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니, 만화, 영화 이야기'에 해당되는 글 383건

애니, 만화, 영화 이야기/리뷰



사실, '300' 감독인 잭 스나이더가 신작인 왓치맨의 메가폰을 잡았다고 들었을 때, 저는 이번작 왓치맨에 대해서 큰 기대를 하지 않았습니다. 일단 왓치맨이라는 원작 자체가 대단히 다원적이고 중층적인 의미를 지닌 작품이고, 분위기 자체가 300이라는 스타일과 잘 맞아떨어지지 않는다고 생각했습니다. 게다가 저번 시사회에서 원작자인 알랜 무어가 영화에 대해서 심한 불평을 늘어놓았다는 점과 메타 크리틱에서 100점 만점에 50점을 웃도는 평균도 또 다른 문제점이었습니다.

그래도 백문이불여일견. 직접 보기 전까지는 이 작품이 어떤지 알 수 없는 것이고, 국내 시사회 이후 나온 평론들도 생각보다 괜찮았기 때문에(듀나 같은 경우에는 다른 건 다 괜찮았지만, 너무 원작 그 자체를 옮겨놓아서 영화적인 맛이 떨어진다고 불평을 했죠), 오늘 친구들과 함께 용산 아이맥스 개봉 레이드를 뛰었습니다.

일단, 영화 자체는 원작에 충실합니다. 아니 풀어서 이야기를 하자면, 왓치맨이라는 중층적 의미를 가진 만화를 영화로 옮기는 과정에서 선택과 집중을 했고, 그 결과 원작을 충실히 구현해 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그런 과정에서 원작이 가지는 묘한 느낌이나 다의성 등의 많은 장점들을 잃었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럭저럭 적절한 선에서 원작 구현을 해내는데 성공합니다.

영화는 원작의 가장 큰 스토리 흐름을 따라갑니다. 그것은 코미디언의 죽음과 함께 시작과 함께 드러나는 음모이죠. 이러한 스토리는 '과연 슈퍼 히어로 등의 개인이 이 세상을 구원할 수 있는가?'라는 의문을 던집니다. 인간의 본성 자체가 악한데, 도대체 슈퍼 히어로가 할 수 있는게 뭔가? 영화 왓치맨은 이러한 과정을 은퇴한 히어로들(몇몇은 현역이기도 했지만)을 보여주면서 그들의 무력감과 히어로 코스튬 중독·도착증(나이트 아울과 미스 주피터가 충동적으로 히어로 코스튬을 입고 사람을 구한 뒤에 격렬한 관계를 가지는 장면, 혹은 로어셰크의 마스크 집착증 등)을 보여주고, 마지막 애드리언 바이트의 행위에 의미를 부여합니다. 도대체 우리가 한 게 뭐지?

아무 것도 없죠. 세상은 여전히 개판 5분전이고, 인간들은 도저히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습니다. 슈퍼 히어로는 정부의 꼭두각시이며(닥터 맨하탄과 코미디언), 인격적으로 결함이 있으며, 절대 주류 세상에 낄 수 없습니다. 자기 인생과 모든 것을 갖다 받쳐서 세상을 구하려 했지만, 결과적으로 실패한 거죠. 역설적이게도, 바이트는 인류의 공동의 적(원작에서는 외계인이었지만, 영화에서는 닥터 맨하탄)을 설정함으로써 인류를 공동의 적 앞에서 뭉치게 만듭니다. 아이러니한 일이죠.

이러한 일련의 과정을 영화는 군더더기 없이 보여줍니다. 그러한 군더더기를 많이 제했음에도 불구하고, 영화가 2시간 40분 가까이 되는 건 원작이 좀 대단하다고도 할 수 있죠. 그래도 영화를 보는 내내 지루하다는 느낌은 들지 않습니다. 그런 점에서는 영화는 잘 만들어 졌습니다.

그러나 영화는 각각의 케릭터를 살리는데는 실패합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원작에서만큼의 깊은 케릭터성을 가진 케릭터를 만드는데 실패합니다. 물론 영화는 케릭터성을 살리기 위해서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충분히 합니다. 적절한 플래시백과 독백 등등 영화가 동원할 수 있는 기법들을 다 동원하죠.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작 만화에서 보여주는 장면에 비해서는 썩 성공적이라고는 할 수 없습니다. 그만큼 원작의 포스가 강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게다가 원작에서는 각각의 챕터 사이에 작품 내의 초대 나이트 아울이 쓴 자서전이나 인터뷰 자료 등을 첨부해서 이야기의 흐름과 또 다른 객관적인 시점을 만들어내고, 거기에서 케릭터의 깊이를 부여합니다. 그러한 작품내의 자료 또한 왓치맨이라는 작품을 만들어내는 중요한 키포인트인 것이죠. 그러나 영화에서는 이를 제대로 살릴 길이 없습니다. 아예 나레이션으로 처리하거나, 뭐 영화와 다른 흐름을 지닌 이야기를 삽입을 해야하는데...이는 영화의 통일성을 해칠 수 있습니다. 또한 작품의 분위기를 살리는 이야기들-신문에 연재되는 만화나 정신과 의사 이야기 등-도 개봉버전에서는 짤렸더군요. 이 부분도 많이 아쉬웠습니다.

왓치맨은 괜찮은 영화입니다. 다만 원작이 워낙이 대단한 나머지 영화가 빛이 바랠 수밖에 없더군요. 잭 스나이더가 원작에 되도록 충실하게 하려고 많이 애를 쓴 거 같지만, 그래도 아쉬운 건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도 영화 그 자체로는 그럭저럭 괜찮은 영화니 기회가 되시면 보는 것도 괜찮을 듯 싶습니다.

애니, 만화, 영화 이야기/애니에 대한 잡생각


열심히 까면서도 끝까지 본 아쿠에리온. 친구 놈의 이야기대로 주제는 '쎾...쎾ㅆ!'입니다....라고 하기에는 뭔가 2% 부족하군요. 정확히 이야기 하자면 '1만 2천년 만에 다시 이어진 세 남정네의 쎆...쎾ㅆ!'입니다(.......) 결국 진 히로인은 세리안=시리우스, 토우마 더블 히로인 체제입니다, 넵. 실비아? 그거 뭔가요? 먹는건가요 우걱우걱 

사실 마지막 6화(21~26화)의 전개가 생각보다 괜찮기 때문에, 별 무리없이 보았습니다. 물론 마지막 전개가 괜찮다는 것은 여태까지의 뭣같은 전개에 비해서 뛰어나다는 것이고, 솔직히 허점 투성이더군요. 그래도 마지막 6화 덕분에 그럭저럭 이입하면서 보았습니다. 누군가 마지막 합체씬이 정말 감동적이라고는 하는데, 물론 감동적이라고 할 수 있지만 곰곰히 다시 한번 곱씹어 보면 이 놈들만한 병신들도 없더군요;; 게다가 타천사와 합체해야한다는 전개는 애시당초부터 복선에도 없었던거잖아!

뭐 정식리뷰는 저번에 썼던 걸로 대체하겠습니다. 마지막 6화가 좀 괜찮았다고 평가가 달라지는것도 아니니까요.
애니, 만화, 영화 이야기/리뷰



-이번 슈로대 K 발매 기념으로 보고 있는 작품들이 3개 있습니다. 일전에 보고 있던 창성의 아쿠에리온, 그리고 창궁의 파프너와 신혼합체 고단나, 이렇게 3개입니다. 이 3개중에서 가장 병신 같은 작품을 꼽으라면 창성의 아쿠에리온이고, 가장 잘만들었다는 생각이 드는 작품을 고르라면 창궁의 파프너겠군요. 사실, 별로 기대하지 않다가 보니까 평이 더 좋은 것일수도 있습니다만, 객관적으로도 잘 만든 작품입니다.

-작품 자체는 전형적인 포스트 에바(Post Eva, 에반게리온 이후의 나온 비슷한 컨셉의 작품들)입니다. 인류를 위협하는 적과 완전히 수세에 몰린 인류, 인류가 살아남기 위해 만든 인간형 최종 병기, 이를 조종하는 소년 소녀들, 그리고 특유의 존재론적 혹은 인간관계론적 고민까지, 창궁의 파프너는 에반게리온의 코드를 많은 부분에서 차용하고 있습니다. 첫 1, 2화만 놓고 본다면 '이거 에반게리온 판박이 아니야?'라는 생각이 들 정도니까요. 사실 많은 사람들이 이 작품의 주요한 비판 중 하나가 바로 에반게리온의 복제품이며 아류고 그렇기 때문에 에반게리온만 못하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까놓고 이야기해서, 이런식으로 에반게리온의 아류작이라고 비판하기 시작하면 끝도 한도 없습니다. 전에 나온 작품에게서 영향을 받지 않고서는 새로운 작품도 나오지 않는 법이니까요. 게다가 이런식의 논리를 확대하면 마징가 Z 이후로는 어떠한 메카닉물도 나와서는 안되며, 퍼스트 건담 이후로 나온 일명 리얼계 로봇물들은 죄다 건담의 아류이고, 데즈카 오사무 이후의 만화가는 다 사이비라는 결론까지 도달하게 됩니다. 일단 작품을 놓고 작품 자체가 어떤지를 본 다음에 그 작품의 좋은 점을 인정해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창궁의 파프너는 잘 만든 작품입니다. 포스트 에바가 가지는 코드를 넘어서 자기만의 색체가 있는 작품이니까요. 에반게리온이 주된 테마를 '소통'에 초점을 맞추어 놓았다면, 창궁의 파프너는 '생존'에 초점을 맞춥니다. 평온했던 섬의 일상이 단 한순간에 무너지면서 소년 소녀들이 알고 있던 현실은 완전히 무너집니다. 평온해보이던 타츠미야 섬은 사실 대 페스튬 요격 요새였고, 믿었던(?) 친구는 자신의 친구보다 파프너가 더 중요하다고 이야기하고, 자신들은 알고 보니 인공 자궁에서 만들어져서 길러지는 새로운 인류였으며, 타츠미야 섬은 전세계를 등진 존재라는 것, 자신이 알고 있던 세계는 이미 멸망한 것 등등 주인공들에게 있어 일상은 순식간에 비일상으로 바뀌게 됩니다. 

 이렇게 창궁의 파프너는 살아남기 위해서 전세계를 등지고, 아이들에게 파프너를 타고 싸움을 강요할 수 밖에 없는 부조리한 상황에서 시작합니다. 그리고 싸움에 내몰린 아이들은 돌아갈 수 없는 과거를 추억하면서 앞으로 나갈 수 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앞으로 나가면 나갈수록 점점 예전의 자신들에게서 멀어지게 됩니다. 또한 싸움에서 이기고 살아남는 것, 그것이 언제나 살아남는 사람에게 있어서 행복이 될 수 없다는 것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러한 과정을 애니는 적절하게 서술하고 있으며, 이야기 구조를 뒷받침하기 위해서 음악이나 컷들을 적절하게 배치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보통 상황에서는 대단히 찌질해 보일수도 있는 주인공들의 행동이 마음에 와닿습니다.

- 일단 페스튬이라는 적도 흥미로운 적이기는 합니다만, 현재까지 제가 감상한 분량(~14화 까지)에서는 별다른 특별한 정보가 공개되지 않아서 별다른 언급을 하지 않겠습니다. 여태까지 제가 쭉 보아온 애니의 적들과 다르게 '당신은 거기 있습니까?'라는 존재론적인 질문을 던지고 다니더군요. 다만 문제는 멘트가 그거 하나 밖에 없어서, 나중에는 듣는 사람이 지겨울 정도입니다(.....) 그래도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창궁의 파프너는 많은 부분에 있어서 북구 신화를 차용하고 있습니다. 브륜힐데 시스템, 발키리의 바위굴, 그리고 파프너 뒤의 넘버링이 독어인 점은 창궁의 파프너가 독일 및 북구 신화에서 모티브를 차용하고 있다는 점을 알 수 있게 합니다. 신세기 에반게리온이 성경 및 기독교적인 부분에서 모티브를 따왔고, 라제폰은 이집트 신화에서 모티브를 따온 점을 생각하면 나중에 '신화라는 텍스트로 본 포스트 에바'라는 분석도 가능하겠군요.

-이 애니 감상에 있어서 유일하게 거슬리는 부분은 바로 케릭터 디자인과 작화입니다. 건담 시드, 시드 데스티니의 히라이 히사시, 이걸로 게임 셋입니다(......) 이 사람의 특징은 케릭터가 3종류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해어 스타일만 바꾼 키라 클론, 여자, 그리고 보통 사람(.......) 사람이 그림을 그리면 좀 개성있게 그릴 것이지, 생겨먹은 게 죄다 그놈이 그놈같고 저놈이 저놈같으니 문제입니다. 물론 최근작 히로익 에이지는 좀 나은거 같습니다만, 저는 지금 히로익 에이지를 보는게 아니라 창궁의 파프너를 보고 있는 것이거든요(......)

작화는 붕괴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좋다고도 할 수 없는 미묘한 경계에 있습니다. Xebec이 뭐 그렇게 작화력이 나쁜 건 아니지만, 창궁의 파프너는 객관적으로 좋다고도 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무너지기 직전의 아슬아슬한 선은 유지해주고 있으니 감지덕지 하고 보고 있는 중.

잘하면 罪惡業에서 다룰지도?
애니, 만화, 영화 이야기/리뷰

 

(안녕 소년! 난 간지 브래드라고 한다!)

에...'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를 오늘 친구와 함께 보고 왔습니다. 개인적인 소감으로는 참 복잡 미묘한 작품이더군요. 주된 내용은 80세의 모습으로 태어나서 점점 나이를 거꾸로 먹어가는 밴자민 버튼이라는 사람의 이야기입니다. 이러한 밴자민 버튼의 일생 을 그려내면서 삶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이 영화의 내용이죠.

사실, 영화 티저가 처음 공개되었을 때, 저는 여러 가지 의미로 많은 기대를 했었습니다. 일단 세븐, 조디악 감독인 데이빗 핀처의 신작이기도 했고, 무엇보다도 나이를 거꾸로 먹는다는 그 상황 자체가 마음에 들었기 때문입니다. 역으로 나이를 먹어간다는 것 자체가 일종의 인생에 대한 깊은 우화가 될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아쉽게도 영화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에서는 그러한 상황 자체가 제가 기대한 것과 반대로 다가오더군요.

벤자민 버튼은 80세의 모습으로 태어났지만, 그의 정신은 평범한 사람의 정신과 똑같습니다. 나이를 역으로 먹는다는 상황을 제외 한다면요. 즉, 일반적인 사람이 나이를 먹어가는 것은 벤자민 버튼이 젊어지는 것과 같다는 겁니다. 여기서부터 영화는 그 상황에서 오는 메리트를 잃어버리고 평범한 인생 역정극이 됩니다. 비유를 하자면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영화 메멘토가 사실 정방향으로 필름을 찍은 것을 역순으로 배열해서 특이한 효과를 도출해놓은 사실을 알고, 이를 머릿속에서 다시 재편집을 해서 정방향으로 놓았을 때 슬픈 블랙 코미디 영화가 되어버리는 것 처럼요. 뭐, 이 영화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가 코미디 영화라는 것은 아닙니다만, 그의 상황이 가지는 특징은 그의 인생이 의외로 평범하게 진행(?)된다는 점에서 많은 부분 빛을 바랩니다.

물론 벤자민 버튼이 그가 가지는 특수한 상황에서 교훈을 얻지 못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의 나이를 거꾸로 먹는다는 특수한 상황은 그에게 인생을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에 대한 교훈을 가르쳐줍니다. 하지만 의외로 벤자민 버튼이 그의 특징으로 인해서 바깥 세상과 갈등하는 부분은 적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가 주변 사람들을 잘 둔 탓도 있지만, 그의 인생에 있어서 큰 사건이나 고난은 거의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의 특수한 상황을 제외하면 대단히 축복받은 인생이라고도 할 수 있지요.

그렇다고 벤자민 버튼의 인생이 그의 특수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행복하다고만 할 수 없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늙어지는데, 자기 혼자만 젊어지는 것은 축복이 아닙니다. 그러나 문제는 그 젊어지는 대상이 브래드 피트라는 점입니다. 사실, 이 영화에서 브래드 피트는 연기를 잘 합니다. 인생 경험이 많은 눈빛을 보여준다던가 등은 좋았는데, 이 사람이 뭘 하면 등 뒤에서 후광이 비치는 거 같은 느낌이 들어서 문제입니다(......) 20대를 넘어서면서(겉 나이로는 50~60), 이 사람이 옷을 입고 다니는게 완전히 어디 광고에 나올법한 이미지와 포스를 풍기면서 나오기 시작하면 '아 이거 좀 아닌데?' 싶더군요. 즉, 브레드 피트의 연기 보다는 그가 풍기는 오라가 작품에 안 어울린다는 느낌입니다. 그러니까 밴자민 버튼이 '나이를 거꾸로 먹어가는 특수한 상황에 처한 밴자민 버튼'이 아니라 '나이를 거꾸로 먹어가는 광고 선전에 나올 법한 브레드 피트'로 보여진다는 거죠(안젤리나 졸리는 '체인즐링'에서 자기 이미지를 죽이는데 성공했는데, 반성해라 브레드 피트!)

영화 내의 화면 구성이나 이미지 등은 적절합니다. 담담하고 차분하며 현실적인 분위기죠. 다만 문제는 너무 현실적이기 때문에 그의 독특한 상황을 제대로 살려내지 못합니다. 상황도 상황인데, 좀 초현실적인 이미지나 분위기로 나가도 솔직히 좀 상관없지 않았나 싶을 정도니까요. 동화적인 부분과 현실적인 부분, 그 양쪽 경계에서 이것도 저것도 아닌 묘한 위치에 서있기 때문에 이 영화는 참 보는 사람도 복잡 미묘한 느낌을 들게 만들더군요. 인생에 대한 이미지나 동화적인 느낌을 잔뜩 집어넣고 벤자민 버튼의 특수한 상황을 잘 살려서 동화적인 작품을 만든 것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그러한 특수한 상황이 고난과 역경이 되어서 이를 넘어서는 과정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저 비교적 축복받은 인생을 살다간 사람의 이야기를 그려내고 있으니, 이 둘 중 하나를 기대하고 본 사람으로써는 미묘할 수 밖에 없었으니까요.

그렇다고 영화가 완전히 망쳐졌다던가 이상한 작품이 된건 아닙니다. 영화는 '당신의 상황이 무엇이든 간에 당신의 삶을 살아라' 이렇게 말하고 싶은 것이었겠죠. 하지만 문제는 그러한 과정이 별다른 감흥이 없게 진행되었다는 점입니다. 사람에 따라서 호불호가 극심히 갈릴 영화라고 생각은 됩니다만, 일단 저는 썩 만족스럽지 않았습니다.




애니, 만화, 영화 이야기/기획 기사


스트레인져:무황인담은 2007년 본즈 오리지날의 극장판 애니메이션으로 일본 전국 시대의 사무라이 물입니다. 스토리는 간단합니다. 일본 전국시대, 명나라 황제가 불사의 약을 만들기 위해서 모월 모일에 태어난 아이의 피를 얻으려 하고, 모월 모일에 태어난 코타로를 죽여 그 피를 얻고자 합니다. 하지만 코타로가 고향인 일본으로 도망가게 되자, 명나라 황제는 코타로를 잡기 위해서 추격대를 파견합니다. 한편 코타로는 나나시(名無し, 이름 없는 사람)를 만나고 그를 보디 가드로 고용하고, 자신을 시라토의 만각사로 데려가달라고 이야기합니다.

스트레인져:무황인담은 전형적인 장르물의 공식을 따릅니다. 아무런 죄없이 쫒기는 어린아이, 그와 관련된 음모, 서로 다른 이해를 가지고 뭉친 사람들, 그리고 능력은 좋지만 과거를 알 수 없는 수수깨끼의 보디가드 등 서부 영화나 기타 대중 문화를 표방하는 작품에서 많이 보이는 클리셰들입니다. 언뜻 보기에는 대단히 뻔한 스토리 구조와 이야기를 하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스트레인져:무황인담은 여기에 ‘욕망’이라는 코드를 삽입하게 되면서 일반적인 장르 영화들과 다른 특징을 가지기 시작합니다.

스트레인져는 애니의 처음부터 끝까지 인물의 행동의 동기의 기반에 ‘욕망’이라는 코드가 삽입되어 있습니다. 물론 작품에서 인물들이 행동의 동기로서 많은 부분 욕망이라는 요소가 중요하게 나오기도 하지만, 스트레인져에서는 이러한 욕망이라는 물질적이며 사람을 파멸시키는 위험한 것으로 비추어집니다. 이는 애니의 배경인 전국 시대 때문이라고도 할 수 있는데, 전국시대에는 전국 통일 혹은 자신의 부와 명예를 위해서 자신의 주군이나 동료들을 죽이고 배신하고 신의를 저버리는 등의 행위가 일상적으로 일어났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스트레인져는 이러한 배경의 성격을 전면에 부각합니다. 애니의 처음서부터 끝까지 케릭터들은 자신의 욕망을 채우기 위해서 사람을 죽이고, 배신합니다. 애니의 처음 라로우 일행에게 덤비는 산도적들, 자신의 목숨을 위해서 어린아이의 생피를 마시려는 명의 황제, 자기도 거기에 어떻게든 껴보려는 명의 추격대 대장, 명의 속셈을 알아체고 더 많은 황금을 요구하려는 성주, 언젠가 명령 받는 자리가 아니라 명령하는 자리에 올라 천하를 통일하려는 야심을 가진 장수 등등...이와 같이 전국 시대는 욕망과 욕망의 물고 물리는 아수라장입니다.

또한, 그러한 욕망들은 다 부질없고 헛된 것들입니다. 대표적으로 황제가 추구했던 불사라던가, 성주나 장수가 추구했던 전국통일이나 부귀영화 등은 하나같이 말도 안되게 허황되거나, 일시적인 것입니다. 이는 황제가 코타로의 피를 얻기 위해서 정확한 시간에 피를 뽑아서 그 피를 마셔야만 불사를 얻는다는 것에서 가장 극명하게 드러납니다.

이러한 시대적 상황에서 두 주인공은 '이방인'입니다. 라로우는 서역인, 나나시는 남만인이죠. 이렇게 둘은 욕망으로 인해서 엉망진창인 세상에서 소외당한 사람들입니다. 하지만 그 세상으로부터 소외당하기는 했어도, 그 자신의 순수를 지키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일단 나나시 같은 경우, 원래 남만인이었지만 자신을 키워주었던 주군에 의해서 훌륭한 무장으로 거듭납니다. 하지만 후에 쿠데타가 일어나게 되자, 자신의 손으로 주군을 베어버리게 되죠. 그러한 아픈 기억을 가지고 있는 그는 세상에서 떨어져서 스스로 주류사회의 이름을 버리고 이름없는 자(名無し)를 자청한 것입니다(거기에 검을 봉하기까지) 그러다가 코타로를 만나게 되고, 거기서 자신이 예전에 했던 과오를 뉘우치고자 합니다. 이는 나나시가 비록 과오를 저지르기는 했지만, 다른 사람들과 다르게 순수하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라로우 같은 경우는....나나시와 많이 다릅니다. 그는 애시당초부터 나나시 같이 착하지 않으니까요. 그는 한 마리 야수입니다. 자신보다 강한 존재를 찾아다니는 야수. 하지만 아편류의 약을 복용해서 통증을 없애고 힘을 비약적으로 증진시키는 다른 추격대원들과 달리 그는 순수하게 육체적인 힘과 무술을 추구합니다(나나시가 약을 거부하자 '좋아, 매우 좋아'라고 한 부분) 또한 황제가 불로불사를 추구하는 것이나, 주류사회의 욕망이나 문제를 대단히 하찮은 것으로 여깁니다. 이건 그 나름대로의 '순수'의 개념입니다. 순수한 강함이야말로 라로우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명제이며, 그 외의 세속적인 문제는 중요하지 않죠.

애니가 막바지로 다다를수록 각자의 욕망에 이끌린 등장인물들은 모두 다들 파국으로 치닫게 됩니다. 애니에 나온 거의 모든 등장인물들이 죽고, 피를 뽑기 위한 재단은 다 부숴지게 되죠. 그러한 아수라장 위에서 나나시와 라로우, 코타로만 남게 됩니다. 그리고 이 애니의 클라이막스인 나나시와 라로우의 대결장면이 나오게 됩니다. 나나시와 라로우, 이 둘 모두 이 세상에 있어 순수한 자들이었고 힘 또한 호각이었지만, 나나시가 코타로에게 배푼 선업이라는 작은 차이로 대결은 나나시의 승리로 끝나게 됩니다.

이와 같이 스트레인져:무황인담 은 기존의 장르영화의 코드에 '욕망'이라는 단어를 삽입함으로써 나름대로의 독특한 작품성을 가진 작품으로 탄생했습니다. 물론 애니는 기본적으로 화려한 액션을 보여주기도 하지만요. 이와 같이 재미와 내용, 두가지 측면을 다 충족시키는 재밌는 극장판 애니메이션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덧.작년 SICAF에 온 감독의 코멘트에 따르면 나나시는 죽는다고 합니다.
덧2.동생놈이 가서 감독 사인을 받았더군요. 근데 거기서
스트레인져 초회 한정 블루레이 디스크 박스에 사인 받아가는
인간도 있었다고 합니다 흠좀무...

다음은 망념의 잠드...

애니, 만화, 영화 이야기/애니에 대한 잡생각



-슈로대Z만 아니었다면 관심도 없었을 작품입니다. 교향시편 에우레카 7의 메카닉 디자이너가 메카닉 디자인을 맡아서 조금 관심이 있기는 있었지만, 워낙이 평이 뭣 같아서 그냥 넘기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번에 슈로대 K 참전작들을 복습하고 있는 와중에 한번 보기로 결심했습니다. 저와 안맞을 걸 예상하고 이를 감수하면서 볼 거라고 결심한 보고 있는 작품이기는 한데, 직접보니까 할말을 잃게 만드는군요(......)

-일단 취향에 맞고 안맞고를 떠나서, 오르가즘 합체장면은 사람을 벙찌게 만듭니다. 아쿠에리온은 벡터 솔-벡터 마스-벡터 루나 이렇게 세개의 기체가 합체를 해서 3가지 바리에이션을 만들어냅니다. 겟타 로보를 생각하면 됩니다. 하지만 그거하고 관계 없이 아쿠에리온의 합체 장면은 보는 사람을 질리게 만듭니다. 솔직히 저도 로봇 합체장면은 여태까지 여러가지 바리에이션을 보아왔지만, 장면 그 자체로 사람을 질리게 만드는 건 이게 처음입니다. 그것은 바로.....





사람이 느낀다는 것.그것도 성적인 의미로(......)

아앙~


 아니, 로봇이 합체하는데 왜 사람이 느끼는 겁니까? 왜? 일단은 절반 이상까지(14화까지) 밖에 안보았으니까 이에 대한 정확한 설명은 나오지 않습니다. 하지만, 제 느낌으로는 앞으로도 별 설명은 없을거 같네요. 사실 별 설명이 있던 없던 별 차이는 없으리라 생각이 듭니다;; 혹자는 이 애니의 주제가 '합체에서 느끼는 쎼..쎾ㅆ의 쾌감'라고 하는데(.......), 물론 다른 작품이었다면 그냥 농담으로 받아들였을 것입니다. 하지만 문제는 이 작품은 주제 의식으로 '쎼....쎾ㅆ!'라고 해도 별로 놀랍지 않다는 것이죠(.....)

-일단 합체 장면을 제외하더라도, 내용도 상당히 떨어집니다. 일단 다른 작품과의 차별성을 별로 못 느낍니다. 인류를 지키는 소년 소녀들, 이들을 교육하기 위한 학교, 거대한 로봇, 기괴한 인류의 적들....이런 설정은 골백번도 써먹은 소재입니다. 물론 소재가 진부하다고 해서 애니의 재미가 떨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얼마나 그 진부한 소재를 결합시켜서 멋진 작품으로 승화시키느냐가 중요한 것이죠.

 그런면에서 아쿠에리온은 빵점을 받아야 합니다. 진부한 설정을 끌어오는 것도 모자라서 진부하고 생뚱맞기 짝이 없는 전개에, 사람을 짜증나게 만드는 케릭터들로 애니가 가득 차있으니까요. 매화 매화 총사령관은 특훈이다 뭐다 하면서 엘리멘트들(아쿠에리온 조종사)에게 상식으로 이해가 안 되는 훈련을 시킵니다. 뭐 매화 마지막에 주인공들은 그 훈련이 성공적이고 교훈적이라는 것을 알게 되지만, 그 과정이 대단히 작위적이고 쓸모가 없습니다. 주인공들이 특훈의 의미를 머릿속에 새겨넣었을때 쯤이면 이미 신화수들은 목적을 달성하고 튀어버리니까요(......)

 그리고 애니에 나오는 케릭터들은 하나 같이 마음에 안 듭니다. 그냥 머릿속에 아무것도 안든 열혈 바보 주인공, 별로 멋지지도 않은 미학을 관철하는 나르시스트인 주인공 라이벌, 골수 브라콘인 히로인, 자기는 맨날 불행하다고 찌질거리는 여인네 1, 그런 찌질한 선배를 사랑하는 여인네 2, 덕후 등등... 어디서 짜증나는 케릭터들만 죄다 뽑아서 데려온듯한 느낌입니다. 케릭터에 감정이입도 안되고, 이해도 안됩니다.

-설정이나 분위기 작화는 그럭저럭 괜찮습니다. 다만 제가 위에서 제기한 문제가 대단히 거슬리기 때문에 좋은 작품이라 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이 병맛이 상당하기 때문에 보고 있습니다. 사실, 더 좋은 작품들도 있지만, 가끔가다가 병맛나는 작품도 봐야지 좋은 작품이 어떤 작품인지를 알 수 있으니까요. 그리고 저번에 친구에게서 들었던데로 주제가 '쎾ㅆ!'인지도 한번 확인을 해보고 싶으니까요(.......)


덧.어제 술마시고 완전히 맛이 가버렸습니다 OTL
오늘 하루종일 끙끙거리면서 몸조리 했구요;

덧.슬슬 리뷰나 칼럼을 쓰는 감각이 돌아오고 있습니다.
다음주 내 중으로 罪惡業 칼럼과 리뷰를 재개하도록 하겠습니다.

애니, 만화, 영화 이야기

(바람직한 의사의 자세....시즌 5임)

-시즌 3 마지막, 원 진단 팀 맴버들ㅡ카메론, 체이스, 포어멘ㅡ을 잘라버리고 새로운 팀을 구성합니다. 개인적으로 포어맨은 나가는 것을 3기에서 줄곧 강조했기 때문에 포어맨 이외의 다른 사람을 영입하고 체이스와 카메론은 돌아올 줄 알았는데, 어이 없게도 카메론과 체이스 까지 나가버리고 처음부터 팀을 구성하더군요; 사실 체이스 자른 것도 황당한 경향이 없지 않았지만, 하우스가 원 맴버들을 전혀 그리워 하지 않는다는 것도 조금 놀랐습니다. 뭐, 어떤 의미에서는 정말 '하우스 답다'라고 할 수 있지만, 3기까지의 정(?)을 생각하면 좀 냉정하게 군 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뭐, 다들 다시 원래 있던 병원으로 돌아옵니다. 좀 웃긴건, 자기 발로 나갔던 포어맨이 갈데가 없어서 다시 하우스 밑으로 들어온다는 것이죠(.......)

-확실히 하우스는 팀이 있어야 진단을 정확히 내릴 수 있는거 같습니다. 초반에 팀이 없을 때와 10~20명 이나 되는 사람들을 데리고 서바이벌(?) 훈련을 할 때는 전에 비해서 실력이 떨어진다는 느낌을 받죠. 실수도 많고, 아이디어도 지리멸렬하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하지만, 팀 맴버가 고정 되었을 때부터, 확실히 하우스의 진단이 맞아떨어진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팀이 있을 때는 혼자 잘나간다는 느낌이었는데, 제대로 받쳐주는 팀이 없으니까 천하의 하우스도 자주 틀리더군요.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결과적으로 전직 성형외과 의사 타웁, 카트너, 그리고 13번(...이름보다 이게 더 익숙;;)이 최종적으로 팀에 들어오게 됩니다. 처음에는 각각 특징이 없이 밋밋하다는 느낌이었지만, 점점 가면 갈 수록 각자의 케릭터를 가지게 되더군요. 13번 같은 경우는 전에 카메론이 했던 역할을 이어받으면서 거기에 좀 쌀쌀맞은 성격을 섞었다면(거기에 헌팅턴 무도병이라는 시한부 인생까지 첨가), 타웁은 냉소적이고 신경질적이고, 카트너 같은 경우는 어벙하고 이상한 비유나 발상을 많이 만들어냅니다. 개인적으로 카트너의 성격이 가장 재밌더군요.

-시즌 마지막, 하우스의 잘못으로 윌슨의 애인 앰버가 죽게 됩니다. 원래는 하우스의 팀 지원생이었지만, 냉혹함과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는 그녀의 성격때문에 하우스는 결국 팀에서 그녀를 빼버리고 맙니다. 하지만 앰버는 윌슨과 지속적으로 만나게 되고, 하우스는 이 둘의 관계를 부정적으로 받아들입니다. 순둥이였던 윌슨을 '냉혹한 암캐'(팀에 있었을때 별명) 앰버가 이용해 먹을것이라고 말이죠.

하지만, 하우스의 잘못으로 앰버가 죽게 되자(엄밀히 그의 잘못이라기 보다는 악연이 겹친거죠), 윌슨은 하우스와 더 이상 친구가 아니라고 결별선언을 합니다. 하우스가 앰버를 진단하기 위해서 목숨걸고 위험한 시술을 받기까지 했지만, 하우스가 여태까지 윌슨을 너무 쉽게 이용해먹은것도 사실이고 이번걸로 인해서 그게 폭발했다고 할 수 있죠. 5기 초반에 돌아온다고는 하는데, 아직 거기까지는 안 봤습니다;
애니, 만화, 영화 이야기/애니에 대한 잡생각

하우스를 보고 있기 때문에 대기열 저멀리 밀려가버린 창성의 아쿠에리온. 사실, 작화도 마음에 안들고, 내용도 묘하게 병맛인데다가, 그보다 더 큰 이유는 합체 장면이 거의 병맛을 넘어서 보는 사람에게 오르가즘을 느끼게 한다는 점 등으로 넘기고 있는 작품이었습니다. 그래서 다운받아놓고 구석에 썩히고 있는데 최근 다시 보기 시작. 그 이유는 최근 술자리에서 만난 친구놈의 한마디 때문이었습니다.

군대가는 친구를 위한 술자리에서 저는 다른 친구를 붙잡고 슈로대 Z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었습니다. 최근 참전작이 많은 작품인 만큼, 자연스럽게 창성의 아쿠에리온 이야기로 넘어갔습니다.

자연스럽게 오르가즘 합체 장면이야기를 하게 되었고, 그 친구가 이야기를 하기를...

"그게 아쿠에리온의 주제야"

.
.
.
.

 
오르가즘이 주제라고?

엄밀히 이야기해서 '합체'의 오르가즘이지만;;;

그러나 더 황당한 건...



"마지막까지 보면 마지막 합체장면에서 질질 짠다는데?"

.
.
.
.
.
.
.


아 미치겠다.

끝까지 보는거 확정(......)
애니, 만화, 영화 이야기/리뷰


식령 제로는 동명의 라이트 노벨인 식령의 이전 시간대를 다루고 있는 프리퀼 작품입니다. 많은 작품에서 써먹은 '퇴마'라는 코드를 중심으로 한 작품인 식령 제로는 자칫 잘못하면 그렇고 그런 평범한 작품이 될 뻔하지만, 이러한 클리셰를 탄탄한 시나리오로 극복하고 있습니다. 주 내용은 퇴마사 가문에 태어나서 사상 최강의 식령 백예를 봉인하는 퇴마사 집안 츠지미야 가에 태어난 숙명을 이어가는 츠지미야 카구라라는 소녀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애니의 주 내용은 '평범한 소녀 였던 카구라가 어떻게 퇴마사로 거듭나는가?'에 초점을 맞추어져 있습니다.

애니는 이러한 상황을 설명하기 위해서 현재-과거-현재라는 구조를 보여줍니다. 이런 구조는 여기 저기서 많이 써먹는 구조이기도 하죠. 애니의 처음, 애니는 퇴마사 동료들을 배신한 요미를 보여줍니다. 그러나 요미의 변절을 카구라는 받아들이지 못하죠. 여기서 이야기는 시작됩니다. 요미와 카구라의 관계는 어떤 관계인가? 요미는 왜 변절 하였는가? 이런 식의 질문을 시작하면서 던지는 것이죠.

초반 이후에는 카구라와 요미, 이 둘의 행복한 순간을 보여주면서 이야기는 초반의 비극적인 부분을 강화합니다. 그 내용만으로는 도대체 왜 초반에 요미가 카구라를 증오하는지에 대해서 감을 잡을 수 없습니다. 아니, 그보다 왜 증오하는지 그 자체를 이해할 수 없습니다. 같은 목표를 보고, 서로를 친 가족처럼 감싸며, 서로의 감정을 공유하는 그들의 엇갈릴 이유는 없다고 보여지기 때문입니다. 도저히 파고들 틈이 없습니다. 하지만, 그러한 파고들 틈이 없는 그 관계를 단 한순간에 반전시키고, 요미라는 인물을 타락시키면서 애니는 결말로 다다르게 됩니다.

애니가 막바지에 이를 때, 요미는 그녀의 인생 자체가 무너지게 됩니다. 도저히 겉잡을 수 없이요. 사랑하는 아버지를 잃고, 이사야마 가의 후계자를 빼앗기고, 아버지가 맡긴 사자왕을 빼앗기고, 마지막으로 약혼자인 노리유키가 떠나게 됩니다. 그녀의 인생을 완벽하게 박살이 난 셈이지요. 이는 모두 살생석이 요미를 더 이상 이사야먀 요미가 아닌 살생석에 이끌여 자신의 욕망대로 움직이는 괴물로 만들기 위한 책략인 것입니다. 초반의 행복했던 그녀의 모습과 대비되면서, 그녀의 비극을 심화시키죠. 그리고 그러한 책략은 그녀를 약하게 하고, 그 틈을 파고 들자는 살생석의 계략은 완벽하게 맞아 떨어집니다. 결국, 요미는 살생석의 유혹을 못이겨 괴물이 됩니다.

그와 반대로 애니의 초중반, 카구라는 자신의 책임과 의무를 제대로 인지하지 못합니다. 이 세상에 존재하면 안 되는 것들을 없애고, 세계의 균형을 유지하는 퇴마사의 의무를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그녀는 그저 평범한 소녀입니다. 임무 중에 스쳐지나간 여자가 자살해서 망령이 되자 그녀를 똑바로 베지 못하고, 좋아했던 양호실 선생에 망량이 붙어서 카테고리 D가 된 것을 죽였을 때, 그녀에 대해서 죄책감을 느끼죠. 그리고 퇴마사인 아버지를 받아들이는데 껄끄러워 합니다.

하지만 요미가 괴물이 되고, 요미에 의해서 아버지가 죽게 되자 카구라는 퇴마사인 아버지와 자신의 사명을 이해합니다. 그것은 자신밖에 받아들이지 못하는 숙명, 누군가 해야만 하는 의무라는 점을요. 결국 카구라는 요미를 죽이고 퇴마사로 거듭납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요미는 그녀의 중요한 것들을 잃게 되죠. 그리고 그러한 비애와 슬픔을 짊어지게 됩니다.

식령 제로는 이러한 비극의 탄생 과정을 보여줍니다. 어떻게 평범한 소녀ㅡ언니를 사랑하고, 친구와 어울리고 싶으며, 과자 먹는 것을 좋아하는ㅡ가 비극적인 숙명을 받아들이고 퇴마사가 되는 과정을 잘 보여주고 있으니까요. 또한 카구라가 퇴마사가 되면서, 그녀의 인생이 전과 다르게 되었는가 라는 점도 잘 보여줍니다. 요미를 베어버린 카구라에게 있어서, 요미를 베기 전과 베고 난 후의 인생은 도저히 같을 수 없으니까요.

이러한 점에서 식령 제로는 훌륭한 작품입니다. 시나리오의 완급도 훌륭하며, 이야기에 있어서 군더더기도 없고, 비교적 짧은 시간에 케릭터의 행동과 그 동기를 잘 설명하고 있습니다. 다만, 이 작품 자체로는 완결성이 없다는 점ㅡ물론 카구라가 퇴마사가 되는 동기는 설명하지만, 구미호와 살생석에 대한 이야기는 완결성이 없으니ㅡ에서 좀 아쉬운 감이 없지 않아 있습니다. 하지만, 원작 이전의 프리퀼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어느 정도 이해가 되는 이야기 구조입니다. 따라서 식령 제로는 괜찮은 작품입니다. 식령 제로 때문에 원작 식령을 읽고 싶어질 정도이니 말 다한 셈이죠.

덧. 저는 Blood+가 이런 구조를 따랐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덧2.술 마시고 머리가 어질어질 한 상태에서 쓴 리뷰입니다.
좀 이상하더라도 이해해 주시길;;;

애니, 만화, 영화 이야기/애니에 대한 잡생각

요즘 가족들과 함께 보고 있는 미국 의학 드라마인 하우스를 보고 있습니다. 근래 만들어진 의학 드라마 중에서는 가장 마음에 드는 작품. 개인적인 취향으로는 그레이 아나토미나 ER 같이 미국 프렌드식의 선남선녀들이 잔뜩 나오는 드라마가 아니라, 병과 사람의 삶이 직결되는, 사람 냄새나는 작품이기 때문에 더 좋은 거 같습니다. 특히 그러한 병과 사람 사이의 관계에 대해서 솔직하게 보여주려고 하는 것이 이 드라마의 가장 큰 매력입니다.

드라마 하우스에서 가장 매력적인 케릭터는 이 드라마의 주인공인 그레고리 하우스 박사. 다른 드라마와 다르게 병을 치료하는 과정이 아니라, 그 원인을 찾아내는 진단 의학을 테마로 다루고 있고, 당연히 이 드라마의 주인공인 하우스는 천제적인 진단의학자입니다. 여기까지는 평범한 의학 드라마의 정석을 따른다고 할 수 있습니다만, 하우스가 다른 드라마와 많은 차이를 가지고 있는 점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하우스라는 케릭터가 대단히 시니컬하고 독선적이며, 머저리같은 인물이라는 점입니다. 동시에 장애를 가지고 있는 인물이기도 하고, 아편류 진통제인 바이코딘을 옆에 끼고 사는 약물 중독자입니다. 게다가 심각한 유물론자이구요.

그러한 과정에서 하우스는 항상 사람들과 거리를 유지하려 하고, 원인을 알 수 없는 병세를 진단해서 퍼즐 풀 듯이 해결해나가지만, 결과적으로 그 과정에서 자신의 세계 밖에 있는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과 접촉하게 됩니다. 하지만 그는 바뀌려 하지 않죠. 그렇다고 그가 완전한 사이코 패스나 사회 부적응자라는 걸 의미하는 건 아닙니다. 드라마에서는 그의 인간적인 모습또한 잘 보여주니까요. 

이와 같이 진단의학을 통해 의학 드라마와 추리물을 섞은 점, 병과 사람 사이의 관계(모든 에피소드가 그런건 아니지만;), 하우스와 일반 세계 관념 사이에서의 갈등과 하우스라는 독특한 케릭터가 가진 매력 등은 이 드라마를 훌륭한 드라마로 만들게 했습니다. 기회가 된다면 한번 꼭 보시길 추천합니다.

덧.이거 하나 때문에, 게임도 못하고 애니도 못보고, 블로그질도 못하고....
모두 다 대기열 밖으로 밀려나버린....
1 ··· 25 26 27 28 29 30 31 ··· 39
블로그 이미지

IT'S BUSINESS TIME!-PUG PUG PUG

Leviath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