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이야기/게임 리뷰



게임에 있어서 새로운 시대가 도래하고 있다. 콜옵으로 대변되는 밀리터리 FPS와 콜옵을 뒤쫒는 추격자들의 쫒고 쫒기는 추격전의 구도는 무너지기 시작하였고, 새로운 게임들과 실험들의 결과물들은 제각기의 길을 개척하였다. 이볼브 같은 매력적인 컨셉과 엉망인 게임플레이가 결합된 실패작에서부터 스플래툰과 레인보우 식스 시즈 같은 지속적인 콘텐츠 관리 및 마케팅을 통해 롱런하는 성공작들까지 게임의 수요와 공급, 성공 모델들이 점점 다양해지는 것은 이러한 개척의 결과물이다. 분명한 건 이전까지는 쉽게 시도하지 못했던 게임들이 등장하고, 그것이 팔리는 시대, 더 나아가 세일즈/콘텐츠 공급 모델마저도 기존의 모델과 완벽하게 다른 흥미로운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UBI 소프트는 이런 점들에서 실험작들을 '양산'하는 회사라 할 수 있는데, 일련의 게임들에 1)실험적 요소의 투입, 2)성공한 요소들을 자사 다른 게임/후속작들에 이식, 3)이후 운영을 통해 성공적인 비즈니스 모델로 안착시킴, 이라는 확고한 패턴이 있기 때문이다. 수많은 게이머들이 입버릇처럼 이야기하는 UBI 소프트 게임들의 1편 징크스는 이러한 부분에 기인하며, 게이머들 사이에서 악명 높은 것도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하지만 사람들이 흔히 간과하는 부분들은 1편 징크스가 심한 UBI 소프트 게임들의 '1편' 역시도 적어도 본전치기 수준으로는 게임을 팔린다는 것이다. 이는 UBI 소프트 게임들의 개발 및 발매 패턴에 숨어있는 전제 0이 존재하기 때문이다:전제 0)기본적으로 UBI 소프트가 만드는 게임들에는 확고하고 분명한 수요가 있다는 것. 디비전은 이미 데스티니 같은 MMO 슈터류의 수요층을 흡수하였기에 가능했고, 레인보우 식스 시즈는 비대칭 협력/경쟁 게임들의 수요(이볼브 같은)를 간파하였기에 가능한 게임이었다. 즉, UBI 소프트는 논란의 여지가 있겠지만 시장에 깔려있지만 분명하게 드러나지 않는 수요를 읽어내고 선점하는 능력이 충분히 있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포아너는 참으로 기묘한 게임이라 할 수 있다:우리는 이미 다크소울의 성공 및 독특한 PVP를 통해 총이 아닌 검과 검, 냉병기들이 부딪히는 게임에 대한 대체할 수 없는 매니악한 수요가 있다는 것을 확인하였다. 또한 근 20년간 액션 게임의 계보에서 플레이어와 플레이어가 검을 맞대고 대결하는 로망을 구현하고자 했던 게임들(제다이 아웃캐스트 2, 제다이 아카데미, 블레이드 앤 다크니스, 룬 같은)을 찾아볼 수 있었다. 포아너는 이들을 더 세련되게 다듬은 게임이며, 게임 자체의 완성도는 높은 편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포 아너라는 '게임 자체의 완결성'만을 놓고 보았을 때의 평가이다. 결론을 두고 본다면 포아너는 운영의 실패, 게임 자체가 인용하는 격투 게임의 문법과 이를 받아들이는 게이머들의 불협화음 등이 복합적으로 결합되어 게임 경험에 크나큰 악영향을 미쳤다. 그렇기에 어떤 점에서는 포아너는 여지껏 UBI 소프트가 만들어낸 작품 중 가장 문제작이자 실패작이라 꼽을 수 있을 정도다.


일단 분명하게 해두자:포아너가 기반하고 인용하는 게임 장르는 철저하게 대전액션이다. 대전 액션 장르는 대결이라는 진검승부의 경험, 더 나아가 짧은 순간에 이루어지는 복잡한 수싸움과 공방에서 오는 재미에 기반한다. 상단, 중단, 하단의 공방의 문법은 대전 게임 장르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는 문법이며, 화려한 콤보를 이용해 상대를 농락한다는 매력은 여타 게임에서 찾기 힘든 부분이라 할 수 있다. 포 아너는 이러한 대전 액션 게임의 문법을 3인칭 액션 게임의 형태로 옮겼다. 하지만 포아너는 기존 격투 게임들의 공방의 문법들을 직관적인 UI(공격-방어 방향의 시각화/패리 및 방어 타이밍의 구체화 등)로 재구성하고, 게임에 있어서 공격이나 콤보보다 방어에 방점을 찍고 느린 형태의 공방을 구현함으로써 게임을 좀 더 '캐주얼'하게 바꾼다. 기존의 격투 게임들의 격투게임 특유의 전통에 얽메여서 시스템을 점점 깊게 파고드는 형태로 발전하였고, 화려한 콤보에 얽메여서 조작이 점점 비직관적이고 복잡하게 변함으로써 매니아층을 위한 게임이 되었다(스트리트 파이터 5가 콤보보다 공방의 운영에 초점을 맞춘 게임이라는 점이라는 점은 눈여겨 볼만하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포아너는 대전 액션 게임 특유의 심리전과 공방을 끌고 오면서도 대전액션의 허들을 최대한 낮추려고 시도했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그 시도는 성공적이며 게임의 방어 중심으로 돌아가는 게임의 기본 시스템은 탄탄하다 평할 수 있다.


포아너는 격투 게임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방어 중심으로 게임을 재편하고 이를 편리한 UI로 포장함으로써 대전 액션 장르의 허들을 낮추고자 하였다. 여기에 UBI는 좀 더 대담한 시도를 가한다. 기존의 격투 게임들이 1대1의 대결에 집중하여 게임을 구성하였다면, 포아너는 3인칭 액션 게임의 문법을 대전 액션 게임에 뒤섞고 게임의 확장성을 넓히는데 성공한다. 기존의 공정한 대결을 위한 스테이지는 이제 다양한 고저차와 낙사 구간, 장애물들로 가득한 위험한 공간이 된다. 플레이어들은 이러한 환경들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싸워야 한다. 오히려 이러한 경험은 다크소울 시리즈의 PVP를 연상시키는 구석이 있다:플레이어는 절대로 공정한 싸움을 하지 않는다. 암령들은 몬스터들의 공격을 받지 않는 점을 적극적으로 활용해서 침입하는 사람의 뒤통수를 치며, 다양한 속임수와 꼼수를 활용해서 허를 찌르는 플레이를 한다. 상당수의 다크소울 영상 유튜브 업로더들이 다크소울을 플레이하듯이 포아너 영상을 올린 것들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포아너는 환경과 스테이지의 다양성을 대전 액션 게임의 중요한 변수로 배치하고 플레이어가 이를 의식하면서 싸우도록 권장한 것이다. 


또한 3인칭 액션의 문법을 도입한 변화로 포 아너는 대전액션 게임의 1대1의 문법에서 1 대 多, 심지어는 多 대 多도 가능하게 만들었다:이제 플레이어는 환경과 스테이지 뿐만 아니라 적을 도우러 오는 우군과도 싸우게 된다. 그렇기에 플레이어는 항상 자신이 유리한 싸움을 하고 있는지를 재면서 게임을 해야하며, 적에게 등을 돌려 도망가는 것도 유효한 선택지 중 하나가 된다. 하지만 게임은 분노 모드(여럿의 공격을 연속적으로 받아서 쌓이는 분노 게이지를 소비하여 임시 체력과 공격력/방어력을 확보하는 것)를 도입하여 게이머가 1대2까지는 어떻게든 운영해서 역전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겨둔다. 이와 같이 포아너는 1대1의 정진정명한 대결에서 낙사시키고 여럿이서 다굴을 치는 등의 이전투구식 싸움까지, 다양한 상황에서 싸우는 변화무쌍한 게임이 되고자 한 것이다.








이러한 포아너의 변화무쌍함을 대표하는 부분이 바로 정복전이다:AOS 식의 라인전을 3인칭 액션 게임에 접목시킨 이 모드는 포아너를 대표하는 모드이자 포아너의 모든 것이 집약되었다 할 수 있다. 정복전은 3개의 거점을 정복하는 형태로 진행이 되는데, 가운데 거점의 경우 미니언들을 밀어서 라인을 밀거나 당기는 등의 AOS에서 볼 수 있는 라인 관리가 이루어진다. 미니언들은 공격 한번으로 죽는 허약한 존재지만, 상대 플레이어와의 전투에서 슈퍼 아머 판정 없는 공격을 짤짤이로 끊어버려 전투를 유리하게 만들기도 하고, 몇몇 케릭터들은 능력을 통해 미니언을 죽이고 체력을 회복하여 방심한 상대 플레이어를 반격하여 제압하기도 한다. 이 미니언들의 존재는 게임의 규모감을 느끼게 만드는 연출이기도 하지만, 플레이어가 통제해야 하는 환경의 중요한 변수로 작용하기도 한다. 포아너는 상대적으로 느린 공방에 환경 통제라는 요인을 섞어넣음으로써 격투 게임 역사에서 유래를 찾기 힘든 독특한 플레이를 구현한 것이다.


이렇게만 본다면, 포아너는 정말로 훌륭한 게임처럼 보인다. 실제로도 그러하다:포아너는 기존의 실험작들이 갖지 못했었던 컨텐츠의 풍부함과 대전 이외의 세력전 개념의 땅따먹기, 아이템 파밍 및 육성, 코옵이 지원되는 싱글플레이(스토리는 의미없는 수준이긴 하지만) 등등까지 컨텐츠를 질과 양을 모두 확보하고 있다. 하지만 포아너에는 게임 내적인 완결성이 문제가 아닌 몇몇 치명적인 문제가 있다:이중 몇몇은 게임이 발매되기전에 마케팅 등을 통해서 생겼으며, 몇몇은 운영과 관리적은 측면에서 벌어진 오판에서 비롯되었다. 먼저 마케팅 등을 통해서 발생된 포아너의 결함이다:포아너의 마케팅의 문제는 절대로 포아너 게임플레이가 결코 공정하지 않고 명예 따위는 엿바꿔 먹은 것이 핵심이라는 것을 철저하게 숨겼다는데 있다. 


하지만 그것은 결점이 아니며, 오히려 크나큰 장점이다:마케팅 포장과 게임 구성에 따라서 플레이어는 다각도로 이 게임을 즐길 수 있었을 것이다. 마치 대난투가 아이템 등을 사용해서 상대를 장외로 밀어내서 KO 시키는 졸렬한 게임처럼 보임에도 불구하고, 다양한 게임 플레이 스타일을 보장하고, 심지어는 1대1에서도 게임이 정상적으로 동작해서 폭넓은 게이머(케주얼에서 프로 게이머까지)들을 모두 흡수했었던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포아너의 마케팅은 지나치게 1대1과 명예를 중시하는 공정한 게임처럼 보이게끔 만들었다. 하지만 뚜껑을 열어보니 포아너의 실상은 다크소울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사람들을 엿먹이는데 특화된 스트리머들의 게임이었고, 이러한 마케팅과 실상의 미스매칭은 플레이를 하는 게이머들과 커뮤니티를 혼란스럽게 만들었으며 이 과정에서 발생한 소모적인 논쟁이나 플레이어의 피로감(실제 게임과 기대한 게임 사이의 괴리에서 오는)은 플레이어들이 빠르게 이탈하게 만드는 주요한 원인이 되었다.


더 심각했었던 것은 벨런스나 서버 문제에 대처하는 개발진들의 안일한 자세였다:실제 몇몇 케릭터들(워로드, 피스키퍼 같은)의 성능이 심각하게 좋고, 체감 플레이에 심각한 영향을 끼친 점이나 소위 '분노 셋'이라 불리는 장비 세팅이 정복전과 데스매치를 파괴하는 동안 개발진들이 취한 액션은 소극적이었다. 심지어 매칭의 경우, P2P 방식을 채용해서 게임을 하는 중에 한명이 튕기면 같이 2~3명 이상이 튕기는 일이 빈번하였다. 물론 개발진이 벨런스 이슈에 대해서 조심스러운 자세를 취한 것은 그들이 만든 게임이 전례를 찾아보기 힘든 게임이기 때문이라고도 볼 수 있다. 하지만 본질적으로 포아너는 격투 게임이고 격투 게임에 있어서 벨런스 문제와 서버 문제는 그 어떤 사안들보다도 더 중요한 문제고 초기에 이런 이슈에 늦게 대처한 점은 심각한 문제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부분들이 게임이 훌륭함에도 불구하고 포아너를 플레이하는 플레이어들을 게임에 더 쉽게 지치게 만든 주요한 원인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차라리 포아너는 UBI 특유의 1편 징크스를 겪고 시간을 들여 오류를 잡아가는 과정이 있었다면 더 나은 게임이 되었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포아너는 한번에 성공을 거두고자 많은 것을 한 게임에 집약하였고, 이 집약이 역으로 게임에 독이된 케이스라 할 수 있다. 또한 UBI 소프트 발매 게임 답게 엄청나게 화려한 마케팅을 하였음에도 정작 게임과는 동떨어진 마케팅을 한 점도 치명적인 실패 요인으로 꼽아야 한다. 혼자서 플레이하는 싱글플레이 게임이었다면 재발견이나 입소문을 통해서 재발굴될 여지가 있지만 수많은 사람들이 함께 플레이하는 멀티플레이 게임에서 마케팅의 실패는 유저풀에 큰 타격을 입힐 수 있는 부분이었고, 유감스럽게도 포아너의 경우에는 큰 악재로 작용하였다.


물론 이제 게임이란 매체는 장기적인 운영을 통해서 스테디셀러로 팔리는 것이 중요한 매체가 되었고, 디비전이나 시즈의 사례처럼 장기적인 붐업을 통해서 시작이 삐끗해도 장기적으로 팔리는 게임이 가능하다는 것을 이미 UBI는 증명하였다. 하지만 문제는 포아너는 나름대로 자기 완결적인 게임이긴 하지만 너무나 독특하며, 초기 마케팅의 실패로 게임에 대한 안좋은 이미지가 너무 굳어진 케이스다. 그렇기에 포아너의 장기적인 성공은 앞선 게임들과 비교하자면 매우 불투명한 상황이며, 이는 게임의 완성도에 비추어 보았을 때 대단히 안타까운 부분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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