락스테디의 배트맨:아캄 시리즈는 케릭터 프랜차이즈 게임에 있어서 새로운 기준과 지평을 제시한 프랜차이즈였다:이전까지의 케릭터 게임들은 기존의 프랜차이즈의 인기에 힘입어서 행해지는 부가적인 사업 아이템에 불과하였다면, 아캄 시리즈는 기존의 프랜차이즈를 집대성하여서 프랜차이즈의 후광을 등에 입는 것이 아닌 프랜차이즈에 걸맞는 케릭터 게임이라는 비전을 제시하였다. 아캄 시리즈에서 플레이어는 배트맨이 되어서 게임 내의 빌런들과 싸우고, 사건들을 수사하며, 악당들에게 공포를 심어주는 등의 다양한 경험을 하게 된다. 아캄 시리즈의 플레이 시스템들은 기존의 게임 시스템들을 보기 좋게 정리한 것을 뛰어넘어서 배트맨이라는 케릭터를 구심점으로 응집력이 높은 게임을 만드는 데 성공하였으며, 특히 프리플로우로 알려져 있는 전투 시스템(정확하게는 페르시아의 왕자:시간의 모래에서부터 영향을 받은)은 다양한 게임의 전투 시스템의 근간을 성립하는데 도움을 주기도 하였다.
아캄 나이트는 락스테디의 아캄 프랜차이즈의 대미를 장식하는 작품이며, 그렇기에 락스테디의 야심이 여기저기 보이는 작품이다. 맵은 아캄 시티에 비해서 몇배로 커졌으며, 새로운 이동수단인 배트모빌의 등장과 함께 배트모빌을 사용한 전투와 도전이 추가되었다. 또한 전투와 사냥꾼 플레이 시스템에 소소한 변화가 생겼으며, 배트맨 아캄 프랜차이즈의 대미를 장식할 게임 답게 스토리 측면에서도 신경을 많이 쓴 작품이기도 하다. 다만 아캄 나이트는 다소 어딘가 미묘하게 껄끄러운 부분이 남아있는 아쉬운 작품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스토리의 측면에서 아캄 나이트는 여지껏 나왔던 아캄 프랜차이즈를 정리한다는 의미에서 최고의 작품에 올라섰다고 할 수 있다.
배트맨:아캄 나이트를 정확하게 리뷰하기 위해서는 먼저 '배트맨'이라는 케릭터를 이해하여야 한다:부모가 범죄자의 손에 죽은 브루스 웨인은 범죄와 싸우기로 결심한다. 그는 자신의 정체를 철저하게 숨기고, 범죄자들을 이해하여 그들에게 공포를 주는 상징이 되는 전략을 사용한다. 또한 배트맨은 보통의 미국 코믹스의 영웅들과 다르게 초능력 없이 오로지 자신의 기술력과 재력을 바탕으로 하여 철저한 분석과 냉철한 지능을 사용하여 싸우는 전법을 구사하거나, 최첨단 장비를 이용한 분석을 통해서 범죄 수사를 하기도 한다. 아캄 시리즈는 이러한 배트맨이라는 케릭터의 특징에 기반하여 몇가지 게임 플레이 파트로 분류한다:맨손 격투를 하는 전투 파트와 무장한 적들을 공포로 동요하게 만들고 조용하게 하나씩 처리하는 사냥꾼 파트, 일종의 과학수사 퍼즐이라 할 수 있는 탐정 파트, 다양한 빌런들과 맞붙는 사이드 퀘스트 등으로 말이다.
아캄 프랜차이즈의 전투는 기본적으로 파쿠르와 전투를 혼합한 페르시아의 왕자:시간의 모래의 변용이다. 플레이어는 전투중에 방향키와 공격버튼을 혼합해서 자유롭게 이동하면서 비무장한 적들을 공격하거나 상대에게 반격을 가하고, 공격을 끊지 않고 최대한 쌓아서 테이크다운 등의 특수 기술로 변용할 수도 있다. 프리 플로우라 불리는 아캄 프랜차이즈의 전투 시스템은 단순한 버튼 조합으로도 화려한 콤보를 이어나갈 수 있다는 점과 함께 적의 조합 등에서 전투의 깊이를 더한다는 점에서 입문과 깊이 모두를 만족시키는 전투 시스템으로 호평받고 있다.
그리고 아캄 나이트의 전투 파트는 전적으로 아캄 프랜차이즈 및 아캄 시티의 확장 변용이라 할 수 있다. 다만 아캄 시티가 다양한 테이크다운 기술과 도구 사용 간소화 등의 대대적 시스템 변화를 보였다면 아캄 나이트의 변화점은 소소하다고 할 수 있다:무기를 집어서 쓸 수 있다던가, 타이밍 좋게 카운터를 쓰면 던지기가 나간다던가, 소생을 시키는 적이 생겼다던가, 배트모빌을 사용하거나 몇몇 이벤트 전투에서 동료와 함께 테이크다운을 하는 등의 소소한 변경점들이 추가되었을 뿐이다.
무장한 적들을 상대하는 사냥꾼 플레이는 어떤 점에서는 잠입 액션 게임의 흐름과 유사하다:플레이어는 무장한 적들의 화력 앞에서는 빠르게 죽기 때문에 최대한 적과의 교전을 피하고 높은 고지를 점하면서 무장한 적들을 한 명씩 끊어먹는 전략을 구사하여야 한다. 게이머는 탐정 모드를 이용해서 적을 제압하는데 도움이 되는 지형지물을 찾고 전략적으로 움직여야 한다. 한 명 한 명 쓰러질 때마다 공포에 물들어가면서 당황하는 적들을 제압하는 긴장감과 쾌감이 살아있는 사냥꾼 플레이는 악당을 사냥하는 배트맨의 시점을 훌륭하게 묘사한 시스템이라 할 수 있다.
아캄 나이트는 아캄 시티에서 여러 변칙적인 요소들을 도입(배트맨의 탐정 모드를 막는 도구를 든 적이라던가)한 것을 그대로 따르지만, 동시에 아주 중요한 시스템 변화를 부여한다. 아캄 나이트에서 플레이어는 연속 테이크다운을 통해 3명에서 5명까지를 단 번에 제압할 수 있다. 이러한 제압은 적의 숫자를 단 번에 줄여버릴 뿐만 아니라, 전작들에서 다루기 까다로웠던 '서로의 시야를 보완하면서 움직이는 적들'을 쉽게 처리하는 기제로 작동한다. 이 연속 테이크다운의 등장으로 인해서 사냥꾼 플레이는 전작들에 비해서 비약적으로 쉬워진다. 물론 제작진들도 이 점을 인지하였는지 무음 기습 테이크다운으로 연속 테이크다운을 재충전하는 기믹과 함께 테이크다운으로 처리할 수 없는 떡대 덩치나 무인기 드론, 탐정 모드 역탐지 적 등을 도입하기도 했지만 그에 못지 않게 배트맨의 가제트도 강화되어서(음성 변조를 통한 명령, 원격 무장 해제, 드론 해킹 등) 사냥꾼 플레이의 균형이 완전히 배트맨 쪽으로 기울었다는 느낌을 받는다. 그렇기에 아캄 나이트와 비교하여 배트맨이 강해지긴 했지만 동시에 상대의 전술도 만만치 않게 변화한 아캄 시티가 사냥꾼 플레이에 있어서 벨런스 포인트를 잘 잡았다고 평가할 수 있다.
여기까지는 아캄 나이트가 전작들로부터 계승한 시스템이다. 이제부터는 아캄 나이트만의 시스템인 '배트모빌'에 대해서 다루고자 한다. 배트맨이 세계 최고의 거부이기에 가질 수 있는 기술의 집합체라 할 수 있는 배트모빌은 게임 내에서도 자동차라 불리기 보다는 '탱크'라고 불리는 중후한 모습을 보여준다. 이는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다크 나이트 시리즈에 강한 영향을 받은 디자인이다. 배트모빌은 주행 모드와 전투 모드로 나뉘어지며 주행모드에서는 이동과 추격을, 전투모드에서는 드론들을 상대하는 플레이 양상을 보여주며 본작 아캄 나이트에서 락스테디는 배트모빌을 이용해서 할 수 있는 다양한 할 거리들을 집어넣었다. 일단 게임 개별 시스템으로만 본다면 주행 모드와 전투 모드 양측 모두 합격선에 든다고 평가하고 싶다:배트모빌의 중후하고 단단한 특성이 주행 시의 장애물을 거침없이 돌파하는 상쾌한 플레이를 가능케 하며(물론 ㅁ버튼이 후진/브레이크 인건 여전히 적응이 안된다), 전투 모드의 경우에는 적의 사선을 보고 공격을 피하면서 상대를 격파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엄밀하게 본다면 각각의 게임 플레이는 나름대로 준수하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배트모빌과 관련된 시스템의 문제는 플레이 자체보다는 전체 게임과의 조화, 분량과 난이도 배분에 있다. 배트맨 아캄 어사일럼과 시티에서 전투와 사냥꾼 플레이 모두는 배트맨을 직접 조작하는데 많은 비중을 할애하였다. 그리고 아캄 나이트에서는 기존의 전투와 사냥꾼 플래이에 배트모빌 운용을 덧붙이면서 게임 플레이를 다체롭게 만들려는 시도를 하였다. 문제는 아캄 나이트에서 배트모빌은 여타 게임에서의 이동수단의 개념이 아닌 '필수적으로 플레이 해야 하는' 강제적인 성격이라는 것이며, 그리고 새로운 시스템의 강조는 필연적으로 사람을 지치게 만드는 난이도와 분량으로 이어지게 된다. 아캄 나이트의 문제는 배트모빌 플레이가 재미가 없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지치게 만든다는 점에 있다. 차라리 배트모빌의 분량을 줄이고 다른 콘텐츠를 보강하는 것이 더 좋았을 것이라 생각한다.
탐정 파트와 사이드 퀘스트에 있어서 아캄 나이트는 전작들의 강점을 계승하고 있다. 다만 아쉬운 점은 사이드 퀘스트에 등장하는 빌런의 수가 전작들에 비하면 다소 부족하다는 인상이 강하다. 사실, 별도의 글에서 서술하겠지만 아캄 나이트에서 주요한 이야기는 3명의 빌런이 배트맨을 각자가 맡은 파트에서 압박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와 별개로 리들러 첼린지의 경우 배트모빌을 사용하는 기믹이 추가되서 전작들 보다 더욱 짜증나는 물건이 되어서 돌아왔다.
아캄 나이트의 스토리는 분석하는 순간 스포일러 덩어리가 되기 때문에 다른 글로 분리해서 접근하고자 한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아캄 나이트의 스토리가 배트맨이라는 케릭터의 끝을 다뤄내는데 있어서 훌륭했다는 것이다. 물론 아캄 프랜차이즈 특유의 문제점인 배트맨을 둘러 싸고 있는 다양한 빌런들의 개성을 모두 살리지 못했다는 아쉬움은 여전히 있다. 하지만 배트맨의 마지막을 다루기 위해서 배트맨을 압박하는 빌런들의 협공과 이를 묘사하는 락스테디의 능숙한 연출은 훌륭하였으며, 클라이맥스를 향해서 질주하는 이야기의 전개는 게이머가 자연스럽게 몰입하게 만든다.
결론적으로 배트맨 아캄 나이트는 다소간의 아쉬움은 있지만, 마무리를 잘 지었기에 그러한 아쉬움을 충분하게 커버하고도 남는 훌륭한 작품이다. 락스테디가 배트맨 코믹스와 프랜차이즈에 대해서 보여준 애정과 존경심은 경이로우며, 더이상 프랜차이즈를 무리하게 늘리려 하지않고 적절한 선에서 끝냈다는 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을만 하다.
이후의 스토리 분석은 다음 글로 넘기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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