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니, 만화, 영화 이야기

 

소설과 영화, 이야기라는 구조는 기본적으로 허구다. 하지만 중요한 점은 이들이 허구라는 것이 아니라 '실제하는 것으로 믿게 만드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영화는 가장 이 이상에 가까울 것이다:실제하는 것들(사람, 풍경과 같은)을 가상을 연기하기 때문에, 실제하는 것이라 사람들이 쉽게 믿을 수 있는 요소가 있다. 벤야민이 언급한 배우의 거짓된 아우라가 이러한 현상을 설명하는 가장 비슷한 개념일 것이다:영화의 이미지를 실제 배우에 이입하여 배우를 숭배하는 것이야 말로 실제와 영화의 가상을 서로 혼동하는 사례라는 것이 벤야민의 설명이었다.

 

하지만 스즈키 세이준의 영화들(살인의 낙인, 동경 방랑자, 야수의 청춘 등등)은 이러한 대전제를 정면으로 뒤집는다. 기본적으로 스즈키 세이준의 영화들은 장르 영화의 공식을 따르는 동시에 'B급 싸구려' 테이스트가 강하다. 하지만 흥미로운 점은 이 'B급 싸구려'라는 개념 자체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야 한다:B급 영화들은 기본적으로 목적성(특정 대상의 관객을 만족시킨다, 특정 장르의 문법을 충족한다)을 갖고 있는 동시에, 제한된 예산과 연출들로 영화를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소위 B급 영화의 연출 같은 것에 의지할 수 밖에 없다.

 

그러나 스즈키 세이준의 영화는 이러한 B급 영화의 테이스트와 일반적으로 다르다. 기본적으로 B급 영화들은 이러한 흐름들을 속이려 한다:마치 아무리 그것이 속임수를 쓴다 하더라도 그것이 마치 당연한 것처럼 뻔뻔하게 영화의 흐름에 녹여내려 한다. B급 영화의 미덕이라 할 수 있는 이 부분은 아무리 속임수를 진실처럼 믿고 할 수 있는 최대한을 보여주려 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스즈키 세이준의 영화는 이 거짓을 '진짜'라 생각하지 못하게끔 만든다. 살인의 낙인 같은 작품에서 종이 연극을 이용해서 연출을 하거나 하는 등에서 이러한 부분들이 구체적으로 드러난다.

 

이러한 연출이나 미장센들은 스즈키 세이준이 웃기려고 영화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방증한다. 코미디 영화에서 웃기는 부분들은 기본적으로 웃기려는 의도들을 내재하였지만, 스즈키 세이준의 영화들은 '원래 그러한 것(장르 영화의 공식)을 거짓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구성의 핵심은 강박적인 공간의 구성과 연출이라 할 수있다.

 

스즈키 세이준의 영화는 의도적으로 작위적인 구성을 보여준다. 야수의 청춘에서 한 컷에서 두 공간이 서로 다른 원색으로 구성하거나, 하나의 공간에 투명 유리를 배치해두고 서로 다른 일이 일어나게끔 하여 불협화음을 일으킨다. 하지만 이러한 연출들이 실수가 아닌 전적으로 '의도된 것'이라는 것을 드러내는 것은 B급 영화에서 찾아볼 수 없는 강박적인 흐름일 것이다. 장르 영화 공식에서 찾아볼 수 없는 쓸모 없거나 의미없는 설정들을 강박적으로 추구함으로 영화 전반에 불협화음을 만드는 것이 스즈키 세이준의 특징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강박증과 불협화음이 아름다움으로 두드러지는 부분들이 바로 공간의 구성일 것이다:스즈키 세이준 영화들은 기본적으로 현실에서 찾아볼 수 없는 구성의 공간들을 만들어내기 위해서 인위적으로 구성된 '스튜디오'들을 활용한다. 동경 방랑자의 마지막 시퀸스의 컷구성이나 황량한 바람이 불어오는 창밖에서 여성을 채찍질하는 시퀸스의 구성 등등은 작위적인 미학으로 차 있다.

 

물론 이러한 구성이 벤야민이 지적한 거짓된 아우라를 비판하기 위함이라고 생각되지는 않는다. 오히려 스즈키 세이준이 추구한 것인 어린아이가 추구하는 '전복적인 재미'라 할 수 있다. 장르와 마초이즘, 야쿠자에 대한 환상을 전복하여 강박적이고 바보같이 보이게 만드는 것, 그 속에서 일반적인 영화에서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한 연출을 추구하는 것이 스즈키 세이준 영화들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