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한 스포가 있습니다
소녀혁명 우테나 감독인 이쿠하라 감독의 신작 돌아가는 펭귄드럼(2011)은 진짜 빈말로라도 잘 만들었다고 할 수 없는 작품입니다. 제가 이 작품에 빠져서 3편 씩이나 되는 특집 리뷰를 쓸 생각을 하게 만들었어도 말이죠. 저는 이런 펭귄드럼 같은 작품들을 여럿 알고 있죠. 영화쪽에서 본다면 나홍진 감독의 황해라든가, 박찬욱 감독의 박쥐라든가, 아니면 이준익 감독의 평양성이라든가. 만화나 애니 쪽에서 본다면 케모노즈메 등을 사례로 꼽을 수 있겠네요. 하나같이 작가나 감독의 의도한 바가 너무 원대한 나머지 작품에 담을 수 있는 이상의 이야기를 만들려다 망한 케이스들이죠.
하지만 객관적으로 부족하다고 할 수 밖에 없는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펭귄드럼이 인상적일수 밖에 없는 이유는 그 안에 존재하는 이미지들이나 이야기들이 너무나 인상적이기 때문입니다. 실패했다고 묻어버리기에는 아까운 부분이 너무 많고, 그렇다고 추켜세우기에는 여러부분에서 부족한 점이 눈에 띄는 미묘한 작품이죠.
제가 이쿠하라 쿠니히코 감독의 전작들을 보지는 않았지만, 적어도 그의 특기에 대해서는 알고 있죠. 우테나 당시 때만 하더라도 금기시되는 소재를 생뚱맞게 밝은 연출로 커버하는 등의 상당히 파격적인(?) 구조를 선보였고, 이러한 모습은 펭귄드럼에서도 똑같습니다. 1화에서부터 드러나는 근친상간을 묘사하는 듯한 위험한 장면에서부터, 스토커, 임신드립, 레즈비언, 약드립 등등 소재만 놓고 따졌을 때는 이미 18세 이상 관람가를 받아도 할말이 없습니다. 하지만 이쿠하라 감독은 이러한 과격한 소재와 내용을 상당히 온순한(그리고 여러가지 의미에서 파격적인) 연출로 커버합니다. 소녀만화에서나 나올법한 섬세한 연출이라든가, 서로 맞지 않는 소재와 연출의 접목 등(어린이 브로일러, 메리 씨의 세마리 양 이야기 등)을 통해서 소재가 갖는 파괴력을 중화하고 작품 전반을 관통하는 기묘한 분위기를 형성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연출 방식 덕분에 이야기 자체가 묻혀버리는 문제가 발생합니다. 보통 펭귄드럼을 끝까지 감상한 사람들의 평들은 '무슨 이야기인지는 모르겠지만 하여간 감동적이었다'라는 점에서 공통적이죠. 대부분의 사람들이 펭귄드럼에 이야기 구조가 없다고 이야기를 합니다. 하지만, 저는 그러한 부분에 대해서는 동의하지 않습니다. 차라리 이야기 자체가 불친절하다는 것이 맞는 표현입니다. 펭귄드럼의 이야기는 구조상의 비약이 너무 많습니다. 예를 들어 초반 링고의 스토킹과 16년전 사건과의 연관성, 그리고 주변 사람들과 사건 사이의 연관성 등은 암시나 복선이 지나치게 불친절하여서 감상하는 이로 하여금 당혹하게 만드는 부분이 많습니다. 작중에서 암시나 복선을 짤막짤막한 이미지의 형태로 대부분 처리하기 때문이죠. 또한 전체적으로 관통하는 구조와 주제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마저도 이야기로 다루기 보다는 이 부분 역시 이미지를 이용해서 암시하는 걸 자주 사용하는 덕택에 더욱 복잡한 양상으로 작품이 꼬여버립니다.
사실 이는 감독의 욕심이 너무 지나쳤기 때문입니다. 아마도 이쿠하라 감독은 이야기의 인과관계 보다도 작품 내에 드러나는 이미지와 그 상징성에 초점을 맞추고 작품을 만든것 같더군요. 그덕분에 작품의 구조상 논리적인 설명으로 불가능한 '초현실적'이라 할 수 있는 부분들이 있습니다.(몇몇 예시를 들 수 있지만, 강력 스포이니 생략) 그렇기에 펭귄드럼을 보는 사람들에게 작품은 마치 1000피스 짜리 직소 퍼즐의 전체 그림을 한두개의 퍼즐 조각만으로 유추하는 듯한 그런 느낌이 드는 작품이 되어버렸죠.
그렇지만, 이런 저런 문제점들에도 불구하고 돌아가는 펭귄드럼은 아예 실패한 작품은 아닙니다. 엄청나게 뿌려댄 떡밥중 상당수를 회수하는데 성공하니까요. 게다가 떡밥과 이미지를 통해서 드러나는 주제의식이나 상징구조가 그냥 단순한 실패작으로 치부하기에는 아까운 부분이 너무나 많다는 점 역시 그렇습니다.
펭귄드럼의 주제는 '사랑' 그 자체입니다만, 여타 지금까지의 애니메이션과 다른 형태의 사랑을 다룹니다. 펭귄드럼에서 다루는 사랑이란 김춘수의 꽃을 위한 서시나 기독교적인 박애론과 유사한 '존재론적'인 의미에서의 사랑입니다. 또다른 의미에서는 에반게리온 이후로 애니메이션에 종종 나오는 '나-너'의 간극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구요. 이를 운명과 가족이라는 키워드로 묶어내었다는 점, 그리고 결말까지의 결과물을 놓고 보았을 때 상당한 완성도로 나왔다는 점에서 펭귄드럼의 시도는 높이 평가할만 합니다.
자세한 내용의 분석은 중편, 하편으로 넒기도록 하겠습니다. 일단 이 작품 자체가 모르고 본 상태에서 느껴야 감동받을 수 있는 부분이 많기 때문에, 상편에서는 간단하게 전반적인 특징들만을 다루었으며, 중편 하편에서는 제가 분석한(물론 이제 공식 자료집이나 감독 언급에 따라서 부정될 수도 있지만) 내용들을 최대한 논리에 맞춰서 내놓을 생각입니다. 일단 보실 분들은 상편 부분만 참조하시고, 중-하편 부분은 감상 이후에 보시는게 바람직하리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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