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니, 만화, 영화 이야기/리뷰


*니콜라스 윈딩 레픈 감독의 신작 '신만이 용서하리라'(Only God Forgives) 칸느 공개 기념으로 쓰는 감상입니다.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오직 드라이브에 삶의 의미를 두고 조용히 살아가던 한 남자(라이언 고슬링). 또 하나의 삶의 의미가 된 여인(캐리 멀리건)이 위험에 빠지고 그녀를 지키기 위해 비극적 사건에 휘말리게 된다. 숨막히는 폭력과 치열한 사투를 벌이던 그는 서서히 자신의 숨겨져 있던 냉혹한 본성과 마주하게 되는데…(네이버 영화 시놉시스)


어떤 인간이 저 시놉시스를 썼는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하루 정도는 골방에 가두고 밥안주고 굶겨서 반성문을 쓰게 만들어야 할 필요성을 본인은 느끼고 있다. 드라이브는 '자신의 숨겨져 있는 본성'과 마주하는 것이 주된 내용이 아니다. 오히려 처음부터 끝까지 라이언 고슬링이 맡은 이 '운전수'(크레딧에조차 그렇게 적혀있다.)라는 케릭터의 본성은 폭력적인 마초 그 자체이며, 영화는 시작 시퀸스부터  끝까지 그의 '뭔가 알 수 없는 괴물'같은 이미지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하지만 운전수의 이러한 냉혹한 마초 케릭터 때문에 오해를 불러일으키기 쉽지만, 드라이브는 기본적으로 폭력적인 마초의 액션 영화가 아닌 남성 판타지가 응축되어있는 드라마 쪽에 가깝다.


영화가 지향하는 바는 운전수 라는 케릭터를 통해서 보여주는 남성 판타지의 정점이다. 하지만, 기존의 피튀기고 섹스가 넘쳐났던 남성 마초 판타지과 다르게 드라이브의 최대 장점이자 미덕은 폭력과 섹스의 절제에 있다. 분노의 질주 같은 물건을 생각하고 영화를 봤다가 분노한 관객이 소송을 건 케이스가 있을 정도로 드라이브는 액션 영화로서의 '기본'이 부족하다고 할 수 있을 정도다.(액션 장면이라 하기도 미묘한 폭력 장면 파트가 영화에서 손을 꼽을 정도다) 하지만 드라이브는 과도한 액션이 주는 스펙타클과 아드레날린이 아닌, 폭력의 절제되고 응축된 정수만을 뽑아내는데 집중하였으며 그 결과 영화는 이야기의 소재인 주된 마초의 이미지를 '예술적인 아름다움'까지 느껴지는 수준까지 끌어올린다.


기본적으로 영화가 운전수라는 인물을 형성하기 위해서 취하고 있는 표현 방법은 '고독'이다. 영화 내내 그는 대사는 거의 없고, 자신의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으며, 심지어는 카메라 속에서도 홀로 있는 구도를 자주 보여준다. 하지만 운전수의 고독함은 그가 세상과 소통하지 못해서 라기보다는 자신의 생존을 위한 보호기제 쪽에 가깝다. 웅크린체로 세상을 경계하는 야수처럼, 그가 외부에 대해서 취하는 최소주의적이며 기계적인 태도들에서 이러한 그의 의도된 고독감이 잘 드러난다. 초반 도입부에서 동승자에게 자신의 룰을 설명하는 부분처럼, 그에게는 명확하고 간결한 룰이 있으며, 이를 지키는 한도 내에서는 그에게 어떠한 문제도 없다. 하지만, 그 룰 혹은 자신의 생존을 위협하는 일이 발생한다면 그는 최소주의적이지만, 동시에 무자비한 폭력을 최대한도로 수행한다. 한번 동승한 동승자(주로 범죄자)와는 다시 동업하지 않는다는 룰을 깨려는 바보에게 무지막지한 협박을 하는 부분이나 그가 등장하는 폭력 장면 등을 보면, 그는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어떤 효율적인 수단(주로 폭력)을 써야하는지 알고 있는 인물이며 어디까지 자기가 개입하고 어디까지 개입하지 말아야 하는가 분명하게 선을 그을 줄 아은 인물이다.


이러한 기계적이고 최소주의적이면서 심지어 신비주의(그는 이름조차 없으며, 출신부터 기원까지 알려진 바가 전무하다)로 점철된 이 운전수라는 케릭터가 극에서 붕뜨지 않고 관객들이 공감할 수 있는 케릭터로 자리매김할 수 있는 장치는 바로 아이린이라는 여인을 향한 운전수의 사랑이다. 하지만 다른 폭력영화에서 마초들의 퇴폐적이면서 음험한 사랑과는 다르게, 운전수의 사랑은 10대 소년의 첫사랑이자 짝사랑에 가깝다. 유부녀인 그녀와 함께 있는것 만으로도 좋아죽을것 같지만 그것을 겉으로 드러내는 것이 아닌 은은하며 행복에 가득찬 미소로 표현하는 장면이나, 심지어 교도소에 있던 그녀의 남편이 돌아와서 곤란을 겪자 그의 원칙을 깨가면서 그 남편을 돕는, 영화 내내 운전수는 아이린을 향한 플라토닉한 사랑을 보여준다.


하지만 영화의 법칙이 항상 그렇듯, 원칙을 깬 순간부터 그의 최소주의적인 삶은 꼬이기 시작한다. 영화 그의 냉혹하고 절제된 마초의 이미지와 아이린을 향한 소년적인 풋풋한 이미지의 기묘하면서 상반된 공존을 통해 다른 영화들이 쉽게 범접할 수 없는 경지에 도달한다. 이를 뒷받침하는 라이언 고슬링의 연기도 대단하다 할 수 있는데, 아이린과 있을 때 조용하게 수줍은 미소를 지으면서 온세상의 행복을 다 얻은 것처럼 굴다가도, 그다음 장면에서는 냉혹하게 장도리로 사람의 이빨을 까버린다.(명백하게 올드보이의 오마주라고 생각되던 장면) 이러한 영화적 장치는 밑에 유튜브 클립으로 달아놓을 엘레베이터 씬에서 극대화된다. 자신을 노리는 암살자가 같은 엘레베이터에 탄것을 확인한 운전수가 아이린을 보호하기 위해 자신의 뒤에 두고, 돌아서서는 소년처럼 수줍게 키스를 한뒤에 암살자의 면상을 무자비하게 박살내버리는 이 장면은 드라이브의 모든것이 응축되어있다 할 수 있을 정도로 황홀하고 아름다우며, 동시에 거칠고 잔인하다.






영화가 다루는 폭력은 폭력의 역동적인 모습보다는 정적인 모습에 더 집중한다. 스트리퍼가 정적인 사물처럼 동작을 멈추고 있는 상태에서 자신을 함정에 빠뜨린 조폭의 이빨을 장도리로 까는 장면, 흑막 중 하나를 파도치는 밤바다에 수장시키는 장면 등등에서 영화의 미장센은 극단적이라 할 수 있을정도로 정적이다. 심지어 모텔에서 2인조 괴한이 운전수를 습격하는 장면에서조차 슬로우모션으로 운전수의 침착함과 능숙함을 간결하면서 깔끔하게 표현한다.


영화 드라이브는 폭력영화가 도달할 수 있는 새로운 경지를 개척했다 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은 과도한 폭력의 사용이 아닌 폭력의 절제와 응축, 최대한 가다듬기를 통해서 도달한 신경지이며, 동시에 남자들의 마초 판타지에 대한 새로운 해석이라고 할 수 있다. 트레일러가 공개된 니콜라스 윈딩 레픈 감독의 신작인 '오로지 신만이 용서하리라'도 이 연장선상에 있는 것으로 보이며 그런 의미에서 대단히 기대된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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