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니, 만화, 영화 이야기



(대충 이런 느낌?)

마이다스의 손이라는 그리스 신화가 있습니다. 어느 나라의 왕이었던 마이다스는 욕심이 너무 많은 나머지 자신의 손길이 닿는 모든 것이 황금으로 변하게 해달라고 신에게 기도합니다. 기도에, 기도에, 기도를 거듭한 끝에 마이다스의 기도에 질린 신은 '그래 니 ㅈ대로 해봐라'라고 하면서 소원을 들어주죠. 마이다스는 행복했습니다. 그게 무슨 의미인지 깨닫기 전까지는요. 음식도, 물도, 심지어 자신의 딸까지 말이죠. 그제서야 마이다스는 깨닫습니다. 자신이 원한 것이 그게 아니라는 것을 말이죠.

프랑켄 프랑은 소위 고어물이라 불리는 일본 만화 장르에 속하는 작품입니다. 고어란 인간의 사지를 훼손하고, 내장을 분리하며, 육신을 그로테스크하게 변형시키는 표현 자체를 통칭합니다. 사실, 고어라는 장르는 장르적인 표현에 따라서 나뉘어지는 것이죠. 개인적으로는 표현의 내용에 따라서 장르를 분류하는 것이 과연 장르 분류에 적합한 기준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확실한 건 프랑켄 프랑의 표현 수위는 일반적인 만화장르의 그것을 뛰어넘는다는 점이죠. 제가 일전에도 지적한 '폭력과 신체훼손의 양식화 현상'에 비추어 보았을 때, 프랑켄 프랑의 잔인성이나 정서는 오히려 지금도 남아있는 소수의 B급 공포 영화의 그것과 유사합니다.

프랑켄 프랑의 이야기 구조는 간단합니다. 천재적인 신체 개조의 대가(?) 프랑에게 고민을 가진 사람들이 찾아옵니다. 프랑은 너무 마음이 착해서 사람들이 원하는데로 고쳐줍니다. 문제는? 일단 프랑이 원래 나사 하나 빠진 인간이라는 점과 그것이 문자의미 그대로 이루어졌을 때 생기는 문제점들을 사람들이 인지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프랑켄 프랑의 이야기는 바로 그 지점에서 시작합니다. 과연 사람들은 자신의 육체의 한계를 벗어났을 때 자신의 행복을 얻을 수 있는가? 라는 점에서 말이죠.

제가 일전에 데이비드 크로넨버그의 비디오드롬의 감상을 적으면서 이렇게 이야기 한적이 있습니다. 인간이 인간으로서 존재할 수 있는 것은 바로 인간의 육신이라는 한계와 전제에서부터 가능하다고 할 수 있다, 라구요. 인간은 인간의 육신을 벗어나기 위해서 끊임없이 많은 노력을 했죠. 인간 육체의 연장이라 할 수 있는 도구에서부터, 기계, 컴퓨터 등등 인간은 신체를 극복하기 위해서 다양한 노력을 했고, 실제로도 성과를 거두었습니다. 하지만, 인간은 그로 인해서 행복해졌나요? 20세기에 가정 주부는 진공청소기, 세탁기, 전자레인지 등의 혁신을 경험하였습니다. 그러나 가정주부의 평균 노동 시간은 변화하지 않았죠. 그리고 인간은 질소 혼합물을 이용한 화학비료를 만들어 낸 동시에 수백만의 유태인을 학살한 가스도 같이 만들어 냈죠. 즉, 기술은 양면적입니다.

결과적으로 기술의 발전은 인간의 행복으로 연결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인간은 오로지 기술과 행복을 1대1로 매치시키고 있죠. 그리고 그러한 인간의 기술에 대한 맹신은 결국 육체의 확장, 개조, 변이라는 형태로 드러났죠. 이는 우리 주변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더욱 좋은 외모를 위해서 얼굴을 뜯어 고치고, 공부를 더 잘하기 위해서 정신병 치료제를 먹어가면서 공부를 하고, 살을 빼기 위해서 부작용이 많은 지방흡입 수술이나 무리한 다이어트를 감행합니다. 프랑켄 프랑은 바로 그 지점에서 시작합니다. 과연 인간들이 자신들이 원하는 육체를 손에 넣었을 때, 과연 행복할까? 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인거죠.

그렇기에, 프랑켄 프랑에 나오는 에피소드들의 대부분은 결말이 안 좋습니다. 아무도 그런 결과를 예상하지 못했으니까요. 아니, 자신의 욕망에 눈이 멀어서 빌어서는 안되는 걸 원했던 마이다스 처럼, 그들은 스스로 원해서 얻은 결과에 고통받고 죽음에 이릅니다. 오로지 육체의 한계를 뛰어넘어서 자신이 소망한 것에 만족하는 있는 몇몇의 '소수'(에피소드 통틀어서 손에 꼽을 정도니)만이 행복해질 뿐이죠.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신체 마개조의 달인 프랑은 그러한 시술로 인해서 사람들의 욕망은 이루어졌으니 사람들은 행복해졌으리라 생각하죠. 그렇기에 프랑켄 프랑은 인채 개조를 통해 인간의 욕망과 가술을 비꼬는 블랙코미디에 가깝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제가 상당히 좋게 평가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은 적극적인 추천작은 아닙니다. 사실 저 같이 피블스를 보면서 배를 잡고 웃거나, 족발과 데드 플래닛을 술안주로 삼거나, 에바 극장판에서 나오는 아야나미 레이의 쪼개진 골통을 보면서 칼국수를 끓여먹거나, 데드 얼라이브나 고로시야 이치 같은 작품을 최고의 B급 로맨틱 코미디 영화로 보는 놀라운 정신력을 가진 사람한테나 가능한 일이죠. 실제 그러한 내성이 없는 사람들에게는, 혹은 그런 철저한 B급 정서를 이해할 수 없는 사람들에게는 프랑켄 프랑은 한마디로 지옥도에 가깝습니다. 그리고 이쪽 분야에 약간이나마 발을 담그고 있는 저로써도 프랑의 고어 수준은 상당히 높은 편이라 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열린 마음-그것도 대단히 열린-을 가진 사람들한테는 프랑켄 프랑은 상당히 유쾌한 작품입니다. 인간의 상식이나 육체에 대한 비틀기를 통한 파괴적인 맛이 있는 좋은 작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