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니, 만화, 영화 이야기/리뷰





*엔딩에 대한 네타가 있습니다.


알레한드로 조도르프스키 감독의 작품에 대해서 누군가는 '컬트 영화의 분수령'이라고 평하기도 했다. 조도르프스키 수준으로 사람에게 충격을 주지 못한다면, 그건 사이비 컬트 영화에 불과하다고. 엘토포나 홀리 마운틴 같은 영화들은 말로 설명하기 힘든 기괴한 영화들이었다. 하지만, 그속에는 사람을 잡아끄는 힘이 있다. 실제로 엘토포를 보고 영화에 빠진 비틀즈의 존 레논이 미국 배급 판권을 지르고는 미국 전역에 엘토포를 배급하였다. 뭐, 결과는 따로 이야기할 필요도 없이 처참하게 쫄딱 망했지만. 여기서 이야기하고자 하는 성스러운 피는 감독 스스로가 '이번에는 상당히 대중적으로 만들었다'라고 공언한 야심작(?)이다.


성스러운 피는 주인공 피닉스의 '극복'에 대한 이야기이다. 사이비 교주 어머니와 서커스 단장이자 꼴마초 아버지를 둔 피닉스는 외도를 하던 아버지의 자살과 아버지가 어머니의 두 팔을 잘라내는 것을 목격을 하고 그 충격에 그만 미쳐버리고 만다. 정신병원에서 오랜 세월을 보냈던 그는 정신병원에서 출소하면서 어머니를 만나게 되고, 어머니의 잘린 두팔을 대신해서 삶을 살게 된다. 그리고 피닉스는 미치광이 어머니의 명령에 의해서 그는 여성들을 죽이게 되고, 점점 그에 대한 죄책감과 어머니에 대한 압박감과 증오로 인해서 미쳐가는데...


성스러운 피는, 그야말로 대립적인 이미지들의 향연들이다. 죽음과 삶, 여성과 남성, 어머니와 아버지, 사랑과 증오 등등 영화는 러닝타임 내내 다양한 대립적인 이미지들을 리드미컬하게 연결시킨다. 재밌는 점은 보통의 정갈하고 깔끔한 이미지를 지향하는 예술 영화와 다르게, 성스러운 피의 이미지들은 죄다 지저분하고 추하며 조잡하다. 하지만, 그 속에는 다른 영화들에서 찾아볼 수 없는 날것의 매력이 있다. 예를 들면, 피닉스의 아버지가 서커스단 내의 여자와 정사를 하던 중에 여자가 절정에 이르자, 그 다음 컷에서 코끼리가 코에서 피를 쏟으면서 죽어가는 장면을 곧바로 연결시킨다. 섹스와 사랑, 각혈과 사정을 한 곳에 묶어버린다. 영화 내의 이미지들은 이런식으로 다듬어지지 않은 날것 그대로의 이미지를 전달한다. 어찌보면 B급 영화 스러운 부분이라고도 할 수 있지만, 오히려 조도르프스키가 B급에 영향을 주었다 라고 하는 것이 더 타당할지도 모른다.


피닉스란 인물은 상당히 복잡한 인물이다. 피닉스의 아버지는 그에게 마초성향을 주입하고자 하고, 피닉스의 어머니는 그에게 강박관념과 여성에 대한 증오를 물려주었다. 이렇게 본다면 피닉스는 대단히 수동적인 인물이며, 이야기 자체도 이 둘 사이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피닉스가 과거의 옛사랑을 만남으로서 구원받는다는 다소 진부한 이야기가 될 수도 있었다. 하지만, 피닉스라는 억눌린 케릭터를 영화는 억눌린 내면 속에서 꿈틀거리는 피닉스의 벗어나고자 하는 욕망이 생생한 이미지로 드러냄으로서, 자칫 둘 사이에 끼어버린 수동적인 케릭터의 이야기를 무시무시한 매력을 가진 이야기로 바꾸어버린다.


아버지가 피닉스에게 물려준 것은 마초적인 '남자다움'에 대한 것이다. 어머니 외에도 다른 여자들을 후리던 아버지의 행동을, 피닉스가 일부나마 재현하는 장면, 그리고 아버지가 어른이 되었다는 기념으로 그에게 새긴 문신은 아버지가 피닉스에게 준 영향력을 드러내는 장면이다. 하지만, 아버지는 어머니에 의해서 거세당하고, 자살함으로서 그의 이미지는 파편적이고 잔향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그를 지배하는 것은 어머니의 광기어린 집착과 여성에 대한 격렬하고도 편집증적인 증오이다. 이러한 어머니의 증오와 피닉스의 관계는 영화는 두팔이 잘린 어머니의 팔을 대신하는 피닉스의 존재로 풀어낸다. 


이 기묘한 2인 1역은, 영화 포스터에 나온 어머니 뒤의 피닉스 모습마냥 단순한 형태가 아니다. 어머니의 잘린 두팔을 대신하는 피닉스의 어머니에 대한 기묘한 헌신, 연극적이고도 과장된 피닉스의 팔연기, 너무나 자연스럽고 당당하게 피닉스의 팔의 봉사를 받는 어머니의 고압적인 여왕같은 모습 등등은 이 영화의 백미라고 할 수 있다. 어머니의 의지와, 그 의지를 수행하는 피닉스의 팔이라는 관계는 비단 두명이 함께할 때뿐만 아니라, 살인에 있어서 어머니의 명령을 충실하게 수행하는 팔의 역할로도 풀어낸다. 하지만, 피닉스는 이러한 관계를 벗어나고 싶어한다. 그를 막을 것이라는 희망을 갖고 성전환 프로레슬러를 다음 살인 타겟으로 지목하거나, 투명인간을 자신의 우상으로 삼고 투명인간 약을 만들려 하는 점 등등은 그의 현실에 대한 탈출 욕망을 잘드러낸다. 이러한 탈출 욕망을 극적으로 드러내는 이미지는 바로 날아오르는 새의 이미지인데, 어릴적 그를 사랑했던 벙어리 소녀가 그의 가슴의 문신(문신이란 각인이자 구속, 낙인의 이미지를 갖는다면 상당히 의미심장한 부분이라 할 수 있다)에 대고 그림자 연극의 새가 날아오르는 듯한 시늉을 한 부분, 벙어리 소녀를 못잊어서 자신의 피해자들에게 흰색 패인트를 칠하자(그녀의 얼굴 분장이 하얀 패인트였다) 그것이 새로 변해서 날아오르는 환상을 보는 등의 다양한 형태의 이미지로 나타난다.


영화의 절정에서, 어릴적 만났던 벙어리 소녀와 재회하고 소녀를 죽이라는 어머니의 명령을 거부한 그에게 진실이 드러난다. 사실 어머니는 아버지가 어머니의 두 팔을 잘라낼 때 이미 죽었으며, 어머니의 명령은 그의 머릿속의 환영에 불과했었다. 그는 경찰에 잡혀가지만, 영화의 마지막, 스스로의 팔을 들어올리면서 '내 팔, 내 팔!'이라고 외치는 장면은 그가 구원받았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라 할 수 있다.


영화 성스러운 피는 놀라운 이미지의 향연으로 가득찬 작품이며, 영화의 이야기도 흡입력이 대단히 뛰어나다 할 수 있다. 기회가 된다면 이 영화는 꼭 봐야한다고 자신있게 추천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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