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TS 장르를 콘솔 게임으로 옮기려는 시도는 그렇게 흔하지는 않았다. 우리가 알고 있는 RTS의 조작 구조를 옮기기 힘들기 때문이다. 우리가 전통적으로 알고 있는 마우스와 키보드의 조합은 직관적으로 ‘이 유닛에게는 이러한 명령을 한다’라는 논리를 쉽게 세울 수 있다. 이는 마우스라는 조작 도구의 조작 특성이 강하게 한몫할 것이다. 유닛을 선택하거나(좌 클릭), 단체로 선택하거나(드래그), 명령을 내리고(우클릭), 카메라를 패닝하거나 더 넓게 보거나 하는 등의 행위를 직관적으로 수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마우스를 이용한 조작은 ‘신의 위치에서 조작하는’ 것에 가깝다고 할 수 있는데, RTS 특유의 조감도와 위에서 내려보는 풍경 자체가 주는 초월감과 작은 유닛들을 조작하고 통제하면서 큰 환경을 지배하는 우월감의 개념은 RTS 장르 뿐만 아니라 시뮬레이션 장르에서 드러나는 강한 감각이었다. 즉, 플레이어가 일종의 신이 된다는 점에서 게임 장르의 특수성을 구축한 것이다.
그러나 패드의 전통적인 조작은 ‘플레이어를 중심으로’ 움직이는데 특화되어 있다. 현대적인 패드 조작에서 왼쪽 스틱은 조작을, 오른쪽 스틱은 주인공 시점에서 카메라를 조작하는 개념이다. 이런 점에서 RTS 장르의 신이 된다는 감각을 구현하는 것과는 본질적으로 다르다 할 수 있는데, 패드의 조작이 ‘케릭터를 중심으로 직관적으로’ 플레이어가 움직이고 상호작용하는데 특화되어 있다면 마우스와 키보드로 조작하는 RTS의 조작은 개개의 개체를 뛰어넘는 전지적인 관점에서 통제하고 바라보고 있기 때문에 방향성 자체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즉, 조작체계의 상이함이 RTS와 같은 장르의 게임을 콘솔게임에서 구현하게 만들기 힘든 핵심 이유라 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피크민 시리즈는 상당히 귀한 작품이라 할 수 있다. 3인칭 시점에서 피크민이라는 유닛들을 조작해서 퍼즐을 풀고 전투를 하며 다양한 상황을 해쳐나가는 피크민은 기본적으로 RTS 장르로 분류되어 있다. 물론 RTS 장르로 분류한다 하더라도 스타크래프트나 커멘드 앤 컨커 같은 게임들과 비교하여보았을 때는 이질적인 부분들이 심하긴 하지만, 자원의 생산과 관리, 행동을 유닛 단위로 쪼게서 통제하고 문제를 해쳐나간다는 큰 골자에서는 기존 RTS와 맞닿아있는 부분들이 많다.
피크민 시리즈의 핵심 경험은 바로 계획이다:플레이어는 피크민에서 제한된 자원들을 활용해서 문제를 해쳐나간다. 먼저 눈여겨 볼 것은 시간이다. 먼저 플레이어는 하루 낮 시간이라는 제한된 시간 내에 맵을 탐색하고 퍼즐을 풀고 전투를 하며 스테이지를 클리어 해나가야 한다. 피크민 1과 2에서는 제한 시간 내에 게임을 클리어하지 못하면 게임 오버가 되는 빡빡한 조건이었고, 피크민 3과 4에서는 이러한 조건이 완화되긴 하였지만 여전히 ‘한 스테이지의 호흡은 낮시간이라는 제한된 시간’이라는 구조는 고수하고 있다. 즉, 게임을 제대로 이해하고 플레이하기 위해서는 이 시간 동안 플레이어가 무엇을 할 수 있고, 또한 무엇을 해야하는지를 정확하게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게임 내에서 ‘무언가를 한다’라는 상호 작용은 피크민을 통해서 수행하게 된다. 피크민은 RTS로 따지면 유닛이라 할 수 있는데, RTS의 유닛 개념에 대응하는 시스템 답게 각기 다른 피크민들이 서로 할 수 있는 것들이 다르고 능력치도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피크민에서 중요한 것은 각 유닛 종류별로 쌔고 강한 개념이 있는 것이 아니라, 유닛별로 역할이 다르다는 점, 그리고 행동의 강함과 빠른 문제 해결은 유닛의 수를 많이 투입하는데 있다는 것이다. 즉, 강한 유닛 = 문제 해결이라는 공식이 아니라 얼마나 유닛을 적재적소에 투입해서 빨리 끝낼 것인지 아니면 유닛을 분산 투자해서 다양한 일들을 동시다발적으로 처리할 것인지를 플레이어가 판단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유닛의 수가 플레이어의 강함과 할 수 있는 가짓수를 늘려준다는 점에서 피크민을 많이 보유하기 위해 피크민 수를 꾸준히 관리해주는 것이 필요한데, 피크민은 플레이어의 지시가 없으면 개별 개체는 금방 죽어버리기 때문에 숫자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집합과 공격을 적재적소에 활용해야 하며, 주기적으로 소모된 피크민은 사냥을 통해서 채워넣어줘야 한다.
흥미로운 점은 게임의 조작이나 구성이 그렇게 복잡하지 않은데도 시간 내에 게임을 플레이한다 라는 개념과 피크민이라는 약한 유닛들을 숫자로 커버하며 문제를 해결하는 시스템으로 인해서 게임이 단순히 퍼즐게임이나 액션 게임과는 다른 방향의 게임 플레이 스타일을 갖게 된다는 점이다. 가령 게임 플레이의 정답이 정해져있는 퍼즐게임이나 플레이어의 조작 감각이 중요한 액션 게임들의 경우, 플레이어의 기량이 퍼즐을 얼마나 잘 이해하는지 혹은 조작을 얼마나 잘하는지 등의 기량을 평가한다고 한다면, 피크민은 플레이어가 얼마나 시간 내에 제한된 숫자의 피크민을 배분하고 문제를 해결하는지가 더 중요하다. 4편에서는 아예 이를 ‘계획력’이라는 단어로 표현하기도 하였는데, 피크민은 플레이어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얼마나 자원을 잘 분배하고 투자하고 그 과정을 꼼꼼하게 체크하는지가 중요하다. 하지만 재밌는 점은 일반적인 RTS가 그러한 자원 배분과 관리를 더 꼼꼼하게 할 수록 플레이어의 손이 바빠지거나 복잡한 시스템을 이해하도록 요구하였다면, 피크민은 그러한 것 없이 단순한 조작과 시간/자원의 제한만으로 플레이어의 기량을 테스트 한다는 점이다.
그런 점에서 3과 4의 차이를 비교해보면 재밌을 것이다. 3은 기본적으로 1과 2의 발전형이자 연장선이라는 점에서 1과 2의 플레이를 상당히 많은 부분 차용하였다. 탑뷰 방식의 카메라나 시간 제한에 식량 자원이라는 자원 개념을 추가한 점 등이 그러하다. 그러나 4는 3과 궤를 달리하는데, 카메라와 조작 스타일을 전형적인 3D 액션 게임의 방식을 들고 오면서도 와치라는 강아지를 추가해서 3편에서 3명을 조작하는 시스템을 깔끔하게 다듬고 편의성을 혁신적으로 증대시킨 점이 그러하다.
그리고 게임 시스템의 깊이 측면에서 본다면 ‘이렇게도 발전시킬 수 있지 않았을까’라는 가능성을 증대시킨 것도 4편이었다. 우선 기존의 게임 컨셉을 ‘계획력’이라는 키워드로 응축시킨 것 부터가 그러한데, 게임 내내 이 계획력이 무엇이고 계획력있게 게임 플레이를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해서 자칫 생소해지기 쉬운 게임의 방향성을 제대로 잡는다. 그리고 여기서 계획력 배틀과 지하 컨텐츠를 추가해서 계획력이라는 컨셉에 맞게 게임을 재구성하는데, 기존 게임 플레이가 탐색 - 퍼즐 - 전투 - 보스전의 반복이었다면 여기에 다양한 배리에이션들을 추가해서 게임을 풍성하게 만들었다. 어떻게 본다면 ‘게임의 컨셉을 재해석/재정립하여 현대적으로 다듬은 게임’이 바로 피크민 4인 것이다.
피크민 3과 4중에 꼭 하나만 해야한다면 당연히 피크민 4를 해야겠지만, 피크민 3 또한 훌륭한 작품이다. 가장 좋은 것은 3편을 즐겨본 다음에 4편을 하는 것이다. 3편이 재밌는 부분들이 얼마나 발전해서 4편에서 더 가다듬어졌는지를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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