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이야기/게임 리뷰



완전히 새로운 게임이라는 것은 만들어지기 힘들다:모든 것에는 원형이 있고, 원형에서 변형이 가해질수록 게임은 점점 더 발전한 형태로 변화한다. 하지만, 가끔씩 무엇에서부터 시작되었는지 알 수 없거나 이전에는 미처 상상할 수 없었던 형태의 장르 결합이 이루어지는 게임들이 발견되기도 한다. 스플래툰을 예로 들어보자. 스플래툰은 물총으로 벽과 바닥을 색칠하는 게임이다. 하지만 블롭이나 마리오 선샤인 같은 스플래툰이 영향을 받았을 법만한 게임들은 찾아볼 수 있겠지만, 정작 스플래툰 자체의 원형이라고 여겨지는 작품은 찾기 힘들다. 이런 신선한 작품을 만날 때의 쾌감은 게이머에게 있어서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즐거움이라 할 수 있다. 미들어스:쉐도우 오브 모르도르 역시 그러한 범주에 포함된다. 


유념해야 하는 점은 쉐도우 오브 모르도르는 전적으로 액션 게임이라는 것이다:게임은 배트맨 아캄 시리즈의 프리 플로우 형태의 전투 시스템을 기반으로 하고 있으며, 오픈월드라고 하기에는 좁고 아니라고 하기에는 미묘한 스테이지에서 게임을 진행한다. 또한 어크2 표절 시비로 문제가 되었던 파쿠르 시스템이나, 흔히 찾아볼 수 있는 잠입 시스템, 넓은 필드에서 다양한 할 거리를 제공하는 오픈월드-샌드박스식 게임 플래이 등등이 쉐도우 오브 모르도르의 기본적인 시스템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기본적인 시스템들은 이미 과거에도 수없이 봐왔었던 것들이다. 쉐도우 오브 모르도르의 핵심은 게임의 전투가 아니라 게임 내의 세계가 움직이는 방식에 있다.


게임은 이를 '네메시스 시스템'이라 부른다:쉐도우 오브 모르도르에는 게이머의 행동에 의해 영향을 받는 독립된 오크 사회가 존재한다. 게임 내의 첨탑에서 시간을 보내거나 게이머가 전투중 오크에 의해서 사망한 경우에는 이 오크 사회는 일정한 규칙에 따라서 움직인다. 게임 내에서 오크들은 잡병-캡틴-워치프로 계급화되어 있으며, 캡틴 급에서는 자기들끼리 결투를 하거나 세력 확장을 위해 신병을 끌어들이거나 연회를 벌이고 진급을 하는 등의 다양한 활동을 한다. 또한 게이머를 죽임으로서 캡틴이 영향력을 확대하거나 잡병 오크가 캡틴으로 승진하는 등의 다양한 일들이 일어난다. 이러한 활동들을 통해서 오크 사회는 일정한 규칙성을 갖고 움직이게 되며 게이머가 예측할 수 없는 형태로 변화하게 된다.


그리고 게임은 오크 캡틴들에게 독특한 개성을 부여한다. 기본적으로 오크 캡틴들은 같은 특성을 공유하는 것이 아니라 랜덤으로 짜여진 강점과 약점, 분노 요인, 전투 특성 등을 지닌다. 가령 어떤 오크 캡틴은 암살로 한 방에 죽일 수도 있지만 원거리 공격 자체에 면역되어 있고, 또 다른 오크 캡틴은 암살 및 근접 공격에 면역이지만 원거리 공격에 취약할 수 있다. 하지만 게임은 이러한 특성들을 친절하게 가르쳐주지 않는다:게이머는 오크 캡틴을 공략하기 이전에 그 캡틴의 이름도, 특성도, 심지어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는 상태다. 이런 상황에서 무작정 보이는 캡틴에게 덤비는 것은 자살 행위라 할 수 있다. 그렇기에 게이머는 캡틴을 공략하기 전에 먼저 캡틴의 특성을 파악해야 한다. 이는 돌아다니는 오크를 심문하거나 등장하는 문서를 통해 획득해야 한다. 하지만 이러한 과정을 통해서도 얻을 수 없는 정보들이 있다:이러한 정보들은 오로지 밀정이나 캡틴들을 통해서만 획득 가능하다. 그렇기에 게이머는 자신의 적을 알기 위해서 맵 여기저기 랜덤으로 생성되는 밀정을 심문하는 과정을 통해 정보를 수집하는 사전 준비 활동을 지속적으로 하게 된다.


이렇게 캡틴의 특성과 위치를 파악하였다면, 이제 오크 캡틴을 사냥할 차례가 온다. 게이머는 일정 지역을 순찰하는 오크 캡틴을 제거할 수 도 있지만, 오크 캡틴들의 활동에 난입하여서 암살을 시도할 수도 있다:게임 상에서 오크들은 지속적으로 활동을 하기 때문에 이 활동 이벤트들이 맵상에 미션의 형태로 드러난다. 이런 이벤트의 경우, 특정한 연출과 법칙에 따라서 진행되기에 플래이어는 다른 상황에 비해서 수월하게 오크 캡틴을 암살할 기회를 얻기도 한다. 가령, 연회 이벤트의 경우 오크 캡틴이 홀로 돌아다니는 모습을 자주 보여주는데, 오크 캡틴이 만약 잠입 살해에 약한 경우에는 단번에 오크 캡틴을 살해할 수 있기도 하다. 하지만 반대로, 몇몇 이벤트는 특정 오크 캡틴을 강하게 만들기도 한다:카라고르 등의 몬스터를 싫어하는 캡틴의 경우, 증오 버프를 받아서 처리하기 더 껄끄러워지기도 한다. 즉, 여러가지 속성이 결합하여 만들어지는 오크 캡틴의 존재가 스크립트로 자여진 이벤트를 더욱 풍성하게 만든다.


이런 식으로 캡틴을 제거하면 게이머는 무기에 장착할 수 있는 룬을 획득하게 된다. 이 룬은 일종의 패시브 스킬로써 게임 플래이를 유리하게 만드는 효과를 갖고 있다. 특히 몇몇 전설급 룬들은 게임 플래이 자체를 변화시킬 정도로 강력한 능력을 갖고있기도 하다. 룬의 성능은 캡틴의 파워 레벨에 비례하는데, 파워 레벨의 경우 캡틴의 활동에 따라서 상승하기도 한다. 이러한 네메시스 시스템 덕분에 게임은 이전에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부드럽고 유연하고 나름대로의 재미를 갖게 된다. 특히 일정 수의 오크 캡틴 및 워치프 암살을 목표로 하는 첼린지 모드의 경우, 매번 할때마다 다른 상황을 즐길 수 있다는 점에서 오래 플래이할만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 할 수 있다.


하지만 네메시스 시스템의 화룡정점은 이러한 오크들의 사회 및 생태계에 게이머의 '대리인'을 세울 수 있다는 점에 있다. 게임의 중반 이후 게이머는 오크를 세뇌할 수 있는 능력을 갖게 되고, 이 능력을 토대로 밑바닥의 캡틴을 세뇌해서 최고 계급인 워치프까지 육성하는 것도 가능하다. 또한 이렇게 세뇌한 오크의 경우도 이벤트 미션이 등장하며, 게이머는 이를 진행할 수도 있다. 재밌는 점은 이 이벤트 미션에 있어서 게이머의 위치다:게이머는 자신의 오크 캡틴을 암살할 수도 있고, 아무것도 안하고 지켜볼 수도 있으며, 심지어는 오크 캡틴이 문제를 해결하도록 도움을 줄 수도 있다. 플래이어는 생태계의 최고의 포식자이자,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는 관찰자의 위치를 점한다. 그리고 이러한 이벤트 미션의 구조와 오크 캡틴의 육성 등은 게이머에게 할 수 있는 거리의 증가와 함께 독특한 재미를 부여한다. 


게임은 완벽하게 게임 내의 생태계인 네메시스 시스템과 함께 검증된 게임 시스템들(프리플로우, 파쿠르, 잠입 등등)을 훌륭하게 섞어낸다. 그 결과, 게임을 플래이하는 게이머는 쉽게 게임을 익혀나가면서 동시에 네메시스 시스템이라는 게임 내의 생태계를 차근차근 익혀나갈 수 있게 된다. 하지만 아쉬운 점은 이 게임이 굳이 '반지의 제왕' 프랜차이즈를 사용할 필요가 없었다는 점, 그리고 스토리가 뜬금없고 불친절하다는 점에서 아쉽다는 인상을 준다. 또한 오크 육성에 있어서 워 치프 이후에는 더이상 할 거리가 부족하며, 더 나아가 보스전 부분이 네메시스 시스템으로 만들어진 오크 캡틴들과의 싸움과 비교하여 보았을 때 매우 아쉽다는 인상을 준다. 스토리 부분에서 프랜차이즈를 좀 더 유기적으로 사용하고 뒷 마무리를 좀 더 깔끔하게 하였다면 게임은 더 훌륭해졌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단점들이 미들어스:쉐도우 오브 모르도르를 깎아먹지 않는다. 오히려 그러한 단점에도 불구하고 쉐도우 오브 모르도르는 게임 재미와 함께 게임 역사에 하나의 족적을 남긴 게임이라 할 수 있다:게임 내의 자립적인 생태계와 게이머의 행위를 유기적으로 결합시켜서 여지껏 보지 못한 새로운 재미를 만들었다는 점에서 쉐도우 오브 모르도르는 앞으로도 계속 플래이 될 작품이라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