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담/사색의 장


(본문과는 하등 관계 없는 짤방)

 대중문화가 추구하는 것은 무엇인가? 혹은 소설, 영화 등의 문학이란 장르의 목표는 무엇인가? 라는 질문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그것은 대중문화가 가지고 있는 본질적인 속성을 파악하도록 도움을 줄 뿐만이 아니라, 어떤 작품이 좋은 작품인가를 구분하는 기준이기도 합니다. 이에 대해서 많은 정의와 이야기가 있을수 있지만, 여기서 인용하고자 하는 정의는 '문학 작품이란 인간의 욕망이 투영된 것이다'라는 문학교과서의 구절입니다.

 이는 문학 뿐만 아니라, 영화 만화 애니메이션 게임 등의 대중문화 전반에도 적용할 수 있습니다. 아니, 문학 보다도 대중문화에서야 말로 이러한 원칙이 더 잘지켜집니다. 이는 대중문화라는 문화의 속성 자체가 상업적이고, 더 많이 팔기 위해서는 대중들의 욕망을 잘 짚어내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대중문화가 대중의 욕망을 잘 반영한 사례로는 공포영화의 트렌드가 있습니다. 처음 공포영화의 태동기인 1930년대 유니버설에서 만든 공포영화들이 서유럽이나 미국을 벗어난 외부의 세계에 대한 공포를 보여주었습니다. 그러나 1960, 70년대의 공포영화를 대표하는 좀비 등의 크리쳐 물이나 살인마 물은 당시 냉전시기에 누구나 소련의 스파이일수 있다는 공포(신체 강탈자), 아무 생각없는 대중의 위험성(좀비물), 일탈하는 청소년들에 대한 징벌(살인마물) 등으로 표상됩니다. 그리고 2000년대에 들어서는 일본에서 불어온 일본풍 호러인 링, 주온 등이 강세인데, 이는 무차별적인 저주(주온)와 미디어에 의해 복제되는 공포(링)에 대한 두려움을 나타냅니다.

 이런식으로 대중문화는 다양한 대중의 욕망을 반영합니다. 그리고 이를 가장 잘 반영하거나 짚어내는 작품은 큰 흥행을 거두고 역사에 남게 되죠. 그러나 이는 대중문화에만 국한 된 것이 아닙니다. 대중 문화 뿐만 아니라, 순수 예술의 분야에 있어서도 인간에 잠재되어 있는, 혹은 경험하였던 부분을 잘 반영하고 공감을 이끌어낸다면 훌륭한 순수 예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이 인간이 원하는 욕망이 아닌, 인간의 추한 부분이나 인간이 외면하고 싶어하는 부분 등을 밝혀낸다는 점에서는 대중문화와 구별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론적으로는 대중문화에 한계란 존재할 수 없습니다. 대중문화 자체가 인간의 욕망에 맞추어서 변하고, 그러한 욕망이 있는 한 대중문화는 지속적으로 그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해 노력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대중문화 자체에 제한을 두는 등의 행위는 결과적으로 보면 어리석은 짓입니다. 그러나 딱 한가지, 대중문화에 금기ㅡ그러나 잘 지켜지지 않는 금기ㅡ가 있다면 그것은 바로 '돈을 위해서 창작하지 마라'(스티븐 킹의 '유혹하는 글쓰기' 중)라는 겁니다.

 물론 대중문화라는 존재 자체가 대중에게 더 많이 팔아서 이윤을 극대화한다는 자본주의의 논리가 개입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대중문화를 즐기는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대중문화를 통해서 자신의 욕망이 대리만족되거나 새로운 경험을 통해서 즐거움을 얻는 것을 목적으로 대중문화를 즐깁니다. 즉, 자본이나 이윤 등의 본질적이고 현실적인 대중-자본가/예술가의 관계와 상관 없이, 대중은 즐기기 위해서 대중문화를 소비합니다. 그리고 만약 자신이 즐기는 만화/영화/게임/애니메이션/소설 등이 자신들의 돈을 갈취하기 위한 것이라는 의도가 노골적으로 드러난 경우에는 대중은 분노합니다. 이는 대중과 대중문화 사이의 약속을 위반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대체로 대중문화는 대중의 돈을 갈취하기 위한 모습을 노골적으로 드러내지 않습니다. 그대신 그들은 대중을 '기망'합니다. 마치 이것이 대중이 원하는 것처럼 속이기도 하고, 쉽게 돈을 벌기 위해서 대중적으로 통하는 코드를 대충 배끼거나 쑤셔넣는가 하면, 심지어는 상업적인 트렌드를 만들어내기 위해서 대중들에게 취향을 강요하고 없는 욕망을 만들어내기까지도 합니다. 이런 식의 대중문화의 '대중 기망 전술'은 단시간적인 입장에서 본다면 대단히 효과적이며 돈이 됩니다.

 그러나 장기적인, 좀더 나아가서 역사적인 입장에서 본다면 항상 승리하는 것은 자본가들이 아닌 대중들입니다. 이렇게 만들어지고 기망되어진 욕망은 절대로 시간이 지나서도 살아남지를 못합니다. 시간이 지나서도 살아남는 것은 정말로 대중들의 마음에 와닿는 작품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작품들은 시대를 뛰어넘어서 대중들에게 어필하고 성공합니다. 셰익스피어를 예를 들어보죠. 우리는 셰익스피어를 가리켜 고전문학의 진수라고 하지만, 그가 현존했던 시기에 그는 연극이라는 질 낮은(당시 귀족들 눈으로 본다면) 예술이나 하는 딴따라에 불과했습니다. 그러나 당시의 '고귀한 예술'보다 우리가 셰익스피어를 더 잘 기억하고, 많은 대중 문학 작품에서 그의 모습을 엿볼 수 있는 것은 작품속에 인간의 욕망, 인간의 희로애락이 잘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물론 작품을 써서 돈을 벌고자 한 셰익스피어의 욕망도 작품에 들어있겠지만, 지금 우리가 감상하는 그의 작품들은 돈만을 벌기 위한 것 그 이상의 무엇이 있습니다.  

 스티븐 킹은 자신의 창작론에 대해서 이렇게 이야기 했습니다. 돈을 벌기 위해서 쓰는 게 아니라(물론 돈을 벌고자 하는 욕망이 아예 없는건 아니지만) 자기가 쓰고 싶어서 쓰는 것이라고. 여태까지 어떤 글이든 간에 자신은 한번도 자신이 내키지 않는 글은 쓴 적이 없다고. 저도 이 이야기에 동의합니다. 결과적으로 진정 성공한 글이나 작품이란 것은 돈을 넘어서 자신이 무언가 하고 싶은것, 이야기하고 싶은 것을 만들어내는 것이라고 봅니다. 그리고 작품 속에서 자신의 욕망과 대중의 욕망이 서로 접점이 생긴다면 그것이야 말로 베스트셀러이며, 천만관객 돌파이며, 돈이 되는 작품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운이 좋다면 셰익스피어처럼 역사에 길이 남는 작품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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