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이야기




젤다의 전설은 왜 젤다의 전설인가? 이는 대단한 난제이다:젤다의 전설의 주인공은 링크이다. 게이머는 링크(이름을 정할 수 있지만 디폴트 네임은 링크이다)를 조작해서 게임을 진행하고 젤다를 구하고, 마왕 가논드로프를 무찌른다. 하지만 왜 타이틀에는 '젤다'를 먼저 내세우는가? 일단 젤다가 게임 내 세계에 있어서 중요한 축(지혜의 트라이포스의 소유자)을 담당하고 있고, 평범한 소년인 링크가 젤다와 엮이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그렇게 납득이 안되는 제목은 아니다. 하지만, 젤다의 전설이라는 제목이 갖고 있는 문제는 납득이 안되는 것의 문제가 아닌 '직관적이지 않다'라는 문제이다. 대부분의 게이머들은 젤다의 전설에 나오는 초록 모자 소년이 젤다라고 착각해본 경험을 갖고 있을 것이다. 이 착각은 유구한 전통과 역사를 자랑해서, 세계적인 패러디 코드로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부분이기도 하다. 


왜 그렇다면 젤다의 전설은 젤다의 전설인가? 그것이 꼭 젤다의 전설이면 안되는 이유는 없지만, 젤다의 전설이라는 제목이 갖고 오는 해프닝을 고려해볼 때 저 제목의 센스는 뭔가 통상적인 상식에서 벗어나 있다는 느낌도 준다. 아오누마 프로듀서는 이러한 타이틀의 선정을 두고 이런 말을 한적도 있다.



아오누마 프로듀서 : 왜 유저가 조작하는 주인공은 링크인데 타이틀은 젤다의 전설인가... 정말 인터뷰를 할 때마다 듣는 질문이긴 한데요.


처음 젤다의 전설을 만든 사람이 미야모토 시게루 전무이사인데, 그 사람은 약간 심사가 꼬인 성격의 사람이라 할까요(웃음). 저도 트릭을 좋아한다고 인터뷰에서 말하긴 했는데 미야모토 전무이사는 무언가를 할 때 스트레이트하게 하는 것을 싫어하는 성격이라서 어떻게든 뒤틀어서 변화를 주고 사람을 혼란스럽게 하는 것을 엄청나게 좋아하는 사람입니다. 주인공이 링크인데 제목도 링크의 전설이면 그냥 게임 내용 그대로라서 재미가 없잖습니까. 하지만 링크가 주인공인데 제목이 젤다의 전설인 부분에서부터 트릭이 시작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는 편이 더 재밌잖아? 라는 생각의 결과물이 젤다의 전설이라는 타이틀이고, 지금까지도 그 타이틀은 그대로 이어져 오고 있습니다.


(출처:http://bbs1.ruliweb.daum.net/gaia/do/ruliweb/default/news/547/read?articleId=1234&objCate1=&bbsId=G007&searchKey=subjectNcontent&itemGroupId=&itemId=&sortKey=depth&searchValue=%EC%A0%A4%EB%8B%A4%EC%9D%98&platformId=&pageIndex=1)




어떻게 본다면, 한 천재의 괴팍한 호승심이라고도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미야모토 시게루는 닌텐도를 이끌고 있는 살아있는 전설 중의 한명으로서 개발이 상당히 진척된 게임이라도 마음에 들지 않으면 뒤집어 엎어서 다시 만든다는 밥상뒤집기로도 유명한 인물이다. 새벽 2시에 벌떡 일어나서 팀원들에게 '좋은 아이디어가 떠올랐으니 회사로 집합하라'라고 이야기하는 괴짜기도 하다(어떻게 보면 최악의 상사일지도) 그런 그라면, 링크가 주인공이라도 젤다가 주인공인 것처럼 게임의 제목에 장난질을 친것이라 본다 해도 그렇게 이상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는 조금 다르게 접근하고자 한다. 익히 알려진대로, 젤다의 시간축은 시간의 오카리나를 기점으로 크게 3개로 나뉘어진다:시간의 오카리나의 링크, 통칭 시공의 용자가 마왕 가논드로프를 쓰러뜨렸으나 가논이 다시 부활했을 때 돌아오지 않아 어쩔 수 없이 대현자들이 물속에 세계를 가라앉힌 바람의 텍트의 시간대, 시공의 용자가 다시 미래로 돌아온 뒤에 하이랄에 평화가 찾아온 이후의 이야기를 다루는 황혼의 공주 시간대, 아예 시공의 용자가  패배한 신들의 트라이포스 시간대. 공식 설정집인 하이랄 히스토리아가 나오기 전까지 젤다의 전설 시리즈의 순서는 항상 팬들 사이에서 논쟁거리였다. 하지만, 정답은 생겼지만 여전히 이해가 안되는 부분이 있다:왜 세계는 두개도 아니고 3가지의 시간대로 쪼개져버린 것일까? 테마만 공유하는 각기 다른 이야기라고 분절시키면 되는데 왜 '만약에'라는 요소를 굳이 강조해서 거대한 하나의 이야기 안에 충돌되는 다양한 작품들을 우겨넣으려 했을까?


의문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모든 젤다의 전설은 각기 각자만의 고유한 그래픽 테마를 갖고 있다. 바람의 텍트는 고양이 눈 젤다라는 독특한 그래픽 스타일을 정립시켰다. 하지만 황혼의 공주에서는 이러한 카툰 스타일의 그래픽을 집어던지고 디테일하고 어두운 분위기의 그래픽으로 바꾸었다. 그렇기에 한 때는 젤다의 전설을 '바람의 텍트류-툰 젤다'와 '황혼의 공주류-리얼 젤다'로 분류하기도 했었다:스카이워드 소드가 나오기 전까지는. 이제는 스카이워드 소드와 함께 신들의 트라이포스 2 가 나오면서 사실상 저 이원화된 구분도 폐기된것처럼 보인다. 이러한 그래픽 스타일로 젤다를 구분하는 방법론에서 특기할만한 부분은 프랜차이즈 내에서도 게임은 '다양한 정체성을 갖고 있다'라는 것처럼 보인다는 것이다. 사실 하나의 프랜차이즈에 다양한 면모와 정체성을 갖는 것은 그렇게 이상한 일은 아니다:콜옵 시리즈도 블랙옵스-모던워페어-어드밴스드 워페어로 3가지의 정체성이 서로 교차 반복되기도 한다. 하지만, 콜옵 시리즈처럼 과격한 변화가 일어날 수 있는 것도 세 회사가 번갈아가면서 게임을 만들기에 가능한 것이다. 하지만 젤다의 전설은 하나의 디렉터가 하나의 팀을 감독해서 일사분란하게 만드는 게임이라 할 수 있다:이 게임은 그때 그때 유행이나 트렌드를 따라서 만든다고 이야기하기에는 너무나 역사와 전통이 오래된 게임이다.


이러한 일련의 분열적인 젤다의 전설의 모습을 우리는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까? 이렇게 접근해보자:젤다의 전설이라는 게임의 핵심은 바로 '모험'의 경험과 감각을 구현하는 것이다.(관련 내용은 여기에서 확인해주시기 바란다. 본인의 바람의 텍트 리뷰) 그리고 모든 모험의 이야기들은 비슷한 공통 요소들을 보유한다:주인공이 있고 극복해야할 시련이 있으며, 그리고 그들은 전설이 된다. 젤다의 전설 역시 마찬가지이며, 이 프랜차이즈에 있어 이야기란 모험이라는 프랜차이즈의 핵심 키워드를 구현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큰 밑바탕에 가깝다:젤다의 전설은 이야기에 있어서 기본 모티브가 동일하다. 주인공은 초록색 모자를 쓴 링크고, 젤다는 공주고, 가논은 마왕이다. 복잡한 반전이나 플롯의 전개가 없는 것도 어떻게 보면 젤다의 전설 시리즈의 전통이라 할 수 있다(물론 그 전통을 어겨서 반전처럼 느껴질 때도 있지만) 그리고 이러한 전통을 통해서, 게이머는 수십년 된 프랜차이즈의 전통과 함께 모험을 떠나게 된다.


아오누마는 하이랄 히스토리아 말미에 '무엇을 플래이할 것인가'를 최우선에 둔다고 밝히고 있다. 그렇기에 게임의 스토리와 분위기가 그때그때 상황 따라서 달라진다고도 볼 수 있지만, 모험이 젤다의 전설에서 핵심이라면 이렇게도 접근할 수 있다:모든 모험 이야기는 똑같이 구술될 수 없다. 세계를 구하는 용자 링크라도, 바람을 거슬러서 바다를 항해하는 링크와 빛-그림자를 오가는 링크가 똑같을 수 없다는 것이다. 탁월한 이야기꾼이라면 각기 다른 형태로 진행되는 모험의 이야기들을 똑같은 톤으로 서술하지 않을 것이다. 때로는 부드럽게, 때로는 거칠고 잔인하게 이야기를 풀어내는 것이 탁월한 이야기꾼의 재능이다. 젤다의 전설이 게임 플래이에 따라서 그래픽과 분위기를 바꾸는 것은 그러한 연장선상에서 볼 수 있을 것이다.


젤다의 전설의 역사개변 같은 경우에는 개발자 편의주의적인 부분으로도 볼 수 있다:실제 하이랄 히스토리아 발간 이전 닌텐도 파워와의 인터뷰에 따르면 미야모토 시게루는 지금과는 다른, 어떤 의미에서 지금과도 맥이 닿아있지만, 연대기를 정설로 이야기하기도 하였다. 오히려 이렇게 각 게임마다 각기 다른 이야기와 모험을 다루어내는 것이 젤다의 전설의 특징이라고 한다면 작품들이 큰 프랜차이즈 아래서 통합적이라기 보다는 분열적으로 내비치는 것이 정상적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닌텐도가 이러한 분열적인 작품들을 하나의 시간대 안에 통합시키고자 한 것, IF라는 요소를 무리하게 끌어들이면서 작품에게 통합적인 성격을 부여하려 한 것은 그것이 가져다 주는 설명보다도 '왜 이렇게 복잡하게라도 정리를 하려 하는가?'라는 측면에서 의의가 있다고 할 수 있다.


공통된 역사와 시열대를 추구하는 것은, 게이머-링크라는 수평적인 관계뿐만 아니라 게이머와 프랜차이즈 사이의 유대감을 공고하게 하려는 행위로 볼 수 있다. 앞서서 이야기한 것처럼 젤다의 전설의 핵심은 모험 그 자체이다. 그리고 이 모험은 1986년 젤다의 전설 첫 작품이 나온 이후 근 30년 가까이 꾸준하게 이어지고 있다. 1961년 최초의 비디오 게임 스페이스 워 이래로 비디오 게임은 약 5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대중에게 사랑받고 있으며, 젤다의 전설은 그중 절반 이상을 함께 해온 역사적인 작품인 것이다. 그러한 역사가 오로지 게임 바깥에서만 존재한다고는 볼 수 없을 것이다:그렇기에 그 경험의 일부로서, 게이머가 현재하고 있는 이 모험이 과거의 모험으로부터 계승되었으며, 훗날의 모험으로도 이어지는 감각을 주고자 무리하게 게임의 역사를 하나의 시열대에 통합시키려 했다고도 볼 수 있다.


그렇다면 마지막으로, 왜 링크가 주인공인데 젤다의 전설일까? 우리는 이것을 유념할 필요가 있다:젤다의 전설에서 링크는 주인공의 디폴트 네임, 즉 이름을 정하지 않았을 때 자동으로 정해지는 이름인 것이다. 엄밀하게 이야기하자면, 링크는 수많은 녹색 용자들 중의 한 명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많은 사람들은 링크에게 각자의 이름을 붙이며(혹은 짖궂은 사람은 진짜 '젤다'라는 이름을 붙이기도 한다.), 링크Link라는 이름의 어원 자체도 '이어준다'라는 의미이기에 이를 통해 링크가 게이머와 하이랄을 잇는 가교의 역할을 한다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렇기에 어떻게 본다면 기본적으로 무색무취를 지향하는 링크라는 인물보다도 게이머에게 더 인상적으로 다가올 것은 하이랄이라는 세계, 그리고 모험의 시작이라 할 수 있는 '젤다'라는 인물이다. 그렇기에 게이머에게 있어서 독자적인 '링크'라는 인물을 내새우기 보다는 모험의 시작이자 중심이라 할 수 있는 젤다를 내새우는 것, 그렇기에 '젤다로부터/로 인해 시작되는 이야기=젤다의 전설'이란 제목을 선택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