는 게임의 특징이었다. 하지만, 본작에서 추가된 웨이스터나 피더(사실상 팩의 자리를 대신해서 들어온거지만...)의 경우, 2편에서 스토커나 퓨커, 스피터가 추가된 정도의 충격을 주지 못했다, 아니 그저 기존의 네크로모프에 대한 마이너한 변경에 불과하다. 심지어 전작에서 전용 연출과 보스급 맷집을 자랑했던 브루트들은 무지막지한 화력앞에서 학살당하는 존재로 격하되버리고 만다.




5.


게임의 구조는 2편의 선형적인 진행보다는 1편의 이곳저곳을 이동하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은근히 왔던 곳을 다시 돌아가는 형태를 취한다. 하지만 1편과도 같은 상당한 반복이 아닌, 2편의 일직선 진행을 어느정도 차용하고 있는 어중간함을 보여준다. 하지만 1편이 이시무라 라는 아주 훌륭한 무대를 갖고 있었고, 2편이 다양한 스테이지를 보여준 데에 비해서, 3편의 스테이지와 공간들은 애매한 부분이 많다. 사실, 죽은 함선들의 무덤이라는 기믹이나, 얼어붙은 행성이라는 기믹은 하나 하나만 놓고 보았을 떄는 훌륭했으나, 이를 각각 따로 무대를 크게 두개로 구성함으로서 양쪽 모두 어설프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차라리 2편 처럼 일직선 진행을 고수했었다면 이정도로 엉망진창이라는 느낌은 들지 않았을 것이다.




6.


스토리는 최악의 수준을 넘어서 이해 불가능한 병신력을 보여준다. 1편의 스토리가 전 우주에서 가장 재수없는 소시민에 대한 이야기였고, 2편의 스토리가 그 후의 1편의 트라우마를 극복하는 과정에 대한 이야기였다. 호러든, 호러가 아니든 데드 스페이스에 있어서 디멘시아 현상이란 이 시리즈를 관통하는 주요한 테마라고 할 수 있다. 데드 스페이스 시리즈는 네크로모프라는 물질적인 파멸과 디멘시아라는 정신적인 파멸이 동시에 게이머를 압박하는 게임이었고, 1편에서는 아이작을 옥죄어들어오는 파멸로, 그리고 2편에서는 아이작이 정신적인 압박이자 자신의 트라우마를 성찰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는 스토리의 중요한 요소로 작용하였다.


3편의 스토리는, 이 디멘시아 현상의 삭제 하나만으로 스토리의 병신력을 설명할 수 있다. 디멘시아 말기로 점점 망가져갔던 아이작이 3편 내내 디멘시아를 겪지 않는다. 심지어 3편의 메인 스토리는 여친 행방을 찾아 타우 볼란티스로 옴->실시간으로 노턴에게 NTR 당함->노턴의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열폭->노턴 죽음->인류를 위해 아이작이 희생함 으로 이어지는 이해 불가능한 스토리 라인을 보여준다. 특히 로버트 노턴이라는 케릭터는 잘못 만들어졌다는 수준을 넘어서 스토리의 말기 악성 종양 수준으로 작용하는데, 여친을 구하기 위해서 여친의 전 남친을 부르고는 여친이 인류를 구하는 임무에 목숨걸고 아이작이 거기에 협력을 하니까 여친하고 자기만 살겠다고 자신의 임무고 뭐고 다 내팽겨쳐버리고 유니톨로지를 부르고는, 심지어는 그 모든 책임을 아이작에게 전가해버린다. 만약 제정신인 스토리 라이터가 이런 스토리를 썼다면, 당장이라도 펜을 꺾고 글을 집필하지 말라고 충고하고 싶을 정도이다.


이러한 붕괴하는 스토리 라인에서, 아이작이 갖는 케릭터 성은 1편(소시민 공돌이)이나 2편(트라우마를 극복해나가는 영웅), 그 어디에도 들어가지 못하는 모습을 보인다. 그는 네크로모프를 학살하고 학살하며 또 학살할 뿐이지만, 그건 생존을 위한 투쟁도 트라우마를 극복하겠다는 발악에도 끼지 못한다. 초반의 인류의 존망에 신경 안쓰는 그의 모습이, 어째서 인류를 위해 희생을 하는가에 대한 동기 부여는 거의 제로에 가까우며, 스토리 묘사 자체로만 봤을 때는 여친 하나 잘 둔 덕분에 네크로모프와 얽히게 되었다는 느낌을 지울수 없는 것이다.


물론, 노턴의 병신짓 덕분에 게임 전반에는 유니톨로지 병사들이라는 새로운 적들이 추가되었으나...이건 3편의 변화 중에서 최악의 변화점이라고 할 수 있다. 기존의 엄폐형 TPS 게임에서 자주 볼 수 있었던 총격전 구도를 3편에도 채용하려는 분위기였던 것 같은데, 문제는 데드 스페이스 3은 엄폐를 추가한게 아닌, 앉기를 추가한(.....) 희대의 병신짓을 해버린 것이다. 즉, 앉은 상태에서 조준을 누르면 일어서서 조준을 하는(.....) 요즘 TPS에서는 감히 할 수도 없는 병신력 쩌는 발상이라고 할 수 있다. 심지어 유니톨로지 병사들는 단순히 총쏘고 움직이는 고기 과녁 수준의 난이도를 보여준다. 도저히 왜 추가했는지 이유를 알 수 없는 부분이라 할 수 있다.








7.


코옵은 이 게임에 있어서 몇안되는 미덕이라 할 수 있다. 심지어 코옵 스토리 라인은 카버라는 존재 덕분에 더욱 풍성해지는 느낌을 받는데, 서로 치고 받으면서 관계가 좋아지는 과정이 괜찮으며 무엇보다 카버의 관점에서 보여지는 디멘시아 묘사의 경우, 1편이나 2편의 디멘시아 묘사의 본질을 정확하게 꿰뚫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자식과 서먹하게 지내고 가정을 내팽게치듯이 도망나온 카버가 네크로모프에게 가족을 잃고는 그 분노와 죄책감이 디멘시아의 형태로 드러나는 묘사는 카버라는 케릭터를 훌륭하게 묘사하였다고 할 수 있는 부분이다. 


코옵은 네크로모프 학살 게임으로 변모한 3편의 게임성에 잘 부합한다고 볼 수 있다. 2명이서 함께하는 즐거운 네크로모프 학살기라고 부를 수 있는 코옵 시나리오는 별개의 스토리가 아닌, 모든 스토리를 함께 즐길 수 있다는 점에서 2편의 멀티 보다는 엄청난 발전을 하였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단순한 스토리 코옵만을 지원하는 것에 비해, 요즘 게임들의 발전된 코옵 형태는 다양화되었다고 할 수 있는 수준까지 왔다. 바하:리벨레이션의 경우 스토리 코옵의 변용이라 할 수 있는 레이드 모드(스테이지+레이스의 특이한 혼합)나 바하 5 부터 내려온 머셔너리 모드 등 벤치마킹 하라면 할 수 있는 다양한 요소들이 있는데도 단순하게 스토리 코옵만을 지원하는 것은 아쉬운 부분이라 할 수 있다.


8.


사실, 이러한 변화점들은 대부분 EA라는 퍼블리셔의 요구로 볼 수 있는 정황상 증거가 상당히 있다. 2편 리뷰에서도 지적했던, 호러라는 기믹은 사실상 팔리지 않는 마이너한 기믹일 수 밖에 없다는 점, 더 많이 팔리기 위해서는 액션성을 강화할 수 밖에 없다는 점은 이미 모두가 알고 있는 기본 사실이라 할 수 있다. 그렇기에 본작에서 디멘시아 현상을 삭제하고, 네크로모프를 두고 생각하면서 대처하기 보다는 무지막지한 화력으로 쓸어담을 것을 요구하는 그러한 형태의 게임에 부합하게 된 것이 아닌가, 라고 추론을 할 수 있는 것이다. 


게다가, 이 게임에 들어있는 부분유료화 시스템은 이러한 추측에 확신을 실어주는 부분이라 할 수 있는데, 더 강한 무기를 얻기 위해서 재료와 파츠를 가챠 티켓 형식으로 구매하는 방식이라 할 수 있는 자원 팩의 개념은 EA가 돈독이 올라도 심각하게 오른게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심지어 초반의 경우, 호전적인 네크로모프에 비해서 무기의 경우 과금으로 적당한 무기를 만들기 전까지는 좀 과하다 싶은 난이도로 느껴지기도 한다. 물론 스케빈저 봇이나 배급표 개념으로 자원 수급을 할  수 있게 하지만, 과금이 가장 편한 것은 사실이다.


9.


일단, 위에 모두 적어놓은 문제점을 제외하고, 게임은 할만하며 어느정도 재밌다. 시리즈 전통의 시스템을 죄다 똥통에 갖다 쳐박아버리기는 했지만, 비서럴은 어떻게든 게임을 제대로 만들어보고자 애를 썼으며, 그 결과 빅리그 급으로 떨어질뻔한 게임을 게티스버그 급으로 끌어올렸다고 평해줄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일이 두번 다시 일어난다면, EA의 신용도는 심각할 정도로 타격을...아 아니다, 이미 신용은 똥통에 쳐박혀있으니 별 문제 없을 것이다. 장기적으로 게임계를 위해서는 EA 중역들을 암살하는 킥스타트 프로젝트를 시작하는 것이 게이머들과 EA 산하 개발진들을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이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