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 글은 월간 엑스박스 매거진 2월호에 수록된 칼럼입니다.(전체 잡지 링크)
누군가 요제프 K를 중상한 것이 틀림없다. 아무 잘못한 일도 없는데 어느 날 아침 그는 체포되었기 때문이다. 하숙집 주인 그루바흐 부인의 하녀는 매일 아침 여덟시에 식사를 가져오는데 이날 아침에는 얼굴도 보이지 않았다. 이제까지 이런 일은 한 번도 없었다.
- 프란츠 카프카의 심판
도시 전설Urban Legend에 대해서 아는가? 전통적인 전설이 아닌 현대적인 도시를 배경으로 한 전설들을 다루는 작품들, 장르로 정리하자면 도회지 판타지Urban Fantasy의 이야기는 도회지라는 공간을 배경으로 전설이나 환상을 이어나가는 서브 컬처 장르다. 도회지 판타지는 사이비 과학과 오컬트, 미신, 범죄, 신화 등과 같은 다양한 요소들로 구성된다. 각각 하나씩만 놓고 보더라도 거대한 장르를 구성할 수 있는 요소들이 도회지 판타지에 묶일 수 있는 이유는 독특한 하나의 핵심 명제가 있기 때문이다 : 도시 전설은 이치에 맞지만, 이치에 맞지 않다. 이렇게 생각해보자. 어떠한 원인이 있다면, 거기까지 도달하는 과정이 있고, 그 과정을 통해 결과가 생길 것이다. 하지만 역으로 도회지 판타지에는 결과가 존재하고, 그 결과에 대한 실존하지 않는 다원론적인 설명(외계인이 그랬다, 사이비 컬트가 그랬다, 연쇄살인마가 그랬다, 돌연변이가 그랬다)을 붙이는 것이다. 그러한 설명을 다시 뒤집어서 합리적인 추론의 탈을 뒤집어 써서 다시 포장을 하는 것이 도회지 판타지의 장르적 특징이라 할 수 있다.
대표적인 예로는 SCP 재단의 문건들이 있을 것이다. SCP 재단은 위키 사이트로 다양한 허구의 도시전설들을 이야기가 아닌 위키 문서의 형태로 만들어진 창작물이다. SCP 재단에서 다루는 것들은 하나 같이 세상의 이치에서 동떨어진 것들(쉽게 이야기하면 완벽한 허구)인데, 이를 위키 문서로 묘사하면서 그 묘사 대상에 대한 상상력과 함께 일종의 법칙성을 제공한다. 하지만 이러한 상상력과 법칙성은 특이하게도 '검열된 문서'라는 양식을 통해서 모순되지 않고 조화를 이룬다. 우리는 SCP 문서들의 검열된 부분을 볼 때, 그것에 대한 규모나 입에 담기 어려운 끔찍한 진실을 상상할 수 있다. 반면에, SCP에 등장하는 문서 위험도의 등급이나 다양한 부록 문서들, 논리적으로 배치된 다양한 매체들을 볼 때면, 이것이 통제 가능하며 설명 가능하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
흥미롭게도 도회지 판타지의 이러한 부분들은 부조리극이라는 근현대 문학과 어느정도 맥락이 닿아있는 것처럼 보인다. 부조리극의 대표자인’프란츠 카프카’의 소설들처럼 조리에 맞지 않는 것, 이치에 맞지 않는 것들을 통해서 도시 문명에서 느껴지는 소외와 불안감을 다루는 것이다. 이전 근대문학에서 찾아볼 수 없는 부조리극의 독특한 감수성은 전적으로 도시라는 공간에 기반하고 있다. 이름도 직업도 모르는 수많은 이들이 한 곳에서 모여서 살고, 그 과정 속에서 불가해한 일들이 일어난다. 도시와 산업 문명을 지탱하는 관료제도도 그러하다. 전통적인 관료 제도 내에서는 일은 잘게 쪼개진 업무들과 그것의 집합체인 관료 조직으로 구성되며, 각 조직들은 서로 하는 업무를 알 수 없고 이해하고자 하지도 않는다. 이러한 도시 문명과 관료주의에 대한 현대의 소외를 이야기하는 것이 카프카 부조리극의 일반적인 모티브라 할 수 있다.
흥미롭게도 이 부조리극 역시 도회지 판타지와 미학적으로 맞닿아있는 부분이 있다. 변신을 예로 들어보자. 그레고리는 잠자는 벌레가 되었다, 라는 전설적인 문장으로 시작하는 이 소설은 주인공이 영문도 모른 채 벌레가 된다는 이해가 안 되는 문장으로부터 이야기가 시작된다. 하지만, 흥미로운 점은’그레고리는 잠을 자다가 벌레가 되었다’라는 사실이 아닌 그것이 전제가 되어서 전개되는 이야기일 것이다.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던 자가 어떻게 가족의 짐이 되고 혐오스러운 존재가 되는지, 그리고 그것이 쓸쓸하게 죽음을 맞아 쓰레기처럼 버려지는 그 메마른 과정 자체가 어떤 의미에서는 대단히 '현실적'이라 할 수 있다. 이 모순된 두가지, 묘한 현실성과 순수한 거짓의 결합, 그 두 결합을 통해서 카프카의 변신은 수많은 평론가와 후대 예술가들에게 영감을 주게 되었다.
카프카의 ’심판’에서는 좀 더 이것이 극명하게 드러난다. 주인공 요세프 K는 알 수 없는 이유로 고발당하고 재판을 받으며 죽는다. 법제도 바깥에 서있으며 자신을 처벌하는 제도로부터 처벌당하는 내용인 심판에서 중요한 것은 요세프 K가 취하는 태도와 그에 대한 법 제도의 배척과 공격일 것이다. 연극적으로 과장된 영화를 만들었던 오손 웰즈가 영화화한 버전의 심판에서는 이것이 기괴하고 과정되며 극적으로 드러나는데, 변호사(오손 웰즈 역)가 법으로부터 고발당한 자신의 의뢰인에게 일종의 협박을 가하는 과정에서 '구체적이지 않지만(어떤 법조항으로, 어떤 이유 때문에 위험하다는 것인가?), 구체적인 불안과 협박(법조인들과 그 세력들이 의뢰인을 안좋게 본다는 사실, 그 사실만으로 판결에 영향이 있다는 것)'이 공존하는 장면을 도출한다. 어떻게 보면 이치에 맞지 않지만, 우리 역시도 현실에서 그런 일들이 어렴풋하게 일어난다는 것을 감지하고 있기 때문에 공감할 수 있는 여지가 생기는 장면인 것이다.
이러한 카프카의 부조리극은 도시문명의 특수성과 맞닿아 있다. 가해함의 불가해함, 불가해함의 가해함, 이치에 맞지만, 이치에 맞지 않는 모순의 진리가 도시 문명에 존재하는 것이다. 우리는 출퇴근하면서 자연스럽게 거대한 군중들이 대중교통에 타고, 밀려 들어오고 빠져나가는 것을 볼 수 있다. 그것은 자연스럽지만, 동시에 그것이 어떻게 자연스럽게 가능한가? 혹은 그것을 가능케 하는 장막 뒤의 동력에 대해서는 모두 알 수 없고 이해할 수 없다. 마치 스마트폰이나 클라우드 서비스 같은 첨단 서비스들처럼, 그것이 동작하는 것은 알지만 어째서 그것이 가능한가에 대해서는 알 수 없는 것처럼 말이다. 도시와 기계문명은 관료제와 분절화된 과학 기술 영역 등으로 구성되어 있고, 우리는 평생토록 그 일부만을 보고 살아간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우리 앞에서 합리적으로 돌아가는 것이, 실제는 우리의 이성에 맞지 않게 불합리하게 돌아가는 상황을 종종 목격한다. 이 모순된 개념이 조화를 이루고, 그것이 사회 속 개개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그대로 굴러간다는 것, 그것이 부조리극이 꿰뚫어보고자 한 현대문명의 본질이며, 더 나아가서 그것을 어떻게든 '이해하고 해결하기 위해 재해석하는 것'이 도회지 판타지가 성립할 수 있는 근거가 되는 것이다.
도회지 판타지는 부조리극으로부터 모순된 두 명제의 공존(가해함의 불가해함, 불가해함의 가해함)의 미학을 물려받았지만, 그 미학에 갇히는 것이 아닌 그것을 관통하고 이해하고자 하는 시도를 한다. 그것이 어떻게 보면 사람이 살아가는 동안 자연스럽게 갖는 욕망이고, 도회지 판타지는 그러한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한 장르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도회지 판타지의 전설적인 작품이 바로 90년대 드라마였던 엑스파일일 것이다:21세기 도래 이전의 세기말의 암울한 분위기, 음모론, 종말론 등을 B급 호러 영화식의 특수 분장과 CG, 모호한 분위기, 그러면서도 진실은 저 너머에Truth is out there나 나는 믿고 싶다I want to believe, 모든 것을 부정하라Deny everything 같은 유명한 캐치프레이즈를 만들어내며 90년대 수억의 음모론자에게 큰 영향을 미친(동시에 의도친 않았겠지만 수많은 백신 음모론으로 2020년대 백신 반대론자들에게도 영향을 끼쳤을 것이다) 작품이었다. 엑스파일은 단순히 세기말의 열풍을 타서 흥행한 작품이 아닌 도회지 판타지의 장르의 한 축을 완성시켰는데, 도시 전설에 대해서 수사극이라는 도시 문명에서 성립하는 전통적인 장르 문법과 과학적인 접근이라는 방법론을 통해서 그것을 어떻게든 논리적으로 이해하고자 하는 노력과 좌절, 실패 등을 통해 사람들이 도시문명에 대해 느끼는 이해에의 욕망을 충족시키게 된다.
엑스파일의 핵심은 도시전설이 권위에 의해 은폐된 진실과 맞닿아 있고, 그 진실을 찾아내기 위해 권위적인 방법론(과학, 정부 등)이 아닌 대안적 방법을 통해서 접근하는 데 있다. 과학에 의해서 비과학적인 요소로 규정되어 있는 요소들(외계인, 오컬트, 신비주의, 혹은 대안과학 등등)을 드라마의 플롯에 적극적으로 도입하는데, 그 과정에서 과학의 방법론(스컬리)와 대안 과학의 방법론(멀더)이 변증법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멀더의 가설 제시 - 스컬리의 과학적 반론 - 감춰진 진실에 도달)이 짜임새가 있기 때문에 엄청난 인기를 끌었을 뿐만 아니라, 이후 미국 드라마나 대중 문화에 큰 영향을 주기도 하였다. 흥미로운 점은 엑스파일이라는 드라마의 방향성이 그 어느 쪽의 진실도 분명하게 맞다 틀리다를 결론짓지 않기 때문에, 그 모호성과 불안함이 20세기 말이라는 시대적 분위기와 밀접한 관련성이 있었다.
엑스파일의 주요한 이야기 전개는 진실을 은폐하려는 권위라는 힘과 맞닿아 있다. 엑스파일 내의 권위(정부나 과학 등등)에 있어서 감춰진 진실과 왜곡된 정보는 일반 대중이 사회를 바꿀 수 있는 힘을 빼앗는 훌륭한 수단이기 때문이다. 엑스파일이 사람들에게 매력적이었던 부분들은 위에서 언급한 명제(모순의 진리)의 원인을 귄위라는 명확한 대상으로 특정지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모순의 진리를 꿰뚫기 위해 드라마의 구조를 진실을 찾기 위한 과정으로 구성하여 사람들이 집중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었다. 즉, 엑스파일은 모순의 진리를 해결하기 위한 수단으로 원인(부조리를 만들어내는 손)을 만들고, 더 나아가서 그것을 해결하기 위한 '진실'을 상정하는 것이야 말로 도시문명의 부조리함과 이해 불가능한 상황을 단번에 해결하고자 한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이러한 '부조리함, 불가해함을 설명하고자 하는 노력'이 역으로 '대안적 진실'에 사로잡혀 버리는 문제로 이어지게 된다. 세상은 부조리하고 그것을 설명할 수 있는 단 하나의 진실만이 존재한다면, 그것은 뒤집어 이야기하면 '유일한' 진실로만 존재하기 때문에 반론의 여지를 제공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소위 이야기하는 '음모론'인데, 모든 사건에는 뒤를 조작하는 배후세력이 있고 그 배후세력의 음모에 따라 세상 만사가 돌아간다는 이야기다.
전반적으로 엑스파일은 그러한 음모론자(멀더)와 정상 과학(스컬리) 사이에서 서로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비율을 맞추었고, 모호하고 불안한 분위기를 통해서 '그럴 수도 있지만, 아닐 수도 있습니다'라는 결론으로 이어나가지만 문제는 엑스파일을 즐기는 대중들이 음모론에 쉽게 빠지게 만드는 문제가 있었다는 점이다. 엑스파일에 등장하는 상당수의 이야기들은 현재 유행하는 음모론들의 프로토타입이라 할 수 있는데(아마도 엑스파일에 많이 나오는 음모론은 백신과 관련된 음모론일 것이다), 엑스파일이 '대안적 진실'에 대한 설파는 많든 적든 현대 음모론자들과 사회에 끼친 좋지 않은 영향은 부정할 수 없다.
결국 엑스파일이 부조리를 꿰뚫기 위해, 불가해 - 가해 사이의 모호한 관계를 청산하기 위해 진실이라는 방법론을 제시하긴 했지만, 그로 인해 대안적 진실에 갇히게 되어 이야기의 결론은 미학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훌륭하지 못했다. 엑스파일의 메인 스토리 전개와 결론을 보면 그것이 명확해지는 부분이 있는데, 드라마 내내 보여주었던 모호함과 불길함이 점점 구체적이고 자질구레한 음모와 설명들에 갇히게 되면서 유치해지는 전개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그 결과, 엑스파일의 결말은 이도저도 아닌 모호한 엔딩으로 끝났다. 마치 현실의 음모론자들이 모든 사건을 하나의 진실과 하나의 음모로 설명하려 하다가 결국 추하게 무너진 것처럼 말이다. 결국 그렇기에 엑스파일은 명확한 한계를 갖고 있는 작품이었다.
그리고 레메디 엔터테인먼트의 컨트롤이 있다. 전반적으로 2010년대 이후 유행하고 있는 SCP 재단의 영향을 강하게 받은 컨트롤은 부조리와 모순, 불가해함과 가해함이 공존하는 측면에서 기존의 도회지 판타지와 맥이 닿아 있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를 명확하게 보여주는 것은 처음 게임을 시작할 때 주인공인 제시가 총을 잡고 FBC의 국장이 되는 것인데, 이 과정에서 국장이 되는 자가 총을 소유한다가 아닌 총이 국장이 될 자를 선택한다, 라는 역전된 인과관계를 통해서 도회지 판타지에서 자주 찾아볼 수 있는 특유의 부조리함의 정서가 묻어나온다 할 수 있다. 하지만 컨트롤은 특이하게도 도회지 판타지를 다루면서도 엑스파일 이후로 나왔던 '진실'을 찾기 위한 노력이나 불가해한 현상에 대한 합리적인 추론과는 다소 다른 독특한 이야기를 보여주는 게임이다. 이야기의 시작이 오랜 떠돌이 삶을 살던 주인공이 동생을 찾기 위해 FBC의 건물로 찾아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 과정에서 주인공 제시가 찾고자 하는 것은 유일한 혈육인 딜런 뿐이다. 그 과정에서 마주하는 다양한 사건들과 현상들, 미스터리는 오히려 부차적이라 할 수 있다.
컨트롤의 핵심은 진실을 찾는 것이 아닌, 자신의 삶의 통제권을 되찾는Take Back Control 것이라 할 수 있다. FBC의 건물로 찾아오기 전까지 그녀의 삶은 부조리함의 그 자체였다. 마을 쓰레기 장에서 찾아낸 슬라이드를 통해서 다른 차원의 문을 열고 동생을 잃고 가족을 잃어버린 제시의 인생은 자신의 의지와 관계없이 고향을 떠나 추적을 피해다니는 삶의 연속이었다. 그런 그녀가 상황을 타파하기 위해서 취했던 행동은 자신이 이런 지경에 도달하게 만든 요인(슬라이드 프로젝터)에 대한 진실을 찾는 것이 아닌 살아남은 유일한 가족인 동생을 찾는 것인데 이는 자신의 삶의 중요한 요소를 찾아 이 상황의 통제권을 되찾는 행위로 볼 수 있다.
주인공 제시가 통제권을 되찾기 위한 일련의 상황 속에서 컨트롤은 부조리 -불가해함의 가해함, 가해함의 불가해함 등의 요소들- 를 3가지의 이미지 층위 형태로 묶어낸다. 첫번째는 부조리의 불가해하고 알 수 없는 강박적인 이미지의 아스트랄 플레인Astral Plain 차원의 이사회Board다. 이들은 FBC를 설립한 권위있는 존재로써 하얀색 공간 속의 뒤집어진 검은 피라미드의 형태로 드러나는데, 이들은 도움을 주지만 숨겨진 자신들만의 아젠다를 갖고 있어서 어딘가 의뭉스럽다는 인상을 준다. 또한 이사회에 반대하는 존재의 등장이나, 이사회가 플레이어를 직간접적으로 통제하려 하는 DLC의 모습 등은 강박적인 질서와 통제를 통해 이들이 실제 사람들이 사는 층위(주인공이나 FBC의 사람들)과 유리되었다는 인상을 준다. 좀 흥미로운 부분이 있다면, 이사회Board의 존재가 관료제도에서 보여지는 최상위 의사 결정 집단의 존재와 동일한 명칭을 쓴다는 점인데, 보통 도회지의 감수성에서 부조리를 만들어내는 것이 관료제도인 것을 생각한다면 컨트롤에서 이들의 존재는 마냥 좋은 존재가 아님을 알 수 있다.
그리고 두 번째 이미지는 주적인 히스Hiss다. 이들은 특이하게 정형화된 이미지가 아닌 마치 맑은 물 속에 뿌려진 오염물질 같이 둔탁하고 통제되지 않고 퍼져나가는 혼탁한 이미지를 보여주는데, 이는 게임 내에 히스가 만들어내는 혼돈이나 파괴의 이미지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히스가 드러내는 부조리의 측면은 바로 부조리가 만들어내는 혼란과 그 속에 갇혀있는 사람들의 심리, 혼돈, 악의 그 자체이다. 그들이 인간을 통제하고 인간의 심리에 영향을 끼치는 과정 등은 후술할 스테이지에서 분명하게 드러난다.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이미지가 바로 폴라리스Polaris이다. 폴라리스는 북극성, 혹은 다른 이름으로는 이끄는 별Guiding Star로 알려진 이 존재는 게임 내에서 제시의 머릿속에서 말을 걸며 그녀를 인도한다. 세이브 포인트인 통제 지점에서 탁한 이미지의 히스를 몰아낼 때 반짝거리는 수정의 이미지로 묘사되는 폴라리스는 위에서 언급한 부조리의 두가지 측면(강박적 이미지의 이사회와 혼란스럽고 오염의 이미지인 히스)과 다른 모습을 보여주는데, 그것의 존재가 전혀 극중에서 설명되지 않은 점에서 불가해한 존재이긴 하지만 부조리의 두 불가해한 측면(강박적 원칙과 혼란/오염) 속에서 정확하게 주인공 제시가 가야할 길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일종의 설명 불가능하지만 부조리를 가로지르는 직관이라고 할 수 있다.
게임의 클라이맥스에서 폴라리스를 잃어버리고 제시가 히스에 잠식되는 순간, 게임은 이 3가지의 이미지를 한데 섞어서 게임 스토리의 테마를 분명하게 전달한다. 그녀의 머릿속에 히스가 들어가는 순간, 그녀는 FBC의 잡무를 처리하는 말단 직원이 되어서 편지를 전달하고, 책상을 치우는 과정을 반복적으로 경험하게 된다. 마치 관료제와 현대 데스크잡의 악몽을 형상화한 듯한 이 스테이지는 현대 사회의 일상 그 자체이자 어느 곳에도 도달하지 못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여주는데, 이러한 상황을 깨부시기 위해서 플레이어이자 주인공 제시가 하는 것이 주어진 명령을 거스르는 것, 더 나아가서 폴라리스가 항상 자신과 함께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으며 히스를 몰아낸다.
위와 같은 점에서 컨트롤은 엑스파일이나 여타 도회지 판타지가 쉽게 빠지는 '대안적 진실에 매몰되어 점차 구차해지는 이야기'라는 함정에 빠지지 않는다. 물론 컨트롤도 도회지 판타지 특유의 모호한 분위기, 불가해함과 가해함이 공존하는 모습 등은 먼저 온 작품들을 인용하고 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그 부조리함을 어찌할 것인가'라는 관점에서 본다면, 컨트롤은 중요한 두가지 명제(상황을 꿰뚫어보는 통찰력/그리고 그것은 항상 나와 함께 한다)를 통해서 부조리함을 통제하는 힘을 되찾는 이야기를 완성시킨다. 레메디는 본 게임에서 세련된 이미지와 잘 짜여진 이야기 구조를 통해 이러한 이야기를 더욱 전달력 있게 풀어 나간다. 때문에 컨트롤은 이전 도회지 판타지에서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한 위치를 점하는 작품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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