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이야기




*치명적인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옛날 옛적에, 머나먼 은하계에서는'으로 시작했었던 스타워즈는 현대의 신화이자 대중문화의 전설이며, 수많은 사람들에게 단순한 프랜차이즈 이상의 의미를 갖는 작품이라 할 수 있다. 그렇기에 누군가는 스타워즈를 고전 명작이라 평하기도 한다:하지만 엄밀하게 이야기하자면 스타워즈는 뛰어났기에 역사에 한 획을 그었던 것이 아니라, 역사에 한 획을 그었기에 뛰어난 작품으로 평가받는다고 평할 수 있다. 때로는 한 작품의 완성도나 위대함, 뛰어남보다 시대적인 상황, 대중이 작품을 받아들이는 방법, 사회의 욕망 같은 외적인 요소들이 명작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그리고 헤일로 역시도 스타워즈와 같은 노선을 걷는다고 할 수 있다. 우주를 배경으로 한 SF 판타지라는 측면에서 스타워즈와 헤일로는 공통점을 지니며, 심지어 헤일로가 콘솔을 대표하는 위대한 게임 프랜차이즈로 발돋움하는 과정조차도 스타워즈가 위대해지는 과정을 보는 것 같은 기시감을 불러일으켰다. 


헤일로는 모두가 좋아할법한 위대한 영웅이 세상을 구한다라는 단순한 이야기를 이전에 찾아보기 힘들었던 거대한 전장과 자유롭게 뛰어다니는 게임 플레이, 이 플레이를 뒷받침하는 반짝거리고 신비롭고 거대한 세계와 연출, 그리고 음악 등을 통해 구현하였다. 이러한 요소들이 조화롭게 연결되어 그 결과, 헤일로는 잘 만들어진 게임이 될 수 있었다:하지만 그것만으로 헤일로가 헤일로=엑스박스 라는 공식을 만들어낼 정도로 상징적인 작품이 된 것을 설명할 수는 없을 것이다. 헤일로의 등장은 완벽한 계산 위에 만들어진 결과물이 아닌 마이크로소프트의 게임 시장 진출과 콘솔과 FPS 시대의 도래 등의 다양한 우연적인 요소들이 개입되어 있으며, 원래부터 위대하였기에 위대함을 거머쥔 것이 아닌 다양한 외적인 요인들이 개입하였기에 지금의 헤일로라는 프랜차이즈와 맥락을 만들어낼 수 있었던 것이다(물론 그렇다고 헤일로가 기본이 안된 작품이라고 하는 것이 아니다:기회는 오로지 준비된 자만이 거머쥘 수 있다) 그렇기에 어떻게 본다면 헤일로라는 프렌차이즈와 헤일로라는 게임의 맥락은 아직도 현재진행형이라 할 수 있다:이는 단순하게 프랜차이즈가 계속해서 발매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시리즈가 갖는 의미와 맥락은 계속 제작자의 계획과 다양한 상황들이 맞물려 들어가며 만들어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원래 헤일로를 만들었던 번지는 헤일로 3부작과 리치를 마지막으로 헤일로 시리즈의 개발로부터 손을 떄게 되고 그 뒤를 343 스튜디오가 이어받는다. 343 스튜디오는 소위 '계승자 3부작'(한국에서는 재생자로도 번역하긴 하지만)의 시작인 헤일로 4를 필두로 새로운 헤일로를 만들었다. 하지만 이 새로운 헤일로는 단순하게 새로운 3부작 시리즈, 헤일로 3부작과 리치의 좋은 점만 이어받는 고만고만한 작품이 아닌 아예 새롭고 무언가 다른 것을 만들고자 하는 시도였다. 이는 게임 전반의 다양한 컷씬과 대사를 통해서 드러나기도 하지만, 데이빗 핀처가 만들어낸 헤일로 4 스캐닝 트레일러에서 비교적 명확하게 드러난다. 핀처의 스캐닝 트레일러는 묘한 곳에서부터 시작된다:그것은 바로 치프가 우주를 구한 3부작의 이야기가 아니라 마스터 치프가 만들어지는 그 '기원'에 대해서였다.










그리고 이러한 스케닝의 분위기를 이어받아 헤일로 4는 이전 3부작과 다른 분위기를 보여준다:인류 분리주의 내전이 만들어낸 추악한 실험의 결과물 스파르탄 2에 대해 헬시 박사가 심문 받는 오프닝이나, 붕괴되어 쓸모없어지는 코타나, 코버넌트의 붕괴 이후 더이상 그 필요성이 사라진 위대한 영웅 스파르탄 2 마스터 치프의 존재 등등. 위대한 영웅이 우주를 구한다는 단순한 이야기(혹은 리치처럼 위대한 영웅 이전에 어떤 희생이 있었는가에 대한 리치 같은)는 불현듯 헤일로 4에서 무너지기 시작한다. 위대한 영웅은 더이상 위대한 영웅이 아니다. 그리고 이는 게임 내에서 언뜻드러나는 UNSC가 치프를 대하는 방식을 통해 적나라하지만 명확하게 드러난다:평화의 시기에 전쟁 영웅은 시체인게 세상에 더 도움이 된다고. 이런 4편의 묘한 분위기를 통해서 343은 계승자 3부작에 대한 자신들의 포부를 언뜻 드러낸다:만약, 우주를 위협하는 위협이 끝난 다음에도 영웅의 이야기가 계속된다면, 그것은 어떤 이야기가 되어야 할까? 전쟁이라는 뒤틀린 상황이 만들어낸 결과물이 평화의 시기에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지니는가? 과연 전쟁이 만들어낸 뒤틀린 존재(=영웅)가 평화를 이끌어 나갈 수 있는 새로운 '상징'이 될 수 있을까?


헤일로 5 가디언즈는 이러한 계승자 3부작의 가장 중요한 갈등의 고조를 드러내는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전쟁이라는 고난 아래서 끈끈하게 맺어진 유사 가족은 이제 각자의 길을 걷게 된다. 선조가 남긴 은하계의 평화를 지키는 '수호자Guardians의 의무'가 치프라는 케릭터와 교차하면서 치프라는 케릭터에게 크나큰 시련을 던져준다. 가디언즈의 이야기는 영웅 서사곡의 장엄한 변주곡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343 스튜디오는 이야기 뿐만 아니라 게임 전체에 있어서도 많은 변주를 부여함으로써, 헤일로 3부작, 리치, 4편으로 이어지는 게임 플레이 전반을 근본적으로 뜯어고치는데 성공하였다. 멀티플레이 역시 이러한 변화와 맞물려 들어가면서 시리즈 최고라고 평할 수 있다. 하지만 가디언즈의 문제는 역설적으로 343 스튜디오의 야심찬 계획에 의해서 생겨나게 되었으며 너무나도 넓은 설정 속에 이야기가 파묻히면서 생겨난다.


게임이 정식으로 발매되기 전, 343 스튜디오는 마케팅을 탈영한 마스터 치프와 이를 뒤쫒는 로크의 이야기로 포장하였다:하지만 실제 게임의 포장을 열어보니 이들의 갈등 비중은 대단히 적었으며, 게임의 핵심적인 이야기는 수호자의 의무를 코타나가 이어받게 되면서 생기는 다양한 사건들을 치프와 로크가 각각 추격하고 진실을 목도하는 과정에 가까웠다. 이에 대해서 사람들은 많은 실망과 분노를 표하였다:마케팅과는 다른 스토리, 갈때까지 가지 않았던 로크와 치프의 갈등, 마지막으로 4편 동안 치프와 함께 싸워왔던 가장 가까운 동료인 코타나의 배신까지, 이 모든 것들이 어느 것 하나 뚜렷한 결말로 이어지지 않고 다음작으로 넘겨주는 흐름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헤일로 가디언즈를 기존 3부작에 비교해서 볼 것이 아니라 새로운 계승자 3부작의 기준에서 본다면 이는 '꼭 필요했었던' 과정이라 할 수 있다:영웅은 이제 자신이 믿었던 신념들, 함께 전장속에서 만들어졌었고(코타나 역시 헬시 박사의 두뇌를 불법적으로 스캔하여 만들어진, 전쟁을 위해 만들어진 AI 였다) 전장을 해쳐왔었던 동료 코타나와 서로 다른 견해로 갈려지게 된다. '왜 블루팀은 치프와 함께 탈영했지? 그럴 필요가 없었잖아-블루팀은 치프와 함께 수많은 전장을 해쳐나왔지-가족이란 말이군'이라는 로크와 벅의 대화나 'ODST 때는 좋았지, 그냥 묻지도 않고 다 쏴죽여버렸으면 됐으니까'라는 벅의 대사처럼, 가디언즈가 깔고 있는 상황은 과거와 현재의 뚜렷한 대비로 이루어졌다. 모든 것을 쏴서 죽이고 폭파시키는 것만으로 문제가 해결되었고 전장 아래서 모두가 가족 형제가 되었던 과거와 평화에 대해 서로 다른 가치를 선택하고 반목할 수 밖에 없는 복잡한 현재의 뚜렷한 대비는 가디언즈가 기본적으로 깔고 있는 핵심 모티브라 할 수 있다.


여기서 로크라는 케릭터는 흥미로운 위치를 점한다. 헤일로 나이트폴 등의 방계 작품에서 등장한 제임슨 로크는 유능한 군인이라는 성격을 갖는다. 하지만 명령에 죽고 사는 단순하고도 기계적인 인물이 아닌 나름대로의 예의바름과 유연함, 철칙을 갖고 있는(메레디안 총독 슬론에게 정중하게 대하는 모습 등에서 드러나듯이) 로크의 케릭터는 치프를 쫒아서 잡는 임무를 수행함으로써 절정에 달한다. 그는 모든 병사들이 그렇듯이 스스로도 치프에게 많은 빚을 진 인물이기도 하다:그런 그가 어떤 갈등도 없이 묵묵히 치프를 체포하는 임무를 수행하는 것은 단순하게 게임의 이야기를 끌어가기 위한 장치가 아닌 치프와 대비되는 로크의 케릭터를 드러낸다고 할 수 있다. 로크는 정진정명한 군인이다. 나이트폴의 '군인으로서 마지막 순간이 오면, 그들도 당신처럼 물음에 답해야 한다. 당신의 생명으로 죽음을 만들어 낼지, 아니면 당신의 죽음으로 생명을 만들어 낼지를.'라는 대사처럼 로크는 주어진 명령이 아무리 가혹하더라도 그 속에서 자신의 가치를 관철하며 명령을 수행하고자 하는 인물이다. 그렇기에 로크는 단순한 병사라기 보다는 독특한 케릭터의 위치를 점한다:로크라는 케릭터는 군인에게 주어진 임무를 넘어서 임무 속에서 어떤 가치를 쫒는 것처럼 보여진다. 과격할 떄는 과격하지만 유연할 때는 유연하게 대처하는 로크의 케릭터는 기준이 없이 갈팡질팡 하는 것이 아닌 단단한 토양에 뿌리내린 나무처럼 흔들리지 않는다.


그리고 흥미롭게도 로크는 치프를 변절자나 배신자로 생각하지 않는다:벅과의 대화에서 '만약 치프가 이 모든 사실을 알게 된다면...-치프라면 항상 그가 해왔던 일을 할거야. 옳은 일 말이야'를 통해서 군율을 어긴 치프에 대해서 부정적으로 이야기하지 않고 오히려 그를 신뢰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여기서 로크와 치프의 케릭터가 대비된다. 로크는 신념을 가진 군인이다. 하지만 그가 임무를 수행하면서 길을 잃을 때 누가 그에게 길을 가르쳐주는가? '군인으로서 마지막 순간이 오면, 그들도 당신처럼 물음에 답해야 한다.' 라는 대사에서처럼 그 물음에 대답할 때, 그는 어떻게 그 물음에 대답하고 판단을 내릴 수 있단 말인가? 이러한 질문에 대한 대답은 로크에게, 아니 오시리스 화력팀과 UNSC 장병들 모두에게 마스터 치프라는 존재가 있기에 가능해진다. 언제 어디서라도 옳은 일을 할 수 있는 '영웅'이 바로 마스터 치프인 것이다. 누군가 가디언즈를 헤일로 2의 훌륭한 오마주라고 표현한 것은 바로 이러한 두 케릭터의 대비에 기반한다:전쟁 영웅 치프와 추락한 아비터의 대비로 시작된 2편의 오프닝이 병사들에게 무엇이 옳고 그른지를 보여줄 수 있는 모범인 마스터 치프와 이 뒤를 따르는 병사 로크의 대비인 가디언즈의 이야기로 이어지는 것이다. 즉, 아무리 현재가 과거에 비해서 복잡하고 어두울지라도, 옳은 길을 보여주는 영웅이 존재한다면 길을 잃을리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모든 병사들과 인류의 모범이자 길을 밝혀주는 존재인 마스터 치프는 역으로 가디언즈에서 가장 고통스러운 상황에 마주한다. 스파르탄 2로 이루어진 유사가족 블루팀과 함께, 치프는 코타나가 잘못된 길을 가는 것을 목도한다. 지난 3부작에서 문제를 해결하는 시원스러운 영웅의 이미지와 다르게 치프는 이제 자신의 어두운 기원과 코타나의 전향이라는 사건 속에서 고뇌한다. 재밌는 점은 치프가 자신의 기원에 대해서 분명하게 인지하고 있다는 점이다(헬시 박사가 내게 이야기했었던 것처럼 말인가?):그는 자신이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한 도구로 만들어졌음을, 그리고 전쟁에서 승리하고 자신이 있을 곳은 없다는 것을, 더 나아가 은하계에 무력과 압제로 평화를 가져다주고자 하는 코타나의 존재와 인류를 넘어서 은하계의 평화를 수호한다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질문을 마주하게 된다. 그렇기에 가디언즈의 이야기는 현재 상황을 정리하면서 계승자 3부작을 관통하는 핵심 주제이자 질문을 던지는 데 주력한다:과연 만들어진 영웅이 은하계의 평화를 수호하는 존재가 될 수 있을까? 선조가 인류에게 물려주었던 수호자의 사상이 과연 마스터 치프를 통해서 이루어질 수 있을까?


가디언즈의 이야기는 해답이 아니라 질문이란 점에서 높은 평가를 줄 수 있다. 그 어떤 프랜차이즈도 이렇게 단순하지만 무거운 질문을 던지진 않는다. 대부분은 안전한 선에서 이야기를 진행시킬 뿐이다. 하지만 가디언즈의 이야기는 단순하지만 무게있는 질문(동시에 영웅이 갖고 있는 역설, 브레히트의 말을 빌리자면 '영웅을 필요로 하는 사회는 불행하다' 그렇다면 영웅이 필요없어진 사회에서 영웅은 어찌해야 하는가?)을 통해서 기존 3부작에서 차별화되는 동시에 연장선상에 놓인 작품을 만들어내는데 성공한다. 하지만 문제는 가디언즈의 이야기가 너무나 복잡한 방계작품들의 전제들 위에 올려져 있다는데 있다:가디언즈의 이야기는 4편의 스파르탄 옵스나 다양한 프리퀼 소설(크립텀, 선조 삼부작 등)과 미니 시리즈(나이트폴, 포워드 언 투 던 등)의 다양한 이야기들을 끌어와서 통합시키는데 주력하고 있다. 그렇기에 이러한 배경 설정이나 지식에 대해서 일말의 관심도 없는 사람이라면 가디언즈의 이야기는 '이게 무슨 개소리야'로 축약될 수도 있다. 이러한 문제는 343 스튜디오의 야심이 지나치게 컸다는데서 비롯되고 있다:스타워즈의 경우, 제다이의 귀환에서부터 깨어난 포스까지의 30년간의 간극을 통해서 작품이 갖고 있는 맥락이 오랫동안 숙성되고 팬덤층의 성숙으로 새로운 형태로 변화하였지만, 헤일로의 경우 고작 15년이라는 짧은 기간동안 스타워즈나 다른 오래되고 위대한 프랜차이즈가 얻었던 깊이를 한번에 얻어내려 하였다. 그렇기에 게임의 이야기는 방계로 무리하게 확장되었으며, 이는 제대로 된 설명 없이 가디언즈의 이야기 속에 녹아들게 되었다. 그 결과, 가디언즈의 싱글플레이는 명백하게도 호불호가 심하게 갈리게 되었으며 이야기에 대한 별도의 설명이 필요하게 되었다.







논란의 여지가 많은 싱글플레이와 달리 헤일로 가디언즈의 게임 플레이는 매우 훌륭하다:위의 오프닝 시네마틱에서 드러나듯이, 게임이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은 스파르탄의 '움직임' 그 자체이다. 헤일로라는 게임의 본질은 거대한 전장을 뛰어다니거나 다양한 탈 것을 이용해서 엄청난 물량의 적들을 상대하는데 있다. 그렇기에 헤일로 시리즈의 플레이어의 움직임은 경쾌함 그 자체이다. 어떻게 본다면 언리얼 토너먼트(1999.11)나 퀘이크 3(1999.12)와 비슷한 시기(2001)에 나왔었고, 그 둘이나 그 당시 FPS의 경쾌한 움직임에 영향을 받을 수 밖에 없었던 헤일로의 게임 플레이는 그 경쾌함을 살려서 거대한 규모와 효과적으로 결합하였기에 성공하였다고 할 수 있다. 시리즈가 6작품(리치까지 포함해서)이 나오면서 헤일로는 다양한 시도를 했었다:2편에선 듀얼 윌딩 개념을 탑재하였고, 헤일로 3편에서 어빌리티 개념을 도입하으며, 리치에서는 1편의 헬스팩 개념을 다시 들고 오는 등 다양한 시도를 했었지만, 가디언즈 같이 단순하면서 명쾌하지만 게임의 본질에 근접한 변화를 시도한 작품은 없었다. 가디언즈의 게임 플레이에는 이전 작품과 다르게 '수직'의 개념이 적극적으로 도입되어 있다. 이제 게이머는 난간을 잡고 오르거나 부스터 추진을 이용해서 급하게 몸을 숨기는 등의 플레이를 펼칠 수 있다. 또한 공중에서 강하하는 강하공격의 개념, 조준 공격시에 잠시 공중에 멈춰있거나, 달리는 중에 숄더 태클로 돌진하는 등의 움직임에 대한 다양한 변주를 넣었다.


이러한 변화는 게임 레벨에 수직적인 움직임을 집어넣는 동시에 플랫폼에서 플랫폼으로 건너 뛰거나 적들 머리 위에서 지형적 이점을 활용한다던가 등의 게임의 깊이를 더한다. 하지만 흥미롭게도 이러한 변화의 모든 것이 헤일로라는 정체성 내에서 통일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콜옵 어드밴스드 워페어 같은 게임은 과격할 정도로 실험적인 변화를 게임에 준 나머지 이것이 콜옵인지 아닌지 아슬아슬한 경계를 탄다는 느낌을 주었다. 이러한 아슬아슬한 변화가 항상 좋은 것은 아니다:아무리 게임이 재밌더라도, 프랜차이즈라는 통일성을 해칠 수 있다는 점에서 과격한 변화는 프랜차이즈가 취할 수 있는 최악의 악수일수도 있다. 그러나 변화가 없다면 발전 역시 없고, 발전이 없다면 프랜차이즈는 시대에 뒤쳐져 조용히 사멸할 수 밖에 없다. 그렇기에 프랜차이즈 게임이 갖고 있는 가장 큰 문제는 어떻게 변화를 꾀하면서 정체성을 유지하는가 이다:이런 점에서 가디언즈는 모범적이라 평할 수 있을 정도로 훌륭하다. 새로운 변화들(스파르탄 돌격, 강하, 부스터 이동)은 분명 게임을 바꿀 정도로 큰 변화이긴 하지만, 마구 생각없이 내질렀다가는 금방 죽어버리기 십상일 정도로 빈틈이 크다. 그러나 적재적소에, 언제 써야할지를 안다면 이 새로운 변화들은 게임에 활력을 불어넣는 요소라 할 수 있다.


특히 이러한 변화가 가장 결실을 거둔 부분은 바로 멀티플레이 부분이다. 4편의 콜옵식 멀티가 호불호가 심하게 갈렸던 것에 착안하여 343 스튜디오는 과거의 멀티로 돌아가기로 결정한다. 가디언즈의 멀티는 구작의 멀티(온 맵에 떨어져있는 무기를 주워먹으면서 상대와 싸우는)로 회귀하였지만, 상술한 변경점 덕분에 게임은 이전과 똑같은 느낌이 아니라 더 깊이있고 세련된 형태로 발전한다. 가디언즈의 멀티는 요즘 유행하는 너도 한 방 나도 한 방식의 콜옵식 멀티와 다르게 공정한 결투 같은 느낌이 강하다. 모든 플레이어는 처음에는 모두 같은 장비를 들고 시작하며(소총/매그넘), 쉴드+체력 시스템으로 죽이기 쉽지 않게 단단하며, 쉴드와 체력은 달리지 않을 때 회복된다. 가디언즈의 멀티에서 전투는 마치 돌덩이를 때리는 것 같은데, 서로에게 얼마나 정확하게 머리에 공격을 꽂는가로 승패를 결정하며, 대결 중에 플레이어와 상대방 사이의 머리굴림(언제 엄폐를 해야하는가? 수류탄을 던져서 견제해야 하는가? 등)이 묘미라 할 수 있다. 요즘 찾아보기 힘든 4 대 4 플래이지만, 가디언즈 멀티는 느리지만 치명적이며 공정하다는 느낌이 강하다. 그리고 그만큼 상대와의 대결에서 승리했을 때의 쾌감은 다른 게임에서 찾아보기 힘들다고 할 수 있다.


전장 모드는 헤일로 가디언즈의 가장 야심찬 모드다:AOS와 레벨업, 상대방과의 전투 중에 난입하는 제 3의 세력, 다양한 차량과 무장들의 소환하는 점 등에서 기존의 헤일로의 빅팀 멀티플레이(아직 가디언즈에는 빅팀 모드가 들어있지 않다. 추후 추가예정이다)의 장점을 가져다 오는 모습을 보여준다. 전장 모드는 충분히 재밌다:하지만 문제는 전장 모드의 재미보다는 전장 모드에 쓰여지는 기본 무장 이외의 중무장이나 차량이 대부분 카드팩을 까서 나오는 형태로 보급된다는 것이다. 즉, 전장 모드 게임 내에서는 차량 장비를 보급받을 길이 없으며 끊임없이 전장모드나 다른 게임 모드로 포인트를 벌어 카드팩을 까거나 과금을 하여서 중무장이나 차량을 보급 받아야 한다. 전장 모드는 충분히 재밌지만, 장비를 부분유료화의 모델을 차용하였다는 점은 패키지 게이머들에게 있어 상당히 거슬리는 부분이라 할 수 있다.(심지어는 발매 일주일 동안 게임이 약 5억에 가까운 매출을 과금 모델로 얻었다는 분석도 있다)


결론적으로 헤일로 가디언즈는 엑원을 갖고 있는 사람이라면 꼭 구매해야 하는 작품이며, 엑원의 존재 의의라고 할 수 있는 작품이다. 게임은 헤일로 프랜차이즈에서 가장 과격한 변화를 꾀하였지만, 동시에 그러한 변화가 헤일로라는 경계 속에서 분명하게 잘잡혀 있으며, 더 나아가 재미를 준다는 점에서 높게 평가할만하다. 하지만 작품 자체는 완벽하지 않다:싱글플레이 스토리에 있어서 너무나 많은 설정을 게임 내의 이야기에 녹여내지 못한 점, 전장 모드에 부분 유료화 모델이 과하게 들어간 점 등은 아쉽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헤일로 가디언즈는 재밌는 게임이며 헤일로 팬들에게는 최고의 선물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