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니, 만화, 영화 이야기/리뷰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And I heard, as it were, the noise of thunder. One of the four beasts saying, 'Come and see.' and I saw, and behold a white horse"

-자니 케쉬, When the Man comes around.

어느 날, 정체불명의 도둑들에 의해 거액의 도박판 강탈 사건이 발생한다. 도박판의 주인 마키가 유력한 용의자로 의심받고 있는 가운데 범죄 조직들은 범인을 찾기 위해 킬러 잭키 코건(브래드 피트)을 고용한다. 믿는 것은 오직 자신과 돈 뿐인 잔혹한 킬러 ‘잭키 코건’. 도둑들의 뒤를 쫓으며 점차 수사망을 좁혀가던 그는 도둑들에게 또 다른 배후세력이 있음을 감지하고, 도둑들 또한 자신들의 뒤를 쫓는 누군가가 있음을 알게 되는데… 과연, 그는 임무를 완수할 수 있을까?(네이버 영화 시놉시스 발췌)


킬링 뎀 소프틀리는 기묘한 영화다. 기본적으로 범죄라는 소재와 범죄에 손을 댄 인간들의 숙명적인 파국이라는 결론을 다루고 있으면서도 정작 영화의 본질은 마진 콜에서 보여준 이야기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위에 적어놓은 시놉시스에 속지마시라. 영화에는 '갈등'이라고 부를만한 인물들간의 충돌은 없다고 봐도 무방하며, 오히려 잭키 코건(브레드 피트)라는 데우스 엑스 마키나적인 인물이 나와서 모든 문제를 '부드럽게' 해결하는 것이 주된 내용이다. 이러한 과정에서 영화가 초점을 맞추는 것은 영화 내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허위의식'이다.

영화의 주된 모티브는 '심플플랜'이다. 계획은 단순하다. 도박판을 털어서 돈을 번다, 하지만 범인은 우리로 지목되지 않는다. 의심받을 사람은 따로 있으니까. 하지만 영화의 초반 시퀸스들은 이러한 '간단한 계획'조차도 상당히 어설프게 진행됨을 알 수 있다. 계획에 끌어들이려고 한 친구는 개를 끌고 다니면서 지저분한 차림새로 너저분한 성적인 농담을 던진다. 그리고 그런 차림새로 '나는 거물이니까'를 주장하는 친구의 모습은 보고 있는것만으로 짜증이 올라온다. 또한 회상 장면에서 나오는 마키의 도박장 강도 사건과 주인공들이 나와서 벌이는 도박장 강도질을 비교해서 보면 그들의 강도질은 어설픈 티가 팍팍 난다. 얼굴을 가릴 의도로 뒤집어쓴 스타킹은 오히려 개그 영화에 나올법한 느낌이며, 바짝 쫄아서 도둑질 하나 제대로 못하는 모습까지 보여준다.

그런 머저리들에게 숙명적인 파멸이 다가온다. 쟈니 케쉬의 The Man Comes Around와 함께 등장하는 잭키 코건은 노래의 가사처럼 '누가 비난받아야 하는지, 누가 자유로워질건지'를 결정하는 중간관리자(동시에 이 노래는 묵시룩의 4기수중 한명인 하얀 기수, 죽음에 대한 노래이기도 하다)이다. 그의 등장과 함께 영화는 상당히 기묘한 방향으로 흘러가게 된다. 그는 실무 중간관리자로서 '최종적인 결정'을 내리는데, 이 과정에서 그의 위치는 사건에 직접적으로 개입하는 것이 아니라 마지막에 이 모든 것을 깔끔하게 처리하는 쪽에 가깝다는 것이다.

이러한 데우스 엑스 마키나적인 잭키의 포지션이 영화의 배경에 깔아두는 경제위기 극복에 대한 정치인들의 연설(특히 오바마)과 영화 내에서 잭키와 주변 인물들의 기묘한 언어 사용과 맞물려 들어가면서 영화는 평범한 범죄물과는 다른 기묘한 분위기를 만드는데 성공한다. 그것은 현재의 경제 위기와 중산층의 몰락을 허위의식이 가득 찬 인물들이 저항해볼 사이도 없이 결정된 파멸을 맞이하는 과정이라고 서술하는 듯 하다. 실제로 젝키가 만나는 인물들(러셀이나 믹키 같은)의 대화 장면은 공허한 헛소리의 연속이며 이도저도 결정하지 못하지만 자신은 이보다 더 나은 대우를 받아야한다고 허세를 부리는 쪽이라 할 수 있다.(재밌는 점은 이러한 대화의 연속에 있어서 잭키의 포지션은 오로지 듣는 쪽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동시에 무기력하고 현재 상황에 어떤 대처도 하지 못한체 얻어 맞다가 죽음을 맞이하는 마키 트랫맨 같은 케릭터도 존재한다. 

이는 마진 콜의 분석을 빌려오자면, 킬링 뎀 소프틀리 역시 금융 자본주의로 인해서 중산층의 거품이 금융자본주의가 무너지고 중산층이 파멸하는 것에 대한 이야기로 볼 수도 있다. 실제로도 어설프게 한탕 벌이는 멍청한 중산층들이 자신의 허위의식을 드러내다가 실제적인 파멸(잭키)이 다가오자 순식간테 빌빌거리면서 털리는 모습을 보여준다. 동시에 영화 내에서 케릭터들이 보여주는 언어 구사 역시 이 연장선상이라 할 수 있는데, 그들의 이야기는 대부분 소통 없이 자신을 과장하는, 혼자 떠들기의 연속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동시에 그러한 이야기에 있어서 '객체'는 존재하지 않는다. 믹키가 잭키에게 자신의 애널 찬양론(?)을 외치다가 다 니놈들 문제야 라고 외쳤을 때, 잭키가 뭐라고? 라고 되묻는 장면이 있다. 하지만 믹키는 곧바로 이어서 아, 별거 아니야, 그냥 혼잣말이야. 라고 이야기한다. 또한 잭키와 운전수(영화 내에서 이름이 나오지 않는다)의 대화는 음모자들의 전형적인 음모 라기 보다는 윗사람과 멍청한 아랫사람에 끼어버린 중간관리자들의 대화의 연속이라 할 수 있는데, 재밌는 점은 이들의 대화에서도 '지칭되는 사람들'이 뚜렷하게 드러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하지만 믹키의 대화와는 다른 형식이라 할 수 있는데, 이들의 대화에서 배후 세력(또는 윗사람)의 존재를 붕 뜨게 만들고 있다. 

도대체 잭키와 운전수의 이야기에서 나오는 '그들'은 누구인가? 잭키의 데우스 엑스 마키나적인 의미를 생각하면, 모든 것의 배후에 있는 존재, '자본주의' 그 자체라고 볼 수 있다. 그들을 배부르게 만들지만, 동시에 그들을 죽이며, 그들에게서 거둬가는 현세계의 신. 그리고 운전수가 불황이라며 돈을 적게 주려고 하자, 이에 발끈하면서 하는 잭키의 마지막 대사는 이러한 숨은 동력을 까발린다.


내 친구 제퍼슨은 미국인 천사지, 왜냐면 그가 쓴게 있거든:모든 인간은 평등하다. 이건 그가 절대 믿지 않는거야. 그가 노예제도를 선택한것만 봐도 알 수 있지. 그놈은 그냥 영국놈들에게 세금내기 싫은 돈많은 와인 제조업자였을 뿐이야 그래 맞아, 그놈은 그냥 그럴듯한 문장 몇개 만들고 폭동이나 일으킨 놈이지. 그 사람들은 그걸 위해 나가서 싸우다 죽었는데도 말이야, 아마 그동안 그 놈은 앉아서 와인이나 마시면서 자기 노예여자나 따먹고 있었을 거라고. 저자식(오바마)은 우리가 한 공동체 속에 살고 있다고 말하지. 웃기지 말라 그래. 난 미국에 살아. 그리고 미국에서는 자기 앞가림은 스스로 해야하는거야. 미국은 국가따위가 아니야, 그냥 하나의 사업이지. 그러니까 이제 돈이나 내놔.-재키(브레드 피트), 킬링 뎀 소프틀리에서


물론 영화의 나름대로 메세지나 이야기 구조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킬링 뎀 소프틀리가 효율적이라던가 그걸 대단히 잘 구현했다고 보기는 좀 미묘하다. 영화가 보여주는 인물들의 허위의식이 너무 장황한 나머지 어느정도 극의 템포를 갉아먹는 느낌도 있고, 영화는 잭키의 존재감이 대단히 강한 덕분에 나머지 인물들은 쩌리(실재로도 쩌리지만)로 취급되는 그런 느낌도 난다. 그래도 나름대로 영화는 즐길만하며, 한번 기회가 된다면 보는것도 나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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