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물론이란 기본적으로 '만물의 근원은 물질이다'라는 개념이다. 다양한 철학자들이 유물론에 기반하여 자신의 논지를 전개하였지만, 유물론으로 세상에 영향을 끼친 것으로 유명한 것은 마르크스일 것이다:포이어바흐의 유물론을 받아들여 공산당 선언, 자본론 등을 집필하여 자본주의 비판 및 공산주의라는 사상과 체제를 만든 마르크스는 자본주의를 비판할 때, 유물론의 방법론으로 접근하여 사회 근간을 구성하는 경제체제를 분석하고 이를 통해서 자본주의가 갖고 있는 착취 구조를 비판하여 대안을 제안하고자 하였다. 공산주의의 등장 이후, 인류 현대사 100년은 격동의 100년을 보냈고, 그것이 소비에트 연방 해체로 이어지며 공산주의 혁명은 결국 실패로 이어졌지만, 마르크스의 자본주의 비판은 여전히 동일한 맥락으로 작동한다는 점에서 그의 분석과 통찰력은 날카로웠다.
마르크스의 분석의 핵심은 '하부 구조(경제 시스템)가 상부 구조를 구축한다'다:마르크스의 역사론에서는 사회는 경제 생산의 단계에 따라 총 다섯 단계(원시 공산 사회 - 노예제 사회 - 봉건제 사회 - 자본주의 사회 - 사회주의 사회)를 밟아서 변화하고, 그 각각의 단계의 사회는 인간 공동체의 생산-배분 체제에 기반하여 상부(사회 지배 구조)를 구축한다. 즉, 생산과 배분라는 경제 체제(하부 구조)를 정당화하는 방향으로 사회 구조(상부 구조)가 구축된다는 것인데, 현대적인 산업 시대로 들어오면서 자본에 기반한 공장 생산, 노동자-자본가의 이원화된 계급 구조, 자본이 자본을 재생산하는 관념과 경제 구조 등등이 현대 사업사회의 구조를 구성하는 주요한 모티브가 되었다는 것이다. 물론 마르크스의 이론에서 5단계인 사회주의 사회 실험이 소련의 해체로 일단 실패로 돌아갔다는 점, 마르크스 역시도 존재하지 않는 이상사회에 대한 막연한 추론을 할 수 밖에 없었다는 점, 무엇보다도 여러 다른 요인들을 고려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결점을 갖고 있긴 했다. 하지만 과거의 구조를 정확하게 분석하고 있다는 점에서 여전히 마르크스의 분석은 의미가 있고, 이 글에서 모티브로 다루고자 하는 '하부 구조가 상부 구조를 구축한다'라는 명제는 그 어느 곳에도 적용할 수 있는 막강한 분석 구조다.
흥미롭게도 게임에서 하부 구조가 상부 구조를 구축한다는 명제는 게임의 역사에 있어서도 상대적으로 '짧은 역사'를 가진다는 점이다. 사회에서 하부 구조가 경제 체제를 의미하고 상부 구조가 사회 레짐 체제를 의미한다면, 게임에서는 하부구조/경제 체제는 그 게임을 유지할 수 있는 수익 구조를, 상부 구조는 게임의 재미 등을 구조하는 요소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생각보다 과거의 게임(~00년대 까지)에서 상부 구조(게임 재미나 이런 부분들)는 하부 구조의 영향을 상대적으로 '덜 받는' 것처럼 보였다. 다양한 실험작들, 대중적이라 생각되지 않는 매니악한 구조, 시뮬레이션의 구조를 보여주는 게임들 등등은 지금 게임에서는 쉽게 찾아볼 수 없는 요소들이긴 했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이것이야말로 게임의 하부 구조의 큰 영향을 받은 부분이라고 할 수 있는 사실이다:00년대 전후의 게임들은 어떻게 보면 주류 문화에 끼지 못하는 하위 문화라 할 수 있었다. 최초의 아케이드 게임에서부터 콘솔 및 PC 게임의 시대로 넘어오는 00년대까지 시장은 급격하게 크고 있었지만, 산업적 특성과 하위 문화(해커, 주류에 대한 반문화 등등)가 여전히 공존하는 기이한 형태였다. 전적으로 게임 시장과 산업은 하이 리스크-하이 리턴이었고, 그 누구도 성공으로 이어지는 뚜렷한 문법을 성립시키지 못했기 때문에 그 과정에서 많은 실험들이 가능하게 되었다. 또한 이러한 하이 리스크-하이 리턴 구조에서 게임은 '노동력' 외에는 별도의 자본과 설비가 필요하지 않은 산업이었고, 그러한 과정에서 많은 돈을 벌어들일 수 있는 여지(벌어들이는 수익이 예측 불가한 점, 초창기 게임 제작자들이 돈보다도 열정으로 무장한 십자군들이었다는 점, 그리고 좋은 이야기는 아니지만 적절하지 못한 임금을 받지 못하고 노동한 케이스들도 여기에 한 몫 할 것이다)도 있었다.
문제는 이러한 구조가 00년대로 넘어오면서 점차 무너지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한 원인은 여러가지가 있다:물가는 오르지만 그만큼 드라마틱하게 오르지 않는 게임의 가격들, 점차 대규모화 산업화 되면서 대중이 원하는 것을 산업적으로 재생산하는 프로세스가 확립되는 것, 마케팅을 통한 구매 계층의 저변이 점차 넓어지는 것, 무형의 에셋들이 재활용되는 구조를 취해 점차 '생산 수단'이자 '자본화' 되는 상황, 반문화적인 개발 방법과 문화가 점차 쇠퇴하고 조직과 구조가 확립되면서 점차 게임의 개발이 '예측 가능한 영역'으로 들어서는 점 등이 게임 산업을 점차 주류 문화의 영역으로 편입시켰다.
이러면서 점차 게임의 수익구조, 즉 하부 구조가 게임의 상부 구조에 끼치는 영향은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물론 전통적인 게임 시장(콘솔/PC 패키지 게임 시장)에서는 이러한 흐름이 두드러지진 않았는데, 지속적인 수익 확보를 위해 시즌패스와 DLC 자체가 등장하긴 했지만 이것이 패키지 게임이라는 구조 자체를 바꾸진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러한 문법(완결된 게임으로 내야 한다는 것)을 무너뜨릴 수 없기에, 이러한 수익구조가 게임의 재미에 영향을 끼치는 일은 상당히 조심스럽고 지양되는 일이긴 했다. 반대로 여기서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모바일 게임의 경우, 게임의 수익구조를 만들어두고 거기에 상부 구조라 할 수 있는 재미와 시스템들을 쌓아올리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렇기 때문에 모바일 게임과 전통적인 게임 시장/제품과는 다른 재미 구조를 갖고 있다. 소녀전선의 예를 보자:보드게임과 진형을 바꾸어가는 실시간 전투 조작 등과 별개로 소녀전선은 칸코레로부터 이어지는 콜렉션 게임의 시스템과 가챠, 그리고 그 가챠를 뽑기 위해 투입되는 이중의 재화와 환전(실제 돈/노동력이 케릭터로 바뀌어지는 구조)을 자원 관리 및 자원을 벌어들이는 구조로 치환해서 만든 점은 새로운 재미 요소로 이어지는 부분이 있다. 하지만 이러한 재미가 과거의 재미와 1대1로 대응되는가의 부분에서는 회의적인데, 결국은 재화가 돌기 위한 구조를 우선하고 있기 때문에 '한 번 결제로 완결된 구조를 제공하는' 기존의 게임 시장과는 차이가 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게임을 비평할 때, 그 하부 구조라 할 수 있는 수익 구조를 게임의 재미와 연결지어서 비평하는 것은 모바일 게임을 비평하는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방법론이라 할 수 있다. 전통적인 게임 비평에 있어서 상부 구조만을 분석하는 방법론을 보통은 채택하지만, 모바일 게임에서 그러한 방법론을 취했다간 모바일 게임 구조를 반절밖에 설명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물론, 이것만으로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없겠지만(게임을 소비하는 방식이나, 문화적인 영역 등등), 모바일 게임을 이해하고자 할 때, 이 둘을 밀접하게 연결지어서 설명해야 기본적인 부분들을 충실하게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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