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이야기






솔직하게 이야기하자면, 미연시는 본인의 전문 장르가 아니다. 그리고, 미연시가 세계 시장에서 어떤 의미가 있는 장르라고 말하기도 힘들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과 일본의 서브컬처의 영향을 강하게 받는 문화권에서 자주 발견되는 '미연시'라는 게임 장르와 테마는 서구의 게임들과는 다른 독특한 자신만의 장르 문법과 이야기를 개척하였다. 예를 들어보자:우리가 흔히 평행세계에 대해서 심도있는 고찰을 다룬 바이오쇼크-인피니트의 경우, 이미 크로스 채널 등의 미연시 작품에서 '평행세계와 루프물'이라는 장르 공식이 완성된 상태였다. 물론, 이러한 루프물과 평행세계에 대한 일본 미연시 장르의 고찰은 '선택'에 의해서 갈려나가는 세계와 이야기 라는 장르의 공식을 게임의 스토리와 접목시킨 결과물(미연시가 시뮬레이션인 이유는 시행착오를 거듭하면서 자신이 원하는 엔딩의 루트를 개척하는 것...이라고 나스 키노코가 이야기한 적이 있다고 한다)이며, 이러한 점에서 서구 게임 제작전통과는 다른 분석할만한 독특한 문화와 전통이 존재한다고도 볼 수 있다.


미연시 장르에 대해서 가장 정석적인 공식은 히로인을 만나고 이야기가 진행이 되며, 그리고 마지막에 히로인과 이어짐으로서 게임 자체가 완결되는 것이다. 즉, 게이머는 히로인과의 관계를 만들어나가는 동시에, 그 관계가 정점을 맞이하는 순간 관계 자체가 엔딩과 함께 종말하게 된다는 것이다. 물론, 이것은 아주 단순하게 축약해서 이야기하는 것이지만, 게임의 엔딩과 스텝롤이 올라가면서 게이머는 한가지 의문이 들게 될 것이다:그래서, 이후에 이들(나의 분신으로서의 주인공과 히로인)은 행복하게 살았을까? 이 뒤엔 무슨 이야기가 있었을까? 이러한 '의문'에 대한 수요들은 지속적으로 '후일담'과 팬디스크의 형태로 충족되었었다. 하지만, 그것 역시 끝이 있는 '이야기'에 불과하다. 


하지만 연애라는 판타지가 가장 빛을 발하면서 강력함을 발휘하는 지점은 맺어짐 이후의 추억을 쌓아가는 '과정'이자 연인이 존재하는 '일상'이라고 본인은 생각한다. 그리고 맺어지는 이야기가 끝나는 그곳에서부터 러브플러스는 시작된다. 러브플러스는 코나미가 도키메키 메모리얼 시리즈로 전연령 미연시 시장에서 쌓아온 연륜을 토대로 만들어진 작품이다. 러브플러스는 DS로 나오면서 미연시 팬들 사이에서 조용한 광풍을 일으키는데 성공하였고, 인터넷 시대를 풍미한 전자 여친이자 하나의 밈으로 성공적으로 자리잡았다. 하지만 3DS로 낸 뉴 러브플러스의 버그와 실패로, 러브플러스 프랜차이즈는 큰 위기를 맞이하게 되었고, 이러한 뉴 러브플러스의 버그를 잡고 보완한 뉴 러브플러스+가 발매되었다.


(여담이지만, 정말이지 네이밍 센스는 거지같다고 생각한다.)


러브플러스의 게임 플래이는 두 파트로 구성된다:게임은 세명의 히로인과 맺어지는 과정을 다룬 친구 모드와 친구 모드에서 연인으로 발전한 이후 추억을 쌓아가는 연인모드로 나뉘어져있다. 친구모드의 경우, 아주 단순한 진행과정을 거친다고 볼 수 있는데, 게이머는 충실하게(?) 학교 생활을 영위하며, 히로인들을 각각의 장소에서 만나고(네네-패밀리 레스토랑, 린코-도서부 활동, 마나카-채육부 활동), 이벤트를 통해서 각각의 히로인들과 가깝게 지내면서 히로인과 주인공의 관계를 연인의 관계로 발전시켜야 한다. 물론, 이 파트에서 게임은 대단히 간단하며 쉽다:혹자는 이 파트를 튜토리얼이라고 칭하기도 하는데, 실제 연인모드에서 할 수 있는 것들과 비교해보면 친구모드는 연인모드 이전에 게임의 대략적인 탬포를 익히는 지점이라 볼 수 있을 것이다.


사실 친구모드만으로 본다면, 러브플러스의 시스템과 이야기는 상당히 애매하다:게임에 등장하는 히로인들은 3명 뿐이며, 이들이 제공하는 이야기는 지극히 평범하며 일상적인 이야기들의 연속이다. 특히 히로인이 3명이라는 것은 미연시 장르에 있어서 치명적인 부분이 아닐까 라고 생각되는데, 보통은 다양한 '속성'을 지닌 히로인들과 무색무취한 주인공이 다양한 이야기를 경험하고 이어지는 것이 미연시의 가장 기본적인 부분이라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러브플러스의 히로인들은 현실에서 찾아볼 수 있을 것 같은 '평범함'이 가장 인상적이며(동시에, 현실에서 완벽하게 동떨어져 있다. 이는 추후 설명하도록 하겠다), 이들과 주인공이 관계맺는 과정은 별다른 기승전결이 없는 일상의 무난한 이야기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친구의 관계를 넘어서 연인의 관계가 되었을 때, 보통의 미연시라면 이야기가 끝났을 지점에서 러브플러스는 본색을 드러낸다. 연인모드의 목표는 정해져있는 이야기를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히로인과 자신만의 추억을 만들어내는 것이 목표다. 이 모드에서는 시간이 일상의 시간과 똑같이 흘러가는데, 게이머는 구획으로 나뉘어진 타임라인에 맞춰서 일과를 정하고, 연인과 소소한 대화와 스킨십을 즐기면서 '남친 포인트'를 모은다. 그리고 이렇게 주중에 모은 남친 포인트를 데이트를 통해서 사용하게 되는데, 데이트에서 게이머는 히로인과 데이트스팟을 돌아다니면서 히로인이 즐거워하는 것을 보는 것을 즐기는 구조다. 대략 한시간 정도 진행되며 주말에 주로 진행되기에 주중과 다르게 게이머는 데이트를 시간적 여유를 갖고 천천히 즐길 수 있다. 게임은 이러한 데이트와 소소한 일상을 구축하기 위해서, 연인의 다양한 반응과 패턴을 게임에 집어넣었고 게임은 분명히 '일상의 반복'임에도 불구하고 이 다양한 패턴 덕분에 게임은 반복적이고 지루하다는 느낌을 거의 주지 않는다.


데이트가 게임의 메인컨텐츠이긴 하지만, 러브플러스의 하이라이트는 바로 여행이다:게이머는 히로인과 관광명소로 여행을 떠날 수 있다. 일단 본인은 이 여행 이벤트 도중에 베터리가 다되어버려서 완벽하게 클리어를 못했지만, 이 이벤트를 경험하신 분의 경험에 대해서 들을 기회가 있었다. 여행이 시작되면서부터 게이머에게 지옥이 시작되는데, 게이머가 여행을 '완벽하게' 경험하기 위해서는 당일치기 여행 36시간 동안 단 '한번'도 게임기를 끄거나 슬립모드로 전환시켜서는 안된다. 여행 내내 히로인은 완벽하게 무작위의 반응들을 보이게 되며, 심지어는 자고 있는 도중의 '잠꼬대'마저도 다 들어야 한다. 문제는 3DS의 베터리는 경악할만한 수준의 조루 베터리이기 때문에, 게이머는 3DS를 어뎁터에 꽂아놓고 하루 36시간 동안 나가지 않고 데이트를 할 준비를 해야한다. 게임 속의 여친과 주인공은 분명 여행을 가있는 상황인데도, 게이머는 혼자 집에 남아서 여친과 주인공이 여행간 것을 컨트롤해야 하는 일종의 '촌극'이라고도 볼 수 있다. 그리고 게임은 이와같은 큰 이벤트나 데이트 이외에도 추억을 만드는 다양하고 소소한 이벤트들을 집어넣음으로서 일상적인 삶에 기반한 게임의 템포를 다체롭게 구성하려 노력한다.


그리고 이러한 일상의 반복과 소소한 행복을 다뤄내는 러브플러스의 연출은 상당히 인상적이다. 먼저 게임은 3DS의 일반적인 게임기 잡기인 가로잡기가 아닌 세로잡기를 기본으로 한다. 세로잡기가 3DS만이 가능한 특수한 인터페이스 입력 방식이지만 그것이 갖는 메리트는 적다고 볼 수 있다:두 개의 스크린을 이어서 하나의 스크린처럼 구성하는 연출 방식은 두 스크린을 분절하는 경첩의 존재 때문에 부자연스럽게 보이며, 게임기를 잡는 자세도 전혀 편하지 않고, 그리고 터치스크린을 제외하면 다른 패드나 버튼을 사용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왜 굳이 이렇게 불편한 입력방식을 러브플러스는 기본으로 채용한 것일까? 그것은 가로잡기와 가로 화면이 갖고 있는 '연출적인 한계'에서 비롯된다. 세로보다 가로가 더 긴 가로잡기 및 일반적인 게임 화면은 게이머에게 있어서 트여있는 시각을 제공하지만, 수직적인 정보량은 극도로 제한되게 된다. 하지만, 러브플러스는 세로잡기를 통해서 히로인의 수직적인 정보를, 머리에서부터 하반신 일부를 보여주며, 그리고 세로잡기 특유의 게임기를 손으로 '받쳐주는 감각'을 통해서 '내 손안에 여친이 있다'라는 독특한 감성을 실현하는데 성공한다. 또한 이 감성이 뒷받침되어 여친과의 스킨십이나 키스모드의 경우, 비록 화면의 한계상 히로인의 얼굴만 터치스크린에 뜨지만 히로인과 상호작용한다는 느낌을 만들어낸다.


게임서사로 표현되는 게임 내부의 세계는 우리 주변의(물론 일본 기준으로 보자면) 평범한 일상을 다루는 것처럼 보이고 있지만, 사실은 일상과 평범함을 가장한 정밀한 환상의 공간이라고 볼 수 있으며, 이 정밀한 환상의 공간이 가상의 여자친구와 함께 현실에 존재할 리 없는 아름다운 추억을 만드는 중요한 배경으로 자리잡는다. 먼저 게임의 배경이 되는 '토와노'라는 이름은 '영원의'라는 단어이다. 그리고 게임의 시공간은 4계절은 존재하지만, 그것이 학창생활의 영원한 반복일 뿐 주인공과 히로인은 그러한 반복으로부터 벗어나지 않는다. 그리고 게임 내의 세계는 아무도 경험하지 못한 학창생활이라는 판타지를 만들어내기 위해서 대단히 친절하고 따스하며 아름답다는 느낌인데, 같은 학창 생활의 판타지에 기반하고 있는 페르소나 4와 비교해보면 러브플러스는 필요이상으로 따스하고 친절해서 어떤 때에는 소름끼치기도 할 정도라는 것이다.


그렇기에, 여타 미연시와 다르게 러브플러스가 가장 무섭고 강력한 지점은 게이머의 일상에 침투해서, 그것이 마치 설득력 있는것처럼 보이는 완벽한 추억과 완벽한 환상을 구축하고 있다는 것이다. 히로인들은 주위에서 볼 수 있는 평범한 문제를 갖고 있고, 주인공이라는 인물이 개입을 하게 되면서 그 문제를 해결하고 연인관계로 발전하게 되지만, 맺어지고 난 뒤에는 이 관계는 무슨 아다만티움으로 만들어진 것 마냥 절대 해어지지 않는 완벽한 관계가 되어버린다. 이런점에서 본인은, 좀 도발적이긴 하지만, 겉으로는 완벽하지만 속으로는 곪아버린 1950년대 미국 마을을 배경으로 한 스텝포드의 아내들이 생각나기도 한다. 물론, 이런 정교하면서도 일상에 침투하여 개인이 이루지 못했고 영원히 이루어질 수 없는 판타지를 러브플러스가 만족시켜주기 때문에 러브플러스가 수많은 팬들을 매혹시키고 있을 수 있는 것이지만, 가끔식은 이 완벽하고 보송보송한 아름다움에 소름이 끼칠 때도 있다.


그러한 소름끼치는 지점이라던가, 연출적인 똑똑함을 제외하고 본인이 러브플러스를 통해서 본 것은 하나의 '가능성'이다. 러브플러스는 솔직하게 이야기하자면 스마트폰 게임에 가까운 물건이라고 할 수 있다:언제 어디서나 가볍게 꺼내서 확인하고 진행을 하며, 게임을 한시간~2시간을 붙잡는 것이 아닌 하루 종일 10~20분 정도 꺼내어서 기분전환을 하는 물건으로서는 제 격이다. 또한 게이머의 일상 사이클과 게임의 사이클이 같이 맞물려서 돌아간다는 점에서 일상과 삶에 가까운 게임이라고도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 러브플러스는 기존의 미연시들이 갖는 한계인 '서사가 종료되면 게임도 끝난다'를 뛰어넘는다. 그리고 게임은 게이머가 질릴때까지 무한하게 반복되고 계속된다. 마치 게임속의 마을인 '토와노'처럼, 일상과 추억은 '영원하게 되는 것'이다. 

게임의 이야기가 끝난 이후에도 게임은 계속될 수 있는가? 오픈월드 게임이 아니라면 보통의 대답은 '아니다'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러브플러스는 이야기가 끝난 이후가 바로 시작이다. 그리고 그 이야기는 게이머가 스스로 써나가는 것이다. 어찌보면, 대단히 단순하고 소소한 것이기에 놓치기 쉽고 간과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하지만, 바로 그 간과하기 쉬운 지점에서 러브플러스는 게임에 있어서 하나의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한다. 이는 동물의 숲이나 심즈 같은 류의 게임과 유사하다고도 볼 수 있는데, 일상을 재현하는 게임이 게이머의 삶의 사이클과 밀접한 관련을 맺으면서 플래이될 수 있고, 동시에 그것이 심즈나 동물의 숲처럼 특정한 플래이방식을 뛰어넘어서 미연시라는 이질적인 장르 및 플래이방식과 결합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물론 동시에, 러브플러스의 한계가 여기서 등장한다:게임이 콘탠츠를 늘려나가는 방식이란 전적으로 '성우의 노가다'에 의존하고 있다. 다양한 상황에서 다양한 반응을 도출하는 것, 게이머가 지루하지 않게 성우의 훌륭한 연기를 통해서 게이머를 붙잡아두는 것이 러브플러스의 기본전략이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그러한 '인력을 때려넣는' 게임 플래이와 매력이 역으로 러브플러스라는 프랜차이즈가 확장하는데 발목을 잡는다고도 볼 수 있는데, 그렇다면 새로운 게임 메커니즘과 템포를 추가하려면 기존의 성우들을 불러서 또 그만큼의 인력을 쏟아부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본다면 러브플러스는 혁신적인 작품이긴 하지만, 동시에 구세대적인 한계에 사로잡혀서 더이상 발전할 수 없는 한계에 부딪힌 작품이기도 하다.


또다른 문제점도 존재한다. 게임의 플랫폼이라 할 수 있는 3DS의 세로잡기가 갖는 근원적인 한계, 가운데 경첩의 존재가 두개의 스크린을 분리함으로서 넓은 화면을 지원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윗쪽화면과 아랫쪽 화면 사이를 왔다갔다하며 시선이 분산되는 문제가 발생한다는 것이다. 특히 히로인이 존재하는 오른쪽 터치스크린에 왼쪽 터치스크린의 끝에서 삐져나온 선택지들로 인해서 집중이 분산되는 문제는 상당히 당혹스럽고 짜증나는 부분이라고 볼 수 있다. 게다가 부자연스러운 정도는 아니지만 프레임이 떨어지는 부분도 거슬리며, 뉴 러브플러스+ 자체가 기존의 3DS 버전 뉴 러브플러스의 버그 패치버전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기에 아쉽다고 할 수 있다.


결론적으로 뉴 러브플러스+, 러브플러스라는 프랜차이즈 자체는 새로운 게임의 가능성의 단초를 제시한 작품이며, 요즘 같이 모두가 손에 스마트폰을 들고다니면서 게임을 하는 시대에 새로운 '휴대용 게임의 콘샙트' 또는 '패러다임'을 제시하였다고 할 수 있는 작품이다. 물론, 그것이 기반하고 있는 근원적이고 태생적인 한계는, 어찌보면 러브플러스라는 프랜차이즈가 더이상 발전할 수 없는 한계로서, 곧 사라지게 될 것이라고도 볼 수 있다. 실제로도 뉴 러브플러스+의 판매량인 뉴 러브플러스에 비하면 대단히 미미한 수준이다. 러브플러스 라는 프랜차이즈의 광풍은 버그로 인해서 멈추게 된 것이다. 하지만, 누군가 러브플러스 내부에 존재하는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다면, 그리고 그것이 새로운 플랫폼(스마트폰 같은)과 결합하여 새로운 무언가가 될수 있다면, 러브플러스는 단순하게 폐인 양성 게임을 뛰어넘어서 새로운 명제를 제시한 게임이 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