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일러 있습니다.
1.
레드 데드 리뎀션은 톨스토이의 '부활' 락스타 버전입니다. 과거를 청산했다고 생각하는 한 무법자가 연방정부와 악독한 연방요원에게 붙잡힌 가족들을 구하기 위해 자신의 동료들을 죽이러 서부의 황야를 해맨다는 매우 심플한 스토리입니다만, GTA 3 이후로 축적되었던 락스타의 샌드박스 게임에 대한 노하우, 그리고 서부 개척시대 끝무렵의 오묘한 분위기와 무법자, 그리고 스토리, 마지막으로 훌륭한 그래픽과 시스템, 좋은 OST 등등...한마디로 잡은 컨셉에 대해서 거의 100%에 가까울 정도의 완성도를 보여주는 게임이라 할 수 있습니다.
2.
스토리 측면에서 보았을 때, 레드 데드 리뎀션은 분위기가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용서받지 못한 자와 비슷합니다. 자신이 한 짓을 후회하면서 은퇴 후의 목장에서의 삶을 사는 전직 무법자라는 컨셉, 가족을 위해서 다시 총을 뽑아드는 모습 등등은 용서받지 못한 자와 매우 유사합니다. 물론 용서받지 못한 자는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스스로 서부영화를 끝내는 느낌의 영화였지만, 레드 데드 리뎀션은 마지막 무법자의 장렬한 최후에 대한 내용입니다. 그리고 이 마지막 무법자, 존 마스턴에 대해 게임은 전례를 찾아보기 힘든 독특한 시도를 합니다. 그것은 바로 게임 내에서 '과거회상'을 완벽하게 배제하였다는 점이죠.
레드 데드 리뎀션 내에서 플래이어, 존 마스턴의 과거는 오로지 존 마스턴와 엔피씨와의 대화 등의 간접적인 수단을 통해서만 알 수 있죠. 게임 내내 존은 주장하죠, 나는 과거와 다르다, 나는 더이상 무법자로서 삶을 살지 않는다, 나는 과거의 내 행동을 후회한다, 과거에 나는 무고한 사람을 안죽였고 부자들에게 돈을 뺏어서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졌다 등등...하지만 과연 그럴까요? 게이머는 이 사실에 대해서 판단할 수 있는 정보를 전혀 제공받지 못합니다. 오로지 그의 말이 진짜인지 아닌지 판단할 수 있는 방법은 단 하나, '그의 현재 행동'뿐이죠.
이 점에서 게임은 상당히 오묘한 모습을 보여줍니다. 즉, 게이머가 어떠한 행동을 취하느냐에 따라서 존 마스턴은 진정으로 과거로 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참회한 케릭터에서부터, '개버릇 남 못준' 케릭터로 변모하게 됩니다. 물론 게임 내에서 엔딩이 달라지던가 등의 기점은 없지만, 게임 내의 엔피씨와 존 마스턴의 대화들을 듣고 있으면 상당히 묘한 기분이 들게 만듭니다. 또한 존 마스턴과 빌 윌리엄슨의 관계, 더치와의 관계, 그리고 아내인 에비게일 결혼과 무법자 생활을 그만두게 된 이야기들이 후반으로 가면 갈수록 대화를 통해 밝혀지면서 존 마스턴이란 케릭터를 독특하게 만들어줍니다.
3.
사실 GTA 4 이후 락스타의 행보가 범죄물에 리얼리티를 가미하는 스토리와 분위기를 지향하기 시작했죠. 그 덕분에 전작과 다르게 리얼리티를 추구한 GTA 4가 '생각보다' 호불호가 갈린데 비하여, 레드 데드 리뎀션은 시대와 분위기, 그리고 게임 진행방식이 절묘하게 맞아떨어지면서 완벽한 게임에 가까워졌습니다.
레드 데드 리뎀션의 배경은 1911년입니다. 서부 시대의 끝자락이자, 동시에 무법시대의 종말과 법치의 도래가 동시에 일어나고 있죠. 덕분에 게임 내에서 플래이어들은 전보와 전신주, 전화, 자동차, 반자동 권총 등등의 현대적(?) 물건들과 가축 도둑, 무법자, 야생마, 거리의 결투, 약장수, 도굴꾼, 보물 사냥꾼 등의 서부 개척시대에서나 볼법한 것들이 묘하게 공존하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게임 플래이 역시 서부 개척시대의 마지막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 만큼 현상금 사냥꾼, 가축 길들이기, 역마차와 기차 털기 등의 서부 영화에서 많이 보았던 다양한 것들을 제공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더 인상적인 것은 이 모든 것들이 완벽하게 게임의 시대와 분위기에 맞아떨어진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보죠. GTA 4의 주인공 니코 벨릭 같은 무법자가 현대 뉴욕에 살고 있다면 어떻게 될까요? 사실 그가 게임 내에서 저지른 범죄만 놓고 본다면, 니코 벨릭의 최후는 아마도 게임 중반도 못들어서 종신형이나 전기의자, 교수형 등으로 끝날 것 입니다. 그렇기에 설정상으로 U.L.P나 부패한 경찰 등 정부와 관련된 요인들이 뒤를 봐준다고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딘가 어색한 것은 사실입니다.(물론 GTA4를 까자고 하는 이야기는 아니지만) 하지만 레드 데드 리뎀션은 '마지막 무법자'라는 컨셉 하에 게임 플래이와 배경이 완벽하게 맞아 떨어집니다. 이 점에서 게임은 GTA4 보다 훌륭하다고 할 수 있죠. 또한 여태까지 서부를 배경으로 만든 샌드박스 게임이 없었기에 게임이 신선하다는 점도 높은 평가를 받을만한 부분입니다.
4.
레드 데드 리뎀션에서 배경의 80%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것은 황야입니다만 그 배경 종류가 다양합니다. 풀만 듬성듬성 나있는 황야에서 프래리 초원, 침엽수림, 눈덮인 설산, 맥시코의 황야까지 플래이어에게 있어서 '이 모든 게 한 지역에 있다고?'라는 의심이 들게 할만큼 다양한 파노라마를 제공합니다. 게다가 레드 데드 리뎀션은 야외 경관에 있어서 엄청난 완성도를 보여줍니다. 작열하는 태양 아래서의 황야에서부터 공해에 찌들지 않아서 별과 달이 선명한 야밤, 소나기가 내릴 때의 야외 배경묘사 까지, 레드 데드 리뎀션은 적어도 제가 여태까지 경험한 실외 그래픽 중에서 감히 최고라고 평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넓은 황야를 게임은 단순히 황야 그 자체로 남겨두지 않습니다. 사실, 게임 내에서 이방인 미션을 제외하면 거의 대부분의 미션외 게임 플래이는 황야에서 이루어집니다. 게임을 황야를 야생동물을 사냥하거나, 도움을 청하는 사람을 구해주거나(혹은 같이 죽여서 돈을 털거나), 총솜씨를 두고 내기를 벌이거나, 보물을 탐색하는 등 단순한 배경이 아닌 살아있는 동적인 공간으로 제시합니다. 자칫 잘못하면 그냥 말타고 경치나 감상하는 게임이 될뻔한 걸 완벽에 가까운 게임으로 승화시킨 부분이라 할 수 있죠.
5.
게임 미션의 90% 가량은 존 마스턴의 옛 동료였던 빌 윌리엄슨과 더치를 추격하는데 할애하고 있고, 마지막 10%정도는 존 마스턴이 자신의 목장 비치스 호프로 돌아와서 옛날의 평범했던 일상으로 돌아가고자 가족들과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어찌보면 후반의 90%의 미션과 뒤의 10%의 미션의 분위기가 이질적이고, 동시에 마지막의 더치의 죽음으로 게임이 끝났다는 인상을 주기 때문에 상당히 사족스러울 수도 있지만, 게임은 이를 묘하게 꼬아 놓습니다. 평범한 삶으로 돌아가려고 애쓰는 존 마스턴, 이번에는 진짜 끝이냐고 묻는 가족들, 그리고 가족들을 계속 안심시키면서 모든 게 끝이났고 평화로운 일상으로 돌아왔다고 생각하는 순간, 군인들이 들이닥칩니다. 존 마스턴의 손을 빌려서 법치에 방해가 되는 무법자들을 죽였지만, 동시에 아이러니 하게도 존 마스턴 자신이 '마지막 무법자'가 되어버린 것이죠.
게임의 마지막, 존 마스턴은 도망갈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가족들을 보호하기 위해 헛간문을 열고 나가 군인들의 총에 목숨을 잃습니다. 그리고 서부 개척시대와 무법자들의 시대 역시 끝을 맺게 되죠. 조금씩 해석은 다를 수 있겠지만, 다른 옛 동료들과는 다르게 가족을 위해서 자신의 목숨을 희생했다는 점에서 존 마스턴은 과거의 자신에게서 벗어났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게임은 거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3년뒤 어머니가 세상을 떠난 뒤, 아들은 아버지를 이용해 먹고 죽인 연방요원 에드가 로스를 찾아갑니다. 그리고 에드가 로스를 결투로 쓰러뜨린 뒤, 아들 잭 마스턴의 얼굴을 클로즈업으로 잡아내면서 게임 타이틀과 크레딧이 올라갑니다.
Red Dead Redemption
6.
레드 데드 리뎀션의 멀티 게임 자체는 본편의 총격전을 멀티에 맞게 옮겨놓은 수준입니다. 사실 재미는 있지만, 본편에 비해서 충격적이라고 할 수는 없죠. 오히려 그보다 본편의 맵을 그대로 갖다 놓은 자유 방랑 모드가 더욱 인상에 남습니다. 실제로도 자유 방랑 모드에서 갱단의 소굴을 털거나, 서로 말타고 총격전을 벌이거나, 마을에서 보안관들 죽이면서 현상금 올리거나, 지역의 건물 점령하고 점령전을 벌이는 등의 다양한 이벤트들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또한 자유 방랑 모드에서 사람 수만 맞는다면 곧바로 멀티 게임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 등은 레드 데드 리뎀션의 멀티에 있어서 주목할만한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7.
결론만 놓고 이야기하면 게이머로써는 놓치면 아까운 게임. 조금 있으면 GOTY 에디션 나온다니 안해보신 분들은 꼭 해보시길.
'게임 이야기 > 게임 리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리뷰]베요네타-단테, 호적수를 만나다. (0) | 2011.08.31 |
---|---|
[리뷰]갓 오브 워 3-그리스 신화의 대중문화적 재해석. (0) | 2011.08.27 |
[리뷰]다크사이더스-Total Nothing (2) | 2011.08.05 |
[리뷰]포탈 2 - Masterpiece (1) | 2011.05.15 |
[리뷰]블릿스톰-Kill With Skill! (0) | 2011.03.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