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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여자의 남편이자 한 아이의 아빠로서 성실한 삶을 살고 있는 커티스. 하지만 어느 날부터인가 시작된 악몽은 평온했던 그의 일상을 뒤흔든다. 거대한 폭풍이 밀려오는 악몽은 현실 깊숙이 침투해 커티스를 괴롭히고, 그의 이상행동을 이해하지 못하는 아내 사만다와 동료들은 그를 외면하기에 이른다. 그럼에도 커티스는 폭풍으로부터 가족을 지켜내야 한다는 사명감으로 뒷마당에 방공호를 짓기 시작하는데…(네이버 영화 시놉시스)


테이크 쉘터는 중산층의, 중산층을 위한, 중산층에 의한 코스믹 호러 영화다. 행복한 삶을 살고 있던 중산층 가장 커티스가 미쳐서 점점 이상한 행동을 일삼다가 가족 전체가 가장의 망상을 공유하게 된다는 끔찍한 결말로 귀결되는 영화는 영화 자체의 폭력성 보다는 커티스가 그 이유없이 미치는 과정과 그 광기로 인해서 평온했던 중산층의 삶이 붕괴하는 점, 그리고 그 완벽하고 평화로웠던 중산층의 삶이 사실은 부서지기 쉬운 연약한 물건이라는 것을 까발리는데 초점을 맞춘다. 재밌는 점은, 테이크 쉘터는 이런 이야기를 구현하는데 있어서 구체적인 맥락들(최근 서브프라임 모기지론 등등의 중산층과 밀접하게 연관된 금융 위기)을 배제하고 오로지 '보편적이고 막연한' 이야기들을 사용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중산층'이라는 판타지를 완벽하게 깨부수는데 성공하고 있다는 점이다.


커티스의 공포와 공황의 원인은 대단히 막연하다. 아무도 보지 못한 폭풍이 몰아칠 것이고, 그 폭풍이 오면 사람들은 미쳐날뛰게 된다는 커티스의 공포는 상당히 막연한 환상과 꿈의 이미지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영화의 주요 모티브인 커티스의 꿈과 환상을 영화는 중산층 가장이라면 누구라도 공포에 떨만한 '현실적인' 종말론적인 이미지로 구성한다. 기르던 개가 갑자기 흉포해져서 자신의 팔을 물거나, 낮선 사람들이 자신의 딸을 납치하거나, 가택 침입을 시도하거나, 친구와 아내가 자신이 이해할 수 없는 낮선 타자로 변하는 등 영화속에서 커티스의 공포는 행복하고 완벽한 가정을 깨부수고 들어오려는 '침입자'와 '이방인' 형태로 드러난다. 영화는 이러한 침입자와 이방인의 이미지를 비와 폭풍우, 천둥, 번개 같은 일반적인 소재를 이용해서 묵시록적으로 표현하고 있으며, 이는 대단히 성공적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환상에 대해서 커티스가 취하는 태도는 이중적이다. 그는 자신의 이러한 공포와 불안이 30대라는 비슷한 나이대에 정신분열증을 겪고 정신병원에 들어간 어머니를 떠올리게 한다는 점, 또한 정신분열증이 높은 확률로 유전된다는 점을 고려해서 그 자신 역시 정신분열증에 걸렸을 확률이 높은 것을 알고 있다. 그리고 커티스 이러한 사실을 확인하기 위해서, 그는 어머니를 만나서 어머니의 첫 증세가 어떠했는지 물어보고(재밌는 점은, 어머니 역시 '막연한 불안감'이 트리거가 되어서 정신분열증으로 이어졌다는 점이다. 커티스의 악몽으로 대변되는 중산층의 공황이 커티스나 우리세대만의 문제가 아님을 암시하는 대목이다), 상담사를 찾아다니며, 가벼운 진정제를 먹고, 정신분석학 책을 읽는 등의 자신의 병에 대한 '현실적인' 접근을 한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병이 있음을 알고는 있지만, 그것을 '인정'하고 치유하려는 시도는 하지 않는다. 이 이유는 후술한 내용에서 자세하게 다루겠지만, 본질적으로 그는 가정의 생계를 책임지는 가장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그는 자신의 병을 인정하면서도 합리적이지 못한 공포와 타협하는 기묘한 자세를 취하는데, 그러한 공포를 해결하고자 하는 발로로 드러나는 것이 바로 '방공호'이다. 재밌는 점은 미국이란 나라가 총기 소유가 자유롭다는 점, 그리고 가정 침입을 막기 위한 총기 소유가 일반적이라 할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커티스가 선택한 방법은 외부로부터 들어오는 위협을 '제거'하는 것이 아니라 외부의 위협으로부터 가족을 '방어'하는 기제를 선택한다. 


왜 그는 '제거'가 아닌 '방어'를 선택했을까? 이는 본질적으로 그가 처해있는 상황이 '제거'할 수 없는 속성을 띄고 있다는 것을 암시한다. 그의 환상에서 조차 그는 저항하지 않고 도망가거나 피하는 쪽을 선택한다. 그리고 이렇게 막연한 공포로부터 가족을 방어하기 위해서 커티스가 취하는 수단인 방공호 건설은 역설적이게도 그가 공포로 떨어야했던 원인들을 까발리는 장치로 변화한다. 방공호 건설 중에 회사 기기를 끌어다 쓴게 들통나면서 회사에서 잘리고, 방공호를 만드는 자금으로 안그래도 대출받아 산 집과 차를 저당 잡아서 추가 대출을 받은 점, 그리고 회사에 잘리면서 딸의 청력 보조 기기 수술에 필요한 보험까지 위태로워지는 등 그의 막연한 불안은 가족에게 점점 현실적인 공포로 다가오게 된다.


영화가 지적하는 것은 '중산층'이라는 개념의 취약성이다. 중산층이 소유하는 것과 그들의 삶은 본질적으로 외부의 것(보험, 대출, 봉급 등등)을 빌리고 있다. 마르크스 식으로 이야기하면 '봉급을 얼마나 받든 간에 프롤레타리아는 자본에 예속된 프롤레타리아일 수 밖에 없다'라는 명제와 맥이 닿아있는데, 이처럼 '내 것이 아닌 삶'이라는 측면에서 중산층의 삶은 위태롭다고 할 수 있다. 영화의 공포는 본질적으로 그런 위태위태한 '소유관계'에 기반을 두고 있으며, 중산층이라는 계층은 이 모든 것이 사라질수도(역으로 은행, 보험, 직장 등등의 가정 외부의 것들이 가정으로 침입하고 위협할 수 있는) 있다는 막연한 공포에 시달린다. 그렇기에 커티스는 자신의 병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본질적으로 그가 갖고 있는 것들은 쉽게 무너질 수 있는 것들이니까. 그리고 영화의 클라이막스 부분에서 커티스가 라이언스 클럽에 모인 자기와 비슷한 사람들(중산층)을 향해서 소리치는 부분-폭풍이 몰려오고 있어! 한번도 본적이 없는 폭풍이!-은 커티스 이외에도 모든 중산층이 갖고 있는 불안함을 한꺼번에 터뜨리는 장치라고 할 수 있다.


물론, 그의 세상이 끝날 것이라는 망상은, 어디까지나 그의 정신병적인 망상에 불과하며, 폭풍이 지나간 뒤에 아내 사만다의 도움을 받아 방공호 문을 나서는 장면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산층 가족이 갖는 가치관을 긍정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은 더 끔찍한 결말로 이어지는 징검다리에 불과하다. 이후 커티스는 자신의 병을 인정하고 전문의와 상담을 하고, 입원 치료를 받아야 한다는 의사의 이야기를 듣는다. 결국은 커티스 가족은 그들이 아무리 노력을 하더라도 경제적인 파멸이 올 수 밖에 없는(집과 차의 대출금, 방공호 만드는데 들어간 대출금의 근저당권, 가장의 부재로 인한 경제력의 공백 등등) 상황을 마주한다. 그리고 마지막에 가족들은 커티스가 보았던 환상 그대로 목격한다. 그것이 현실이든, 아니면 환상이든, 그들에게 있어서 그 의미는 중요하지 않다. 왜냐면 그들은 이제 가장이 겪었던 불안과 공황, 광기를 다같이 공유하게 되었으니까.


폭풍, 폭풍이 다가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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