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일러 포함되어있습니다.
*가족 독서 토론에서 한 내용을 바탕으로 정리했습니다.
필립 K. 딕의 안드로이드는 전자양을 꿈꾸는가 는 영화 블레이드 러너의 원작소설로 유명한 소설이다. 세계 전쟁 이후, 지구는 오염 낙진으로 생명체가 살기 힘든 행성이 된다. 대부분의 동물은 멸종되었기 때문에 살아 있는 동물을 키우는 것이 신분의 척도가 된 세상. 경찰서 소속 안드로이드 사냥꾼 릭은 가짜로 만들어진 전기 양 대신 진짜 양을 사고 싶어한다. 어느 날 잘 나가는 선배 사냥꾼 데이브가 안드로이드에 의해 중상을 입게 되자, 릭은 데이브 대신 일을 처리하여 그 보상금으로 진짜 양을 살 계획을 세운다. 소설의 이야기 구조나 흐름은 성기다고 할 수 있으나, 소설 전반에 깔려있는 분위기와 주제의식은 다른 소설들과 차별된다고 할 수 있다.
소설의 가장 중요한 주제의식은 바로 '무엇이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가?' 이다. 아이작 아시모프 원작의 바이센티니얼 맨의 경우에는 인간의 정신을 우연히 얻은 로봇이 인간이 되어가는 과정과 인간과 생명의 끝이자 궁극이라 할 수 있는 죽음을 모방함으로서 인간의 경지에 도달했고, 스탠릭 큐브릭/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영화 AI는 프로그래밍 된 사랑이 초지일관 변화하지 않고 끝까지 감으로서 인간이 되는 모습을 보여주었으며, 공각기동대의 경우에는 기억과 인간이 스스로를 규정지을 수 있는 자아의식의 무언가인 고스트를 설정하였다. 하지만, 소설은 특이하게도 인간의 정의에 대해서 관계론적인 개념을 제시하는데, 그것이 바로 '감정 이입'이다.
소설에 등장하는 보이그트-캄프 테스트는 생명이 다른 생명에 대해서 감정이입하는지 여부를 테스트 해서 기계-인간의 여부를 결정한다. 인간은 다른 생명 또는 인간에게 감정을 이입할 수 있으나, 기계는 그러하지 못한다. 그리고 소설 내에서 등장하는 머서주의(머서 라는 구세주에게 감정이입기를 통해서 전 우주의 인간들이 같은 감정을 공유하는)가 주창하는 인간의 가장 중요한 조건으로 감정 이입을 제시한다. 어찌보면 들뢰즈-가타리가 이야기한 몸이라는 공통된 주제를 통해서 다른 이에게 감정을 이입하고 타자와 소통할 수 있는 가능성을 찾는 것이라는 문제제기와 유사하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소설에서 인간의 감정 이입 능력은 '허구'에 가깝다고도 할 수 있다. 소설 전반적으로 인물들이 감정이입기를 이용해서 감정을 조절하는 점이나 머서주의를 체험하는 방안으로서 범우주적인 감정 네트워크를 통해 타자의 감정을 자신에게로 이입시키는 기계를 사용하는 점, 마지막으로 머서주의는 허구였다는 점 등등은 역설적이게도 인간이 '기계와 허구에 의해서 감정을 제어하는' 모습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심지어 소설은 제대로 감정이입을 하는 존재이자 가장 순수한 존재인 이시도어를 죽어가고 사라져가는 존재인 특수자로 규정지으면서 사실상 진실한 인류는 죽어가고 있는 것이 아닌가라고 냉소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소설 내에서 안드로이드는 점점 인간을 닮기 시작하고, 보이그트-캄프 테스트를 넘어서는 모습을 보여주거나 심지어는 자기들끼리 감정이입(혹은 애정?)을 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경찰서 장면은 이러한 인간-기계의 구분이 모호해지고 경계 어그러지는 듯한 느낌을 주는 장면이다. 현재의 기계는 인간을 완벽하게 복제할 수 없었지만(거미 고문 장면), 레이첼이 현재의 데이터들을 수집해서 더 나은 기계, 안드로이드를 만들어낼 것이라고 암시하는 부분은 결국은 그러한 테스트나 구조적인 결함을 언젠가 기계는 뛰어넘으리라는 것을 암시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인간들은 '진짜'를 갈구한다. 감정을 이입할 수 있는 진짜 동물들을. 릭 데커드 역시 소설의 주요한 사건이라 할 수 있는 6인의 안드로이드 사냥의 동기가 바로 진짜 양을 사는 것이었다. 재밌는 점은 진짜 동물을 대체할 수 있는 가짜 동물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그것에 대해서 극도로 혐오감을 느낀다. 왜냐면 그것은 '가짜'이기 때문이다. 소설의 제목, 안드로이드는 전자양을 꿈꾸는가 는 감정이입의 대상이 되고 싶지만, 결국은 될 수 없는 가짜의 숙명을 드러내는 부분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데커드가 안드로이드를 사냥하는 과정에서 느끼는 혼란감과 피로감, 그리고 마지막에 머서와 융함했다고 선언하는 장면은 기계와 허구가 아닌 인간이 진실한 감정이입을 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준다고 볼 수 있다. 데커드와 레이첼 사이의 정사나, 안드로이드에 대해서 느끼는 데커드의 심리와 사냥꾼을 그만두는 점, 그리고 마지막 감정이입 기계 바깥에서 머서와의 융합 체험과 두꺼비의 발견(물론 가짜였지만) 등은 데커드가 사냥의 과정을 통해서 기계 바깥에서 타인(그것이 기계일지라도)에게 감정을 이입할 수 있는 가능성을 스스로 발견한 것이 아닌가 라고 볼 수 있는 대목이다.
소설은 상당히 느슨한 이야기 흐름을 보여주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흐름의 사이에 작가는 기묘한 분위기를 채워넣는다. 중년의 찌든 피로감이나 고독함 등은 높게 평가할만한 부분이다. 그리고 작가가 제시하는 인간의 조건, 그리고 기계 같아지는 인간과 인간 같아지는 기계, 그 둘의 차이와 진정한 인간다움이 무엇인가에 대한 문제제기는 한번쯤 고민해볼만한 소재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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