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바꾼 책들과 저작들을 꼽는 리스트가 있다면 마르크스의 자본론은 어떤 리스트에도 꼭 들어갈 것이다. 마르크스의 자본론에 사상적인 배경을 둔 마르크스-레닌주의는 최초로 이념에 의해서 새워진 국가체계인 공산주의 정부를 수립하였다. 하지만 마르크스의 이념을 토대로 세워진 공산주의 국가들은 90년대 이후 도미노 처럼 붕괴하면서, 공산주의라는 사상 역시 역사의 이면으로 사라지게 되었다. 동시에 몇몇 성급한 학자들은 인류 진보의 최종단계가 도래하였다고 선언하기도 하였다. 프랜시스 후쿠야마는 역사의 종말이라는 저서에서 인류 역사는 자본주의/민주주의 라는 최종적인 단계에 도달하였으며 더이상 역사적 발전이 없으리라고 주장하였다. 하지만, 신자유주의 시대의 도래와 전세계적인 금융위기로 인한 새로운 문제제기가 등장하였다. 마르크스의 자본론에 대한 새로운 시각과 접근 역시 그러하다고 할 수 있다.
이 글에서는 주로 마르크스의 사상의 철학적인 기반과 자본론의 큰 흐름만을 짚고 넘어갈 것이다. 자본론이라는 저서는 철저하게 자본주의에 대한 분석이자, 당시 주류 경제학에 대한 반론이자 비판에 가까운 저서이다. 마르크스의 자본론은 기존의 경제학이 아담 스미스 이후로 사상적인 발전에서는 큰 변화가 없었다는 점에 대한 강도 높은 비판을 한다. 즉, 왜 시장은 옳으며 자본은 옳은가? 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이 자본주의 자체에서는 한번도 행해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마르크스는 이에 대해서 정치역학적인 분석-자가 증식하는 가치로서의 자본을 은폐하기 위한 시스템으로서 자본주의-을 더해서, 당시로서는 새로운 영역이라 할 수 있는 '정치경제학'이라는 새로운 지평을 연다.
마르크스의 자본론을 지지하는 요소들은 크게 4가지의 요소로 구성되어있다. 헤겔의 역사 접근 방식(특히 청년 헤겔학파의), 포이어바흐의 유물론적 도구, 프랑스 사회주의자들의 계급 투쟁론, 그리고 마지막으로 영국의 경제발전사이다. 마르크스가 학문을 배울 당시에는 헤겔의 사상이 유럽 전반을 지배하고 있었다. 헤겔은 역사는 절대이성을 향한 운동이라고 규정하였다. 헤겔이 생각한 절대이성은, 모든 것이 이성에 의해 지배되는 이상향(?)을 정하고 있으며, 서로 반대되는 논리와 사상들, 이념들은 변증법적인 절차를 통해서(기존의 논리, 정-새로운 논리이자 반대되는 논리, 반-그 둘이 합쳐진 논리 합) 절대이성으로 나아간다고 보았다. 물론, 마르크스의 사상은 헤겔의 관념론적인 세계관과는 동떨어져 있지만, 청년 헤겔학파의 문제의식(진보에 대한 요구)과 변증법이라는 방법론(마르크스 역시, 현실과 현실을 은폐하는 기제들, 그리고 그것이 합쳐진 형태라는 점에서 변증법이라는 요소를 차용하고 있다)에 대해서는 큰 영향을 받았다.
마르크스 이론의 가장 큰 모티브라 할 수 있는 유물론은, 포이어바흐가 종교의 탄생을 설명하는 방식에서 따온 것이다. 포이어바흐는 종교는 인간의 '필요'에 의해서 만들어진 부산물이며, 종교에 얽메이는 것이 아닌 인간 근원적인 사랑에 대한 믿음으로 이러한 필요를 충족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는데, 종교가 원래부터 존재한 것이 아닌, 인간이라는 '물질적인 존재의 필요'에 의해서 만들어진 부산물이라는 접근을 통했다는 점에서 유물론적인 시각을 보여주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마르크스는 포이어바흐의 유물론에서 영향을 받았으나, 단순히 영향을 받은 수준을 뛰어넘어서 이를 넓게 확장시켰다. 마르크스의 유물론이 포이어바흐의 유물론과 차이가 나는 점은 크게 두가지로, 첫번째는 포이어바흐의 유물론이 종교 발생이라는 한정적인 시스템에만 초점을 맞추었는데 반해서 마르크스는 사회 전체에 대한 확장 적용을 동반하고 있다. 또한 마르크스는 유물론을 역사적인 관점에서 바라보았다. 가령, 원시공산제-노예제-봉건제-자본주의로 이어지는 역사의 변혁과 흐름을 유물론과 결부시키셔 본 것은 마르크스가 유물론을 역사주의와 결부시켜서 본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리고 마르크스의 계급 투쟁론은 프랑스의 공산주의자들로부터, 마르크스의 자본주의 경제사에 대한 의식은 영국 자본주의 경제 발전사로부터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여진다. 실제 자본론에서 이야기하는 자본주의의 역사적인 도래 과정은 영국의 자본주의 발전사에 근거하고 있는데, 장원에 대한 엔클로저 운동이나 임노동자들의 출현, 그리고 기계에 대한 숙련공들이 어떻게 해서 비숙련공이자 대체 가능한 인력으로 바뀌는지에 대한 설명은 영국 자본주의 발전사와 유사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영국 자본주의 발전사와 다르게 유럽의 경우 노동수단을 지킬 수 있었기에 자본주의적인 괴멸이 늦어졌다고 이 책의 저자들(마르크스가 아닌)은 보고 있다.
마르크스의 자본론은, 아주 간단하게 요약을 하자면 '자본주의의 본질이란 영원히 자가 증식하는 자본이라는 가치를 만족시키기 위한 것이며, 생산수단의 독점, 노동력의 착취, 무산계급의 출현, 공황 등등의 다양한 요소는 사실상 자가 증식하는 가치인 자본이라는 구조를 은폐하거나 자본이라는 가치의 모순이 드러나는 현상이라는 것'이다. 마르크스에게 있어서 자본 생산의 도식에 있어서 투입 자본과 산출 자본의 가치는 상이한 것이 당연하며, 기술 발전이나 다른 생산요소의 발전 자체는 산출 자본의 증가에 큰 의미를 갖지 않는다고 마르크스는 보았다. 그렇기에 유일하게 착취가능한 노동이라는 요소를 착취함으로서, 잉여 자본이자 잉여가치가 발생한다고 본 것이 마르크스의 관점이었다.
마르크스의 시각이 현대에도 의미가 있는 것은, 그건 마치 1이 지배하는 세계 2가 출현한것과도 같은 충격이라고 할 수 있다. 헤겔이라는 이성에 대한 신앙이자 신봉이 팽배한 시점에서, 세상이 움직이는 메카니즘에 대한 마르크스의 새로운 해설은 엄청난 문제제기였다. 이후, 이성에 대한 반론인 니체나, 철학의 언어라는 문제를 제기한 비트겐슈타인, 존재론 담론을 꺼낸 하이데거나 그의 후예 등등 헤겔의 절대이성의 붕괴와 마르크스의 등장과 함께 철학은 새로운 조류를 맞이했다고도 볼 수있다.
또한 마르크스는 처음으로 모든 것에 '정치적인' 의미를 부여했다는 측면에서 사회과학적인 가치와 의의를 갖는다고 할 수 있다. 마르크스가 주장한 멀쩡하게 잘 돌아가는 듯이 보이는 아름다운 사회현상 밑에도 은폐되어있는 정치메카니즘의 존재한다는 점, 그리고 모든 것은 경제적/물질적인 기반에서 출발한다는 발상의 전환은 새로운 시각에 대한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어떤 의미에서는 진정한 사회'과학'의 출현이라고도 볼 수 있는 것이, 그 현상에 대한 근원적인 원인에 대한 탐구를 보여줌으로서 학문적 방법론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고도 할 수 있는 것이다.
물론 마르크스의 자본론은 완벽한 이론은 아니지만(계급에 대한 이분법적이고 다소 순진한 접근 등등),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본론이 제시하는 방법론은 지금까지도 현역이라고 할 수 있다. 사회과학도로서 마르크스의 자본론을 잠시나마 맛이라도 본 것은(이 책은 300페이지 전후지만, 원서는 수천페이지 짜리 책이다...) 정말이지 행운이라고 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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