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한가지 ‘경험’에서부터 시작된다:콜 오브 듀티 고스트 싱글 방송 도중 생긴 일이었는데, 주인공들이 해저로 침투해서 구축함을 격침시키는 미션에서 본인은 예기치 않게 길을 해맸었다. 상어 한마리가 돌아다니고, 큰 빈공간이 있으며 반대쪽으로 나갈 수 있는 길이 있는 스테이지 구조였는데, 아무리 몸을 비틀어서 반대쪽으로 나가도 배의 잔해 바깥으로 나가는 순간 폭뢰에 맞아서 죽기를 30분을 반복했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문제는 너무나도 어이없게 풀리게 되었는데, 방송을 시청하시던 한 시청자분께서 그 방향으로 진행하는 것이 아닌 ‘막혀있는 것처럼 보이는 반대방향’으로 진행하는 것이 아니냐 라고 하셨고, 그리고 그 덕분에 30분 동안의 삽질은 아주 간단하게 풀리게 되었다. 하지만, 여기서 다루고자 하는 이야기들은 콜옵 고스트의 완성도가 엉망진창이라는 것의 연장선상이 아닌, 그때 왜 나는 정상적인 진행방향이 아닌 다른 방향으로 나아갔는가? 라는 사소한 의문에서 출발한다.
많은 게이머들이 경험하는 ‘스테이지‘ 라는 시공간은 게임을 하는 직접적인 장소로서, 제작자들이 꾸며놓은 일종의 ‘무대Stage’ 그 자체로도 볼 수 있는 공간이다. 본질적으로, 게임은 하는 매체이며, 스테이지라는 시공간은 그러한 행위를 하는데 있어서 배경을 제공해주거나 아니면 직접적으로 게이머의 플래이에 개입을 하기도 하는데, 어느쪽이든 게임이 게임을 만든 제작자의 의도대로 진행되기 위해서는 먼저 게임 진행의 흐름을 파악할 수 있는 정보들을 스테이지에 뿌려놓는다던가(언차티드 같은 게임에선 진행방향이 노란색이나 색칠된 발판 또는 문턱등으로 표시된다던가), 플래이어의 행위를 제한하여 진행을 강제한다던가(다른 방향으로 나아가면 패널티를 부여하거나 죽이거나 하는 등의) 등의 의도가 스테이지에 기입되게 된다. 그렇게 본다면, 위에서 제시한 콜옵 고스트의 사례는 분명하게 실패한 사례라고도 볼 수 있다:본인이 게임이 진행되도록 의도된 방향을 인지하지 못하고 해매게 만든 점과 함께, 분명하게 진행방향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진행방향인것 같은 혼란을 불러일으키게 만드는 잉여의 스테이지를 만듬으로서 콜옵 고스트는 게이머를 해매게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의도되고 만들어졌으며 동시에 실패한 장소로서의 콜옵 고스트의 스테이지 사례와 다르게, 잘 만들어진 게임들의 시공간은 게임 진행을 부드럽게 만들뿐만 아니라 게이머가 떠나기 싫게 만드는 ‘매력’을 갖는다. 그것은 단순하게 게임 플래이가 재밌기에 게임을 끄고 싶은 것을 넘어서서 그 스테이지와 분위기, 배경 등의 주변요소에 대해서 애착을 갖게 되는 지점이 분명하게 있다는 것이다:예를 들어, 어새씬 크리드 4 블랙 플래그의 항해 파트의 경우, 바다라는 스테이지는 특유의광활함과 선원들의 뱃노래가 결합하여서 게이머들에게 다른 게임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미적 쾌감을 선사한다. 어크4에서 구현한 오픈월드의 시공간으로서의 바다는 변화무쌍하며 다른 게임에서 찾아보기 힘든 광활함을 보여주었기에, 미적 쾌감의 측면에서 독보적인 자리를 차지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즉, 단순하게 게임의 진행을 위한 디자인되고 고안된 스테이지를 넘어서, 게임에 있어서 텍스처와 효과음의 집합체이자 ‘배경’에 불과한 스테이지가 게이머에게 감정적이고 미학적인 쾌감과 애착을 불러일으키는 현상은 분명하게 존재하며, 이는 게임 서사Game Narrative(게임의 이야기를 포괄하는 큰 카테고리로서, 게임을 ‘표현’하는 표현양식으로서 그래픽, 이야기, 효과음-음악 등의 모든 것을 총칭하는 지점을 가리키고자 합니다)의 한 부분으로서 게임 플래이와 밀접한 연관을 맺으며 게임 플래이 행위를 넘어서는 아름다움과 감상의 문제, 즉 전통적인 미학의 문제가 게임에 개입된다고도 볼 수 있는 것이다.
이푸 투안의 토포필리아Topophilia는 인류가 자신이 사는 장소를 인지하고 그것에 대해 어떻게 애착을 갖게 되었는가를 다루는 인문사회 저서이다. 장소를 뜻하는 Topos와 애정을 뜻하는 philia가 결합하여, 장소에 대한 사랑, 즉 환경미학을 다루고 있는 이 저서는 인류가 세계를 지각하는 방식과 특징에서부터 지각이 문화를 통제하거나 문화가 지각을 재구축하는 지점 등등의 다양한 환경에 대한 인간의 애착과 호오와 그것을 구축하는 과정을 다양하고 광범위한 예시들을 통해서 다루고 있다.(동시에 너무 광범위하기에 아쉽기도 하다:토포필리아는 일반론적인 이야기가 너무 강한데, 동시에 작자 스스로도 그러한 일반론적 이야기에 대한 한계와 논증의 치밀하지 못함에 대해 아쉬움을 드러내기도 한다) 그리고 토포필리아를 좀더 확장 적용해서 본다면, 게임의 스테이지라는 장소와 환경에 대해서 게이머가 느끼는 감상, 애착, 아름다움을 정리하는데 도움을 줄 수 있을거라 생각하여 이를 끌어와서 이야기를 전개해보고자 한다.
토포필리아의 개괄적인 이론은 다음과 같다(요약과 결론 부분을 본인이 생각했을 때 필요한 부분만 인용하였다, ‘토포필리아’, 이푸투안 저/이옥진 옮김, 도서출판 에코 리브르. 페이지 365~370.):
1) 사람은 생물학적 유기체, 사회적 존재, 독특한 개인이다. 그리고 지각, 태도, 가치는 존재의 세 층위를 각각 반영한다…(중략)…우세한 감각의 종류를 결정짓는 것은 문화와 환경이다. 현대 세계에서 시각은 여타 감각, 무엇보다 후각과 촉각을 희생하면서 강조되는 경향을 보인다…(중략)…인간은 다양한 방식으로 환경에 반응하지만, 생물학에 근거하는 경우와 특정 문화를 초월하는 방식은 매우 드물다. 예컨데 사람들이 지각할 수 있고 정서적으로 연관짓는 대상의 범위는 제한돼있다. 인간은 시공간 연속체를 분할하려 한다…(중략)…사람의 정신은 실체를 한 쌍의 이율배반으로 정리하고 그 매개체를 찾아내는 경향이 있다. 자민족중심주의와 정서적 공간을 동심원으로 배열하는 것은 인간의 공통점이다…(중략)…모든 사람은 공통의 관점과 태도를 공유하지만, 각자의 세계관은 독특하면서 결코 사소하지 않다.
2)…(전략)…인공과 자연의 물리적 환경 자체는 지각에 영향을 미친다. 목공 세계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직각이 결여된 환경에서 살아가는 사람들과 다른 종류의 환상에 감염되기 쉽다. 환경특성들을 지각 편향과 관련지어 영향을 미치는 원인으로 삼을 수는 없을 것이다. 문화가 매개하기 때문이다. 환경과 지각의 관계에 대해서 간접적이고 부정확한 진술들은 할 수 있다. 환경의 생태적 성질은 시각적 정확성을 계발시키는 것과 관련이 있다고 할 것이다…(후략)…
3)…(전략)…토포필리아(장소에 대한 애착, 환경미학)는 수많은 형태를 취하고 정서의 범위와 강도 역시 무척 다양하다. 우선 그것을 묘사해야 한다. 덧없는 시각적 쾌락인지, 신체 접촉의 관능적 기쁨인지 묘사해야 한다. 익숙해서 혹은 고향이라서, 또는 과거를 구현해서, 창조주 혹은 소유주로서 자존심을 환기시켜서 특정 장소를 애호하는지 묘사해야 한다. 그도 아니면 동물적인 건강과 활력으로 인한 기쁨인지부터 묘사해야한다…(후략)…
일정한 자연환경은 사람의 이상적 세계라는 꿈속에서 두드러진다. 그것은 숲과 해변, 계곡과 섬이다. 이상향의 세계는 현실의 세계에서 결함을 제거하는 문제이다. 지리학이 토포필리아라는 정서에 내용을 제공하는 것은 필연이다. 낙원이란 현실에서 과도함(너무 덥거나 너무 춥거나 너무 습윤하거나 너무 건조한)을 제거한 곳이기 때문에 일종의 가족 유사성을 지닌다. 각종 동식물에는 사람에게 유용하고 친근한 것들로 가득하다. 낙원도 탁월한 면모들이라면 서로 다르다. 어떤 곳에는 목초지가 넓고, 다른 곳에는 신비로운 숲이, 향긋한 섬이, 산골짜기 계곡이 그러하다.
4)…(전략)…원시인과 전통사회의 여러민족들이 수평적 세계, 선회적 세계, 상징이 풍부한 세계에 살았던 반면 현대인의 세계는 평면적이고 천장이 낮고 비선회적이며 미학적이고 세속적인 경향을 보인다는 것을 들 수 있다…(후략)…
5)고대도시는 우주의 상징이었다…(중략)…모든 도시는 권력과 영광의 이상을(뚜렷한 가시성을 통해서) 집중, 강화하는 일종의 공적 상징을 포함한다. 현대의 대도시에는 넓은 가로수길이나 광장, 위엄있는 시청이나 도시의 역사와 정체성을 획득한 기념비가 상징이 될 것이다. 도시는 엄청나게 복잡하지만 단 하나의 이미지, 분명한 꼬리표가 붙는다…(중략)…
인공물로서 도시는 사람의 목적을 반영한다. 하지만, 대도시에서 살아가는 대다수 사람들에게 자연의 사실만큼이나 사람의 특수한 생리적 요구로 환원할 수 없는 주어진 조건은 ‘환경’이다. 사람들은 도시의 극히 일부에 대해서만 자신이 제어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중략)…삶의 양식은 거대도시라면 모두 가지각색이다. 사람들은 동일한 도시에, 심지어 도시의 동일한 지역에서 살아도 세계를 다르게 지각한다. 모든 도시 거주자에게 공통되는 점은 직장과 생명을 존속시키는 음식을 얻는 곳이 멀리 있다는 것이다.
6)야생지와 시골을 대할 때의 태도(동경, 이상향으로서)는-말로 나타내 지식으로 만든 것에 한정한다면-환경에 대한 세련된 반응들로 나타나며 이런 반응은 도시에서 기원한다. 이는 환경 유형이 존재하고 인지되며 이 사이에서 얼마간 선택의 자유를 누린다는 점을 전제하고 있다. 환경의 세가지 유형에 대한 태도는 출발 지점부터 대조적이다…(중략)…
인간은 끈질기게 이상적인 환경을 찾아다녔다. 그 모양새는 문화마다 서로 다르겟지만, 본질적으로 대조적인 두 가지 이미지로 수렴되는 듯 하다. 순수의 정원과 우주이다. 지상의 과실은 안전을 제공하는데, 거기에 웅장함을 더한 조화로운 별자리도 마찬가지다. 그렇게 우리는 하나에서 다른 것으로 움직여간다. 바오밥나무의 그늘로부터 하늘 아래 신비의 원으로, 집에서 공공의 광장으로, 교외에서 도시로, 해변의 휴일에서 세련된 예술 향유로 향하면서 평정의 지점을 찾는 것이다. 이 세계에 속하지 않는 평정 말이다.
위에 결론을 요약한 이푸 투안의 토포필리아의 내용을 더욱 축약하자면 다음과 같다:인간의 문화, 신체적 지각, 개체적으로 독특함이 인간 주변의 세계를 지각하는데 영향을 미치며, 그리고 그러한 인식에 기반한 지각이 인간의 환경에 대한 선호와 이상향, 더 나아가서는 공간을 조직하는데 영향을 끼친다는 것이다. 환경-인간 사이의 관계와 미학론으로서 토포필리아는 훌륭한 시작점이라 할 수 있지만, 이것을 과연 100% 그대로 게임에 적용시킬 수 있는가?
게임 속의 세계, 레벨Level이나 스테이지Stage의 개념은 전적으로 인공적이다. 이 인공적인 세계는 제작자들의 의도에 따라 만들어진 허구의 공간이며, 토포필리아에서 다루고자 한 세계와 인간 사이의 관계와 환경미학을 적용시키기에 무리가 있다고 볼 수 있다. 환경은 전적으로 인간 바깥에 존재하는 절대적인 타자이자 해석이 필요한 텍스트이며, 인간은 자신의 지각범위 내에서 이것에 의미를 부여하고 그것에 대해서 호오를 가질 수 있다. 하지만, 제작자들이 만들어낸 이 텍스처의 가상현실은 전적으로 만들어진 세계이며, 동시에 환경이 갖고 있지 않은 특질, ‘목적성’을 갖고 있다:위에서 예시를 들었듯이, 어크 4의 바다라는 공간은 실제 바다라는 환경으로부터 불쾌한 것들을 제거한 ‘통제된’ 공간이다. 또한 고스트의 예시처럼, 스테이지를 진행하기 위한 방향성을 부여하여 정보 자체를 통제하기도 한다. 즉, 스테이지의 이미지는 현실에 기반하고 있지만, 분명하게 게임 서사에 있어서 스테이지는 게임의 규칙을 실현하는 공간이자 통제된 세계로서 스테이지 바깥을 상정할 수 없는 한계를 갖고 있다. 이렇게 본다면, 게임 속의 세계는 전적으로 게임 제작자에 의해서 ‘주어지는’ 세계처럼 보이기도 한다.
또한 게임이라는 문화 자체가 시각-청각적인 지점에서 제한되고 있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된다:시공간은 인간의 오감을 통해서만 인지될 수 있는데 반해서, 게임에서 인간이 스테이지라는 시공간을 인지할 수 있는 방법은 시각(그래픽)-청각(소리) 이외에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패드의 경우, 제한적으로나마 촉각을 제현하고 있기도 하다)
즉, 그렇기에 어떤 환경-인간 사이의 해석과 관계, 그 장소에 대해서 ‘애착’을 갖는 토포필리아의 이론을 곧바로 끌고와서 적용시키기에는 게임의 세계가 갖는 특질과 한계가 명확하다. 하지만, 게임 속의 스테이지라는 세계가 만들어진 세계이며 게이머가 무엇을 느낄지 디자인된 세계임에도 불구하고, 게이머가 그러한 스테이지 속에서 자신이 느끼는 감정과 경험을 통해서 게임과 그 세계를 자신만의 방법으로 자신의 경험으로 만들게 된다. 이는 토포필리아에서도 언급하였듯이, “모든 사람은 공통의 관점과 태도를 공유하지만, 각자의 세계관(각자가 인지하는 세계관)은 독특하면서 결코 사소하지 않다.” 즉, 디자인된 세게에서 의도된 루트를 따라 움직인다 하더라도, 모든 게이머가 똑같은 것을 느끼진 않는다는 것이며, 이 지점에서 게임 속의 스테이지와 게이머 사이에 고유한 애착과 관계가 형성된다고 볼 수도 있다. 또한 이러한 지점도 존재한다:본인이 이전에 쓴 ‘게임에서의 여유(http://leviathan.tistory.com/1833)’에서 언급했던것처럼, 제작자들이 만드는 쉬어가는 지점은, 무조건 게임의 규칙과 서사를 게이머에게 주입시키는 것이 아닌 게이머가 소소하게 갖고 놀 수 있는 여유를 부여함으로서 격렬한 액션 사이의 완급과 액션 그 자체를 유의미하게 하며, 게임을 자신의 내부로 끌어들여 디자인된 것 이상을 경험할 수 있는 가능성을 게이머에게 부여한다.
그렇기에 게이머-게임 속의 세계 사이에는 토포필리아가 100% 적용될 수는 없지만 그럼에도 게임만의 독특한 환경미학과 애착이 존재한다고 주장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 주장을 조심스럽게 밀고 나아가본다면, 게임이란 디자인되고 제작되었을 때 완성되는 것이 아닌, 게이머가 패드를 들고 플래이하고 패드를 내려놓으며 끝내는 순간에 완성된다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게임과 게이머 사이의 애착관계는 어떻게 형성되고, 게이머에게 어떤 반응을 이끌어내는가? 먼저, 토포필리아와는 다른 전제들과 가설을 몇가지를 설정해야 할 것이다.
첫째, 게임은 디자인된 세계이며, 이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이 디자인된 세계는 그 목적(예를 들어 서바이벌 호러의 경우에는 공포를 조장하고, 살아나갈 수 없을 것 같은 세계를 만든다라던가)에 기능하며, 게이머에게 통일감 있는 경험을 제공하기 위해 이러한 의도와 목적을 벗어나지 않으려 애쓴다.
둘째, 게임은 아무리 많이 봐줘도 최대 세가지의 감각(청각, 촉각, 시각)으로만 인지가능하며, 후각-미각만이 갖는 장점인 ‘자신의 내부로 끌어들여 음미하며 받아들일 수 있는 경험’은 제공해주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는 게임이 기반하고 있는 매체가 대중문화와 TV-모니터 등의 시각매체에 기반하고 있기 때문이다.
셋째, 만들어진 세계라는 지점에서 게임 속의 세계는 토포필리아에서 언급한 ‘도시’라는 시공간과 비슷한 지점이 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도시가 하나의 완결된 세계를 도시 내부의 다양한 시설들을 이용해 상징의 형태로 구현하고자 한 것에 반해서 게임 속의 세계는 이미 하나의 ‘세계’를 구축하고 있다는 것이며, 이것이 가장 극명하게 드러나는 지점은 바로 오픈월드 게임 장르이다.
넷째, 게임 속의 세계와 스테이지들은 어떤 의미에서 사람들이 갖고 있는 ‘이상향’의 이미지에 맞닿아 있다. 하지만 여기에는 ‘현실에 존재할 수 없는, 과도함이 존재하지 않는’ 세계의 감각도 있지만, 동시에 ‘과도하게 설정된 세계’의 감각이 공존한다:파크라이 3의 세계처럼, 별다른 불쾌함들(벌레, 습기, 더위 등등) 없이 해변에 앉아서 일광욕을 즐기고 정글을 탐험하기 좋은 환경을 제공하면서, 게이머를 죽이려 덤비는 미친 해적들과 야생동물도 동시에 들끓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과도함과 과도하지 않음은 어떤 ‘조화’를 이루고 있는데, 그것들은 ‘진정으로 불쾌하지 않을 정도로’(=게임을 포기하지 않을 정도로) 설정되어 있기에, 게이머에게 지속적인 도전의식을 부과한다.
이외에도 게임만이 갖는 독특한 특질들이 있다고 볼 수 있겠지만, 일단은 이정도까지만 정리하고자 한다.
예시를 하나 들어보도록 하겠다:다크소울 시리즈는 근래 게임들 중에서 독특한 형태의 경험을 제공하고 있다. 그 경험이란 바로 근래 찾아볼 수 없는 ‘어려운 난이도’의 재현인데, 게임은 불가능함의 감각과 경험을 통해 그것이 가능하고 그것을 뛰어넘는 경험을 제공한다. 그렇기에 다크소울 2에서 죽음은 일상다반사이다. 하지만 그것이 죽음의 반복을 유발하고 그것이 게이머에게 짜증을 불러일으키고 포기로 이어지는 구조가 아니라는 점이 바로 다크소울의 뛰어난 매력이라 할 수 있다. 물론 게임 구조나 규칙에 있어서 다크소울의 이러한 특징들을 구현하는 요소가 많다고도 볼 수 있지만, 여기서는 특별하게 게임 내의 세계를 설정한 모습을 통해서 게임과 게이머 사이의 어떤 상호작용이 일어나는지 살펴보고자 한다.
시각적으로 다크소울은 독특한 정체성을 확립한다. 게임은 전반적으로 과거의 영광이나 끔찍한 사건들이 시간의 풍파를 견디면서 닳고 닳아 없어져버린 세계 그 자체이다. 하지만, 게임은 이러한 오랜 시간의 흐름에 대해서 구체적인 설명을 하는 것을 거부함으로써 게이머들이 게임에 대해서 호기심을 갖게 만든다:도대체 여기서 무슨일이 일어났던 것일까? 게임 내의 시공간은 비밀을 간직한체 답을 하지 않는다. 하지만, 단순하게 시공간의 이야기가 비밀을 간직한 것을 넘어서 다크소울은 게임 플래이 자체에 이 비밀스러운 세계를 접목시키는데, 게임은 보이지 않는 장소에 적들을 배치하거나 퍼즐 또는 비밀통로를 배치하고, 동시에 게이머가 면밀하게 관찰하여(카메라를 돌려본다던가 등의) 문제를 해결하게끔 만들어 놓았다. 따라서 이런 보이지 않는 정보들이 죽음을 유발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게임 플래이는 점점 더 느려지며 게임의 경험은 사소한 것에도 주의를 기울이게 만드는 ‘내밀한’ 경험을 만드는데 성공한다.
청각적으로 다크소울 시리즈는 ‘무음’의 미학이 지배한다고 볼 수 있다. 다크소울에는 배경음악이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보스전을 제외하면, 게임 스테이지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소리는 대부분 자연적인 파도소리 등의 사소한 소리들일 것이다. 하지만 이 무의미하고 사소한 소리들이 게이머는 일종의 관조적인 분위기와 평화로운 느낌을 받게 하는데, 웅장한 배경음악 등의 유의미한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 아니기에 자신의 경험에 집중할 수 있게 만들기 때문이다. 또한, 이 무음의 세계가 게이머가 다른 게임이었다면 쉽게 흘러넘겼을법한 사소한 잡음에까지 집중을 할 수 있게 만들어줌으로서, 게임 플래이에 독특한 긴장감(아주 작은 소리라도 잡아내고자 하는)을 부여하기도 한다.
게임 스테이지의 구성에 있어서 다크소울 시리즈는 ‘일직선 진행’이라고 할 수 없다. 그러나, 게임은 게임 진행에 있어서 어떠한 정보를 주지 않으면서 게이머가 스스로 생각하고 부딪히며 게임 스테이지와 구조를 학습하게끔 만들어낸다. 물론, 게임은 아주 사소한 정보들과 외부의 정보들(메세지나 혈흔 같은)을 던져줌으로서 게이머가 완전히 맨땅에 헤딩하는 사태를 미연에 방지하고 있다. 그러나, 그러한 세밀한 관찰을 하는 주체는 바로 게이머 자신이라는 것, 그리고 게임을 관찰하고 클리어하기 위해 사유를 하는 경험 자체는 게이머에게 인상적으로 다가오게 된다.
위의 내용을 종합해서 결론을 내리자면, 다크소울은 특유의 게임플래이를 위해서 스테이지와 게임서사의 정보를 극단적으로 압축하고 생략하며, 그 생략된 지점에 다른 게임들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여백과 정적을 채워넣는다. 하지만, 게임은 지속적으로 게임 내에 사소한 정보들과 숨겨져있는 비밀들을 제공함으로서 그 여백과 정적이 단순하게 조용함을 넘어서 게이머가 집중하고 스스로 비밀을 밝혀내어야 하는 공간으로써 게임 스테이지를 만든다. 그렇기에 다크소울은 분명 디자인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게임이 게이머에게 모든 것을 주입시키기 보다는 게이머가 스스로 생각하게 자신을 양보하는 모습을 보이며, 단순하게 빠르게 지나가는 경험이 아닌 게이머가 오랫동안 간직할 수 있는 ‘향기’를 가진 아름다운 게임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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