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이야기




쿠키클리커란 게임을 아시는가? 엄밀하게 이야기해서 이걸 게임이라 분류해야할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쿠키클리커란 물건을 어떤 범주에 포함시켜야 한다면 본인은 주저없이 게임의 범주에 이를 포함시킬 것이다. 게임은 단순하다:클릭을 통해서 쿠키를 모으고, 모은 쿠키를 통해서 더 많은 쿠키를 생산할 수 있는 시설을 구입하고 천문학적인 숫자의 쿠키를 모은다. 이 과정에서 게이머는 쿠키를 굽는 할머니, 공장, 광산, 연금술 시설, 쿠키 행성, 로켓, 심지어는 쿠키 악마를 소환하는 악마의 문까지(.....) 만들게 되며, 점점 모든 것이 세계와 우주가 게이머가 만든 쿠키에 의해서 지배당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사실, 이 게임이 이정도로까지 성공하게 될줄 누가 알았겠는가? 하지만 쿠키클리커는 묘한 인기를 끌면서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렸다. 어떻게 보면 이 게임은 전통적인 게임 장르에 비추어 보았을 때, 전혀 게임이라 부를 수 없다:게이머가 할 수 있는 행위는 오로지 생산건물을 증축하거나 업그레이드를 하는 일과 쿠키를 클릭해서 쿠키를 생산하는 일 뿐이며, 이는 단순하고 지루하며 반복적인 노동의 개념에 가깝기 때문이다. 굳이 게임에서 재미를 찾아야한다면, 손가락 아프게 버튼을 누르는 노동같은 게임을 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쿠키 클리커가 게임의 범주에 포함시킬 수 있는 것은 기본적으로 쿠키클리커가 아주 단순하기는 하지만 게이머의 행위에 기반을 두고 있다는 점, 그리고 더 나아가서 기존의 게임들에서 찾아볼 수 있는 어떠한 '요소'와 맥락이 닿아있기 때문이다.


마계전기 디스가이아 라는 게임 프랜차이즈는 일본 SRPG의 명맥을 잇는 프랜차이즈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끝없는 노가다와 퍼즐적인 지형 활용, 파고들기 요소로 악명높은 디스가이아 시리즈에서 특기할만한 부분은 바로 '천문학적인 수치'이다. 게이머는 케릭터를 레벨 9999, 환생 포함 레벨 19998까지 키울 수 있으며 이러한 과정 중에서 체력, 능력치, 입히는/주는 데미지도 천문학적인 수치로 뻥튀기 되게 된다. 디스가이아의 중독성이 이 '수치'에만 근거를 두고 있다면 어불성설이지만, 이 천문학적인 수치가 주는 압도감, 거기까지 도달할 때 느낄 수 있는 달성감이 게임의 한 축을 차지하고 있다는 것은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수치에 대한 매료됨은 다른 게임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슈로대 시리즈나 16비트 게임에서 최대 데미지 수치인 65535를 뽑아내기 위해서 게이머들이 들이는 노력이라던가, '이론적으로 뽑아낼 수 있는 최대의 수치'를 뽑아내기 위해서 게이머들이 실험하고 열띤 토론을 벌이는 모습은 자주 찾아볼 수 있기 때문이다.


어째서 게이머는 '숫자'에 매료되는 것일까? 사실 이에 대한 어떤 확고한 이론이나 명확한 설명을 제시할 수 없다. 보통의 게임에서는 높은 수치가 높은 효율과 압도적인 힘으로 직결되기도 하지만(실제 디스가이아 같은 게임에서는 이렇게 볼 수 있다), 쿠키클리커 같은 게임에서는 통용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이렇게 접근해볼 수도 있다:근대 이후 인간은 모든 것을 계량적인 수치로 접근하는 사고가 일반적인 것으로 받아들였다. 그렇기에 숫자는 근대 이전처럼 더이상 추상적인 개념이 아니라 인간이 피부로 체감할 수 있는 개념이 된 것이다. 그렇기에 천문학적인 숫자는 근대적 인간에게 있어서 추상적인 개념이 아니라 실제의 풍경처럼 인간을 자극하고 흥분시킬 수 있는 '풍경'과도 같은 역할을 하게 되었다고 가정해볼 수 있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보았을 때 쿠키 클리커는 지극히 현대적인 스펙타클이라 할 수 있다:수천, 수만, 수억, 수조의 쿠키를 긁어모아서 또 다른 쿠키를 만들기 위한 시설을 짓고, 이를 통해 쿠키는 쿠키를 낳으며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그리고 이러한 쿠키 클리커의 게임 메커니즘과 중간중간 쿠키에 의해서 망가지는 세계(할머니를 괴물로 만들고, 노동자를 착취하고, 가치체계를 무너뜨리며, 심지어 과거의 쿠키를 미래로 가져와서 가져다 팔기까지한다)의 은유는 어떻게 본다면 자본주의에 대한 훌륭한 풍자로도 그려진다:자본은 끊임없이 자가 증식하며, 모든 가치 질서와 관계망을 무너뜨린다. 쿠키 클리커는 근대의 수치가 갖는 스펙타클과 자본주의의 병폐를 서브컬처적인 미학(아포칼립스와 러브크래프트식의 코스믹 호러 같은)으로 은유함으로써 사람들을 매료시키는데 충분히 성공하였다고 볼 수 있다.


다만, 쿠키 클리커가 가져다 준 새로운 가능성과 은유는 다른 게임 제작자들에게 썩 좋은 기제로 적용되지는 못했나 보다. 최근 본인은 쿠키클리커를 명확하게 밴치마킹한 탭 타이탄스Tap Titans라는 게임을 플래이 해보았고, 많은 실망감을 느꼈다. 사실 쿠키 클리커류의 최대 맹점이란 결국 게이머가 지쳐떨어져 나가지 않는다면 게임에 끝이 없다는 것이다. 엔딩도 없고, 달성해야하는 목표도 없다(도전과제가 존재하긴 하지만) 그렇기에 게임은 게이머에게 남기는 것이 거의 없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쿠키클리커는 그러한 공백을 독특한 자본주의 메타포를 통해서 극복하는데 성공하였다.


하지만 탭 타이탄스는 기본적으로 쿠키클리커의 메카니즘과 매력 포인트를 끌고 들어오지만, 게이머를 참으로 다양한 방법으로 광고와 과금의 유혹에 노출시킨다는 점에서 사람을 피곤하게 만드는 게임이다. 게이머는 탭을 통해서 몬스터에게 데미지를 입히며, 몬스터를 쓰러뜨려서 돈을 벌고 이 돈을 통해서 다양한 영웅을 고용하고 레벨업을 하게 된다. 하지만 부분유료화 게임 답게 단순하고 무미건조하게 탭을 열심히 하는것 만으로는 게임이 진행된다고 할 수 없으며, 돈을 쓰지 않으면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것이 수월하지 않다고 느껴질 정도로 빡빡하게(혹은 느리게) 진행된다.부분유료화 이외에도 게임은 일종의 보너스인 요정을 이용해서 '광고 보고 돈 좀 받아볼래?' 같은 유혹을 끊임없이 게이머에게 제시하며, 보스 몬스터가 영웅을 죽여서 일정시간 DPS를 확 낮추고 '영웅을 살리려면 보석(=돈)을 쓰세요'라고 반강요를 하는 등의 모습을 보인다. 어떻게 본다면, 전형적인 스마트폰-패드 부분유료 게임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부분유료화가 나쁜가? 사실 부분유료화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니다:스마트폰 게임의 과금체계를 오락실에서 동전을 소비하는 개념으로 접근하거나, 온라인 게임의 부분유료화의 형태로 밴치마킹하는 케이스는 많이 접할 수 있다. 많은 게이머가(대부분 패키지를 구매하는 콘솔 게이머라고 할 수 있겠다) 이러한 부분 유료화를 비난하지만, 서비스로서의 게임 개념의 등장을 고려해본다면 '적정한 가격에 적정한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전제만 지켜진다면 나쁠 것은 없다고 본인은 생각한다(비록 본인의 취향은 아니더라도) 그러나 탭 타이탄스는 근원적으로 '남는 것이 없는' 쿠키클리커의 시스템을 들고와서, 그것을 게이머에게 돈을 쓰라고 강요하는 서비스 시스템과 결합을 한 것은 본인이 상상할 수 있는 최악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훌륭한 스마트폰-패드 게임도 존재한다는 것이나 모두가 그렇게까지 사람을 벗겨먹으려고 환장하지는 않았다는 것, 게임으로서 스마트폰-패드 게임은 패키지 게임과 다를 수 밖에 없다는 것은 본인도 잘 숙지하고 있는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텝 타이탄스 같은 게임은 본인에게 있어서 실망스럽고 조금은 슬프게 느껴지는 게임이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