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이야기


*보드 게임입니다. 보드게임 리뷰는 가끔씩 써보도록 하겠습니다.


사실, 본 블로그에서 보드게임 자체를 리뷰하는 것은 처음이다. 컴퓨터 게임은 그 자체로 자기 완결성을 갖고 있기 때문에, 그 완결성 내에서 게이머가 느끼는 것과 제작자가 생각해낸 것들이 일치하는지/불일치하는지, 그렇다면 이유는 무엇인지, 그것이 재미를 주는지 여부를 다룰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보드 게임이나 TRPG 등의 오프라인에서 즐기는 면대면의 게임은 다르다. 컴퓨터 게임은 어디까지나 자기 완결적인 세계를 갖고 있다. 게임이 제공하는 스테이지 바깥에 스테이지는 존재할 수 없기에 게임을 구성하는 근본 규칙을 논하는데 있어서 많은 어려움은 없다.(물론 그 규칙을 응용하는 게이머들의 창의적인 문화가 존재하지만) 하지만 보드게임이나 TRPG는 전적으로 뼈대가 되는 기본 법칙을 제외하면, 모든 것은 게이머들의 '법칙에 대한 해석'에 기반하고 있기 때문이다. 컴퓨터 게임이 설정되어 있는 법칙과 그 계산과정을 모두 계산하여 게이머에게 제공한다면, 보드 게임에서는 그것이 불가능하며(법칙을 대신 해석하여 결과로 적용하는 컴퓨터라는 중간자적 존재의 부재) 그렇기에 컴퓨터 게임과 같은 섬세한 법칙들을 얽고 섥는 것이 불가능하기에 많은 제약이 존재한다. 하지만 그 규칙과 해석자 사이의 애매한 관계야말로 보드 게임이나 TRPG가 컴퓨터 게임 장르에서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한 깊이와 매력을 갖게 만드는 요소라 할 수 있다. 그렇기에 보드 게임과 TRPG는 컴퓨터 게임과 같은 시장 크기는 아니더라도 그 고유의 맥락을 이어갈 수 있다고 할 수 있으며, 이들과 다른 흥미로운 구석을 갖는다고 할 수 있다.


좀비사이드는 킥스타트를 통해서 성공적으로 펀딩된 보드 게임으로, 디테일과 수량으로 압도하는 좀비 미니어처로 유명한 협동 보드 게임이다. 당시 킥스타트에서 펀딩할 때 목표액의 무려 40배에 달하는 금액을 모금하는데 성공한 좀비사이드는 시즌 1에서부터 시즌 3 모르그 가 까지 3개의 스탠드 얼론 게임과 2개의 빅박스 확장이 발매 성공하였으며, 근접전과 중세 판타지 분위기의 좀비사이드 : 블랙 플레이그까지 발매되었다. 간단한 룰과 압도적인 미니어처 물량이 어우러져서 좀비영화의 장면 하나 하나를 훌륭하게 소화하고 있는 보드 게임이 좀비사이드라 할 수 있다. 


게임의 규칙은 간단하고 직관적이다:플레이어는 3번의 행동 기회(해외에서는 이를 액션 포인트 기반의 게임 시스템이라 칭한다)를 얻고, 세 번의 행동 기회가 종료되면 좀비의 차례로 넘어간다. 좀비는 별도의 플레이어를 요구치 않고 정해진 규칙에 따라서 움직이며(1.플레이어를 보면 플레이어를 향해 움직인다. 2.플레이어를 보지 못하면 소음을 향해 움직인다. 3.), 좀비 차례가 끝난 이후 좀비 스폰 카드를 뽑아서 얼마만큼의 좀비를 보드 위에 둘 것인지를 결정한다. 이외에 주사위를 굴리는 전투, 원거리 공격 타겟 순위 등의 세부적 규칙 등이 있지만 한번 시도하면 곧바로 배울 수 있을 정도다. 좀비들의 체력도 직관적으로 설정하여서(데미지 1을 주는 무기는 체력 1인 좀비만 죽일 수 있다, 체력이 2인 좀비는 데미지 2 이상의 무기로만 죽일 수 있다), 개별 좀비의 체력을 계산하는 등의 복잡한 일은 하지 않아도 되는 동시에 게임의 플레이가 빠르게 진행되게 만들었다.


하지만 게임이 배우기 쉽다고 해서 게임 자체가 쉬운 것은 아니다:좀비사이드에서 눈여겨 봐야하는 것은 바로 게임 자체의 규모와 플레이어의 레벨업 시스템이다. 기본 게임에서 무려 70여개의 좀비 미니어처를 제공하는 좀비사이드는 게임 플레이에 따라서는 그 미니어처가 모자라서 좀비 추가 행동 룰이 나올 정도다. 좀비는 한번에 하나의 행동 밖에 못하지만 그 숫자로 플레이어를 압도한다. 물론 좀비사이드에서 플레이어는 다양한 무기와 장비를 이용해서 좀비들을 쓸어버릴 수 있지만, 플레이어가 좀비를 많이 죽이면 죽일 수록 레벨이 오른다는 '문제'가 있다. 보통의 게임에서는 레벨이 오르는 것은 게임 플레이가 수월해진다는 것을 의미하지만, 좀비사이드에서 레벨업은 스폰 차례에 추가 좀비가 소환되는 문제를 야기하기 때문에 게임을 오히려 더 어렵게 만들기도 한다. 따라서 수월한 진행을 위해서는 플레이어들의 상황(얼마만큼의 위협 수준을 유지할 것인가)에 따른 전술이 필요하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언젠가는 위협수준 관리는 언젠가 무너질 수 밖에 없다. 최소한으로 방아쇠를 당기더라도 좀비들은 계속해서 생성되고, 결국은 누군가의 위협수준이 올라 레벨업을 하는 것은 시간문제이기 때문이다.


게임의 간단하면서 직관적인 룰과 무지막지한 좀비의 숫자, 플레이어의 레벨업과 난이도의 유기적인 규칙 설정은 좀비사이드를 플레이하기 쉬우면서도 흥미로운 게임이자 좀비 영화의 한장면을 훌륭하게 재현하는데 성공한다:게이머는 아무것도 없는 게임 맵에 진입을 한다. 처음에는 모든 것이 계획했었던 것처럼 순조로운 것처럼 보여진다. 하지만 하나 하나 목적을 달성할 수록 게임은 점점 계획을 벗어나서 엉망진창이 되고 게이머들은 때에 따라서 임기응변으로 문제(대부분 좀비들이지만)를 해결해야 한다. 이러한 과정이 현실의 테이블에서 사람들과 이야기하고 웃고 떠들며 즐기기에는 딱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좀비사이드 자체로도 훌륭한 게임이지만, 빅박스 확장이나 스탠드 얼론 게임들도 훌륭하다 평할 수 있다:시즌 2 스탠드 얼론인 프리즌 아웃브레이크에서는 원거리 공격에는 데미지를 입지 않는 버서커 좀비를 추가하였고, 톡식 시티 몰에서는 근거리 공격에 의해 죽으면 독성 피를 뿌리는 톡식 좀비를 추가하였다. 시즌 3인 모르그 가에서는 일정 조건 하에서 죽으면 반쪽짜리 좀비로 되살아나는 스키너 좀비를 추가하였다. 이 확장들은 새로운 미니어처와 함께 좀비들의 행동 패턴에 약간의 변화를 추가하였을 뿐인데도 게임의 전반적인 판도를 바꾸어버린다. 또한 시즌 3인 모르그 가에선 플레이어와 플레이어가 서로 경쟁하는 룰도 소개함으로써(경쟁룰이라 하지만 간단하긴 하다), 협동 게임 뿐만 아니라 경쟁 게임도 지원한다. 물론, 경쟁 모드라 하더라도 좀비는 동일한 규칙으로 나온다. 결국, 이 게임은 좀비를 죽이는 좀비사이드니까 말이다.


결론을 내리자면, 좀비사이드는 누구나 편하게 즐길 수 있는 게임이라 할 수 있다. 좀비사이드는 간단하면서 직관적인 룰로 좀비를 다루는 서브컬처의 한 장면을 훌륭하게 재현하고 있으며, 좀 더 깊이있는 플레이를 원하는 사람에게는 빅박스 확장이나 스탠드 얼론 게임을 제공하고 있다. 친구들과 오프라인에서 즐길만한 보드 게임을 찾는 사람이라면(물론 친구가 있다는 전제 하에서), 추천하는 게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