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니, 만화, 영화 이야기

 

*애니메이션(~무한열차 전까지)을 감상한 내용입니다.

*이후 전개에 대한 다소간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대중의 사랑을 받는 작품들은 시간이 흐름에 따라 항상 바뀐다. 사회의 조류에 따라, 많은 흥행작들은 뜨고 지고 사라진다. 마치 패션이나 트렌드와 같은 유행처럼 말이다. 벤야민은 그렇기에 유행의 본질은 죽는 것이라 보았다:결국 유행하는 것들의 핵심은 대체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몇몇 작품들은 유행의 흐름 속에서 죽지 않고 살아남는다:몇몇은 너무나 성공해서 그 작품을 빼놓고 다른 작품을 논하는게 힘들게 되고, 몇몇은 흥행과 관계없이 다른 작품들이 보지 못한 선구자적인 혜안을 드러내서 죽지 않는다. 그런 작품들은 더이상 유행의 흐름을 타는 것이 아닌, 그 사회에 하나의 '상수'로 자리잡게 된다. 그리고 작품은 시대를 대표하는 하나의 아이콘이 된다:건담이나 드래곤볼, 원피스, 진격의 거인 같은 작품들처럼, 10년이 지나도 다시금 회자될 작품이 되는 것이다. 

 

여기서 간단하게 다루고자 하는 귀멸의 칼날은 그런 작품의 문턱에 올라와있는 작품처럼 보인다. 작년 여름쯤에 이미 연재가 마무리된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애니화의 광풍 이후 귀멸의 칼날의 인기는 식지 않고 오히려 더 치솟고 있는 중이다:무한열차는 코로나 시국임에도 일본 영화 관람 인원 '2,000만'이라는 경이로운 기록을 달성 중이고, 앞으로 2기 애니와 완결까지의 내용을 고려한다면 이러한 광풍은 몇년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논란의 여지가 많지만, 귀멸의 칼날이 애니화의 수혜를 엄청나게 받은 것은 확실하다:몇몇 초반 부분의 늘어지는 전개가 정리 되고, 무한열차 이후 정립된 연출이나 이런 부분들을 애니화에서는 전반적으로 재해석하여 강화시켰기 때문이다. 몇년간 애니메이션 보는 것을 손 놓긴 했지만, 확실한 것은 귀멸의 칼날은 오랫동안 애니메이션을 봤던 경험에 비추어보아도 눈요기할만한 요소가 많은 물건이란 것이다:우키요에 풍으로 그려진 호흡과 필살기 연출 등은 확실히 애니를 보지 않는 사람들도 뒤흔들만할 정도로 강렬하다. 대표적인 예가 루이와의 싸움에서 일륜도로 목을 배는 장면의 연출이다:루이의 실을 뚫고 나가 히노카미 카구라로 루이의 목을 치는 장면은 이미 애니와 만화를 비교하는 분석을 봤음에도 불구하고 장관이었다.

 

하지만 이 때문에 전적으로 귀멸의 칼날이 애니의 수혜만 받은 작품이라 볼 수는 없다:애시당초에 원작 만화에서 그러한 연출과 미학(우키요에를 연상케하는 화려한 색체와 굵은 붓 필치)을 정립하지 않았다면, 애니에서 재해석할만한 요소가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극의 구성이나 묘사, 연출, 설정의 구성 등의 측면에서 보았을 때, 귀멸의 칼날은 최근 몇년간 보였던 소년 만화의 공식에서 다소 빗겨나가는 독특한 감성들을 발견할 수 있다. 

 

귀멸의 칼날에서 가장 흥미로운 점은 인물의 감정 묘사나 이런 부분들이 소년만화 답지 않게 섬세하다는 점이다. 젠이츠와 이노스케와 처음 만나고 장구 도깨비와 싸우는 초반 에피소드를 보자:여기서 탄지로는 이전 도깨비와 싸움에서 입은 부상 때문에 고전하는데, 작가는 그 부상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장남으로서의 자신의 역할, 하면 할 수 있다는 자신감, 그러한 불리한 상황을 극복하는 과정을 논리적이고 자연스럽게 전개한다. 부상 때문에 아프고 포기하고 싶어도 포기하지 않고 맞서는 것은 소년 만화에서 자연스럽게 등장하는 이야기들이지만, 귀멸의 칼날은 그런 난관을 더 큰 힘으로 찍어 누르는 것이 아닌 자신의 고난을 긍정하는 동시에 극복할 수 있는 모습에서 보통 소년만화에서 찾아보기 힘든 모습을 보여준다. 

 

흥미로운 점은 주인공인 탄지로가 갖는 미덕이 '그 나이 또래들이 쉽게 공감할 수 있고 구체적인 수준'의 무엇이라는 것이다. 탄지로의 주요 모티브인 장남이기 때문에 아픔을 참고 견뎌야한다는 것이나 이제는 가장이니까 남은 네즈코를 지키고 인간으로 되돌려야 한다는 것, 사람을 잡아먹는 도깨비에게 공감하고 자비를 보이는 따뜻함 등은 여타 소년 만화에서는 스케일이 커지면서 금방 희석되는 부분이다. 하지만, 귀멸의 칼날은 처음부터 끝까지 이런 '공감할 수 있는 수준의 소소한 미덕'에 집중하고 극을 이끌고 있기 때문에, 애니를 소비하는 주 소비자층에게 크게 어필할만한 부분들이 있다.

 

귀멸의 칼날은 여기서 한발짝 더 나아가서 구조 측면에서 상당히 탄탄한 모습을 보인다:마음을 잇는 자들(귀살대)와 이기심으로 살아가는 자들(도깨비들)을 서로 대립하게 두고, 그 둘 사이에서 인물과 극의 긴장감을 조성한다. 단순하지만 이러한 구조는 대단히 효과적인데, 요즘 같은 시대에 키부즈치 무잔 같은 미형 악역이 인기를 크게 못 끄는 점이 이를 방증한다:무잔은 '이기적인' + '그러면서 아전인수격으로 헛소리를 논리적으로 하려고 하는' 인물인데, 극에서 그 어떤 이입의 여지를 주지 않는 극단적인 이기심을 보여주기 때문에 오히려 이입하기보다 '생긴것과 다르게 추하기 짝이 없다' 라는 감상자의 평을 이끌어낸다.

 

결국 이러한 이기심을 극복하고 함께 살아가는 이야기가 되는 것이, 귀살대와 마음을 잇는 자들인 것이다. 극이 전개되면 될수록 탄지로는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의 마음을 이어나가면서 성장하고 결국에는 무잔을 쓰러뜨리는 게 된다: 자신의 동기들, 무한열차의 렌고쿠, 죽은 자신의 가족들 등등 탄지로가 이들의 마음을 잇고자 하고 그들 역시 탄지로를 이끌기 때문에 탄지로 혼자서는 할 수 없는 위업들을 달성하게 되는 것이다. 아마도 가장 극단적인 예가 애니에서는 나오지 않았지만, 귀멸의 칼날 이후 전개에서 희대의 메리수로 불릴 수 있는 요리이치일 것이다. '그' 키부츠지 무잔을 죽음 직전까지 몰아붙였지만, 정작 무잔을 죽이지 못한 점에서 전개에 구멍이라 비판을 받기도 하지만 동시에 '그' 요리이치 라도 무잔을 죽이지 못했지만 결국 그의 마음을 잇는 호흡의 계승자들에 의해서 무잔이 죽게 된다는 점, 그리고 그것이 탄지로 혼자만이 아닌 수많은 사람들의 희생과 노력에 기반해서 이루어졌다는 점은 극의 테마를 더욱 분명하게 만드는 부분이다.

 

결론적으로 귀멸의 칼날은 3가지 측면(섬세한 묘사, 공감 가능한 미덕과 인물들, 대칭적이고 분명한 구조)에서 미덕을 갖고 있고, 이 덕분에 일본 대중의 큰 호응을 얻어낼 수 있었던 것이다. 장기연재작들이 테마나 구조에서 흔들리는 부분을 많이 보여준것과 달리, 귀멸의 칼날은 상당히 깔끔한 마무리와 구조를 보여주고 있는데 이런 부분들은 대중적인 작품치고 호평할 부분이 많다. 애니화 되는걸 따라서 쭉 정주행해도 충분히 가치가 있는 작품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