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이야기





2015년 대한민국에서 플래이스테이션 4가 열풍 아닌 열풍을 불러일으키는 중, SCEK의 카와우치 시로 사장은 SCEK를 떠나서 아시아 지역 총괄 책임자로 임명되었다. 한국 게이머들과 한국 콘솔 게임 시장에 대한 그의 공로를 제쳐두더라도, 그의 승진 행보에는 흥미로운 부분이 있다:카와우치 시로 사장은 예전부터 중국과 한국, 아시아 시장을 각각의 별도의 시장이 아닌 하나의 '권역'으로 보고 접근하자는 주장을 펼친 사람으로 알려져 있다. 최근의 PS4의 공격적인 한국어화 전략은 게임 한국어화-중문화 병행 정책에 기반하였기에 가능하며 이러한 사례는 카와우치 시로가 생각하는 권역으로서의 시장 접근 전략이 구체화된 케이스라 할 수 있다. 이런 중에 SCE가 카와우치 시로를 아시아 지역 총괄 책임자로 지명한 것은, 이 전략이 실제 유효하든 유효하지 않든, 앞으로 유효하든 유효하지 않든, SCE가 진지하게 이 전략을 생각하기 때문에 그를 아시아 지역 총괄 책임자로 임명하였다라고 볼 수 있다. 소니의 전략이 맞다면 게임 시장은 이제 국가 단위에서 성립하는 것이 아니라 국가를 넘어서는 권역으로써 성립한다고 할 수 있다.


국가 단위의 시장으로 게임 시장을 대표하는 컨셉은 바로 '국가코드'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국가코드의 존재는 국가 단위로 시장을 묶어둠으로써 환율이나 시장을 통제한다는 발상에 근거하고 있다. 이러한 발상은 생각외로 오래되지는 않았다:PC 게임에는 한 회사가 통제할 수 있는 플랫폼을 환경이 애시당초에 형성되지 않았으며, 인터넷이라는 기반을 통해서 발전한 판매 플랫폼들은 기본적으로 무국적성에 기반하고 있었기에 국가코드라는 개념이 자리잡는데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하지만 콘솔의 경우에는 사정이 달랐다.오프라인 유통망에 기반하고 있으며, 생산-판매의 프로세스가 전통적인 시장 프로세스(물류, 리테일 등)에 얽메여있었던 콘솔 게이밍의 경우에는 오프라인 시장 상에서의 다양한 변인들(예를 들어 각 시장마다의 환율 차이로 생기는 상품의 역수출 문제 같은)을 통제하기 위해서 국가코드의 개념을 도입하였다. 하지만 국가코드의 도입은 세계적인 물류 시스템의 구비로 물품들의 서로의 시장에 영향을 줄 수 있고, 각 시장에서의 제품 정보들이 쉽게 교류될 수 있는 정보 소통의 장인 인터넷이 도입되면서 중요한 이슈가 되었다. 즉, 국가코드의 존재는 역설적이게도 세계화의 산물(국가, 지역을 벗어난 상품/서비스의 판매)인 동시에, 세계화를 역행하는(국가라는 지역적 한계에 얽메이는) 다소 기이한 흐름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국가 단위의 시장은 이제 차츰 붕괴되고 있으며, 이는 일부 하드코어 게이머들(다른 국가 시장 권역에서 어떤 가격에 어떤 제품이 판매되고, 자신이 원하는 제품을 구하기 위해서 최첨단의 정보를 항상 구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춘 사람들)의 지속적인 탄원과는 무관한 흐름이다. 안드로이드와 아이폰의 헤게모니 싸움과 같이, 이제는 제품을 파는 것이 아닌 플랫폼을 파는 것, 제품과 서비스를 넘어서 하나의 사고방식, 라이프 스타일, 문화를 파는 것이 세계적인 기업들이 시장에서 추구하는 궁극적인 목표가 된 것이다. 이것이 바로 플랫폼 사업이다. 그렇기에 세계적인 기업들은 국가라는 지역을 뛰어넘어서 플랫폼 내에서 고객이 생각하게 만드는 것, 국가라는 지역에 시장을 묶는 것이 아닌 플랫폼이라는 컨셉을 통해서 시장을 묶는 것에 초점을 맞추기 시작한다.


그렇다면 국가를 넘어선 권역은 어떻게 형성되는가? 흥미롭게도 국가를 넘어선 권역으로서의 시장 개념은 이전부터 존재하고 있었다. 그것은 바로 '언어'의 권역이다. 일례로 미국과 영국의 케이스를 보자:미국시장과 영국시장은 동일한 시장으로 보기에 물리적인 거리의 문제가 있지만, 흥미롭게도 영국시장과 북미시장의 경향성은 많은 부분 유사하다고 할 수 있다. FPS 장르나 SF 장르의 게임들, 일부 스포츠 게임들의 강세는 영국 시장과 미국 시장에서 보여지는 뚜렷한 경향성이며, 이 둘은 일치하지는 않지만 하나의 '권역'으로 묶을 수 있는 뚜렷한 특징들을 갖고 있다. 어떻게 보면 이는 대단히 당연한 귀결이기도 하다:언어는 인간의 사고가 이루어지는 기본적인 단위의 '플랫폼'이며, 문화를 형성하는 가장 근원적인 베이스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많은 문화 컨텐츠들은 언어에 기반을 두고 있으며, 문화 컨텐츠 시장은 많은 부분 언어의 권역 내에서 이루어진다:일례로 스타워즈의 전세계적인 성공이 아시아 권역에서는 크게 반향을 불러일으키지 못한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현재 아시아 권역에서 일어나고 있는 현상, 한국-중국-일본을 묶는 거대한 동북아시아 게임 시장 권역을 만들려는 시도는 이러한 언어의 권역으로서의 시장에서는 이해할 수 없는 흐름이라 할 수 있다:정확하게 이야기하자면 '한국'이라는 시장이 갖고 있는 특수성의 문제다. 한국은 한국어라는 독자적인 언어 권역을 형성하고 있고(한자 문화권하고 별개다:한자 문화는 엄밀하게 이야기해서 언어로서의 플랫폼이 아닌, 플랫폼 위에 올려져 있는 어플리케이션, 즉 지역화된 문화 개념에 가깝다. 그렇기에 우리는 한자를 하나의 언어가 아닌 언어로부터 파생된 문화로 접근해야 할 것이다), 시장 자체의 규모면에서 꼭 공략해야하는 대상으로서의 우선순위나 가치 면에서 떨어지는 시장이라 할 수 있다. 카와우치 시로 사장이 생각하는 권역으로서의 게임 시장은 엄밀하게 이야기해서 '한국이 없더라도 성립하는' 개념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중문화와 한국어화의 동시추진이라든가, 각종 게임쇼나 컨퍼런스 등을 통해서 '세계적인 위상을 갖는 시장은 아니지만 지속적으로 관리하고 신경쓰는 시장으로서의 한국 시장'의 위치를 세워주는 SCE의 행보는 눈여겨 볼만하다.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르겠지만, SCE의 관점에서 한국 시장은 현재 전략적인 가치를 지니고 있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또한 닌텐도가 3DS를 통해서 지속적으로 한국 시장을 케어하고 관리하는 것도 이러한 연장선상에 볼 수 있기도 하다.


물론 이러한 흐름의 가장 근원적인 베이스는 한국 시장에서 수익이 난다, 라는 아주 기초적인 자본주의적 사실이다. 하지만 한국이 아시아 권역 시장에서 차지하는 위상은 흥미롭고 독특하다:한국 시장은 일본과 지리적으로 가까우며 일본 문화 개방 정책 전, 현재의 발달된 물류 시스템 이전에도 음성적으로 게임 콘솔이 수입되어 사람들이 게임들 즐기고 그러한 문화가 있다는 것을 인지하는 등 많은 영향을 받기도 하였다. 또한 여러 역사 정치적인 특수성으로 인해서 북미 문화의 영향과 특혜를 직간접적으로 받고 있으며, 이에 대한 거부감 역시도 다른 동북 아시아 문화권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낮은 편이다. 그렇기에 논지를 확대시켜본다면, 한국이라는 문화권의 특수성은 중국-한국-일본을 이어주는 문화적 가교인 동시에 아시아-북미의 문화권 양측에게서 영향을 받는 중간 권역적인 특색을 갖는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한국시장은 콘솔 게임 회사의 입장에서는 단순히 계륵과도 같은 존재를 넘어서, 플랫폼 권역을 구축하기 위한 테스트 배드로서의 가치를 갖는다고도 이야기할 수 있다. 물론, 이러한 본 글쓴이의 주장에는 많은 무리수와 변수가 내포되어 있으며, 이것이 일반적이라고 밀어붙이기에는 조심스러운 부분도 있다. 하지만, 한국 문화 시장이 갖는 독특한 특징들은 국가-언어-플랫폼으로서의 시장 권역 형성으로 이어지는 현재의 자본주의 및 문화 시장에 있어서 많은 흥미로운 흐름을 만들어내지 않을까라고 본 글쓴이는 조심스럽게 추측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