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니, 만화, 영화 이야기

- 약혼자가 아닌 여자는 뭐라고 불렀소? 하워드?
- 아뇨, 약혼자가 아닌 여자는 하워드라고 부르지 않고...
  아내가 아닌 여자가 하워드라고 부르지 않아요
  제 약혼자가 아닌 여자는 제 아내도 아니죠
  제 아내가 아닌 약혼자는 스티브라고 부르지 않고...
  하워드라고 부르죠 아시겠어요?

- What's Up Doc?, 1972

하워드 혹스의 걸작 코미디 베이비 길들이기는 현재의 관점에서 봐도 광기넘치는 코미디 영화다:범생이 샌님이 지금식으로 이야기하면 천연계라 할 수 있는 여자의 페이스에 휩쓸려서 자신이 원치않는 상황을 마주하고, 그 과정에서 자신과 전혀 맞지 않는 여자와 사랑에 빠진다는 내용의 베이비 길들이기는 당시에는 성공하지 못했지만 지금에서는 코미디의 장르에 큰 영향을 끼친 작품으로 분류된다. 베이비 길들이기의 전위성은 각본과 펀치라인이 절묘하게 조화를 이루면서 계속해서 휘몰아친다는데 있다. 그리고 그렇게 휘몰아치는 대사와 상황이 물흐르듯이 이어진다는 점에서 베이비 길들이기는 각본이 대단히 훌륭하게 짜여진 작품이다.  

 

베이비 길들이기에서 코미디의 핵심은 바로 '이어지지 않는 것들이 이어지는 것'에 있다. 우선 영화의 제목에 등장하는 베이비는 길들여진 '표범'의 이름이다. 시작부터 길들여진 애완동물과 표범이라는 두가지 어울리지 않는 개념을 연결시킨다는 점에서 영화의 코미디 컨셉은 이어지지 않는 것들이 서로 이어지면서 생기는 오해와 어색함에서 생기는 웃음에 기반한다. 이러한 흥미로운 점은 이러한 높은 위치에 놓여있는 것들(권위 있는 존재나 존경 받는 존재 같은)이 낮은 위치로 떨어지는 수직적인 낙차에서 발생되는 웃음이 아닌 대등한 위치에 놓여있거나 서로 다른 개념을 연결짓는 것인데, 영화는 서로 맞지 않는 어색한 것들의 연결을 넘어서 상반된 개념을 연결시키는 것까지 능숙하게 연결 짓고, 속도감 있게 다루면서 영화의 재미를 더한다.

 

이것을 속도감 있게 재현할 수 있는 동력이 되는 것은 바로 관계대명사이다. 이것과 저것, 그것으로 구성되어있는 관계 대명사는 사물의 실제 이름을 부르지 않고, 발화자의 거리에 따라서 발화 대상을 편리하게 부르기 위해서 존재하는 개념이라 할 수 있는데, 베이비 길들이기는 대화하는 쌍방의 상황이 전혀 다르고 그 거리와 지칭 대상이 완전히 다른 상황을 연속해서 설정함으로 능숙하게 오해를 살만한 상황을 계속해서 이어나갈 수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 극의 중간에 살인 표범과 애완용 표범이 둘이 동시에 등장해서 서로 오해를 사는 상황을 만들어내고, 더 나아가서 여주인공이 살인 표범을 베이비라 착각하고 실제 포획해서 경찰서로 끌고 들어오는 장면 등은 영화 내내 오해에 오해를 쌓아올리며 만들어낸 훌륭한 상황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혼란 속의 중심에 서있는 것이 바로 샌님 같은 남주인공과 자유로운 여주인공이다:베이비 길들이기에서는 건장한 이미지인 캐리 그랜트가 지적인 남주인공 박사의 이미지를 연기하였는데, 이러한 불균형한 모습과 함께 그 어떤 상황에서도 예의범절을 지키는 모습에서 영화가 유지하는 '오해와 어울리지 않는 것'의 맥락을 유지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하지만 동시에 남주인공이 그런 예의범절을 지키는 모습을 통해서 자칫 무례하거나 폭력적인 결과로 이어질 수 있는 상황에서 선을 유지할 있다. 그리고 동시에 여주인공은 남주인공과 대척되어 온갖 광기와 카오스를 불러일으키는 역할을 맡는데, 남주인공과 상극인 여주인공은 상극이라 할 수 있지만 영화는 이 상극이 자석의 S와 N극 처럼 들러붙는 과정을 쉴세없이 주고받는 펀치 라인의 빠른 흐름 속에서 자연스럽게 녹여냄으로 로맨틱 코미디 장르로서 성립한다.

 

그리고 피터 보그다노비치의 왓츠 업 닥은 베이비 길들이기의 리메이크 작이다. 리메이크 작인만큼 큰 개념이나 매력적인 부분들을 따오기는 했지만, 흥미롭게도 왓츠 업 닥은 시대가 흐르면서 바뀐 부분과 새로운 장르적 특성들을 함께 녹여낸 작품이었기에 리메이크 이상의 가치가 있는 작품이다. 우선 왓츠 업 닥에서 눈여겨 봐야할 점은 작품 자체가 워너브라더스에서 만든 1930년부터 만들어온 단편 만화영화인 '루니 툰'의 많은 영향을 받았다는 점일 것이다:애시당초에 제목 자체가 루니 툰의 간판 케릭터인 벅스 버니의 입 버릇(뭔 일이쇼What's Up, Doc?)에서 따온 제목인 거에서부터 시작해서, 여주인공인 바바라 스트라이샌드의 이미지가 묘하게 롤라 버니를 연상케 한다는 점, 극 중 내에 오마주 형태로 루니툰이 영상이 들어갔다는 점들이 그러하다.

 

 

 

루니 툰의 코미디 스타일은 기본적으로 베이비 길들이기 보다 좀 더 '포괄적'이라 할 수 있는데, 루니 툰은 1920~30년대 유명한 코미디언이었던 막스 브라더스가 출연했던 고전 코미디 영화에 베이스를 두고 있고 이 스타일은 단순히 관계 대명사의 오해 외에도 다양한 코미디 요소들을 섞고 있기 때문이다. 막스 브라더스의 영화는 기본적으로 비상식이 상식처럼 묘사되는 점이나 강박적으로 어떤 행동 하나에 집착하여서 영화 속 인물들을 어처구니 없는 상황에 몰아넣는 점에서 웃음을 유발한다. 루니 툰의 코미디 스타일에서 드러나는 폭력성이나 상대 케릭터를 능숙하게 엿먹이는 각본과 펀치라인 등은 전반적으로 막스 브라더스의 코미디 영화 스타일에 기반하고 있다. 다만, 강박적으로 하나의 상황에 집착하는 모습은 루니 툰과 베이비 길들이기가 공통적으로 갖고 있는 부분이긴 하고, 왓츠 업 닥에서는 양쪽의 전통과 특징들을 받아들이는 모습을 보여준다.

 

왓츠 업 닥이 리메이크를 하면서 베이비 길들이기와 달라진 점은 크게 두가지다:첫번째는 과격해진 슬랩스틱과 스턴트들이다. 베이비 길들이기가 30년대 영화에서 보여주는 슬랩스틱이라는 점에서 고전적이긴 하지만 동시에 '점잖은' 모습을 보여주긴 한다. 하지만 왓츠 업 닥은 루니 툰이 1970년대까지 이어지면서 보여준 과격한 슬랩스틱이나 액션 장면들을 영화에 두 장면으로 녹여내는데, 첫번째는 리셉션이 끝나고 난 다음에 일어나는 일련의 슬랩스틱들, 그리고 두번째는 대단원에서 서로가 원하는 가방을 쫒아 추격전을 벌이는 슬랩스틱 시퀸스가 있다. 무심하게 컷을 잡고 그 속에서 과격한 슬랩스틱을 이어가는 과정은 감독인 피터 보그다노비치의 특징과 루니툰의 특징이 함께 들어간 부분이라 할 수 있다.

 

두번째는 성에 대한 묘사일 것이다:기존의 베이비 길들이기에서 보여주는 것과 달리 왓츠 업 닥은 성에 대해서 상당히 자유롭게 보여주는데, 바바라 스트라이샌드의 목욕 장면이나 피아노 위에서 키스하는 장면하는 등은 시대가 변화했음을 직관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동시에 베이비 길들이기와 다르게 여주인공이 성에 대한 자유로운 묘사를 함으로 단순히 말괄량이나 천연임을 넘어서 그것이 성적인 에너지와 자유분방함, 그리고 더 나아가서 새로운 시대의 인물형(다양한 학문을 전공하면서 박학다식한 모습을 보여주는)으로 이어지는 것을 보여준다.

 

그렇기 때문에 왓츠 업 닥은 단순한 리메이크를 넘어선 리메이크라 할 수 있다. 원작의 쉴세없는 상황 변화와 펀치라인을 유지하면서, 변화한 시대상과 영화가 발전하면서 쌓아올려진 장르적 특징들, 무엇보다도 그것을 하나로 통제하고 자신의 색체를 넣는 감독의 능력까지 모두가 반영된 작품이기 때문이다. 영화를 본다면 양쪽 모두 함께 보기를 강력하게 추천하는 바이다.

잡담/개인적인 이야기

 

미니어처 모델에 색을 올리는 도색을 한 2년이라는 기간을 돌이켜 보았을 때, 도색이라는 취미는 평화로운 취미다:작은 미니어처 위에 한 땀 한 땀 붓질로 색을 올리는 과정에서 심적인 평화를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역으로 이야기하면, 색깔이 바깥으로 삐져나가면 상당히 심란함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도색은 하나의 대상에 천천히 집중하여 반복되는 동작으로 단조로운 작업들이 대부분이다. 단조로운 리듬을 정신과 몸에 천천히 새기고 그것을 반복하는 것으로 날선 정신을 가다듬고 차분하게 가라앉혀주기 때문이다. 집중, 단조로운 리듬, 그리고 그것의 반복은 도색이라는 취미를 마음을 가라앉히는 취미로 만들게 된다.

 

동시에 사람들에게 보이는 도색이라는 취미는 대단히 어려운 취미로 보일 수 있긴 하지만, 도색하는 미니어처들은 언제나 그렇듯이 색의 분할을 상정하고 디자인이 되어 있다. 그리고 이러한 분할된 색들을 전제로 하고 있는 미니어처들의 디자인들은 도색을 하는 사람의 지식과 욕심만큼이나 더 세부적으로 디테일을 올릴 수 있다. GW의 미니어처들을 예로 들어보자:스페이스 마린의 경우, 간단하게 도색을 하기로 마음먹는다면 단색으로 색을 모두 올린 뒤 몇몇 디테일들에 대해서만 다른 색을 써도 된다. 하지만 더 욕심을 내고, 가장 멋진 작품을 만들고자 한다면, 각각 장갑 패널마다 빛나는 부분에 대해 반사되는 빛 묘사를 하는(흔히 도색판에서 이야기하는 Non Metalic Metal, 즉 금속색의 도료를 사용하지 않고 오로지 일반 도료로 묘사를 하는 것) 것으로 묘사할 수 있는데 단색 아머 패널 하나만으로도 거의 6개 이상의 도료를 쓸 수 있다. 

 

위와 같은 특성 때문에, 도색을 취미로 삼은 사람들에게 두가지 덕목이 요구된다:하나는 자신이 추구하는 목표를 정해야 한다는 것, 그리고 두번째는 자신이 원하고자 하는 목표에 부합하는 테크닉과 색에 대한 탐구열이다. 이런 특징들 때문에 도색이라는 취미는 도색을 하는 사람의 자율이 중요한 취미다. 때로는 실패하고, 때로는 타협하면서, 방법을 찾아가는 취미이기 때문이다. 시간도 많이 들고, 끈기도 필요하다. 하지만 이러한 과정들을 제대로 즐길 줄 안다면 엄청난 만족감을 준다.

 

그렇기 때문에 도색은 일종의 수양의 취미다. 스스로 가다듬고, 무엇을 할 것인지 생각하고, 집중과 반복되는 행동을 통해 마음을 다스리기 때문이다. 모든 취미들이 일정 수준을 넘어가기 시작하면 '과정' 역시 중요해진다는 것을 생각한다면, 도색이라는 취미는 거의 모든 것이 DIY의 영역이기 때문에 결과를 향한 과정이 더 부각되는 부분들이 있다. 물론 모델들이 비싸고, 시간이 많이 들고, 본 궤도에 오르기 까지 인내심과 많은 공부가 필요하지만 그래도 마음의 평안을 찾고 번잡한 자신을 잊고자 하는 취미를 찾는다면 도색도 괜찮은 취미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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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담/개인적인 이야기

 

여러분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이 블로그와 블로그 주인장은 앞으로도 뻘글을 최대한 싸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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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이야기

 

메트로베니아라는 장르는 닌텐도로 나온 메트로이드 시리즈와 코나미에서 나온 캐슬베니아(일본쪽 명칭으로는 악마성 드라큘라) 시리즈, 두 이름을 합쳐서 만들어진 조어다. 정확하게는 메트로이드가 먼저, 월하의 야상곡이 등장한 이후에는 메트로베니아라는 장르가 정착했다. 메트로베니아는 2D 플랫포머의 하위 장르지만 단방향적인 스테이지를 두고 달려나가는 거대한 스테이지를 설정해두고 플레이어가 스테이지 곳곳에 숨겨져있는 비밀과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던 메트로이드와, 여기에 RPG 요소들을 탑재한 월하의 야상곡을 통해서 장르적으로 성립되었다. 메트로베니아 시리즈는 이후 캐슬베니아 시리즈로 이어져내려오다가, 2D 플랫포머가 메인 스트림에서 내려온 2000년대 이후에는 인디게임이나 소규모 제작 게임들(블러드스테인드나 할로우 나이트 같은)에서 찾아볼 수 있다. 확실한 점은 메트로베니아라는 장르 자체는 여전히 현역이고, 많은 개수와 재해석이 이루어진 '살아있는 장르'라는 점이다.

 

하지만 아직도 살아있는 메트로베니아 장르의 원판이라 할 수 있는 메트로이드와 캐슬베니아는 아이러니하게도 생명력을 잃었다는 점일 것이다. 캐슬베니아의 경우, 코나미의 노선 변경과 프로듀서인 이가라시 코지의 이탈 등의 다양한 일들이 겹치면서 2010년 전후로 죽음을 맞이했다. 하지만 메트로이드는 조금 달랐다. GBA로 나온 메트로이드 퓨전 이후, 메트로이드는 프라임 시리즈를 내면서 기존 메트로이드의 노선과 다른 길을 걸었다. 엄밀하게 이야기하자면, 메트로베니아 혹은 메트로이드 장르에 속한 메트로이드 게임은 사실상 2002년 퓨전이 마지막이었다. 1인칭 액션 게임으로 새로운 방향성으로 나가고, 그것이 결말을 맺은 프라임 3부작이 07년이었던 것을 생각하면, 메트로이드 시리즈의 침묵은 어찌보면 캐슬베니아 시리즈보다도 더 오래되었다 할 수 있다.

 

메트로이드 드레드는 커럽션 이후 14년, 그리고 퓨전 이후 19년만에 등장한 2D 메트로베니아 게임이다. 메트로이드 프라임 4가 나오는데 기약이 없었다는 점 때문에 그 사이를 매꿔줄 작품이 필요했다는 것은 다들 아는 사실이었지만, 그것이 메트로이드 퓨전으로부터 정식으로 이어지는 속편이었다는 점은 팬들을 충격과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넣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제작사인 머큐리 스팀이 메트로이드 사무스 리턴즈를 만든 제작사라는 것을 생각하면, 이러한 선택이 그렇게 까지 놀랍지는 않을 것이다. 반가운 소식이긴 했지만, 동시에 근 20년만에 다시 2D 메트로이드 장르로 돌아온 것일까? 그것이 적절한 선택이었는가? 라는 질문들이 사람들 사이를 지나가긴 했을 것이다. 메트로베니아 시리즈는 메트로이드나 케슬베니아의 역사를 넘어서 장르 그 이상을 추구하기 시작했다. 단순히 드레드는 프라임 4이 나오지 않는 기대감을 채워줄 지 여부를 떠나서, 지금와서 메트로이드 시리즈가 다시 그 문법을 따르면서 재조명을 받을 가치가 있는지까지 대답해야 했었던 부담감을 지고 있는 게임인 셈이다.

 

드레드는 특이하게도 메트로이드 기본 시리즈 본연에 충실한 게임이다:플레이어는 게임을 진행하면서 능력들을 얻고, 스테이지를 풀어나간다. 놀라울 정도로 드레드는 이 구성에서 벗어나지 않는데, 19년 간의 공백동안 있었던 장르적 변주나 발전을 철저히 배제한 체 우직하게 기본 구성으로 승부를 본다. 게임은 3DS 버전 사무스 리턴즈에서 적용한 우 스틱으로 조준하는 시스템과 후술할 몇몇 부분을 빼면 이전 메트로이드와 거의 동일한 구조이고 그 차이를 제외한다면 19년전의 메트로이드와 동일하다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메트로이드 드레드는 훌륭하게 작동한다. 기본적인 장르적 재미 자체는 이미 30년전부터 보장된 시리즈지만, 메트로이드 드레드는 그러한 시리즈의 본질에 충실하다. 플레이어는 끊임없이 뛰어다니고, 새로운 능력을 얻고, 더 나아가서 보스와 싸운다. 최근 게임들이 많은 부분 포기했다 할 수 있는 '짜임새 있는 구성'이나 '재미가 떨어질만한 구간에서 새로운 요소를 투입해 재미를 주는 진행 곡선'은 메트로이드 드레드에 적확한 표현이라 할 수 있다.

 

드레드는 메트로베니아, 아니 그보다도 더 이전의 메트로이드의 뼈대에 기반한 게임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그 베이스가 되는 게임 플레이는 이전 시리즈와 같이 상당히 깊이가 있다. 메트로베니아의 시작이라 할 수 있었던 월하의 야상곡이 능력의 구분에 따라서 맵을 구분하는 것이 상당히 거칠었던 것을 생각한다면 말이다:월하의 야상곡에서 스테이지들은 상당히 러프하고 분명하게 형태로 나뉘어져 있는데, 더블 점프가 있으면 통과할 수 있는 곳/박쥐 변화가 있으면 통과할 수 있는 곳 등등으로 얻는 능력에 따라서 도달할 수 있는 곳들이 분명하게 정해졌다. 하지만, 오래된 메트로이드 시리즈들의 경우에는 이러한 능력에 따른 스테이지 구분들을 다양한 테크닉 등을 통해서 뛰어넘을 수 있게끔 하는 것들이 가능했다. 요컨데, '그 능력을 해금하지 않고도 다음 구간으로 넘어갈 수 있는' 숨겨진 테크닉과 구간들이 존재한다. 이러한 깊이 때문에 드레드는 실제 플랫포밍 플레이를 진행할 때 더 다양한 선택지들이 존재하는 편이다.

 

메트로이드 드레드의 흐름은 동키콩 트로피컬 프리즈의 케이스 때와 유사하다:게임은 고전 2D 플랫포밍 게임을 그대로 따라가는 한 편, 그 속에 두 가지 트렉을 숨겨두는 것이다. 하나는 게임 스테이지를 그대로 따라갔을 때의 정석적인 흐름, 또다른 하나는 플레이어가 게임을 깊이 이해했을 때 색다른 흐름으로 경험하게끔 하는 것이다. 이 두 흐름이 상충되지 않고(강제적인 게임 플레이로 게임을 쉽게 만들지 않고, 동시에 게임 난이도를 억지로 끌어올리지 않는 등), 서로 상보적인 동시에 더 나아질 수 있는 가능성을 드러낸다는 점(동키콩 트로피컬 프리즈에서는 바나나 코인과 같은 요소가 그러하고, 메트로이드 드레드에서는 업그레이드 요소가 그러할 것이다)에서 드레드의 큰 흐름은 동키콩 프로즌 컨트리와 맞닿아 있다:2D 플랫포밍에서 스피드 러닝의 테크닉과 플랫포밍 게임에서의 테크닉을 자연스럽게 게임에 녹여냈다는 점에서 말이다.

 

여기에 드레드는 E.M.M.I라는 독특한 변주를 준다:E.M.M.I.는 특정 스테이지 구간에서만 등장하는 보스형 몹이며, E.M.M.I.는 죽일 수 없기 때문에 구간 내의 보스를 잡아 1회성 능력인 오메가 빔을 해금하기 전까지는 이들을 피해서 돌아다녀야 한다. 즉, 이 스테이지에서는 E.M.M.I.가 일종의 이동형 즉사 장애물로 등장하고, 플레이어는 최대한 이들을 피해서 E.M.M.I가 없는 스테이지 밖으로 피신해야 한다. 이동형 즉사 장애물이 나오는 게임들이 최초는 아니지만, E.M.M.I.는 상당히 넓은 구간에서 지독하게 플레이어를 쫒아온다. 그걸 떨쳐내기 위해서는 스테이지 내에 있는 다양한 요소(자력 벽이나 카트, 작은 통풍구 등)들이나 플레이어의 능력(투명해지는 능력 등등)들을 최대한 쥐어짜야 한다. 이러한 E.M.M.I.가 등장하는 구간이 플레이어가 계속 진행하는 방향에 등장하기 때문에, 게임에 긴장감을 계속해서 더 해주는 요소라 할 수 있다.

 

다만 아쉬운 점은 게임 자체가 상당히 일방향적이라는 것이다. 물론 메트로이드 시리즈가 하나 하나 따져보면 진행 방향이 분명히 정해져있는 게임이긴 한데, 그래도 최근의 메트로베니아 시리즈들처럼 맵을 자유롭게 돌아다니면서 탐색하거나 하는 여지가 그렇게 많지 않다. 그나마 중반 이후에 맵을 탐색할 수 있게끔 풀어주기는 하는데, 그 타이밍이 좀 늦다는 느낌이 강한 기분이다. 더 넓은 맵에서 자유롭게 탐색하는 진행 구간을 늘려줬으면 더 재밌을 수 있는 부분이긴 한데, 아마도 전통적인 메트로이드 시리즈에 익숙하지 않은 플레이어들을 배려하기 위해 제작사가 넣은 부분이라 판단된다. 다만, 너무 배려하지 않았나 싶은 아쉬움도 들긴 한다.

 

결론을 내리자면, 메트로이드 드레드는 여전히 지금도 전통적인 메트로이드 시리즈가 매력적일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한 게임이다. 숙련된 플레이어면 5~7시간을 하면 클리어하긴 하겠지만, 그 5~7시간을 매우 만족하면서 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다음번 작품에서는 좀 더 플레이어를 풀어주고 좀 더 몰아붙여도 되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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