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이야기



※ 멀티플레이 전반에 대한 이야기는 http://leviathan.tistory.com/2377 를 참조해주세요


블랙아웃이란 배틀로얄 모드가 처음 공개되었을 때, 사람들의 반응은 부정적인 의미에서 폭발적이었다. 애시당초에 배틀필드와 같이 거대한 맵에서 전투를 벌이는 게임도 아니었고, 게임은 기본적으로 작은 맵에서 빠르게 치고 받고, 빠르게 죽고 빠르게 되살아나는 것이 핵심이었다. 또한 시리즈 특유의 퍽/부착물/킬스트릭 시스템 등의 다양한 요소를 배틀로얄에 접합시킬만한 접점이 없었다. 팬들 입장에서는 싱글 플레이가 빠지는 것도 모자라서, 검증되지 않은 물건을 들고나오는 것에 대해 자연스럽게 불안감을 느낄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게다가 블랙아웃의 실제 플레이 영상 등을 공개하지 않고, 심지어 전통적인 마케팅 창구였던 E3까지 건너뛰면서 팬들의 불안감을 더욱 가중시켰다.


하지만 베타 이후, 정식 발매된 콜옵의 배틀로얄 모드는 성공적으로 시리즈의 일부가 되었다. 물론 다양한 이슈사항들이 있었지만, 블랙아웃의 게임 시스템은 전반적으로 잘 작동한다. 단순하게 평가하자면, '배틀로얄 장르의 틀을 쓴 콜 오브 듀티'라 할 수 있다. 게임 페이스는 매우 빠르며, 행동 반경이 줄어들고, 파밍 같은 요소들은 여타 배틀로얄 모드에 비해서 간편한 편이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이러한 '콜 오브 듀티스러운 배틀로얄'이란 개념 자체는 매우 이상하다:콜옵은 여지껏 큰 맵에서 싸우는 게임이 아니었다. 고스트나 모던 워페어 2의 그라운드 워페어 같은 경우가 거대한 맵에서 일어나는 원/근거리 교전을 다뤘지만, 이 역시도 시리즈 전체 비춰놓고 보았을 때 실패했었다. 즉, 여지껏 콜옵 제작진들은 거대한 전장과 동선, 교전 환경을 성공적으로 구성한 적이 없었다.


흥미롭게도, 블랙아웃에서 콜옵의 게임 경험이 녹아나오는 것은 제작진에 치열한 고민이 있었기에 가능한 점이었다. 물론 멀티플레이 전반을 다룬 리뷰에서 이미 블랙옵스 4는 콜옵의 틀과 형식을 넘어서서 새로운 콜옵의 경험을 정의내렸다(여기) 그리고 블랙아웃은 그러한 변화의 수혜를 직간접적으로 받은 경우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우선, 수동 체력회복 시스템은 아이템을 소비하는 것으로 대체되었으며, 초기 파밍 이후에도 꾸준히 체력과 방어구를 챙겨줘야할 상황을 만든다. 붕대나 구급상자, 트라우마 키트 같은 회복템들을 소비하여 체력을 회복하는 시스템은 전투 중에 잠시 쉬면서 체력을 회복해야하는 상황을 만든다. 그러나 배그나 여타 배틀로얄 게임들과 다르게 블랙아웃에서의 체력회복 및 아이템 소비 속도는 매우 빠르며, 피해를 입더라도 신속하게 전투로 복귀할 수 있다는 특징이 있다. 전반적으로 블랙아웃은 여타 배틀로얄류 게임들에 비해서 아이템이나 탄환 소비속도가 빠르며 이런 점에서는 기존 콜옵을 연상케하는 부분이 있다. 그렇기에 초반 건물 파밍 이후부터는 킬 파밍이라 불리는 상대를 제압해서 아이템을 뺏는 방향으로 나아간다.


PUBG나 포트나이트와 다르게 강력하게 설정된 투척류 아이템이나 퍽과 소모성 아이템은 킬스트릭이 부재한 자리를 대신 채워주는 강력한 요소라 할 수 있다:예를 들어 집속 수류탄은 블랙옵스 4의 베터리가 던지던 것과 동일하게 폭발 후 여러개의 수류탄으로 나뉘어지면서 건물 내의 적들을 청소하기 쉽게 만들어 준다. 바리케이드와 철조망은 접근하는 적들을 막고 높은 방호력을 제공해주기 때문에 농성이나 수비적인 플레이를 할 때 매우 유용하다. 그외에도 블랙아웃에는 여타 배틀로얄 게임에서는 꿈도 꿀 수 없었던 맵 탐지 기능을 가진 추적 다트나 이런 소비 아이템이 즐비하다. 하지만 게임은 여기에 더 나아가서 콜옵 시리즈 전통의 퍽 시스템을 소비용 아이템으로 끌어오면서, 여타 배틀로얄에서 볼 수 없었던 강력한 플레이가 가능해진다:사격을 받으면 상대가 총을 쏜 위치를 곧바로 확인할 수 있는 퍽이나, 설치물/탈 것이 사용된 위치 등을 확인할 수 있는 퍽의 존재는 기존 배틀로얄에 비해서 더 빠른 템포로 적을 인지하고 싸울 수 있게 만든다. 


결론적으로 블랙아웃 모드는 출시 전 후의 우려되는 상황에도 불구하고, 배틀로얄의 문법을 콜옵의 방식대로 효과적으로 구현한 모드라 할 수 있다. 이 부분에 대해서 제작진들은 스스로 자랑스럽게 여겨도 될 것이다.





하지만 블랙옵스 4에서 주목할 부분은 시리즈 최초로 배틀로얄 모드를 탑재하였다는 사실이 아니라 시리즈 최초로 싱글플레이를 제외했다는 점일 것이다. 모던 워페어의 성공은 영화적 스펙타클이 가득한 싱글플레이 게임의 흥행과 빠른 페이스의 멀티플레이에 기반한 것이었다. 모던 워페어의 성공 이후로 콜옵은 멀티플레이와 싱글플레이, 그리고 월드 앳 워부터 추가된 코옵 콘텐츠인 좀비 모드가 콘텐츠의 삼각편대를 이루었다. 그러나 블랙옵스 4는 최초로 이 콘텐츠 구조를 무시하고 싱글 대신에 배틀로얄 모드를 집어넣은 것이다. 심지어 블옵 4는 콜옵 싱글에서 죽을 때마다 전쟁에 대한 격언을 띄우는 전통을 블랙아웃 사망 화면에 구현함으로써 은연중에 블랙아웃 모드가 싱글플레이만큼 중요한 위치를 점한다고 어필한다.


물론, 이들이 전통을 무시한 데는 근거가 있었다. 도전과제나 트로피 달성률에 근거하여보았을 때, 플레이어들이 싱글 캠페인을 끝까지 플레이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유명 배우와 성우 캐스팅, 별도의 개발 인원과 천문학적 예산, 시나리오 라이터를 들여서 만든 콘텐츠를 끝까지 클리어하는 플레이어 인구가 3~5% 정도 수준이라면 회사 입장에서도 제거하고 자신들이 할 수 있는 부분에 집중하는 것이 더 좋을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변화는 프랜차이즈의 정체성을 흔들 수도 있는 부분이었다:블랙옵스 4의 케이스를 다른 프랜차이즈로 비교하자면, GTA 시리즈에서 멀티플레이를 많이 하니 싱글플레이 컨텐츠를 제외하고 게임을 내는 것과 동일한 것이다.


그렇기에 블랙옵스 4의 존재는 어떤 의미에서는 매우 절박한 상황에서의 실험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멀티플레이의 패러다임은 점점 콜옵식의 멀티플레이에서 벗어나고 있고, 배틀로얄의 등장은 데스매치 중심의 멀티플레이 환경을 다변화시키고 소비자 층을 야금야금 갉아먹는 중이었다. 블랙옵스 4의 존재는 더이상 콜옵 시리즈의 전통을 지켰다간 판매량을 유지할 수 없다는 것을 스스로 증명한 것이다. 흥미롭게도 블옵 4는 오프라인 판매량은 전작들에 비해서 엄청나게 줄어들었지만, 디지털 판매량은 이전에 비해서 엄청나게 늘어났다. 어쨌든 싱글을 빼고 배틀로얄 모드를 집어넣은 초강수가 먹혔다는 것이다.


하지만 블랙옵스 4의 변화는 콜옵의 시대가 끝났다는 것을 스스로 증명하였다:이제 기존의 게임 판매 모델과 콘텐츠를 그대로 사용하였다간 프랜차이즈 자체가 망할 수 있다는 위기의식에서 변화를 추구하였기 때문이었다. 기존의 콜옵들은 변화를 하더라도 모던 워페어라는 큰 틀에서 게임의 기조를 지키려하였다. 가장 기괴한 콜옵이었던 어드벤스드 워페어나 블랙옵스 3 같은 경우에도 어쨌든 콜옵이기 위해서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하지만 블랙옵스 4는 콜옵이라는 게임의 기저를 어느정도 바꿔버리고 말았다. 블옵 4는 싱글플레이를 빼버리고 지금 흥행하고 있는 배틀로얄 모드를 게임에 탑재함으로써 콜옵이라는 게임이 무엇이든 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둔 셈이다. 


결론적으로 블랙옵스 4는 모던 워페어 이후로 가장 변화한 콜옵이라 할 수 있다. 물론 프랜차이즈의 정체성을 모두 무시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모던워페어가 세워놓은 규칙들을 신경쓰지 않고 무시함으로 더이상 모던 워페어의 그늘에 매달리지 않겠다는 선언을 한 셈이다. 그러나 무엇이든 될 수 있다는 것은 역설적이게도 '무엇도 아니다'라는 선언이기도 하다. 블랙옵스 4는 분명 트라이아크가 방향성을 잘 잡았기에 성공한 편이지만, 다시금 새로운 방향성을 찾지 못한다면 콜옵의 몰락은 우리가 생각한 것보다 더 빠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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