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명적인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배트맨 아캄 시리즈를 리뷰하는 데 있어서 숙지해야 하는 부분이 있다. 그것은 바로 배트맨 아캄 시리즈는 기본적으로 이전에 있었던 훌륭한 게임들이나 대중문화를 모지아크한 게임들이라는 것이다. 기존의 잠입 액션 게임의 은신 기제나 프리 플로우의 배이스가 되었던 페르시아 왕자 시간의 모래 시리즈의 전투들, CSI의 연출을 받았다고 보여지는 탐정 모드 등등에서 아캄 시리즈는 무언가 새롭다기 보다는 검증된 기존의 것들을 끌고 오는데 집중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기존의 것들이 따로 겉돌면서 놀지 않고 하나의 게임으로 구성될 수 있었던 이유는 구성이나 게임 플래이 완급 조절 등의 락스테디의 완숙한 개발력 외에도 이들의 요소들을 하나로 묶는 구심점이 존재하였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배트맨 아캄 시리즈를 분석하는데 있어서, 그리고 특히 아캄 시리즈의 대미를 장식하는 아캄 나이트를 분석하는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이 구심점인 배트맨이라는 케릭터와 그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스토리에 대한 고찰이다.
고찰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기에 앞서서 배트맨 아캄 나이트가 기본적으로 깔고 있는 전제에 대해서 논하여야 한다. 아캄 나이트는 전적으로 편의주의적인 설정들을 전제로 차용하고 있다:스케어크로우의 협박에 의해서 고담 시의 시민들이 하나도 빠짐없이 고담시를 대피하고 고담시에는 폭동과 파괴를 즐기는 악당들과 스케어크로우와 아캄나이트 일당들만 남아있을 뿐이다. 그렇기에 배트맨은 자유롭게 고담시를 배트모빌로 박살내면서 돌아다닐 수 있다. 또한 배트모빌로 사람을 치더라도, 치이기 전에 전기 충격으로 사람을 튕겨낸다는 다소 황당하고 편의적인 설정과 묘사를 꺼내기까지 한다. 하지만 한 도시가 모두 대피하는 소동에도 불구하고 초반 고든 청장의 전화를 통해 드러나듯 군대나 연방정부의 개입은 없다. 또한 사람을 자동차로 치고 돌아다녀도 죽는 사람 하나 없다. 뭔가 곰곰히 생각하면 이 설정들은 뭔가 이상한 부분이라 할 수 있다:왜 이 '국가적'인 사태에도 불구하고 배트맨과 고담 경찰 이외에는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사람이 없는 걸까? 어째서 배트맨이 배트모빌로 사람을 치고 돌아다니는데도 악당들은 하나도 죽지 않는 것일까?
이러한 편의적인 설정은 배트맨 프랜차이즈에서 자주 발견되는 부분이기도 하다:고담이 지진으로 붕괴된 노 맨스 랜드 이슈를 보자. 하나의 도시가 붕괴하였는데도 미국이라는 정부는 수수방관할 뿐이다. 오로지 배트맨과 경찰들, 그리고 빌런들이 고담의 통제권을 두고 서로 충돌한다. 또한 조커 등의 빌런들의 존재는 어떠한가? 그들이 벌이는 연쇄살인과 범죄의 규모는 고담의 바운더리를 벗어나지 않을 뿐, 사실상 악랄한 범죄이며 FBI나 다른 국가 기관의 이목을 끌만큼 화려하고 잔인하며 문제적이다. 왜 이들의 체포나 통제를 오로지 고담시 경찰과 배트맨에게만 맡기는가?
배트맨 시리즈에서 이런 편의적인 설정들과 외부적 존재를 배제시키는 것은 전적으로 케릭터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전개시키고자 하기 위함이다. 배트맨 아캄 나이트는 배트맨이라는 케릭터가 어떤 존재인지를 이야기하기 위해서 모든 것을 배트맨을 중심으로 재편한다. 심지어 아캄 시리즈는 빌런들조차도 배트맨이라는 케릭터를 묘사하기 위한 도구로 사용한다. 배트모빌의 편의적인 설정도 이것의 연장선상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다소 선을 나가버리기는 했지만, 배트모빌로 사람을 쳐도 사람을 죽이지 않는다는 신조를 지킨다는 것 자체가 배트맨이라는 케릭터가 얼마나 불살을 중요시 여기는지를 보여주는 대목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아캄 나이트는 이러한 전제를 기반으로 무엇을 보여주고자 하였을까? 아캄 나이트는 아캄 시리즈의 마지막으로서 배트맨이란 영웅의 '죽음'에 대해서 다루고자 한다. 그렇기에 영웅은 자신과 같이 싸우고자 하는 몇 안되는 친우들과 함께 몰려오는 아캄 나이트의 군대와 맞서 싸우며, 자신이 여지껏 맞이한 적 없는 최악의 상황을 맞이한다. 아캄 나이트에서 배트맨이 마주하는 빌런들은 배트맨이 마주하는 고난의 상징이라 할 수 있다:자신의 실패(아캄 나이트=제이슨 토드=레드 후드), 광기(조커의 피를 수혈받아 생긴 광기), 그리고 이 둘로 인해서 배트맨이 느끼는 공포(스케어크로우)까지. 배트맨을 둘러싼 빌런들의 삼각 편대는 이전의 아캄 시리즈에서 보지 못했었던 극적 긴장감을 선사한다.
첫번째로 살펴 볼 빌런은 조커이다:사실 아캄 나이트에서 가장 주목해야 하는 빌런은 조커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엄밀하게 그는 아캄 시티에서 죽었다. 그의 '육신'은 말이다. 하지만 아캄 시티에서 그는 타이탄 약물의 부작용으로 독극물이 되어버린 자신의 피를 배트맨과 몇몇 사람들에게 수혈하는데 성공하였고, 아캄 나이트에서는 조커의 피를 수혈받은 사람들은 조커 같은 인간으로 변하게 된다. 아캄 시티에서 죽음을 맞이한 조커가 아캄 나이트에 나올 수 있었던 것은 조커의 피를 수혈받은 배트맨이 게임 내내 조커의 환영을 보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기서 흥미로운 지점이 있다:정상적인 척을 하다가 조커화 된 사람들을 모조리 다 죽여버리고 배트맨에게 총을 겨눈 헨리는 배트맨을 보고 '가장 순혈의 조커만이 남아야 한다'라고 이야기하면서 자살을 한다. 왜 배트맨은 가장 조커에 가까운 존재로 변하게 된 것일까? 이는 조커라는 케릭터에 대한 분석을 통해서 이해하여야 한다.
배트맨 코믹스의 조커는 아마도 코믹스 역사상 가장 유명한 빌런 중 하나로 꼽을 수 있을 것이다. 조커는 그의 광기 넘치는 행동과 무질서를 지향하는 행위들, 그리고 기원이 없다는 점에서 신비로움과 함께 두려움을 불러일으킨다. 하지만 동시에 이러한 케릭터는 이야기에서 붕뜨기 쉽다:케릭터는 인간의 모습으로 육화되어 있기 때문에 완벽한 광기와 무질서의 상징이나 은유, 비유가 될 수 없다. 그렇기에 배트맨 코믹스의 다른 빌런들은 그들 나름대로의 '기원'을 갖고 있다. 빌런들은 이 기원에서 시작하여 자신만의 생명력 있는 이야기를 갖게 되며, 독자들은 이들에 매료되게 된다. 하지만 조커는 이들과는 다른 이야기 전략을 취함으로써 이야기에 붕뜨지 않고 안착하며, 동시에 모든 사람들이 두려워하는 존재로 화한다. 조커의 광기는 타인과의 관계를 통해서 구체적으로 변화한다:투 페이스에겐 두명의 인격 중 한 명을 죽이겠다고 위협한다던가, 할리 퀸젤에게는 너는 그저 수많은 할리 퀸 중 한명에 불과하다고 한다던가, 고든 청장에게는 그를 붙잡아두고 발가벗겨진 채 피흘리며 죽어가는 딸의 모습을 보여주는 등 조커가 광기와 혼돈을 드러내는 방식은 각자의 인물에 따른 '최악의 형태'라고 할 수 있다. 그렇기에 조커는 타인과의 관계를 통해서 자신을 이야기에 안착시킨다는 점에서 일종의 '기생체적인' 케릭터다.
그렇기에 조커의 피를 수혈받은 사람들은 조커의 인격이 덧씌워진 것이 아니라, '각자의 방식으로 조커가 되어간 것'이었다. 크리스티나 벨은 배트맨을 향한 조커의 집착과 히스테리를, 조니 카리스마는 조커의 매력적인 부분을, 복서는 조커의 폭력적인 부분이 발현되었다. 그렇기에 아이러니 하게도 배트맨은 가장 최고의 조커가 될 가능성을 가진 인물이기도 하다. 이미 프랭크 밀러의 다크 나이트 리턴즈와 다양한 코믹스에서 케릭터가 재해석되었듯이, 배트맨이란 케릭터는 그 자신 내부에 부글부글 끓고 있는 광기와 분노를 갖고 있는 미치광이적인 이미지를 갖고 있기도 하다. 배트맨의 기원은 범죄에 의해서 부모를 잃었다는 트라우마에 기반하고 있으며, 그러한 트라우마와 함께 범죄에 대한 증오와 분노가 범죄자들이 마땅히 두려워 해야한다는 공포의 상징을 만들어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그를 움직이는 주요한 동력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조커는 배트맨의 광기를 깊숙하게 파고든다:각각의 로빈들에 대해서 필요 이상으로 자세하게 비평하며 배트맨의 신경을 긁기도 하며, 끊임없이 부모의 죽음과 탈리아 알 굴의 죽음을 건드려서 배트맨의 죄책감을 자극하기도 한다. 조커는 끊임없이 배트맨이 세운 자신만의 규칙과 원칙들, 고담시를 수호하며 아무도 죽이지 않고 범죄자들에게 대가를 치루게 하겠다는 스스로의 다짐을 그의 내면에서부터 뒤엎어버리고자 한다. 그리고 이는 동시에 배트맨이 갖고 있는 아슬아슬한 경계선의 문제이기도 하다:영웅은 사회를 구원하는 자인가, 아니면 법 밖에서 자신만의 철권을 휘두르는 자인가? 그의 규칙이 지켜지고 있다는 것은 대체 누가 보장을 한단 말인가? 자경단원 배트맨이 갖고 있는 트라우마와 아슬아슬한 한계들은 조커가 발현될 수 있는 최적의 양분이라 할 수 있다. 즉, 아캄 나이트의 조커는 조커 인격과 기억의 복사가 아닌 배트맨의 '일부'인 것이다.
조커의 등장 이후, 배트맨은 그가 점점 조커의 피에 의해서 미쳐가고 있음을, 그리고 자신이 갖고 있었던 한계들에 뿌리를 박고 이를 양분삼아 점점 커져만 가는 조커가 자신을 각양각색의 패드립으로 피폐하게 만듬을 이해한다. 하지만 그는 여기에 강철같은 침묵의 부정으로 저항한다. 이는 '게임'이라는 매체에 정말로 어울리는 연출이라 할 수 있다:조커는 모든 이벤트에 머리를 들이밀며 배트맨의 신경을 긁지만, 배트맨은 여기에 답하지 않는다. 플레이어에게는 해야할 일이 있고 거기에 집중한다. 그리고 이는 배트맨이 했을 법한 행동이기도 하다. 그리고 플레이어는 동시에 배트맨이 갖고 있었던 가장 내밀한 광기와 비밀, 죄책감을 공유하면서 배트맨 역시 인간임을 이해하게 만든다. 배트맨은 강철같은 의지력으로 조커의 도발에 침묵하며 그가 강한 의지력을 가진 인물임을 드러내지만, 동시에 그가 내면에서부터 서서히 무너지고 있음을 드러내기도 한다. 그렇기에 배트맨 내면의 조커는 그야말로 천재적인 발상이자 배트맨과 조커의 케릭터 모두를 훌륭하게 이해하는 묘사이기도 하다.
두번째는 아캄 나이트다:아캄 나이트의 존재는 배트맨이 두려워 하는 '실패' 그 자체이다. 조커가 보여주는 환상에서 배트맨은 바바라가 조커의 손에 의해서 반신불수가 되는 모습을, 그리고 2대 로빈인 제이슨 토드가 고문 당하면서 망가지는 모습을 목격한다. 그것이 비롯 온전하게 그의 잘못이 아니더라 하더라도, 이러한 배트맨의 실패는 그에게 크나큰 상처를 남긴다. 그렇기에 배트맨은 주변 사람들이 말려들지 않게 하기 위해서 안간힘을 쓰며 자신이 모든 일을 감당하고자 한다:3대 로빈 팀 드레이크에게 바바라가 죽은 사실을 숨겨서 그가 날뛰는 것을 막고자 하였고, 1대 로빈이자 나이트윙인 딕 그레이슨을 잃을 것을 두려워 그에게 고담 시를 떠나있으라고 이야기하기 한다. 또한 바바라가 납치되었을 때, 사실 바바라의 납치는 자신의 잘못임을 고든에게 인정하는 배트맨의 모습은 자신의 실패에 대한 슬픔과 고뇌로 가득차 있었다. 그리고 이러한 배트맨의 실패가 낳은 뒤틀린 결과물이 바로 조커로부터 구하지 못한 2대 로빈인 제이슨 토드=아캄 나이트=레드 후드이다.
아캄 나이트가 흥미로운 것은 그가 하고 있는 복장과 행동들이다:아캄 나이트는 배트맨과 유사한 가면을 사용하면서 전반적으로 배트맨과 유사한 복장을 보여주지만, 배트맨과 차별되게 군대식의 디지털 카모와 총을 사용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배트맨이 특수부대들이 10년 뒤에나 쓸법한 기술들을 사용하면서도 검은 갑옷과 불살의 원칙, 총을 사용하지 않는 모습들을 통해서 자신을 원칙을 가진 하나의 상징으로 만드는 모습을 보인다면, 아캄 나이트는 군대의 문법을 차용하면서 자신의 목적을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으며 사람을 거침없이 죽이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리고 아캄 나이트의 가르침을 받은 용병들은 배트맨이 어떻게 싸우고 배트맨이 어떤 존재인지를 분명하게 이해하고 있지만, 배트맨을 죽이겠다는 단 하나의 목적만으로 배트맨이 지키고자 했던 고담을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파괴한다. 즉, 아캄 나이트의 방법론과 배트맨의 방법론은 어딘가 유사한듯 하지만 양립할 수 없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는 제이슨 토드는 배트맨의 실패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배트맨은 그를 구하는데 실패하였고, 망가져버린 제이슨 토드에게는 배트맨이 그에게 전수하였던 원칙과 신념이 존재하지 않게 만들어 버렸다. 그리고 제이슨 토드의 미성숙하고 불안정한 모습은 배트맨의 실패에서 비롯된 자신의 트라우마(조커에게 무려 1년동안 고문당하며 몸과 마음이 파괴되었지만 아무도 구해주지 않았다는 것)에 근거하고 있으며 이는 배트맨과 유사하다. 하지만 배트맨이 자신의 트라우마를 자신의 원칙과 신념 아래 묶어서 통제한 반면, 제이슨 토드는 자신을 구해내지 못한 배트맨을 향해 분노와 증오를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쏟아내고자 한다. 결국 신념과 원칙이 없는 방법론은 결국 방향을 잃고 파괴적인 형태로 드러나게 되며, 배트맨과의 싸움을 통해서 그를 죽이길 포기하였어도 제이슨 토드는 레드후드가 되어서 범죄자를 가차없이 죽이는, 그저 방향성만 달리한 안티 히어로가 된다. 아캄 나이트 제이슨 토드와의 싸움은 배트맨에게 있어서 자신의 모든 것을 가르쳐준 아들과도 같은 제자와의 싸움이자 자신의 실패가 만들어낸 그림자와의 싸움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세번째이자 마지막으로 스케어크로우다:스케어크로우는 배트맨의 실패와 광기에 대한 공포를 파고든다. 배트맨은 외계인도 아니며 초능력을 갖고 있지 않은 평범한 인간에 불과하다. 그리고 배트맨이란 영웅의 본질은 재산이나 최첨단 기술, 육체적 단련, 공포를 표상하는 상징이 아닌 자신의 규칙과 원칙을 지키며 공동체를 위해서 헌신하고 범죄자들에게 공포를 선사하는 '인간의 의지'이다. 스케어크로우는 고담 시를 파괴함으로써 공포를 이겨낼 수 있는 의지력의 표상인 배트맨이 고담을 구하는 것을 실패하고 절망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고자 하였다. 그리고 이를 통해 인간에게 희망과 영감을 주는 영웅 배트맨은 그저 인간에 불과하며, 그의 의지를 꺾음으로 공포를 인간이 이겨낼 수 없다는 것을 전세계에 단순한 화학 작용인 공포 가스 이상의 공포와 절망을 안겨주고자 한 것이다.
실제 스케어크로우는 거의 성공하였다:스케어크로우는 공포 가스를 흡입한 배트맨에게 머릿 속의 조커라는 끔찍한 광기를 발현하는데 성공하기도 하였으며, 아캄 나이트인 제이슨 토드는 배트맨의 가면 아래 숨겨진 정체의 비밀을 이용하여 배트맨에게 실패에 대한 고통을 안겨주는데 성공하였다. 이러한 압박 속에서 배트맨이 느끼는 최악의 공포는 자신이 지켜왔던 가치와 규칙을 스스로가 무너뜨리는 것이다. 실제 클라이맥스 직전에 배트맨은 스케어크로우에게 끌려가는 도중 자신이 가장 두려워 하는 환영을 보게 된다. 그는 무수히 덤벼오는 조커들과 싸우다 조커의 목을 꺾어 죽이는데, 비록 환상속이긴 하지만 배트맨은 그의 의지로 그의 원칙중 하나였던 불살의 원칙을 어기게 된다. 그리고 원칙의 붕괴는 필연적으로 혼돈(=조커)을 수반한다. 배트맨 자신이 갖고 있었던 광기의 잠재력이 이 원칙의 붕괴로 인해 가속화되며, 스케어크로우에 의해서 처음 공포 약물을 투약당했을 때 그의 내면 속에 있었던 조커가 배트맨의 육체를 지배하게 된다.
하지만 아무리 끔찍한 일을 당하더라도 절대 꺾이지 않는 인간의 의지력이 있다. 앨런 무어의 킬링 조크를 예로 들어 보자:한순간에 자신의 아내와 모든 것을 잃어버린 조커와 부모를 잃어버린 배트맨이 그들의 트라우마로 인해서 그 트라우마의 영향 아래 각자의 길을 걷게 되고, 조커와 배트맨의 기원을 통해서 서로의 동질감을 느끼게 만든 것이 킬링 조크의 훌륭한 점이다. 그러나 조커는 인간이라면 누구라도 최악의 하루를 경험하면 미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 고든을 미치게 하려고 하였지만 실패하였다. 또한 배트맨은 그의 트라우마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원칙과 신념, 그리고 이를 이루고자 하는 의지를 통해서 망가지지 않았다. 역설적이게도 아무리 끔찍한 일을 당하더라도 꺾이지 않는 신념과 의지가 존재한다는 것을 킬링 조크는 반증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조커의 인격이 나온 배트맨을 보며 당황한 스케어크로우가 배트맨에게 두번째 약물을 투여할 때, 배트맨은 망각이라는 조커의 최악의 공포(조커가 기생체적인 케릭터라면, 역으로 그는 사람들이 망각하는 것, 혼돈과 광기를 아무도 두려워 하지 않는다는 것 자체를 진정으로 두려워 할 것이다)로부터 되돌아 온다. 나는 복수다, 나는 밤이다, 나는 배트맨이다I am the Vengeance, I am the Night, I am the Batman이라는 배트맨의 선언은 악인이라면 마땅히 두려워 해야하는 공포이며 선인에게는 어둠 속에서 가야할 길을 보여주는 영감과 희망을 주는 배트맨이란 영웅의 본질을 드러내는 장면이라 할 수 있다.
사람들에게 영감을 주는 존재로써 배트맨이란 케릭터를 락스테디는 분명하게 이해하고 있다. 게임의 마케팅을 위해서 만들어진 배트맨이 되어라Be the Batman라는 트레일러가 있다:여기서 평범한 사람들이 공포와 불의, 위험으로부터 자신을 잊고 옳은 일을 하는 모습을 게임 속 배트맨의 모습과 연결시킴으로서 배트맨과 플레이어를 등치시키려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또한 트레일러나 마케팅을 통해서 락스테디는 배트맨이 이야기한 대사에서 주어인 나 'I'(=배트맨)를 제외하고 복수가 되어라, 밤이 되어라, 배트맨이 되어라Be Vengeance, Be the Night, Be the Batman이라는 구호를 씀으로써, 누구나 배트맨이 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락스테디는 아캄 나이트를 통해서 배트맨의 본질이 재산도, 단련된 육체도, 공포의 상징인 그의 가면이 아닌 바로 자신의 원칙과 신념, 공동체를 위해서 헌신하는 의지력임을 분명하게 이해하고 플레이어들에게 경험하게 하고자 만든 것이다.
하지만 동시에 배트맨은 원칙이자 신념이며 상징이지만 인간이 될 수는 없다:그의 가면이 벗겨짐으로써 그가 범죄자들이 마땅히 두려워 해야하는 인간 이상의 상징이 아닌 인간임이 증명되었을 때, 그는 인간의 법과 원칙에 얽메이게 된다. 배트맨의 가면은 그의 진짜 신분을 숨김으로써 주변 사람들을 보호하고 더 나아가 자신이 인간임을 부정함으로써 사람들에게 영감을 주고 법 바깥에서 법을 수호할 수 있는 존재로 만들어 주었다. 그러나 그의 가면이 더이상 그를 보호해주지 못했을 때, 그의 인간으로서의 정체성은 필연적으로 그를 법과 도덕의 심판대에 놓이게 만들었다. 하지만 영웅은 스스로 법과 도덕을 지키기 위해서 헌신하였고, 그러한 심판을 비겁하게 피하지 않고자 한다. 문제는 인간으로서의 그의 정체성이 그의 전설을 무너뜨린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전설은 살아있다, 오직 인간만이 죽음을 맞이할 뿐Legends live on. Only Man comes to an end라는 표현처럼, 영웅의 최후의 임무는 자기 자신을 배제하고 상징만을 남겨놓음으로써 사람들에게 영감을 제공하는 것이다. 배트맨은 나이트폴 프로토콜을 통해서 이 세상에서 배트맨 가면 밑의 브루스 웨인이라는 인물을 지워버린다. 그의 지위, 재산, 친구 등의 모든 것을 포기하는 궁극의 희생을 통해서 그는 배트맨이라는 상징을, 사람들이 우러러 보고 영감을 얻고 나아갈 수 있는 힘을 얻게 만든다.
결론적으로 스토리 측면에서 아캄 나이트는 배트맨 코믹스에 대한 훌륭한 해석과 케릭터에 대한 존중을 통해서 만들어진 걸작이라고 생각한다. 락스테디는 배트맨이 마주하는 최악의 상황을 마주하고 그것을 이겨내는 과정을 배트맨을 중심으로 훌륭하게 묘사함으로써, 영웅이란 단순하게 문제를 해결하는 존재가 아닌 끊임없이 영감을 주는 존재라는 것을 다시 한 번 증명하였다. 그렇기에 배트맨 아캄 나이트는 트릴로지에 있어서 최고의 마무리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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