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니, 만화, 영화 이야기



*스포일러 있습니다.


1981월 11월, 폴란드 전기기사인 노박은 3명의 인부 볼스키, 바나샥, 쿠데이를 이끌고 런던에 밀입국한다. 폴란드인 사장의 런던 아파트를 수리하기 위해서다. 사장은 그들이 런던에서 한달간 일하는 대가로 바르샤바에서의 일년치 급여에 해당하는 보수를 주기로 한다. 그래도 사장은 값싼 폴란드 임금 덕분에 엄청나게 싼 경비에 목적을 달성하게 되는 것이다. 사장은 노박에게만 이 사실을 알려준다. 매일 중노동을 하는 그들의 유일한 낙은 매주 토요일 바르샤바로부터 걸려오는 전화다. 그러나 전화통화에서 노박은 아내 안나와 사장의 관계를 의심하게 된다. 그러던 중 폴란드에서는 자유노조연합을 진압하는 군사혁명이 일어나서 전화도 항공편도 다 끊겨버리고 만다. 노박은 이 사실을 세 남자에게 숨기고, 묵묵히 작업을 진행시킨다.(네이버 영화 시놉시스)


예르지 스콜라모프스키의 문라이팅은 기묘한 영화다:이 영화는 감성적인 멜로드라마라고 이야기하기에는 너무나 메말라있으며, 부조리한 블랙 코미디 영화라고 이야기하기에는 너무나 씁쓸하다. 오히려 에센셜 킬링처럼, 감독 본인은 이 영화에 대해서 어떠한 정치적 함의나 의도를 넣으려 하지 않았으리라 생각된다. 그러나 정치적인 목소리를 극도로 거세하고 실존적인 이야기를 다룸으로서 정치적인 문제를 깊숙하게 파고들었던 에센셜 킬링처럼, 문라이팅 역시 전혀 정치적이지도 사회적이지도 않은 인간의 실존적 문제를 다루면서 역설적으로 자신이 의도한 것 이상의 이야기를 영화속에서 만들어내는데 성공한다. 누군가는 이 영화에서 공산주의-자본주의의 만남을 볼수도 있고, 혹은 자본가-중간계급-노동자의 관계를, 또는 단순하게 거짓말으로 인해서 사람과의 관계를 파탄내고 자신마저 망가지는 소시민의 이야기를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문라이팅의 강점은, 이러한 이야기를 하나의 틀에 정형화시키지 않고 컨텍스트에 따라서 다양하게 해석될 수 있는 여지를 남겨두고 있다는 것이다:마치 헤오도토스가 포로가 된 파라오의 이야기를 남김으로서 후대에게 해석의 여지가 있는, 뼈대만 남은 이야기를 남긴것처럼 말이다.


문라이팅은 1인극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그것은 한명만 나오고, 한명만 연기를 하는 1인극의 개념이라기 보다는, 극에 있어서 '유의미한 존재'가 한명 밖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의미에서 1인극이다. 이를 가장 심화시키는 것은 주인공 노박의 '나레이션'이다. 영화는 노박의 관점에서, 노박의 생각을 차분한 나레이션으로 끊임없이 드러낸다. 그리고 그의 미묘한 감정과 생각의 변화를 잡아냄으로서 그는 극의 중심이자 핵심으로 자리매김한다. 하지만, 그의 입장에서 서술되는 나레이션 뿐만 아니라, 영화는 노박에게 기묘한 위치를 제공함으로서 그를 부각한다. 노박은 극중 유일하게 영어를 할 수 있는 폴란드 인부(또한 그는 동료들과 어울리지도 못한다)이며, 그는 유일하게 보스와 통화를 하고 지시를 받는 인물이고, 동시에 예산을 관리하고 배분하며 일을 처리하는 '중간자'이다. 동시에 그러한 지점들 때문에 노박은 '그 어디에도 속할 수 없는' 인물이다.


그렇기에 노박은 고독하다:하지만 유념해야하는 점은 노박이 느끼는 고독은 멜빌식의 '안으로 침잠하는' 고독이 아니다. 오히려, 노박이 느끼는 고독은 현실적 압박속에서 '소외'당하기에 느끼는 고독에 가깝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는 극외부에서 얼굴도 목소리도 없는 존재인 '보스'로부터 명령을 받는다. 이 존재조차 불확실하지만 가장 강력한 권력자인 보스로부터 노박은 명령을 받지만, 동시에 그는 보스가 자신의 처인 안나를 유혹하려는게 아닌가라고 의심을 한다. 그렇기에 보스뿐만 아니라 자신의 사랑하는 처인 안나조차도 노박은 외부적 압박으로서만 존재할 뿐이다. 동시에 인부들과 노박이 같은 커뮤니티를 형성하지 못하는 것은, 보스와 비밀을 공유하는 노박의 위치(사실 폴란드인 임금이 싸기에 싸게 부려먹는 것이라는)와 작업을 강제하기 위해서 노박이 끊임없이 외부사정에 대해 거짓말 하는 것이 강력하게 작용한다. 또한 공산주의 국가에서온 노박은 자본주의 세계에서는 철저한 이방인이다. 하지만 마치 테마파크에 놀러온것처럼 유쾌하게 자기들끼리 지내는 인부들과 다르게, 노박은 자본주의 세계의 인간들이 공산주의 세계에 대해서 갖는 편견과 그들의 언어를 인지한다. 그렇기에 노박은 이 세계에서 철저하게 소외당한다. 끊임없이 외부에서 소외당해 내부로 밀려나는 노박의 이런 케릭터성은, 소시민적이며 동시에 도시문명속에서 사는 일반적인 인간을 상정한다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점에서 폴란드에 군사쿠데타가 일어나서 모든 연락과 교통이 두절되자 노박이 거짓말로 인부를 통제해서 자신의 세계를 유지하려 한것은 어찌보면 당연하다 볼 수 있다. 그에게는 외부에 기댈 수 있는 존재란 존재하지 않으며, 소시민적인 그는 자신보다 낮은 사람들(동료 인부들)과 연대할 수 있는 용기조차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그는 진실(고국에 쿠데타가 일어났다는 것)을 숨기고 그것이 드러나지 않을까 전전긍긍하면서 자신의 작은 세계(보스의 집을 개축하는 것)를 지키려 한다. 그리고 그러면 그럴수록 그는 더 비참해진다. 낯선 타국에서 사기에 도둑질을 하며, 인부들의 임금으로 공사를 강행하는 등등의 과정을 거치면서, 그는 더할나위 없이 비참해지며, 동시에 '뻔뻔'해진다:영화의 클라이막스에서 베테랑 사환을 능숙하게 속여넘기는 그의 뻔뻔함은 더이상 인부들을 먹여살리기 위해 슈퍼마켓에서 영수증으로 사기를 치면서 걸릴까 전전긍긍하는 소시민의 모습을 벗어던진 무언가이다. 


이런 소시민의 실존적 고독과 붕괴를 영화는 '소리'라는 독특한 기제를 이용해서 풀어낸다. 예르지 스콜라모프스키는 소리에 대해서 독특한 감각으로 접근하는 감독이다. 그가 감독한 현대의 노이즈들과 파괴적이며 주술적인 원시 소리의 대비를 그려낸 외침이라던가, 소통의 부재를 굉음 섞인 노이즈의 형태로 풀어낸 에센셜 킬링 등등에서 '소리'는 영화를 구성하는 중요한 기제로 작용하였다. 문라이팅 역시 마찬가지이다:인물의 내밀한 심리를 풀어내는 기제로 나레이션을 적극적으로 사용하기도 하지만, 동시에 효과음이나 BGM이 아닌 '일상의 노이즈'들이 주인공의 심리상태를 묘사한다. 가령, 사환에게 호감을 갖고 자전거를 타고가는 장면에서는 노박이 단조롭고 거칠지만 업템포로 짧게 부는 휘파람 소리(정확하게 휘파람소리인지는 모르곘지만 하여간 그 비슷한)를 낸다던가, 사포기를 돌리면서 나는 굉음과 함께 영어를 못알아듣는 인부들을 향해 불만을 표시하는 옆집 주인의 고함을 통해 소통이 이루어지지 않음을 보여준다던가(이는 극 내에서 지속적으로, 그리고 반복적으로 꾸준하게 보여지는 지점이다), 혹은 크리스마스날 흥청망청 술을 마시며 노래를 부르는 인부들과 대조적으로 브라운관이 고장난 TV앞에서 TV방송을 라디오 방송마냥 소리만 들으면서 브라운관 앞에서 잠을 청하는 노박의 모습 등등에서 소리는 중요한 이미지로 등장한다.


이러한 소리의 이미지는, 시각적으로 구체적으로 드러나지 않지만 거기 항상 존재하고 있다는 점에서 시각적 이미지와 다른 독특한 감각을 전달한다. 극 내부에서 존재하지 않는 안나와 보스처럼, 소리는 어디에 존재하지만 구체적인 출처를 파악할 수 없다. 그렇기에 소리는, 극을 포위하는 동시에 자신을 드러내지 않음으로서 기묘한 위치를 선점하게 된다:소리는 시시각각 노박을 압박하고 포위하지만, 동시에 그는 그것을 향해 맞받아치거나 저항할 수 없다. 오히려 저항이 불가능해짐으로서 그의 소외를 심화시키는 기제로 작용되게 된다.


영화의 마지막, 그들은 꿈을 갖고 영국에 와서 집에 도착한 모습과 대비되게 한밤중에 카트를 끌고 폴란드행 비행기를 타기 위해 6시간에 걸쳐 히드로 공항까지 걸어간다:카트의 덜덜거리는 굉음소리와 함께, 노박과 인부들의 관계가 거의 파탄났음을 암시한다. 하지만, 폴란드에 돌아가기 앞서 노박은 자신의 거짓말을 밝혀야 한다. 그리고 그의 고백과 함께, 형식만 남은체 너덜너덜해진 커뮤니티는 완전한 파국을 맞이하게 된다. 그리고 이 파국은 제멋대로 굴러가는 카트의 굉음과 함께 끝을 맺는다.


문라이팅은 예르지 스콜라모프스키라는 감독이 그린 독특한 드라마이며, 어떤 의미에서는 아오야마 신지가 이야기한 문자의미 그대로의 '삶의 노이즈가 낀' 세계를 보여주는 영화라고 볼 수 있다. 개인적으로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있는지 조차 몰라서 안타까운 감독이라 할 수 있는데(에센셜 킬링의 경우 국내 정식 수입조차 되지 않았다...), 그의 영화들은 여러 지점에서 생각할 것이 많다고 본인은 생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