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이야기


지난 근 20년 동안, 게임의 그래픽과 음향, 표현력, 연출은 엄청난 속도로 발전해왔습니다. 예를 들어보죠. 둠(Doom)에서는 평면을 교묘히 이용한 착시효과로서 3차원의 세계를 표현하였고, 그 후 퀘이크에서는 폴리곤을 도입하여 진정한 3D의 세계를 만들었죠. 그리고 조금 더 지나니까, 퀘이크 3 이후로 광원효과라는 것이 도입되기 시작하였고, 하프라이프 2에서는 현실세계의 물리가 게임에 적용되기 시작하더니, 이제는 실사를 능가하는 그래픽을 보여주는 크라이시스가 등장하기 까지 하였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게임계의 흐름은 한가지 공통된 방향성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게임이 영화가 되고 싶어한다는 것이죠. 과거 '라이언 일병 구하기'가 처음으로 2차세계 대전을 멋지게 각색하였을 때를 기억하십니까? '라이언 일병 구하기' 이후 전쟁영화의 문법이 많이 바뀌었죠. 그와 동시에 많은 게임 제작사들이 2차세계 대전을 소재로 FPS 게임을 만들었습니다. 메달 오브 아너, 콜 오브 듀티 등등...이 시기 나왔던 2차세계대전 FPS는 모두 라이언 일병 구하기의 인상적인 인트로(노르망디 상륙 작전의 최고 격전지 오마하 해변 상륙)를 재현하는 미션을 꼭 하나씩 갖고 있었죠. 심지어 그러한 흐름 이후에 나온 RTS 게임 컴퍼니 오브 히어로즈에서도 오마하 비치 상륙을 테마로 하는 미션을 인트로로 삽입하였습니다.

사실 이는 당연한 조류입니다. 영화는 근 100년 가까이 되는 대중문화의 역사에 있어서 가장 성공적으로 살아남은 대중문화의 형태 중 하나니까요. 또한 많은 사람들이 영화를 즐기죠. 즉, 영화의 문법을 게임에 도입함으로써, 게임은 게이머에서부터 영화를 즐기는 일반적인 감상층까지 어필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게임 내의 연출이나 진행, 스토리가 점점 영화를 닮아 가는 것입니다.

예들을 들어보죠. 레프트 4 데드 시리즈는 명백하게 호러 영화의 한 조류인 '좀비 코드'를 차용한 작품입니다. 사실 좀비를 학살하고 죽어라 뛰는 거 말고는 내용이 없는 이 게임이 혁명적인 멀티플래이 FPS로 손꼽히는 이유는 좀비 영화의 코드를 게임에 적절하게 변용하였다는 점입니다. 그리고 매스 이펙트 시리즈나 헤일로 시리즈 같은 경우, 명백하게 SF 영화 및 스타워즈 등의 스페이스 오페라로부터 그 코드를 빌리고 있구요. 데드 스페이스는 동명의 SF 호러 영화로부터 영감을 받아 만든 작품이었죠. 이와 같이, 영화는 게임의 기반이 되는 코드를 제공하고 있는 것입니다.

주목할 점은 최근 몇몇 대형 프랜차이즈 게임 같은 경우, 영화의 마케팅 방식을 도입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기존의 게임들은 게임 잡지 등의 전문적인 매체의 평가 또는 소규모의 광고를 통해서 한정된 게이머란 계층을 대상으로 마케팅을 펼쳤죠. 하지만 근래의 게임들은 과거의 게임들의 마케팅과는 양과 질에서 엄청난 차이를 보여줍니다. 그리고 그러한 마케팅 방법의 대부분 영화의 마케팅 기법에 기반을 두고 있습니다.

출시 당시 전미 박스 오피스의 흥행수익에 영향을 주었던 Xbox 360의 간판 타이틀 헤일로 시리즈를 봅시다. 이미 ODST의 같은 경우, 실사 배우를 기용한 영화 같은 광고영상을 보여주었죠. 그리고 게임계의 블록버스터라 할 수 있는 몇몇 게임들은 TV 광고까지 냈습니다. 물론, TV 광고 자체가 제작에서부터 방영까지 엄청난 시간과 노력이 들어간다는 점에서 게임의 마케팅 형식으로 주로 쓰이지는 않습니다만, 과거에 비해서 TV 광고 빈도가 높아진 점과 그 광고의 성격이 영화 광고와 비슷해졌다는 점은 주목해야 합니다.

특히 주목할 만한 점은 게임 광고가 현재 영화 마케팅의 최첨단이라 할 수 있는 노이즈 마케팅 및 티저 마케팅을 적극적으로 사용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과거, 블레어 위치라는 걸출한 페이크 다큐로부터 시작한 노이즈 마케팅은 J.J. 에이브럼스의 클로버필드 등에서 적극적으로 활용되었습니다. 하지만 노이즈 마케팅 및 티저 마케팅은 대중적인 반응을 이끌어내기에는 상당히 어려운 문제점이 있습니다. 노이즈 마케팅은 기본적으로 이를 놓고 '씹어주는' 대상층이 있어야 성립하는데, 일반적인 대중은 마케팅 자체를 그대로 받아들이기를 바라지 그걸 적극적으로 분석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노이즈 마케팅 자체가 성립하기 힘들다는 문제가 있죠.

하지만 게임을 소비하는 계층은 기본적으로 일반적인 대중보다 더 '전문화'된 소비 계층이기 때문에(지금까지는), 이러한 노이즈 마케팅 및 티저 마케팅이 상당히 잘 먹혀들어가는 경향이 있습니다. 한때 상당한 물의를 일으켰던 E3 '단테스 인페르노'에 대한 기독교 보수주의자들의 피켓 시위처럼 꾸몄던 EA의 노이즈 마케팅, 바이오 쇼크에서 나왔던 아카디아 포도주의 빈 병 안에 편지를 넣어 해변에 뿌렸던 바이오 쇼크 2 홍보, 이미 이쪽 업계에서는 전설이자 신화가 되어버린 팀 포트리스 2의 업데이트 홍보, '사외 유출'이라는 이름 아래 등장하는 각종 데뷔 트레일러 등은 게임계에서 노이즈 마케팅의 형식을 상당히 적극적으로 사용하고 있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심지어 그 어떤 대중문화보다 노이즈 마케팅을 활용하는 곳이 게임계라고 할 수 있을 정도입니다.

또한 현재 거대화되고 있는 영화 프랜차이즈 또한 게임에 많은 영향을 주었습니다. 과거 '스타워즈'에서부터 지금 '매트릭스', '반지의 제왕'까지 긴 내용의 블록버스터를 3부작 등으로 쪼개서 내거나, 다양한 미디어(게임, 영화, 소설, 드라마 등)들을 연결하여 컨텐츠의 복합적 사용을 도모하는 원소스 멀티유즈의 기법이 게임에서도 심심치 않게 보인다는 점입니다.

매스 이펙트 트릴로지 같은 경우, 1편 발매 이후 '3부작을 기획했었다'라고 선언하였죠. 그 이후, 바이오웨어는 매스 이펙트 소설, 만화, 아이폰 게임 등을 내면서 지속적인 스핀 오프를 발매하였고, 2편 발매 이후인 현재에는 트릴로지 이외의 정식 스핀오프를 낼 생각이 있다고 공식적으로 밝혔습니다. 또한 동회사의 드래곤 에이지:오리진 도 그렇습니다. 그 이외, 데드 스페이스와 단테스 인페르노는 만화 및 애니메이션을 발매하였고, 유명 게임 바이오 하자드 시리즈는 영화화 되었죠.

표현 방식에서부터 마케팅에 이르기까지, 게임은 영화에게서부터 많은 것을 차용하였습니다. 앞으로 게임이 영화로부터 어떤 것을 가져오고, 어떤 모습을 취할 것인지 기대가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