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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과는 하등 관계 없는 짤방)

 대중문화가 추구하는 것은 무엇인가? 혹은 소설, 영화 등의 문학이란 장르의 목표는 무엇인가? 라는 질문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그것은 대중문화가 가지고 있는 본질적인 속성을 파악하도록 도움을 줄 뿐만이 아니라, 어떤 작품이 좋은 작품인가를 구분하는 기준이기도 합니다. 이에 대해서 많은 정의와 이야기가 있을수 있지만, 여기서 인용하고자 하는 정의는 '문학 작품이란 인간의 욕망이 투영된 것이다'라는 문학교과서의 구절입니다.

 이는 문학 뿐만 아니라, 영화 만화 애니메이션 게임 등의 대중문화 전반에도 적용할 수 있습니다. 아니, 문학 보다도 대중문화에서야 말로 이러한 원칙이 더 잘지켜집니다. 이는 대중문화라는 문화의 속성 자체가 상업적이고, 더 많이 팔기 위해서는 대중들의 욕망을 잘 짚어내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대중문화가 대중의 욕망을 잘 반영한 사례로는 공포영화의 트렌드가 있습니다. 처음 공포영화의 태동기인 1930년대 유니버설에서 만든 공포영화들이 서유럽이나 미국을 벗어난 외부의 세계에 대한 공포를 보여주었습니다. 그러나 1960, 70년대의 공포영화를 대표하는 좀비 등의 크리쳐 물이나 살인마 물은 당시 냉전시기에 누구나 소련의 스파이일수 있다는 공포(신체 강탈자), 아무 생각없는 대중의 위험성(좀비물), 일탈하는 청소년들에 대한 징벌(살인마물) 등으로 표상됩니다. 그리고 2000년대에 들어서는 일본에서 불어온 일본풍 호러인 링, 주온 등이 강세인데, 이는 무차별적인 저주(주온)와 미디어에 의해 복제되는 공포(링)에 대한 두려움을 나타냅니다.

 이런식으로 대중문화는 다양한 대중의 욕망을 반영합니다. 그리고 이를 가장 잘 반영하거나 짚어내는 작품은 큰 흥행을 거두고 역사에 남게 되죠. 그러나 이는 대중문화에만 국한 된 것이 아닙니다. 대중 문화 뿐만 아니라, 순수 예술의 분야에 있어서도 인간에 잠재되어 있는, 혹은 경험하였던 부분을 잘 반영하고 공감을 이끌어낸다면 훌륭한 순수 예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이 인간이 원하는 욕망이 아닌, 인간의 추한 부분이나 인간이 외면하고 싶어하는 부분 등을 밝혀낸다는 점에서는 대중문화와 구별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론적으로는 대중문화에 한계란 존재할 수 없습니다. 대중문화 자체가 인간의 욕망에 맞추어서 변하고, 그러한 욕망이 있는 한 대중문화는 지속적으로 그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해 노력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대중문화 자체에 제한을 두는 등의 행위는 결과적으로 보면 어리석은 짓입니다. 그러나 딱 한가지, 대중문화에 금기ㅡ그러나 잘 지켜지지 않는 금기ㅡ가 있다면 그것은 바로 '돈을 위해서 창작하지 마라'(스티븐 킹의 '유혹하는 글쓰기' 중)라는 겁니다.

 물론 대중문화라는 존재 자체가 대중에게 더 많이 팔아서 이윤을 극대화한다는 자본주의의 논리가 개입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대중문화를 즐기는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대중문화를 통해서 자신의 욕망이 대리만족되거나 새로운 경험을 통해서 즐거움을 얻는 것을 목적으로 대중문화를 즐깁니다. 즉, 자본이나 이윤 등의 본질적이고 현실적인 대중-자본가/예술가의 관계와 상관 없이, 대중은 즐기기 위해서 대중문화를 소비합니다. 그리고 만약 자신이 즐기는 만화/영화/게임/애니메이션/소설 등이 자신들의 돈을 갈취하기 위한 것이라는 의도가 노골적으로 드러난 경우에는 대중은 분노합니다. 이는 대중과 대중문화 사이의 약속을 위반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대체로 대중문화는 대중의 돈을 갈취하기 위한 모습을 노골적으로 드러내지 않습니다. 그대신 그들은 대중을 '기망'합니다. 마치 이것이 대중이 원하는 것처럼 속이기도 하고, 쉽게 돈을 벌기 위해서 대중적으로 통하는 코드를 대충 배끼거나 쑤셔넣는가 하면, 심지어는 상업적인 트렌드를 만들어내기 위해서 대중들에게 취향을 강요하고 없는 욕망을 만들어내기까지도 합니다. 이런 식의 대중문화의 '대중 기망 전술'은 단시간적인 입장에서 본다면 대단히 효과적이며 돈이 됩니다.

 그러나 장기적인, 좀더 나아가서 역사적인 입장에서 본다면 항상 승리하는 것은 자본가들이 아닌 대중들입니다. 이렇게 만들어지고 기망되어진 욕망은 절대로 시간이 지나서도 살아남지를 못합니다. 시간이 지나서도 살아남는 것은 정말로 대중들의 마음에 와닿는 작품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작품들은 시대를 뛰어넘어서 대중들에게 어필하고 성공합니다. 셰익스피어를 예를 들어보죠. 우리는 셰익스피어를 가리켜 고전문학의 진수라고 하지만, 그가 현존했던 시기에 그는 연극이라는 질 낮은(당시 귀족들 눈으로 본다면) 예술이나 하는 딴따라에 불과했습니다. 그러나 당시의 '고귀한 예술'보다 우리가 셰익스피어를 더 잘 기억하고, 많은 대중 문학 작품에서 그의 모습을 엿볼 수 있는 것은 작품속에 인간의 욕망, 인간의 희로애락이 잘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물론 작품을 써서 돈을 벌고자 한 셰익스피어의 욕망도 작품에 들어있겠지만, 지금 우리가 감상하는 그의 작품들은 돈만을 벌기 위한 것 그 이상의 무엇이 있습니다.  

 스티븐 킹은 자신의 창작론에 대해서 이렇게 이야기 했습니다. 돈을 벌기 위해서 쓰는 게 아니라(물론 돈을 벌고자 하는 욕망이 아예 없는건 아니지만) 자기가 쓰고 싶어서 쓰는 것이라고. 여태까지 어떤 글이든 간에 자신은 한번도 자신이 내키지 않는 글은 쓴 적이 없다고. 저도 이 이야기에 동의합니다. 결과적으로 진정 성공한 글이나 작품이란 것은 돈을 넘어서 자신이 무언가 하고 싶은것, 이야기하고 싶은 것을 만들어내는 것이라고 봅니다. 그리고 작품 속에서 자신의 욕망과 대중의 욕망이 서로 접점이 생긴다면 그것이야 말로 베스트셀러이며, 천만관객 돌파이며, 돈이 되는 작품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운이 좋다면 셰익스피어처럼 역사에 길이 남는 작품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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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xenosium.com/222

kimtag님이 제게 보내주신 편견타파 릴레이입니다. 제가 처음 시작한 분에서부터 13번째더군요. 많은 분들이 참여했고, 좋은 글들을 남겨주셨으니 저도 바톤을 이어받아 열심히 작성하도록 하겠습니다^^

 저는 모 대학의 법학과에 재학중입니다. 3년동안 대학교 들어와서 다양한 학문과 수업을 듣고 많은 사람을 접했습니다. 제가 대학에 들어와서 세상을 보는 안목과 시야를 넓히고, 여러가지 고정 관념이나 편견없이 사람들과 만나는 것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대학이란 공간은 제게 편견이나 고정관념을 벗어나서 세상을 보도록 도움을 준 공간이었습니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 또한 제 전공이나 생활, 동아리 등에 대해 다른 사람들이 여러가지 오해나 편견을 가지기도 하였습니다. 제가 대학생활을 하면서 만난 가장 대표적인 편견은 '법학은 외우는 학문이다.'와 '오타쿠는 안된다.'입니다.

1)법학은 외우는 학문이다.

 이건 대학교 외부의 제 가족이나 친척, 옛 고등학교 친구들에서부터 심지어 학교내에서 만나는 사람들까지 법학을 듣지 않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편견입니다. 법학을 법전을 외우는 학문으로 인식하더군요. 몇몇 분들은 제게 '(소법전을 보여주면서)이거 다 외우고 들어가면 법학 공부는 끝나는거야?'라고 묻기도 했습니다. 사실, 이러한 편견이 생길수 밖에 없는 이유는 바로 사법고시라는 시험의 탓이 큽니다. 사법고시라는 시험 자체가 공부량이 많아서 공부를 몇년씩 해야한다는 점에서 생긴 오해입니다.

 그러나 법학은 법조문만 외우는 학문이 아닙니다. 물론 법조문이 법학에 있어서 중요한 기준이 되는 요소이기는 하지만, 법조문만으로는 법학이 성립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법조문의 해석 및 이해는 법학의 일부에 지나지 않습니다. 법학의 분류는 크게 법의 근원에 깔려있는 사상을 연구하고 법 내부의 사상이 어디로 흘러가고 어디로 가야하는가를 탐구하는 법철학, 법조문의 해석과 이해를 목표로 하고 이를 현실에 적용하는 해석학, 현재 법조문이 가지고 있는 문제점을 지적하고 어떤 식으로 변하는가를 탐구하는 입법정책학, 법과 사회 사이의 관계를 탐구하는 법사회학, 법의 변천사를 연구하고 역사적 의의를 탐구하는 법사학 등 법학 내부에서도 법에 대한 다양한 형태의 해석과 분석, 학문적 접근이 존재합니다.

 실제 법대의 과정에서도 다양한 법학을 볼 수 있고, 헌법이나 형법, 민법 등의 주요 수업에서도 기존의 법조문 및 판례 분석 뿐만 아니라 왜 그런 해석이 나와야 하며, 이러한 해석은 어떤 문제를 가지고 있는지 앞으로 조문이 어떤식으로 바뀌어야 하는지를 다룹니다. 법학의 그 어떤 분야도 단순한 법조문 해석 및 그 해석을 암기하는 것만으로 구성되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사법고시는 외워서 치는 시험이다'라고 한다면, 그건 맞는 말입니다. 사법고시 시험은 법조문의 의미와 그에 대한 판례의 해석, 그리고 문제 상황에 대한 적용을 중점적으로 묻는 시험입니다. 게다가 사법고시는 '대한민국 대법원의 판례 입장'이라는 모법답안이 있기 때문에, 이를 중심으로 판례입장을 외우고 숙지하면서 '기타 학설'을 부가적으로 첨가하는 것이 주된 공부 방법입니다. 하지만, 이는 학문의 범주라기 보다는 일종의 시험 준비식의 공부이며, 법학 자체와는 큰 관계가 없습니다. 오히려 최근 몇년 간의 사법고시 수석 및 합격생들은 대학에서 순수하게 법학을 전공한 법대생 보다 신림동 고시촌에서 몇년동안 공부한 학생들이 더 많다는 점은 이를 반증합니다.

 법학에 있어서 가장 이상적인 상황은 사회적인 요구와 정의가 균형을 이루면서 법의 3요소ㅡ법적안정성, 정의, 합목적성ㅡ를 모두 만족시키는 겁니다. 따라서 사회적 요구가 성문화된 법조문만으로는 법학이 성립될 수 없는 것이죠. 게다가 법학은 법조문이나 판례해석을 외우는 것이 아닌, 법조문의 의미와 요건을 이해하고 현상에 적용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즉, 법학은 외우는 학문이 절대 아니라는거죠.


2)'오타쿠'는 안된다.

 제가 관심있는 분야가 영화, 소설, 애니, 게임, 음식, 음악, 여기에 유희왕 OCG까지 추가한다면 뭐...저 또한 오타쿠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일단, 살면서 직접적으로 오타쿠를 차별하거나 무시하는 장면을 직접 만난적은 없었습니다. 그런데 제 친구들의 이야기를 들으니, 몇몇 사람들은 오타쿠라는 존재를 대단히 싫어하더군요. 

 사람들이 오타쿠를 싫어하는 이유는 대단히 추상적입니다.

 음...오타쿠는 말야, 현실감각이 없어. 구체적으로 짚어서 이야기할 수 없지만, 그냥 '안되는' 인간들이야. 근거는 없다고. 근데 개네들 좀 재수없고 역겹잖아? 그러니까 우리가 나서서 까고 없애야 할 거 같아. 어? 너 그 분야에서 좀 뭐 아는거 같은데, 이런 더러운 오타쿠 새끼.

 간단하게 두가지 측면에서 반박하겠습니다. 첫째, 오타쿠라는 집단의 스펙트럼은 엄청나게 넓습니다. 우리가 간단하게 오타쿠라고 부르지만, 오타쿠라는 단어 자체가 '무엇 하나에 심도있는 이해나 지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을 가리키는 말이므로 다양한 종류의 오타쿠가 존재할 수 있습니다. 물론 사람들이 오타쿠라는 말을 일본 문화에 심취한 사람으로 사용하고 있지만(정확한 용어사용은 아님에도 불구하고), 일본 문화에 심취한 사람 중에서도 다양한 사람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말그대로 세상과 단절된 소위 중증 오타쿠이기도 하지만, 어떤 사람은 또 그렇지 않고 사회생활도 충실히 하며, 열심히 사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사람들을 모두 다 오타쿠란 범주에 싸잡아 넣고나서 다 '안되는' 인간으로 분류하는 건 문제가 있습니다.

 두번째, 소위 오타쿠 담론에는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라는 유치한 사고가 들어있습니다. 사실, 어느 누구라도 취미생활이나 관심있는 분야 하나 쯤은 있는 것이고 그에 대해서 어느정도의 지식이나 열정을 가질 수 있습니다. 저도 살면서, '우와, 저런걸 어떻게 알지?'나 '정말 대단한데?'라는 느낌을 받은적이 한 둘이 아닙니다. 그것은 비단 일본 문화만이 아닌 스포츠, 한국 드라마, 연애계, 소설, 영화, 음악 등등의 다양한 분야에서 느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사람들은 자신들을 가리켜 '고상한 매니아'라고 칭하고, 다른 사람들은 '더러운 오타쿠'라고 칭하는 경향을 종종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본질적으로 자신이 그 분야에 대해서 아는 것이나 다른 사람이 다른 분야에서 잘 아는 것은 큰 차이가 없습니다. 그리고 제 3자의 입장에서 상황을 본다면...바보같아 보입니다.

 저는 다양한 사람들을 봐왔고, 각자 나름대로의 오덕질을 존중합니다(물론 그 사람이 다른 사람을 존중하고, 무례하게 굴지않는다는 선에서) 타인의 취향은 존중받아야 하며, 취향만으로 사람을 매도하고 비난하는 것은 부당한 편견이라고 봅니다. 



 많이 부족한 글이지만, 여기까지 하도록 하고...바톤을 넘길 3분을 지정하겠습니다.

saddle님 하고, Laika_09님, 그리고 giantroot님에게 전달하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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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16대 대통령 노무현

1946년 8월 6일 - 2009년 5월 23일


사실 저는 정치에 관심이 없는 사람입니다. 아니, 정확히 표현하자면 관심을 안가지기 위해서 노력하는 사람입니다. 제가 대학교 들어오고 철들면서 깨달은 것은 정치 이야기로 입씨름 하는 것은 대단히 소모적이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국민이 주장해보았자, 대통령이나 국회의원들은 국민의 이야기에 귀기울이지 않는다고 성급하게 판단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당시(재수~대학교 1,2학년) 제게 있어 노무현 대통령은 대통령 당선 이후 기대만큼 정치를 제대로 못하는 사람으로 보았습니다. 아니, 솔직히 이야기해서는 그 분이 대통령이었는지도 의심스러웠습니다. 마치 옆집 아저씨 같은 털털한 인상에, 행동도 대통령 답지 않게 거침 없었습니다. 처음에는 '일도 못하면서 하는 행동하고는...'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그때는 그러한 이미지를 가지는 의미를 잘 몰랐습니다. 당신이 퇴임하고 나서 현정권이 들어서자, 저는 당신이 우리 정치사에 있어서 차지했던 비중을 뼈저리게 실감하였습니다. 그것은 대통령이 국민의 종이며 국민을 위해 낮은 자세로 임하여야 한다는 것, 그리고 대통령도 우리와 같은 사람이라는 것이었습니다. 현대 한국 사회가 아직도 극복하지 못하고 있던 유신의 잔재, '대통령은 국가의 왕이며 수장이자 신성불가침의 영역이다'라는 전제를 무너뜨린 것이 바로 당신이었습니다.

 당신이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듣고, 저는 심한 충격과 슬픔을 느꼈습니다. 당신은 그렇게 돌아가셔야 할 분이 아니십니다. 우리나라의 소위 '전직 대통령'들이란 작자들은 수백, 수천명 죽이고도 수천억 가로채고 통장에 29만원 밖에 없다고 배째라는 인간이나, 자식이 수백억원의 뇌물 수수를 받는 사람들이었죠. 그러면서 그들은 한번도, 자신의 죄에 대해 부끄러워 하지도 뉘우치지도 않았습니다. 보통 사람들도 그것이 그저 당연한 것이니 하고 받아들였습니다.

 하지만 당신은 달랐습니다. 당신께서는 당신이 세우신 청렴결백이라는 그 원칙을 지키지 못하셨기에, 그 때문에 대단히 고통스러워 하셨습니다. 그러한 고통이 당신을 자살로 몰고 가신 것이겠죠. 여태까지 어떤 '전직 대통령'도 이에 대해서 고통스러워 하고 반성하려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당신은 자신이 세운 원칙에 끝까지 충실하려 하셨고 그 결과 그러한 극단적인 선택을 하셨습니다.

 물론, 저는 당신의 마지막 행동을 정당화 할 생각은 없습니다. 당신이 하신 행동은 당장 다음주 월요일부터 전국적인 분노와 소란ㅡ어떤 이들은 당신을 이렇게 까지 몰아낸 사람들을, 어떤 이들은 당신에게ㅡ을 불러 일으킬 것입니다. 그리고 이는 국내 뿐만이 아니라 국제적으로도 큰 문제가 될 것입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당신께서는 그렇게 돌아가실 분은 아니었다는 겁니다. 당신이 마지막에 하신 행동은 올바르다고 할 수 없지만, 적어도 이 나라에서는 당신을 매도하고 욕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당신께서는 더 이상 이 세상에 계시지 않습니다. 하지만 저희들은 당신을 기억할 것입니다. 편히 쉬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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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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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정말로 잊지 말아야 할 것. 우리가 해야 할 것. 우리가 지켜야 할 것.
정말이지 오랜만에 진심으로 그것을 느낀 것 같습니다.
보면서 눈물이 조금씩 흘러나오는 것을 막을수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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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로 87년 6월 민주 항쟁 21주기 가 되었습니다.
 우리 아버지 세대가 지켜낸 그 소중한 백지,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우리만의 소중한 축제.
우리 세대는 절대로 잊지 말아야 하고 지켜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우리 다음 세대에게 온전히 물려줘야 할 것입니다.

이번 4월 9일, 국회의원 총선.
우리의 소중한 한표를 행사합시다.

ps.만화가가 공룡둘리의 슬픈 오마주를 그린 분이시네요.
ps2.저기 나오신 빛나는 대머리는 아직도 역사의 심판을 받지 않았더군요.
언제까지 안받고 잘 사는지 한번 두고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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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어쩌다가 이런 사람이 득표율 50% 가까이 나왔냐고 물어보면 좀 그렇나?

솔직히 된 거는 어쩔수 없다는 건 인정하지만, BBK 관련 동영상이 대선 코앞에서 터져도 어떻게 된게 지지율보다 득표율이 더 올라가냐고 대한민국 국민들에게 물어보는 나는 대세를 이해하지 못하는것 뿐인가? 솔직히 득표율 과반은 어디서 튀어나온거냐? 경영인이니까, 어느정도 그런 비리가 있어도 다 용납할 수 있다는건가? 옛날에 학생운동, 데모 하던 국민들은 다 어디가고, 이제는 이런 비리를 "경영인이니까, 그 정도는 인정해야 되지 않겠나?"라는 논리로 받아들이는 건가? 이러한 논리가 대한민국 기성세대가 보여주는 정치 관념이라는 것인가?

솔직히 나는 이명박 후보가 대통령이 되는것이 우리나라에 크게 문제가 된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원래, 국가는 싸이클에 따라 어느 정도 정치 신념이 바뀌는 것이, 그리고 이번에는 한나라당으로 대변되는 소위 '보수'가 정권을 잡을 때라는 것도 인정한다.

그런데 왜 하필 이명박인가? 왜 50%가 넘는 대한민국 국민들은 이명박 후보를 지지하는가? 어느 분의 말씀처럼, '단지 노무현식의 리더쉽이 싫어서'라는 그런 유치한 이유라면 이야기 하지 않는게 좋다. '나한테 어떤 이익이 돌아올것인가?'라는 이기적인 발상으로 뽑았다고 하면, 그것도 사양이다. 도대체 왜 이명박이 될 이유가 어디 있었다는 건가? 도대체 왜?

노무현 대통령이 여태까지 썩 잘하지 못한 것은 사실이다. 물론 노무현 대통령에게 실망을 한 국민들도 많이 있을 것이다. '진보'와 '보수'를 떠나서 노무현 이외의 다른 정치세력에게 권력을 주어야 겠다는 국민들의 생각들도 어느정도 이해한다. 그러나, 이건 좀 아니다. 서울시장 때의 청계천 정책이나 버스 차선 개선 등의 정책은 나름대로 그 효력이 있었다고 인정하자.(물론 이에 대한 반론이 많을 거라 생각하지만, 가시적으로 어느정도 효력이 있었으니, 인정할건 인정해야 한다.)그런데, 이명박 후보가 옛날부터 보여왔던 언행들을 보자. 이것들을 보고 있으면,'과연 이 사람이 한나라의 대통령의 후보라는 사람으로서의 자기 철학이나 신념이 있는걸까?'라는 생각이 든다. 자기 세력이외의 다른 세력을 포옹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이 나라의 대통령으로서의 자세라면, 이명박 후보는 그것이 결여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BBK 사건. 이걸 몇몇 사람들은 '경영인이니까, 어느정도 비리는 눈감아 줘야 하는거 아닌가?'라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 물론 정치가들이 어느정도 뒤가 구린 돈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은 인정한다.(전혀 그런 게 없을 거 같은 민주 노동당도 비리가 있었던 걸 생각하라)그런데, BBK 사건은 사람들이 피해를 입은 사기 사건이다. 이는 엄연히 피해자가 있는 사건인 것이다. 이런 사건에 연루 되었다고 하면, 누구나가 이를 부정하려 한다는 것은 인정한다. 그런데, 뻔히 신문에 그러한 내용이 실린 사건을 가지고, 정황 증거만 보아도 다들 이상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는 것인데, 그걸 대놓고 '나는 관계없다.'라는 걸 이야기하는 건 좀 그렇지 않은가? 차라리, "아, 미안하다. 그거 내꺼였는데, 김경준에게 속아서 그렇게 되는 줄 몰랐다. 반성하는 의미로 BBK로 인해 얻은 이익을 모두 사회에 환원하겠다."라는 쇼라도 보여줬으면, 욕은 덜 쳐먹을 것이다. 솔직히 본인도 끝까지 이명박 후보의 선의를 믿었다. 그런데, 이틀전에 터진 그 동영상 사건은 본인으로 하여금 경악과 분노에 차게 만들었다. 쉽게 이야기해서, 대통령 후보라는 사람이 자신을 앞으로 5년동안 믿고 따를 전국민들에게 사기를 쳤다는 건데, 도대체 이를 어떻게 받아들이란 말인가?

여기까지는 어찌 어찌 해서 인정할 수 있다 치자. 그렇다면, 도대체 위와같은 문제점을 가지고 있는 후보가 48%라는 압도적인 득표율을 보여주는 이유는 무엇인가? 본인은 이건 이명박 후보의 문제라기 보다는 우리 국민들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즉, 10년동안 소위 '진보' 정권에 권력을 주어보았으니, 이제 5년간은 소위 '보수' 정권에 권력을 주어 보자는 결과가 왜 하필이면 이명박 후보냐는 것이다. 위에서 지적한 문제 외에도 여러 문제가 많은 그 후보를 그것도 득표율 48%로 뽑아주었다는 점 자체에 나는 문제를 제기하고자 하는 것이다.

물론 이명박 후보가 대통령이 된다고 해서, 대한민국이 끝장 나는것도 아니다. 그리고, 이명박 후보가 대통령 되는 것이 기정 사실이 되었기 때문에, 이제는 이명박 대통령의 정책에 어느정도 도움을 주어야 해야한다. 그러나 이번 선거를 통해 나는 우리 국민들의 정치 의식이라는 것에 대해서 매우 실망하였다고 할 수있다. 본인은 다음 대선까지 이명박 후보가 자신의 직책을 잘 수행하는지 지켜보겠다. 그리고 내가 지금 까지 지적했던 문제점들이 이명박 후보가 집권하는 동안 불거져 나와서, 국민을 실망시키는 일이 없도록 기도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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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히 유쾌한 이야기가 아니니 쩝...)
 

별로 유쾌하지 않은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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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전: http://kr.news.yahoo.com/shellview.htm?linkid=33&articleid=2007090415081729740

정말이지, 이게 사실이라면 좀 심한거 아닙니까? 많은 네티즌들이 이번 아프간 사건으로 기독교를 비판하고 당사자들을 비판하고, 또 한편으로 인질이 무사히 귀환하기를 빌었는데, 그러고서는 고작 하는 이야기가 "하나님이 이 일을 어떻게 해결하실지 궁금해서 재밌다"니. 이건 주말 드라마나 애니메이션이 아닙니다. 또한 한명이 아닌 19명의 생명이 걸린 문제입니다. 게다가 남 이야기도 아니고, 자기 가족 이야기 입니다. 밖에서 남들은 이 문제에 대해서 심각하게 고민하고 해결책을 찾고 있는 동안, 남도 아니고 가족이 "하나님이 어떻게 하실지 궁금하다"라고 말할 수 있는 겁니까?

솔직히 저는 이 기사를 믿고 싶지 않습니다. 우리나라 언론들이 종종 선정적인 기사로 사람들에게 진실을 왜곡시켜 보여준다는 사실은 거의 모든 사람들이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언제나 그렇듯, 왜곡되어 있는 사건 속에도 진실은 어느정도 있기 마련입니다. 이러한 기사가 나올만한 상황이나 사건이 있었기에 이런 이야기가 나오는 거라 생각합니다. 그렇게 보고 이를 어느정도 사실이라 받아들였을 때, 도대체 반성도 안하는 이 사람들은 어느 문화, 아니 어느 종족인지 궁금하군요. 저 또한 마음속으로 무사히 돌아오길 기원했는데, 무사히 돌아오니까 하는말들이 모양새가 고작 그렇다니...... 항상 기독교에 대해서는 실망을 금치 않을수 없군요.

ps. 밑에 댓글에 "영적인 해석과 사회적인 해석이 다를뿐 문제가 없다"라고 쓴 사람도 있군요. 도대체가 영적인 해석이란게 뭔지, 정확히 논리적으로 증명해보시지 않겠습니까? 그래봤자, 대답은 "인간의 인식으로는 신의 영역을 이해할 수 없다"라는 식의 논리를 펼치겠지요. 하지만, 저에게는 스스로 치열하게 고민하고 파고듬이 없이, 단지 저쪽 피안으로 도망가기 위한 자기기만에 불과해 보이지만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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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디악'(2007)은 지난 1960년대에서 1970년대 사이에 일어난 조디악 연쇄 살인 사건을 다룬 영화입니다. 여기서 조디악이란 이름은 범인이 신문사에 편지를 보내면서 자신의 이름을 조디악이라 밝혀서 붙여진 이름입니다. 실제 조디악 연쇄 살인 사건은 범인이 잡히지 않은 채로 사건이 종결되었기 때문에, 아직까지도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받고 있는 사건입니다.    

 영화 '조디악'은 이러한 실제 수사기록과 조디악 연쇄 살인 사건을 다룬 책을 기반으로 하고 있습니다. 물론 이러한 류의 영화들은 대부분, 실제 수사 기록 등을 사용하여서 최대한 영화를 객관적으로 만들고, 그리고 그런 객관적인 사실과 사실 사이에 영화적인 상상력을 덧붙입니다. 물론 '조디악' 또한 그러한 영화 공식을 충분히 따르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실제 사건에 바탕을 둔, '조디악' 이전의 영화들과 '조디악' 사이에는 가장 큰 차이점이 있습니다. 과거, '조디악'과 같은 영화들은 그 사건의 연관된 사람들의 감정이나 생각을 따라가면서, '이런 상황에서는 이렇게 생각하지 않았을까?'라는 영화적인 상상력을 덧붙이는 형식을 띄었습니다. 그 대표적인 예로 '살인의 추억'을 들 수가 있습니다. '살인의 추억'같은 영화는 이러한 영화 중에서 아주 잘 만들었다고도 할 수 있는데, 마지막 장면에서 송강호가 가장 범인이라고 의심이 되는 용의자를 잡고 '진짜 네가 아니란 말이야?'라고 묻을 때, 관객들은 바로 그 상황에서 송강호와 같은 입장에서 같은 감정을 느끼게 됩니다. 그러나 '조디악'은 '살인의 추억과는 정반대의 미덕을 보여줍니다. 그것은 바로 관객의 감정이입하는 것을 막는 것입니다. 물론 '조디악'에서도 물론 가장 유력한 용의자(그리고 실제 사건에서도 가장 유력한 용의자)가 나오고, 살인범에 대한 추리가 계속해서 나옵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어느것 하나도 영화 내에서는 지지 받지를 못합니다. 즉, 주인공(조디악 관련 책을 쓴 작가)이 거의 마지막에 그 사건 담당 형사에게 자신의 추리를 보여주며 '이 놈이 범인인 것 같다.'라는 순간, 형사는 곧바로 '당신 주장은 일리가 있지만, 증거가 없다'라고 반박합니다. 계속 이런식으로 누군가가 증거나 그 추리를 내고 살인 사건의 모든 문제가 해결되었다라는 믿음을 등장인물과 관객이 공유하게 되는 순간, 곧바로 누군가에게 반박 당하게 되고, 현실(아직도 조디악 관련 사건이 해결되지 않았고, 사건에 관련된 정황 증거들이 불확실하다는 현실)로 돌아오게 됩니다. 그 결과, 관객들은 영화를 보는 내내 영화와 자기 자신을 동화 시킬 수 없게 되고, 영화 밖에 관찰자로서 남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영화를 보는 동안, 사람들은 어떤 살인사건에 대한 추억을 본다기 보다는, 살인 사건에 관한 기억을 보는것 같은 느낌을 받게 됩니다.

 이게 바로 영화 '조디악'의 가장 큰 미덕이자 장점입니다. 애시당초부터 관객들에게 자신의 관점을, 생각을, 추리를 강요하지 않고 오로지 사실만을 덤덤하게 보여줄 뿐입니다. 마치 다큐멘터리를 보는것 같은 기분입니다. 그 결과, 관객들은 영화를 통해서 조디악 사건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조디악'은 확실히 잘 만든 영화입니다. 영화를 좋아한다면, 한 번쯤 봐도 나쁘지 않을 영화입니다. 그러나 보실 때, 주의 하셔야 하는 점은 이 영화를 그냥 평범한 '스릴러'라고 보지 말아야 한다는 점입니다. 오히려, 영화라기 보다는 조디악 연쇄살인 사건에 대한 다큐멘터리로서 영화를 이해하시고 보는 게, 영화를 감상하는데 크게 지장이 없을거라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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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담/사색의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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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월요일에 [디 워]를 보고 왔습니다. 영화를 짧게 평가 하자면, 그냥 그렇고 연출과 배우연기가 좋지 않은 B급 괴수 영화였습니다. 오히려 제가 보면서 들었던 의문은  '도대체 왜 이 영화가 엄청난 논쟁을 불러 일으켰나?'라는 것입니다. 제가 판단하기에는 [디 워]가 현재까지 500만이란 관객을 끌어들일 수 있는 가장 큰 요인은 인터넷에서 일어난 소모성 논쟁입니다. 그런데 제 생각에는 못 만든 영화이기는 하지만 전설에 남을 쿠소 영화라던가, 정말 멋진 영화라던가라는 논쟁 자체가 너무 지나치지 않은가라는 생각이 듭니다.

제가 이런 소모적인 분쟁을 보면서, 첫번째로 제기하는 의문은 "과연 과거, 현재를 따졌을 때, [디 워]가 이 시대 최악의 쿠소 영화라고 볼 수있는가? 또한 그렇다고 봤을 때, 이런 소모적인 분쟁이 일어날 가치가 있을 정도의 가치를 지니는가?"입니다. 솔직히 [디 워]의 영화 완성도는 엉망입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디 워]가 과거 현재를 따져서 그렇게까지 욕을 쳐먹을 정도로 못만들었냐? 그건 아닙니다. 제 기준에서 보았을때, 현재 나온 영화나 애니의 70%이상은 엉망진창입니다. [디 워]는 그 중에서 단지 더 못 만든 영화에 속할 뿐,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닙니다. 그런데 그 나머지 70%의 영화나 애니에 대한 비판을 찾아보기는 커녕, 오히려 얼마나 잘 만들었는가 칭찬을 늘어 놓더군요. 물론 저도 개인간의 취향차는 존중합니다. 그러나 지금의 대중의 취향이 너무 편중되어 있을 뿐만아니라, 과거에 비해 조금 수준이 떨어진게 아닌가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의미에서 [디 워]에서 일어나는 소모적인 논쟁은 과연 그 만한 가치가 있는가라는 생각이 듭니다.

두번째는 "과연 심형래 감독이 무슨 애국주의 기수라도 되는가?"입니다. 지금 일어나는 논쟁중에서 가장 어이가 없는 부분중에 하나이기도 한데요, 솔직히 영화를 본 사람의 입장에서 심형래 감독이 과연 그만한 재능이 있는지 의심스럽더군요. 분쟁의 소지가 되는 마지막 자막은 감독 자신과 스텝들이 얼마나 고생했는가, 그거 하나만 생각하고 넣은 자막이라고 생각이 듭니다. 애국심 마케팅? 애시당초 부터 과연 그런 마케팅이 있었는지 의심스럽더군요. 아니, 제 의견으로는 그만한 재능이 있는 감독이었다면, 영화부터 그렇게 만들지 않았을 것입니다.

솔직히, 심형래 감독은 단지 자신이 영화를 만들 때 고생한 것만 생각하고 딴 감독이 영화를 만들 때 고생한 것은 전혀 신경쓰지 않았다고 밖에 안보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메스컴 등에서 자신이 고생한 것에 대해 생색을 내고, 그거에 대해 비판을 가하니 '왜 나만 가지고 그래'라며 항변한 걸로 밖에 안보입니다. 물론 그런 주변머리 없음이 모든 죄를 면제하는 건 아니지만, 이만한 논쟁을 불러 일으킬 정도로 대단한 죄인가라는 의문이 듭니다.

세번째로 "심형래 감독이 과연 20년간 영화인으로서 활동해서 구축된 영화 철학, 미학이 있는가?"입니다. 이거 제 입장에서 보면 웃긴 이야기 입니다. 물론 지난 20년간의 심형래 감독의 영화 인생을 부정하는 건 아닙니다. 그런데, 영화 철학이라니. 용가리를 보며, 티라노의 발톱을 보며, '아름다움을 느꼈다.', '철학을 느꼈다'라는 평은 솔직히 찾아볼수 없습니다. 애시당초부터 단어 자체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는거 같은데, 영화 철학이나 미학은 '내가 이영화를 가지고 무엇을 표현하겠다'라는 목적의식입니다. 물론  '나는 영화를 어떻게 만들어서 관객들을 즐겁게 하겠다' 라는 영화 철학이나 미학이 있을수도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이야기하기에는 나름대로 자기 영화 미학과 철학을 구축하고 있는 박찬욱 감독이나 봉준호 감독, 피터 잭슨 감독과 비교 할 수 있습니까? 그렇게 보았을 때, 과연 그럴만한 가치가 있는 철학인지는 매우 의심스럽습니다. 게다가 영화가 보여주는 수준이라는 게, 그렇게 까지 자신의 철학과 미학을 제대로 보여줬는지도 의심스럽습니다. 아무리 자신이 그런 미학과 철학을 가지고 있다 한들, 그것을 표현할 만한 재능이 없다면 그건 다 쓸모 없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디 워]는 엉망인 영화입니다.

결론을 이야기 하자면 [디 워]는 인터넷 상에서 그렇게 심한 논쟁을 불러 일으킬 만한 영화는 못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디워에 대한 논쟁이 이렇게 까지 끊임없이 일어나는 것에 대해, 저는 잘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그렇게 까지 [디 워]에 대한 논쟁을 하고 싶으면, 먼저 과거 온갖 쿠소 영화들에 대해서 먼저 까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여태까지 별 말 없이 영화 잘 보던 사람들이 왜 하필이면 그 많고 많은 영화 중에 [디 워]를 까고 있는지는 저에게 미스테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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