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이야기


* 스포일러 있습니다.


* 스위치 버전을 기반으로 작성되었습니다.


산을 오르는 이유가 거기에 산이 있기 때문이다 라고 이야기한 등산가 조지 말로리의 격언은 게임에도 많은 의미를 갖고 있다. 어째서 사람들은 게임을 하는가? 게임은 사람에게 시간과 기술, 집중력 등 많은 것을 요구하지만 정작 현실에서는 어떠한 이득을 주지 않는다. 하지만 그럼에도 사람들은 게임을 한다. 게임을 하는 행위에 대해서는 많은 이론들이 존재하지만, 그중 우리가 눈여겨 봐야하는 것은 '달성감'일 것이다. 어려운 과제를 달성할 수록 거기서 오는 쾌감과 정복감, 자신의 기술에 대한 만족감 등은 게임을 하게 만드는 강한 원동력이라 할 수 있다. 그렇기에 게임을 플레이하는 이유는 사회적이고도 실용적이지 않은, 지극히 개인적인 행위로도 볼 수 있다. 하지만 그렇게 개인적이기에 게임은 사람의 인생에 각별한 순간들을 남길 수 있다.


셀레스테는 슈퍼 미트 보이 이후로 꾸준히 만들어졌던 도전적인 2D 플랫포밍 장르의 게임이다. 게이머는 주인공 매들린과 함께 클리어가 불가능한 것처럼 보이는 스테이지를 하나 하나 돌파해나가면서 산의 정상에 도달해야 한다. 플레이어는 스테이지 하나 당 수백~수천번은 죽어야하는 것을 각오하고 플레이해야 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셀레스테는 불합리하게 어려워서 포기하게 만들거나 클리어를 위해서 특별한 테크닉을 써야하는 그런 게임이 아니다. 셀레스테의 훌륭한 점은 게임 시스템은 단순하지만 스테이지 기믹을 이용해서 다채로운 플레이를 유도한다는 점, 더 나아가서 그것이 게임 서사와 밀접하게 연관되어있다는 점이다.


어려워보이는 첫 인상과 다르게, 셀레스테는 매우 단순한 조작 구성을 지닌다:셀레스테에서 플레이어가 익혀야하는 기술은 뛰기, 공중대시, 벽잡기로 3가지 밖에 없다. 또한 공중대시 역시도 스틱으로 정교한 조작을 가하기 보다는 위, 아래, 좌, 우, 대각선 45도 정도로 제한되어 있는 편이다. 대신 셀레스테는 게임에 있어서 플레이어가 타이밍 부분에서 집중하게 만든다. 언제 어느 시점에서 뛰기나 잡기, 혹은 공중대시를 할 것인가를 통해서 스테이지를 해쳐나가게끔 만든 것이다. 대신 게임은 그 타이밍에 대해서 매우 가차없는 구조를 지니고 있다. 플레이어가 정확하게 타이밍을 잡아내지 못한다면 곧바로 죽음을 맞이하고 다시 스테이지를 처음부터 시작해야 한다.


대신, 셀레스테는 죽음이라는 실패에 대해 매우 관대한 구조를 지닌다. 게임에서 모든 월드들은 분절되어 있는 각각의 스테이지로 쪼개져있으며, 각각의 스테이지는 개별 체크포인트를 갖는다. 그렇기에 아무리 실패하더라도 결국은 스테이지를 넘어가면 조금씩 조금씩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또한 각각 스테이지들은 그 텀이 짧은 편이기 때문에 실패를 해도 진행과정을 잃는 부분에 대한 부담은 적은 편이며, 한 스테이지를 클리어하는데 걸리는 시간은 30초에서 1분 정도 남짓으로 매우 짧은 편이다. 다만, 각각의 스테이지를 클리어하는 것은 매우 어렵고, 한 스테이지에서 수도 없이 많은 실패와 좌절을 맞봐야 한다:단 30초에서 1분 정도의 움직임을 위해서 플레이어는 몇십분의 실패를 경험해야 한다.


이러한 실패의 과정에서 플레이어는 셀레스테에서 여타 플랫포밍과 다른 독특한 경험을 느낀다. 처음에는 불가능한것처럼 보였던 스테이지의 구조가 실패와 실패를 반복함으로써 반대편 골을 향한 궤적과 타이밍이 점점 보이기 시작한다. 셀레스테의 스테이지는 수많은 장애물로 가득차 있지만, 그 속에는 다음 스테이지로 나아가기 위한 루트가 분명하게 있고 플레이어도 쉽게 그걸 인지할 수 있다. 플레이어는 실패를 반복하면서 최적의 루트와 점프 타이밍을 잡아내고 가다듬는다. 점점 이러한 과정을 반복할수록, 플레이어는 실패를 반복하더라도 목표에 도달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갖게 된다. 그리고 점차 자신의 실패를 교정해나가면서, 플레이어는 결국 다음 스테이지에 도달할 수 있다. 셀레스테는 이런 점에서 훌륭한 구조를 지니고 있다. 게임은 어렵지만, 플레이어에게 불가능한 것처럼 느껴지게 만들지 않았다. 게임은 칼같은 타이밍과 조작을 요구하지만, 정작 시스템적으로 복잡한 조작을 요구하지 않는다. 셀레스테는 서로 교차시키기 어려운 두 개념과 감각을 교차시킴으로써 플레이어에게 잊을 수 없는 경험을 선사한다.


하지만 셀레스테는 스테이지를 반복 재생산하지 않는다. 각각의 월드에는 서로 다른 기믹들이 존재하고 있다:예를 들어 폐허 도시에는 움직이는 발판과 관성을 이용한 점프를, 고성에서는 플레이어의 이동 궤적을 뒤쫒아오는 분신과 대시로 관통할 수 있는 발판이 있다. 게임의 기본적인 규칙은 여전히 동일하지만, 셀레스테는 각각의 월드에서 새로운 기믹을 플레이어에게 제공하고 이를 변수에 넣어서 생각하게 만든다. 이러한 기믹들의 훌륭한 점은 각각의 월드들이 독특한 특성을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어느 하나도 그 기믹이 과해서 게임의 전반적인 플레이를 해치거나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기믹은 기믹이되, 셀레스테의 기본은 최적의 이동 루트를 그리고 어느 시점에서 어떻게 점프하고 움직일 것인가 타이밍을 판단하는 것이 핵심이기 때문이다. 각 월드의 기믹들은 게임을 더욱 풍성하게 하고 한시라도 게임이 지루하지 않게끔 만든다.


셀레스테의 스토리는 간결하지만, 게임의 플레이 구조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마들렌은 셀레스테 산을 오르고자 하지만, 자신의 부정적인 자아는 산을 오르는 것을 방해하고 산에서 내려가게끔 유혹한다. 하지만 게임의 종반, 마들렌은 자신의 부정적인 부분과 화해하고 하나가 되고, 게임에서 이중 대시 능력이 해금된다. 이후 스토리 마지막 월드는 첫번째 스테이지부터 정상까지 스트레이트로 올라가는 구조로 스테이지를 구성하는데, 이전에는 미처 생각지도 못했던 불가능한 움직임들과 시원스럽게 과거 월드들을 격파해 나가는 과정은 플레이어의 가슴 한 구석을 뭉클하게 만드는 구석이 있다. 왜냐면 게임 내에서 보여주는 마들렌의 산을 오르는 동기나 케릭터 자체가 여타 게임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대단히 현실적인 고민들에 기반하고 있기 때문이다. 등산이라는 행위를 통해 자신을 극복하고자 했지만, 자신의 부정적인 모습도 솔직하게 받아들여 성숙해지는 과정은 게임 플레이 구조와 맞물리면서 간결하지만 인상적이라 할 수 있다.


결론적으로 셀레스테는 게임 플레이 구조와 기믹, 스토리 모든 측면에서 흠잡을 때 없는 훌륭한 작품이다. 플랫포밍에 잼병인 사람이라도, 끝까지 도전해서 클리어하겠다고 마음먹으면 누구나 클리어할 수 있다. 더 나아가서, 플레이어는 스토리 클리어 이후에도 숨겨진 딸기 모으기나 B사이드, C사이드 스테이지를 해금함으로써 더 어려운 도전을 즐길 수 있다. 셀레스테는 20불 남짓한 인디게임이지만, 그 이상의 값어치와 경험을 선사한다 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