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는가? 왜 칼에 칼집이 있는지?
-칼의 참 뜻은 죽이는 게 아닌 살리는데 있기 때문입니다.
-네 칼은 너무 예리하니 칼집 속에 잘 넣어둬라.
-제 칼집은 바로 사부님이시죠. 사부님이 계시면 함부로 못 덤빕니다.
-너를 담기 버겁구나.
-왕가위, <일대종사> (2013)
미국을 대표하는 대중문화 장르에 서부극이 있다면 아시아권, 특히 중국 대중문화를 대표하는 대중문화 장르에는 무협이 있을 것이다. 굽이치는 강과 봉우리들의 배경삼아 무공을 연마한 영웅과 협객들이 자웅을 겨루고 교우 관계를 맺는 무협의 전통은 거슬러 올라가면 수호지로부터 시작하여 김용의 무협소설을 거쳐 고전적인 홍콩 무협영화와 중국 무협영화, 그리고 왕가위의 무협영화나 이안의 와호장룡과 같은 재해석물, 현대적인 중국 무협(드라마와 영화 등등)까지 유구한 역사를 자랑한다. 중국의 무협 문화는 서부극보다도 더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고 거대한 체계를 구축한 대중문화 장르이며, 중국의 다른 문화(시서화 같은 유교문화권 특유의 문화 체계 등등)들과 밀접한 연관을 지으면서 다른 대중문화에서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한 미학을 갖고 있기도 하다. 그렇기에 무협과 관련된 전통을 여타 다른 대중문화 전통과 엮어서 접근하는 시도도 많았었다. 한국 영화의 전통에서 바라본다면 류승완 감독의 아라한 장풍 대작전이나 최동훈 감독의 전우치 같은 작품들이 대표적일 것이다. 이들을 중국에서 비롯된 무협의 정통 적자로 볼 수는 없겠지만, 그들 나름대로 재해석한 무협의 전통과 그들이 창작하면서 쌓았던 배경지식들은 분명 무협의 스펙트럼을 넓히는데 기여하였다. 그리고 여기서 다루고자 하는 명일방주 역시 무협의 전통을 모바일 소셜 게임과 서브컬처 전통 아래서 재해석한 독특함을 보여준다.
명일방주를 논하기에 앞서서 먼저 무협물의 전통이 무엇인지를 논해야 할 것이다. 일반적으로 무협물은 인간이 육체와 내공을 극한으로 단련하여 상대와 무를 겨루는 것을 기본 포멧으로 삼고 있으며, 대중적인 무협물의 인식 역시 그러하다. 하지만 이는 무협武俠에 있어서 반절인 무武만 다루고 있는 정의다. 무협물의 중요한 요인과 인물 동력은 협俠이라 하는 특유의 관계망에서 비롯된다.
협의 관계론을 이야기하려면 먼저 강호江湖라는 공간을 먼저 다루어야 할 것이다. 강호江湖는 한자어 그대로를 풀이하자면 강과 호수를 의미한다. 하지만 강과 호수가 어떤 의미를 갖는가, 라는 측면은 무협을 벗어난 범유교~중화 문화적인 전통에서 해석해야 할 것이다. 몇가지 예를 들어 보겠다. 강호라는 단어는 춘추전국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면 장자가 이야기한 魚相忘乎江湖(어상망호강호, 물고기는 강호에서 서로를 잊고), 人相忘乎道術(인상망호도술, 사람은 도에서 서로를 잊는다)라는 표현에서 등장하기도 했다. 그리고 당나라 시인 육구몽은 스스로를 강호산인江湖散人이라 자처하였는데, 이 칭호는 속인과 교류하지 않으며 강호를 떠돌아다니며 살았던 그의 삶의 자세와 밀접한 관련이 있었다. 또한 정철의 관동별곡에서 "江湖애 病이 깁퍼 竹林의 누엇더니(=강호에 병이 깊어, 죽림에 누었더니)"라는 문구가 있는데 여기서 강호를 자연이나 속세를 벗어난 공간으로 해석한다. 춘추전국 시대 장자에서 조선시대 송강 정철까지 강호라는 단어는 중화 문화와 유교 문화의 영향을 받는 문화권에서는 합의된 해석이 있었는데, 그것은 자연이자 속세를 벗어난 공간이라는 것이었다.
흥미로운 점은 이 '속세를 벗어난 공간'으로써의 강호가 중앙집권적인 중국 고대 국가들의 힘이 미치지 않는 '무법지대'를 동시에 의미하기도 했다는 점이다. 무협물의 시조라고 불리는 수호지가 무법자들 집단인 양산박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는 점은 무협의 시작이 바로 무법이라는 점을 시사하는 부분이다. 애시당초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무武라는 형태의 폭력을 수단으로 삼는 것 자체가 폭력을 황실과 왕조의 명분 질서 아래 재편하여 법과 기관을 구성하고, 권력과 정당성을 독점하여 통치하는 아시아 전근대 국가의 법 통치 체제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다. 하지만 동시에 전근대의 한계상, 모든 곳에는 황실과 왕조의 통치가 미칠 수 없었고 그러한 공백에 자연 그대로의 강호가 존재할 수 있었다. 즉, 속세를 등진다는 것은 번잡한 세상사를 등진다는 것 외에도 황실과 왕조의 통치 질서 변두리로 가서 은둔한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했다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본다면 서부극의 무법 지대인 서부와 무협의 강호는 맥이 닿아있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규칙의 존재 여부에 따라 이 둘은 극명한 차이를 보여주기도 한다. 서부극에서 서부는 그야말로 공백의 공간, 가능성의 공간이다. 황무지는 법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생기는 자유, 법 바깥에서 생과 사를 결정하는 강력한 권력과 기존 사회의 질서를 넘어서는 힘이 존재한다. 물론 그것이 서부극의 전부는 아니지만, 중요한 점은 서부극의 가장 중요한 전제는 법과 제도, 사회의 부제와 그것을 채워넣는 인물들의 힘일 것이다. 그러나 무협에서 강호라는 공간은 단순한 '부재'와 그것을 채워넣는 힘을 의미하지 않는다.
여기서 협俠의 관계론이 대두된다. 강호에 조정 질서가 들어오지 않더라도, 거기에는 느슨한 사회 체계가 존재한다. 강호의 질서는 협의 질서이며, 원초적인 호혜적인 질서다. 은을 받으면 그것을 은인에게 갚고, 해를 입으면 원수에게 복수로 갚는다. 모든 것은 인간 관계로부터 시작되며, 인간 관계로 끝난다. 부모의 원수, 기인을 만나며 사사를 받고, 사사 받은 문파로부터 새로운 인간관계가 형성 되며 적 또한 함께 늘어난다. 단순한 관계론이지만, 주체와 그 사람들이 걸어온 역사로 인해서 단순한 관계망이 아닌 복잡한 생태계를 형성한다. 힘과 질서의 공백을 총을 쥔 무법자가 채워넣는 서부극과 다르게 이미 무협에서는 법과 정부는 없을지라도 인간관계로 구성된 독특한 사회 질서가 존재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무협의 핵심은 인간관계에서 비롯되는 인간사의 희로애락을 다루는 것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단순히 이야기하자면 사람에게 상처 입고, 사람에게 덕을 보고, 그것을 마땅히 돌려줘야 하는 사람들에게 돌려주는 장르지만, 무협은 인간 관계에 초점을 맞춘 덕분에 여타 대중문화에서 찾아볼 수 없는 인간 관계에서 발전된 완숙미와 여운, 혹은 인간사에게서 느끼는 염세와 자조 등 다양한 감정들이 존재한다. 그리고 이것이 중국의 오래된 역사와 전통, 문화의 영향과 합쳐지면서 풍부한 레퍼런스를 갖게 된다.
모든 무협영화들이 그렇지 않지만, 이런 완숙미가 드러나는 몇몇 예를 보자:소오강호의 이야기는 강호를 떠나고자 하는 사람들이 무림 비공(규화보전)이 적혀있는 책과 휘말리게 되면서 시작된다. 주인공들은 초반에 무림을 떠나려 하는 두 강호의 선배를 만나는데, 여기서 소오강호지곡笑傲江湖之曲이라는 곡의 악보와 규화보전이 서로 뒤바뀌게 되면서 사건이 발생한다. 앞으로는 근엄한척 하지만 강한 힘을 얻기 위해서 제자를 버리는 주인공의 위선자 스승이나 다양한 인물 군상들이 주인공과 엮이게 되고, 주인공은 기연을 얻어 독고구검을 깨치고 마지막에 스승을 물리치며 강호를 떠나게 된다. 여기서 '강호의 속박을 비웃어버린다笑傲江湖'라는 이름을 가진 곡의 악보를 두고 사람들이 무림 비공이라 잘못 속아서 서로 힘대결을 하는 웃지못할 상황들은 그야말로 강호의 민낯을 다룸과 동시에 인간사의 아귀다툼을 초월해버린듯이 이야기하는 완숙미가 훌륭한 작품이었다.
서극의 칼(원전은 장철 감독의 독비도로, 김용의 신조협려 영향을 강하게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은 좀 더 독특하다. 여성의 독백으로 시작해서 끝나는 영화는 주인공이 아버지의 복수와 오른팔을 잃어버린 후, 독특한 전개를 보여준다. 주인공은 외팔의 상태에서 반쯤 불타버린 무공 비급을 얻게 되는데, 아무리 연마해도 팔을 한쪽을 잃어버린 자신의 처지와 반쯤 타버린 비공 때문에 반푼어치 깨달음 밖에 못얻는다고 분노한다. 하지만 그러한 처지에도 주인공은 그 처지에서 깨달음을 얻어 비공도 아닌 자신의 무를 창시하여 원수를 쓰러뜨리고 멀리 여정을 떠난다. 서극의 칼은 결함과 그것을 극복하는 것에 대한 진한 페이소스가 있는 영화로 원전인 신조협려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으며, 무협이 단순히 무예를 겨루는 장르가 아닌 인간사와 인간관계를 베이스로 한 작품임을 보여준다.
이외에도 왕가위의 동사서독이나 일대종사, 허우샤오셴의 자객 섭은낭, 이안의 와호장룡 등등의 기라성 같은 작품들이 무협의 장르 문법을 깊이있게 보여주었다. 물론 일반적인 무협에서도 이러한 장르적 문법(무로써 강호를 종횡무진 거니며, 협의 정신으로 사람과 만나다)을 다루었다.
하지만 근래의 중국 본토의 무협물들은 이러한 무협물의 장르 문법과 다소 동떨어져있는데, 이는 장이머우의 영웅의 등장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사기의 자객열전에서 모티브를 얻은 영웅은 진시황의 천하통일과 진시황을 암살하려는 인물들의 이야기를 다룬다. 흥미로운 점은 진시황을 암살하려는 자객이 마지막에 진시황의 천하통일 대업의 뜻을 이해하고 자신의 복수하고자 하는 감정을 내려놓고 진시황을 살려주는데, 이것이 일견 무협의 문법과 맞닿아있는 것처럼 보이면서 그것과 동떨어져있다는 점이 인상적이다. 즉, 자신의 감정이나 인간사의 은원보다 더 거대한 가치(=천하통일)가 존재하는 것을 알고 그것을 내려놓는 것은 협의 관계론을 정면으로 부정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영웅은 고전적 무협의 종말로도 볼 수 있는 작품인데, 이후 나오는 중국 대중문화의 무협이 중앙 진출하여 조정의 이야기를 다루는 경우들이 많다는 걸 생각하면 더더욱 그러하다. 무협의 문법에서 보자면 이질적인 일들이 발생한 것인데, 서부극으로 따지면 법과 정부가 존재하는 워싱턴 D.C.를 배경으로 무법자들이 총을 쏘며 돌아다니는 것과 유사하다 할 수 있다. 말은 안되는 것은 아니지만, 계속해서 나온다면 그것의 저의가 의심될 수 밖에 없는 묘사다.
그러면 위와 같은 논의를 전제로 하고 명일방주로 돌아가보자. 가장 노골적인 무협의 인용인 염국의 사이드 스토리들(장진주 같은)을 제외한다면 명시적으로 무협 문법을 접합하여 스토리를 논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하지만 잘 살펴본다면 뼈대가 되는 부분에서 무협의 이야기와 깊이 맞닿아 있다. 명일방주의 스토리는 기본적으로 메인스트림으로부터 살짝 벗어나 있으며 동시에 재능있는(그것이 무력이든, 아니면 다른 형태의 재능이든) 오퍼레이터들이 로도스 아일랜드라는 성긴 연대를 통해서 의를 행하는 것에 있다. 세상의 부조리는 거대하고 복잡하고 뿌리깊고 이들은 강하긴 하지만 그들의 힘만으로는 그것을 바꾸기엔 너무나 모자라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를 행한다는 목표를 갖고 움직이는 것인데, 그 목표를 위한 구심점이 박사라 하는 한 인물의 인품과 인간관계라는 점은 독특한 부분이다. 즉, 이들은 질서와 규율, 위계가 아닌 박사라는 구심점을 둔 성긴 인간관계에 기반(≒ 협)하여 법이 없는 틈새 공간(≒ 강호)에서 실력 행사(≒ 무)로 의를 실현하고자 하는 것이다. 추상적으로 놓고만 보면 무협의 문법과 묘하게 맞닿아 있다.
하지만 그뿐만이 아니다. 명일방주의 이야기는 전적으로 법과 질서가 외면한 사람들(광석병 감염자들)에 대한 이야기다. 그리고 소외된 사람들을 둘러싼 세계는 현실 세계의 거대한 우화로 구성되어 있다. 세계 신흥 초 강대국 컬럼비아(=미국), 오래된 강국 빅토리아(=영국), 동방의 강자 염국(=중국)과 경제의 중심 도시 용문(=홍콩), 넓은 영토를 지닌 북방 제국 우르수스(=러시아), 광륜을 가진 천사들이 만든 세계종교의 도시 라테라노(=바티칸, 가톨릭), 그리고 사람들로부터 핍박 받는 민족 카즈델(=유대인)까지, 명일방주는 현실세계의 분쟁과 갈등을 그대로 옮기기 위해서 정말로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그리고 이러한 분쟁과 갈등 사이의 무법지대와 그레이존을 경험한 자들이 다양한 이유와 목적을 가지고 로도스 아일랜드의 일원이 되어 문제를 해결한다는 것이 명일방주 이야기의 핵심이다. 독특한 점은 무협의 강호가 법과 질서가 없이 인간관계만으로 이루어진 공간이었다면, 명일방주는 법과 질서가 없는 것을 경험한 사람들이 의를 행하기 위해서 인간관계를 주축으로 한 대안 공동체로 강호를 만들었다고 볼 수 있다는 것이다.
흥미로운 점은 대다수 오퍼레이터들이 현실의 문제를 온몸으로 경험한다는 것인데, 법과 질서가 없는 곳의 폭력을 경험하긴 했지만 거기서 좌절하여 염세로 빠져들어 강호를 지향하는 것이 아닌 법 바깥에 서서 사회 내부를 지향한다는 점일 것이다. 이런 부분은 무협물의 양태와 다르지만, 의를 추구한다는 의협義俠의 전통에서 보면 무협의 변주로도 읽힐 수 있다:강호의 협의 네트워크 내에서도 단순히 협을 넘어서 더 큰 대의를 따른다는 의협의 관점이 강호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서도 공경을 받는 것처럼 말이다. 그리고 로도스 아일랜드의 오퍼레이터들과 박사는 단순히 사회에 편입되고자 하는 것도, 사회를 스스로 대체하자는 것이 아니고 여전히 주변부에 머무르며 의협을 행하는 것도 상당히 흥미로운 양태이다. 고전적인 무협에서 강호인이 조정일에 크게 관여하지 않은 것은 일종의 강호와 속세 사이의 벽세우기의 전통으로 접근할 수 있는데, 고전 무협 특유의 '분수를 안다'라는 관념과 일맥상통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명일방주의 인물들은 여타 서브컬처에서 쉽게 찾아볼 수 없는 성숙미가 보여진다. 인물들은 이미 법이 없는 곳에서 구르고 굴러 산전수전을 다 겪었고, 회의론자들이 무엇을 회의론적으로 바라보는지조차 이해한다. 그렇기 때문에 때로는 반동인물마저도 공감 가능하게끔 묘사하고(프로스트노바, 패트리어트와 세뇌 전 탈룰라, 가이딩 어헤드의 안도아인 같은), 주역 인물들마저도 서로의 입장 차이 때문에 갈등하는(액트 1,2의 첸과 아미야의 관계처럼) 모습을 보여준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점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를 추구하는 주역 인물들의 곧은 자세일 것이다. 명일방주는 상당히 성숙한 자세로 인간관계를 다루고 있고, 이러한 태도는 중국 무협에서 보여주는 인간사에 대한 관조와 통찰과 상당히 맞닿아 있다. 물론 명일방주의 이야기가 대단히 사변적이고 사변적인 이야기에서 시작해서 끝난다는 점에서 대단히 편의주의적인 부분들이 있지만 그런 한계에도 불구하고 변화를 끊임없이 추구하는 자들의 이야기를 매력적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이 중심에는 박사라는 인물이 있다. 천재적인 지휘 능력과 놀라운 지식을 보유하고 있지만, 가장 중요한 점은 이 박사라는 사람이 갖고 있는 인망일 것이다. 서로 다른 곳에서 다른 경험을 하거나 심지어는 적대한 이력이 있는 인물들이 박사를 구심점으로 모이는 것은 코레류 게임(칸코레나 소녀전선 같이 케릭터들을 모으고)에서 주역 인물들에 사람들이 호감을 갖는 문법이 독특하게 변형되었다고 볼 수 있다. 일반적인 코레류 게임에서의 주역 인물이 이성(절대다수가 여성인)으로부터 유사 연애감정 ~ 연애감정을 갖는것과 달리, 명일방주는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박사가 보여주는 통찰력과 로도스 아일랜드가 추구하는 의에 대한 믿음을 신뢰하며 그의 지휘를 따른다.
이는 무협에서 협의 관계망의 연장선상에 놓여있는데, 단순히 무협에서 무공이 높냐 낮냐로 판단하는 것이 아닌 그 사람의 성품 됨됨이를 따지는 것, 그걸로 인해 마치 향기로운 난초에 나비가 이끌리는 것처럼 사람이 자연스럽게 모이는 것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의를 행하는 명분 이상으로 서로 어울릴 수 없는 반동 세력들 마저도 박사라는 인간 아래 모일 수 있는 것이다.
게임에 대한 부분은 추후 별도 리뷰로 다루겠지만, 명일방주는 무협의 현대 서브컬처적인 변주인 동시에 세상사를 축소하여 거기에 넣고 의를 행하는 것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내보겠다는 야심을 가진 작품이기도 하다. 물론 모든 것이 성공적이진 않고(탈룰라에 관한 스토리 텔링이나), 모바일 게임의 한계 상 지나치게 텍스트에 의존해 사변적인 묘사에 천착하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명일방주 스토리는 훌륭하고 매력적인 부분들이 분명 존재하고, 무엇보다 게임을 하는 동안 사람을 끓어오르게 만드는 것들이 있다. 그렇기에 그만한 가치가 있는 스토리텔링이라 평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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