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이야기





젤다의 전설 시리즈를 RPG로 분류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으로 알고 있는데, 엄밀하게 따진다면 젤다의 전설이야말로 RPG라는 장르 공식과는 많이 동떨어져있는 게임이라 할 수 있다. 물론, Role Playing Game이라는 약어 자체로만 본다면 용사의 역할을 재현한다는 점에서 RPG에 가깝다고 할 수 있지만, 전통적인 레벨링이나 던전, 혹은 화폐 및 물물교환 같은 경제 시스템 등의 다양한 요소에서 젤다의 전설 시리즈는 크게 엇나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본질적으로 젤다의 전설이 어떤 게임인가를 이야기하기 위해선 장르적인 특성에 기대서 설명하는 것 보다는 젤다의 전설이 어떻게 게이머와 교류하는지에 초점을 맞춰야 할 것이다. 특히 여기서는 바람의 텍트에 초점을 맞춰서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기본적으로 젤다의 전설은 거대한 세계가 있고, 각기 다음 이야기를 진행하기 위한 핵심적인 장소로 던전이 있다. 그리고 던전은 특징적인 도구를 사용해서 퍼즐을 풀어나가게 만들어놓았으며, 이야기의 진행이 되면 될수록 이 던전들에 과거의 던전에 나오는 퍼즐들이 추가되면서 정교해지며 복잡해지는 모습을 보여준다. 바람의 텍트 같은 경우, 게이머는 던전에서의 퍼즐들과 도구들의 특징들을 잘 숙지하고 던전의 방을 관찰, 어떻게 게임을 풀어나갈 것인지를 능동적으로 사고해야 한다. 또한 필드에서 게이머는 바람의 지휘봉을 사용해서 바람의 방향을 조종하고 항해를 하여야 한다. 이렇게 본다면 게임이 일종의 퍼즐 게임에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도구를 사용한 퍼즐은 게임의 중요한 축을 차지하지만 게임의 전체는 아니다. 퍼즐과 관계없는 전투 같은 부분도 있으며, 바다를 돌아다니면서 보물을 건지거나 세계를 탐색하는 등의 다양한 활동도 존재한다. 그렇기에 젤다의 전설 시리즈에서 중요하게 살펴보아야 하는 것은 게임이 어떤 장르를 재현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이 모든 것이 합쳐져서 무엇을 만들어내고 있는가 이다.


이렇게 본다면 젤다의 전설이 구현하고 싶은 것은 '모험'이라는 경험 그 자체이다. 바람의 텍트에서 가장 흥미로운 지점들은 일정 파트에서는 게임 내 인터페이스만으로는 어떻게 진행해야하는지를 알 수 없다는 것이다:게이머는 탐색을 통해서 새로운 장소를 발견하거나, 사람들에게 말을 걸어서 특기할만한 장소가 어디에 있는지 그리고 어디를 탐색해야 하는지를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해야 한다. 즉, 모험에 있어서 필요한 '어디로 갈 것인가'라는 목표 설정을 게이머가 직접 할 수 있게 만들어 둠으로써, 게이머가 좀더 능동적으로 세계에 빠져들 수 있도록 만들어 놓은 것이다. 


각 던전의 방들은 그 구조에 있어서 작위적인 퍼즐로 가득차 있다고 할 수 있지만(조금만 관찰해보면 방의 구조가 참으로 요상하게 생겼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작위성을 차치한다면 각각의 방 역시 게이머의 능동성을 강조한다는 측면에서 '모험'의 연장선상에서 접근할 수 있을 것이다. 게임은 어떠한 힌트와 설명을 제공하지 않는다. 게이머는 여러가지 도구를 조합해서 이렇게 문제를 접근해볼까, 아니면 저렇게 문제를 접근해볼까 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러한 능동성에 기반한 퍼즐은 게이머로 하여금 게임에 몰입할 수 있는 동력으로 작용한다. 심지어 바람의 텍트가 발매된지 무려 10년이 다되어가는 게임이라는 것을 고려를 하더라도, 바람의 텍트는 요즘 게임들보다 더 세련되고 훌륭한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여타 트리플 A 게임들은 게이머에게 모든 것을 가르쳐주고 QTE로 어떤 버튼을 누를 것인지, 무엇을 해야하는지 등을 너무 친절하게 가르쳐준다. 이러한 친절함이 역으로 게이머가 무언가 할 수 있고 생각할 수 있는 여지를 제거하기에 게임에 긴장감을 떨어뜨리고 재미를 죽이는 문제를 발생시킨다. 그렇게 본다면 젤다의 전설:바람의 텍트는 그런 문제를 우아하게 빗겨나가면서도 어렵지 않게 만든 진정한 걸작이다.


또한 게이머는 플래이타임 내내 거대한 망망대해를 항해하면서 섬들과 난파선, 유령선, 던젼, 거대괴수 등의 다양한 것들과 조우하게 된다. 이렇게 본다면, 게임은 거대한 공간에서 마음껏 뛰노는 오픈월드의 장르라고도 볼 수 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GTA나 다른 오픈월드 게임들과 달리 바람의 텍트는 그 지향점이 조금은 다르다고 할 수 있다. 바람의 텍트 같이 바다를 항해하는 게임인 어새씬 크리드 4 블랙플래그를 예로 들어 비교해보자:블랙 플레그는 해적질이라는 경험을 살리는 것이 게임의 핵심이자 주요 컨텐츠이기 때문에, 게이머는 바다에 랜덤하게 떠다니는 배들을 노략을 하고 배를 이용한 다양한 활동들을 반복적으로 수행할 수 있다. 하지만 바람의 텍트 같은 경우에는 바다에서 즐길 수 있는 대부분의 활동들이 '발견'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해도에 기록되지 않은 저 너머에 과연 무엇이 있을까? 라는 호기심과 모험에 대한 욕구가 이러한 발견의 원동력이 되는 것이다.


조금은 묘한 이야기지만, 이런 점에서 본다면 젤다의 전설은 다크소울 시리즈와 유사하다:게임 내의 공간은 수많은 비밀을 감추고 있으나 게임은 게이머에게 '친절한' 설명을 제공하지 않는다. 오로지 게이머가 스스로 면밀하게 관찰하여 생각하고 판단하여야 한다. 하지만 다크소울 시리즈가 죽음이라는 시행착오를 통해서 게이머에게 오기를 유발케 했다면, 바람의 텍트에는 그러한 요소는 없다고 볼 수 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젤다의 전설이 소울 시리즈만 못하다는 것은 아니다. 소울 시리즈가 죽음이라는 요소를 통해서 반복 학습을 유도한 것이 몇몇 하드코어 게이머에게만 먹히도록 심리적인 허들을 높였다면, 젤다의 전설은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게 친절한 형태로 그 허들을 낮추었을 뿐이다. 오히려 젤다의 전설 같은 경우, 전연령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게임 시스템적 요소 및 이야기적 요소(용감한 용사가 마왕과 싸워서 세계를 지켜낸다)와 함께 게임의 아트 스타일 등이 다양하게 접합되면서 여타 RPG가 아닌 '젤다의 전설'만이 가능한 독특한 아우라를 만들어 낸다. 


전투 부분은 간과하기 쉬운 부분이긴 하지만, Z 주목을 이용한 편한 조작과 몰입감 있는 카메라 연출을 통해서 긴장감을 잘 주고 있다.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전투 타격음에 일정한 '음'을 부여했다는 것이다:검을 연속적으로 휘두르고 이것들이 적에게 맞는 순간, 타격음이 일정한 '멜로디'를 형성하는데 이것이 전투에 몰입감을 부여할 뿐만 아니라 리듬 액션 게임마저 연상되는 흥겨움을 준다는 것이다. 또한 다양한 도구를 이용해서 다양한 방식으로 전투를 풀어나갈 수 있다는 점은 도구가 단순히 퍼즐을 푸는데 쓰이는 이벤트적 도구가 아닌 게임의 다양성을 보장해주고자 한 제작자들의 배려로도 볼 수 있다. 


특히 바람의 텍트 같은 경우 다른 젤다의 전설과 비교하여 특기할만한 부분은 바로 '툰링크'가 최초로 출현했다는 것일 것이다:역사적인 작품 시간의 오카리나의 이후, 젤다의 전설이 두 스타일로 분화되었다는 것은 익히 잘 알려진 사실이다. 하나는 황혼의 공주 같은 리얼 젤다와 또 다른 하나는 바람의 텍트 같은 만화풍의 젤다의 전설(몽환의 모래시계와 대지의 기적이 여기 포함된다)이다. 하지만, 이러한 도식적인 분류는 솔직히 전체 젤다의 전설 시리즈를 관통한다고 할 수 없을 것이다:그렇다면 오카리나 이후에 나온 스카이워드 소드나 무쥬라의 가면은 어떻게 접근해야할까? 일단 그러한 '계보학'적인 설명은 차치하더라도, 바람의 텍트의 아트 스타일이 대단히 특이하다는 것은 분명하다:사실적인 묘사보다는 파스텔 톤의 화사한 색깔을 이용해서 디테일을 억누르고, 화사한 색감과 단순화된 선을 사용함으로써 다른 게임에서는 쉽게 찾아볼 수 없는 바람의 텍트만의 독특한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무엇보다 놀라운 것은 이것이 현대적인 트리플 A 게임들에 꿀리지 않는다는 것, 그리고 그것을 정말이지 '최소한의 용량(HD버전은 2기가 바이트에 불과하다! 요즘 게임들이 40기가를 요구하는 경우도 있다는걸 생각한다면...)과 기능'으로 구현하고 있다는 것이다. 위유의 성능을 생각해보았을 때 그래픽 디테일은 다른 현세대 콘솔(PS4, XO)와 비교할 바가 못되는 것이 정석적인 결론일 것이다. 하지만 바람의 텍트는 그저 그렇게 양산되는 트리플 A 게임들과 비교하여 보았을 때, 필요한 것(화사한 색감, 단순화된 선)과 필요하지 않은 것(자세한 디테일 텍스처)을 분명하게 나누는데 성공함으로써 기술적으로 화려하진 않지만 인상적이면서 아름다운 작품을 만들어내고 있다. 이는 기술과 고해상도 텍스처를 덕지덕지 바르면서 그 속에 어떠한 미학적 성취도 존재하지 않는 상당수의 트리플 A 게임들에 비교하여 본다면, 대단히 중요한 경종을 울리는 부분이라 할 수 있다:훌륭한 그래픽을 뽑아내는데 있어서 절대적 기술 우위가 필요한 것은 아니라고.


물론 누군가는 젤다의 전설:시간의 오카리나 이후로 젤다의 전설은 오카리나의 반복이자 모티프의 재생산이라고 비판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오카리나가 최초로 3D 게임이라는 개념을 정립하는 혁명적이고 역사의 신기원을 정립하기는 했지만, 그러한 혁명이 매 시리즈 매 작품마다 일어나길 기대하는 것은 솔직히 도둑놈 심보에 가깝지 않나 생각해본다. 또한 젤다의 전설이 시리즈 내부적으로는 모티프를 재생산한다고 하지만, 바람의 텍트와 몽환의 모래시계가 황혼의 공주와 다르고 무쥬라의 가면이 다른 젤다 게임들과 다른 템포를 보여준다는 것을 감안했을 때, 과연 '젤다의 전설 시리즈는 다 비슷하다'라고 이야기하는 것이 가능한지는 본인은 의심스럽다고 할 수 있다.


결론적으로 젤다의 전설:바람의 텍트 HD는 시대를 뛰어넘는 진정한 걸작을 체험할 수 있는 좋은 기회라는 것이다. 닌텐도가 소프트웨어로써 게임을 만드는데 있어서 왜 세계 최고인지, 그들이 일종의 철학집단으로써(게임은 이러해야 한다) 닌텐도만이 가능한 게임의 비전이 무엇인지를 게이머는 바람의 텍트 HD를 통해서 접할 수 있다. 시대를 넘어서 모두에게 추천할 수 있는 게임이란 바로 이런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