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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일러 있습니다.


제 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젊은이들은 각자 자신의 길을 찾아 떠나지만 프레디 퀠 (호아킨 피닉스 분)은 여전히 방황하며 백화점의 사진기사로 살아가고 있다. 자신이 제조한 술에 의존하며 살아가고 있는 프레디는 술에 취해 유람선의 한 파티장에서 난동을 부리게 되고 다음날 그 자리에 있었던 랭케스터(필립 세이모어 호프만분)를 만나게 된다. 몇 마디 나누지 않았음에도 서로에게 이끌리게 된 두 남자. 프레디는 인간의 심리를 연구하는 ‘코즈’ 연합회를 이끌고 있는 마스터, 랭케스터의 실험대상이자, 조력자이자, 친구로서 그의 가족들과 함께 머물게 된다. 하지만 프레디는 진정한 마스터라 믿었던 랭케스터 역시 자신과 다르지 않은 불완전한 인간임을 깨닫고, 랭케스터 역시 가족들로부터 프레디를 멀리하라는 경고를 받게 된다. 두 남자 사이에 균열은 점점 커져가고 아슬아슬한 관계는 점점 파국에 치닫는데..(네이버 영화 시놉시스)


마스터는 참으로 기묘한 영화다. 감독인 폴 토마스 엔더슨은 이 영화의 각본을 사이언톨로지로부터 영향을 받았다고 토로했으며, 구상에서 완성까지 장장 12년의 세월이 걸린 소위 '라이프 워크'라 칭할 수 있는 작품이다. 하지만 감독의 전작인 데어 윌 비 블러드의 강렬한 이미지(석유)와 달리, 마스터는 상당히 복잡하고 관점을 쉽게 파악하기 힘들며 대단히 섬세한 영화라고 할 수 있다. 사이언톨로지를 모델로 한 유사과학 종교집단인 코즈를 다루는 영화의 시각은 사이비 종교라고 일방적으로 매도하지도 않으며, 유사과학의 헛소리 속에도 매몰되지 않는다. 재밌는 점은 영화가 그러한 유사종교의 헛소리와 진실(프레디의 변화)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시도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프레디 퀠이 랭케스터 도드라는 멘토이자 마스터를 만나서 어떻게 교화되는지, 그리고 어떻게 이 둘이 갈라설 수 밖에 없는지를 보여주고 이를 통해서 '인간의 변화'(또는 교화)를 다룬다.


주인공인 프레디 퀠은 2차 세계대전 수병으로 복무하고 전역한 참전용사다. 그러나, 프레디는 PTSD를 지니고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는 참전용사의 클리셰를 반복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의 문제는 좀더 '근원적'인 부분에 있다. 아버지는 과음으로 죽고, 어머니는 정신병원에 수감되었으며, 심지어 고모와 잠자리를 한데다가(근친상간), 언청이며 충동적인데다 성에 대해서 유치하게 갈구하기(수병들이 바다에 나가서 모래사장에 나신의 여성처럼 보이는 모레조각을 만들자, 그 위에 마운팅을 한다던가...)까지 하는 프레디의 내력은 그의 문제가 뿌리 깊고 역사적인 것을 암시한다. 그리고 본인도 이 사실을 잘 인지하고 있다. 그가 종전 후 자신에게 마음을 준 여자를 거부하고 고향을 떠나 정처없이 방랑하는 것은 그 자신의 성격과 핏줄에 숨어있는 문제로 인해서 행복한 삶을 살지 못한다는 자포자기와 공포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런 그를 1950년대라는 독특한 시대에 던져놓은 것은(사실 모든 시대는 제작기 특징을 지니기는 하지만), 감독의 탁월한 선택이었다고 볼 수 있다. 종전 이후 팍스아메리카와 미국의 황금기라는 별명을 받고 있는 이 시대야 말로 미국의 '정상성'에 대한 집착이 극에 달한 나머지 속으로부터 붕괴되고 있는 조짐을 보이던 시기였다(존 업다이크의 소설 달려라 토끼나, 니콜라스 레이의 실물보다 큰 같은 작품에서 잘 드러난다) 이 시기의 밝고 아름다운 것에 대한 집착은 역설적으로 폴아웃 등의 서브 컬처에서는 그 제정신이 아니고 썩어버린 내면을 드러내기 위한 역설적인 기제로 사용되는데, 영화에서는 프레디의 첫 직업을 백화점 사진기사로 정하면서 이를 극대화한다. 행복해보이지만 어딘가 공허해 보이는 인물들의 사진을 찍는 프레디는 그 사이에 낄 수 없는 타자이다. 그런 그가 사진을 찍으려는 인물에게 조명을 과도하게 들이댐으로써 고객과 싸우는 부분은 그의 충동적인 면모와 함께 그런 비정상적인 아름다움과 정상에 대한 집착을 까발리고자 했던 그의 욕구가 드러나는 부분이라 할 수 있다.


그렇기에 1950년대라는 배경에 있어서 프레디는 '독'같은 존재이다. 그는 사람들이 숨기고 싶어하는 어두운 내력으로써, 끝없이 사회로부터 밀쳐질 수 밖에 없는 타자이다.(유람선의 신나는 음악을 배경으로 신경을 긁어내는 저음의 BGM을 이중으로 깔아서 그가 느끼는 소외감과 신경증을 드러내는 장면을 보라)심지어 그는 사람이 먹을 수 없는 독같은 괴주(페인트 희석제나 사진 인화액 같은 걸 섞은 술을 우리는 술이라 부르지 않는다)를 만들어 내고, 이를 마신다. 이 술은 그의 분신과도 같은 존재인데, 그 이외에는 아무도 이 술을 마실 수 없다는 점(이해할 수 없다는 점)에 있어서 그를 상징하는 물건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렝카스터는 그의 술을 마시고는 독특하다고 평한 뒤에 프레디에게 매료된다. 


렝카스터 도드도 프레디 같이 참으로 독특한 케릭터이다. 렝카스터는 유사종교 집단이자 사이비 과학을 신봉하는 코즈를 이끄는 리더로써, 유쾌하고 유머러스하면서 동시에 보통의 사이비 교주들과 달리 자신이 하는 일이 인류를 구원하는 일이라 진심으로 믿는 사람이다. 그가 이끄는 코즈라는 집단의 사상은 대단히 독특하며 이 영화의 난이도를 높여버리는 주범이 된다:인간은 영원불멸한 영혼을 갖고 있는데, 육신이 죽으면 영혼은 떠나서 다음 육신으로 들어간다. 그렇기에 인간은 과거 전생의 자신을 파악함(코즈는 현재의 삶을 꿈으로 보고 이를 '전생으로 회귀해서 전생을 인지하는 최면-동시에 전생을 인지하고 바꿈으로써 영혼의 불멸성을 깨닫는 반최면화'하여서 영원불멸한 영혼을 인지할 수 있다고 본다)으로써 영원불멸한 삶을 얻게 된다고 보는 집단이다. 물론 랭커스터는 이를 '과학'이라는 이름으로 행하고 있지만, 현대인의 시점에서 코즈를 보았을 때는 영락없는 유사 과학 사이비 종교집단에 불과하다. 이 지점이 상당히 미묘하면서 재밌는 부분이라고 할 수 있는데, 만약 감독이 이 코즈라는 집단의 사상을 현재 존재하는 메이저 종교(물론 사이언톨로지도 아닌)들로부터 차용했다면 이 영화의 복잡 미묘한 성질은 아마도 사라지고 영화외적으로 영화의 뉘앙스와 전혀 관계없고 의미없는 종교적 논쟁이 반복 재생되게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영화는 사이비 종교로서 코즈 연합회를 만든 뒤에, 그 논리에 의거해서 한 사람의 인생을 여러가지 의미에서 바꾸는걸 보여줌으로써 관객이 종교에서 한발자국 떨어져서 이 '변화'를 판단할 수 있게끔 만든다.


이런 랭카스터가 프레디에게 관심을 갖는 것은, 그가 정말로 독특한 사례이기 때문이었다. 복잡한 내력을 가진 인물(좀더 '코즈'적인 해석으로 본다면 '전 역사를 통틀어서 독의 집합체'으로서의 존재)인 프레디를 과거의 속박으로부터 자유롭게 해서 정상인으로 교화하는 작업은 렝카스터에게 있어 대단히 흥미로운 과제였을 것이다. 그리고 동시에 프레디가 렝카스터에게 동조하고 그의 수행방식에 따르는 것은 랭카스터가 처음으로 프레디를 이해해준 타인이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로 인해서 프레디는 문제에 대해서 계속 거짓말하고 회피하는 대신(영화 내내 그가 다른 사람에게 자신에 대해서 거짓말하거나 피상적인 이야기만 하는걸 생각해보면 랭카스터에 대해서 프레디는 대단히 솔직했다고 볼 수 있다.)에 그 자신의 본질(집안 내력과 성격, 그리고 도피의 원인까지)을 돌아볼 수 있게 된다.


하지만, 렝카스터가 프레디를 교화하려는 시도 자체는 많은 난항을 겪게 된다. 일단 프레디의 성격 자체가 쉽사리 고쳐질 수 없는 것이기도 하며, 프레디 역시 코즈의 교리가 어딘가 말도 안되는 헛소리의 연속이라는 점을 깨달았기 때문이다(철창 안에서 렝카스터에게 '당신도 무슨 헛소리를 하는지도 모르잖아!' 소리친다던가) 그리고 렝카스터의 주변 인물들도 프레디가 자신들을 파멸시킬 수 있는 독같은 존재라는것을 깨닫고 렝카스터에게 프레디를 멀리하라고 충고한다. 특히 그의 아내이자 코즈의 실력자(직접적으로는 묘사가 안나오지만, 렝카스터를 수음해주는 매리의 모습과 랭카스터의 묘하게 종속된 묘사를 생각해보면...)인 매리의 경우, 프레디를 극도로 경계한다. 하지만 렝카스터는 프레디를 포기하지 않는데, 프레디를 포기하는 순간 그들의 실패를 선언하는 꼴이 된다고 믿기 때문이다.


우여곡절 끝에 렝카스터는 프레디를 교화한다. 하지만 그게 코즈의 사상과 이론이 프레디를 정상인으로 만든 것을 의미하는 것일까? 여기서 렝카스터와 프레디의 관계는 기묘하게 틀어지기 시작한다:프레디는 이제 렝카스터로부터 성격 교정을 위한 수행을 받는 것을 끝 낸뒤, 렝카스터의 사진을 찍음으로써 다시금 렝카스터와의 거리를 벌이기 시작(객관적으로 바라보기 시작, 처음의 백화점 사진사 일을 할때처럼)한다. 동시에 렝카스터 역시도 그의 교화가 프레디의 본질을 바꿔놓지 못했음을 인지한다:책 2권에서 '기억하다'라는 단어 대신에 '상상하다'라는 단어를 썼고 그것이 코즈 사상의 거대한 변화를 불러일으킬거라는 그의 추종자의 질문에 대해서 신경질적으로 대하는 렝카스터의 모습에서 이것이 잘 드러난다. 왜냐면 전적으로 2권의 집필 동기를 부여한 것은 바로 프레디와 그의 교화 경험이었기 때문이다. 전생의 기억을 되짚어올라가서 그 기억을 바꿈으로써 기억에서 해방될 수 있다고 주장하는 코즈의 사상과 달리 프레디는 그의 본질을 '바꿀 수 없었기'때문이었다.


그리고 프레디는 사람을 폭행한 뒤에, 자신이 변하지 않았음을 깨닫고 자신의 멘토이자 친구였던 렝카스터를 떠나 자신이 도피했던 연인을 찾으러 나선다. 그리고 연인이 다른 남자와 결혼해서 잘 살고 있다는 사실을 덤덤하게 받아들이는 프레디의 모습에서, 우리는 초반의 프레디와는 다른 무언가를 발견한다:그는 확실히 변한 것이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프레디의 변한 모습은 '코즈' 식이나 1950년대식의 정상인으로서의 개념이 아닌, 자신의 과거를 담담하게 받아들이고 그로부터 자유로워진 한 남자의 모습이었다. 결국 교화는 실패로 끝났다고 비난하는 매리와 자신에게 메여서 영원히 비정상인으로 살거나 혹은 영원히 자신과 결별 중 둘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이야기하는 랭카스터. 랭카스터는 떠나는 그에게 '자네는 인류 최초로 마스터가 없는 자유로운 영혼이 될걸세'라고 축복을 해주고, 떠나는 뱃사람의 연가(이 영화에서 바다는 자유와 희망을 상징하는 은유로 작용한다)를 불러주는 렝카스터의 모습은 프레디의 변화를 이해하고 받아들이며 결국은 자신을 떠나야 프레디가 궁극적으로 자유로워질 수 있음을 알고 있는 모습을 보여준다. 사이비 종교의 수장과 이 시대의 맹독과도 같은 인물 사이에서, 아이러니하게도 진실된 우정이 피어난다.


영화의 마지막, 프레디는 영화 내에서 처음으로 여자와 제대로 된 섹스를 갖는다. 영화 내내 여자에게 유치하게 껄덕대던가, 모래사장의 모래여인에게 마운팅하고 해병들이 뛰노는 해변가에서 바다를 향해 자위하거나, 집회에 모인 여인들이 벌거벗은 것을 상상하는 장면들(이 장면들은 묘한 성적 긴장감들이 있었다)과 다르게, 이 마지막 정사씬은 편안한 느낌을 준다. 그리고 프레디는 정사를 나누는 여인에게 자신의 마스터였던 렝카스터가 했던 교화를 그대로 반복한다(눈 안 깜빡이고 진실 이야기하기) 본인은 이를 자유로워진 영혼이 자신의 한때 스승이었던 사람을 기리는 독특한 제의로 느꼈다.


이러한 길고 쓸모없는 분석에도 불구하고, 영화는 놀라울 정도로 섬세한 덕분에 놀라울 정도로 지루하다. 그나마 이 지루한 영화에 있어서 볼만한 스펙타클은 바로 프레디 퀠 역을 맡은 호아킨 피닉스의 연기다. 그는 구부정하면서 사람들과 같이 있을 때도 다른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그를 밀어낼거 같은 독특한 분위기로 극을 압도한다. 또한 미친놈 처럼 발광하는 장면에서는 격정적으로 발광을 하다가도, 얼굴로 독특하고도 섬세한 표정연기를 보여주는 '안면예술'을 보여주기도 한다. 렝커스터 역을 맡은 필립 셰이모어 호프만의 친근하면서도 유쾌하고 확신에 가득찬 선의의 사이비 교주 연기도 출중했지만, 호아킨 피닉스의 신들린 연기는 그를 '전설적인 리버 피닉스의 동생'이라는 타이틀에서 벗어나게 만들어주었다. 아니, 호아킨 피닉스가 좀더 커리어를 쌓으면 리버 피닉스가 '전설적인 호아킨 피닉스의 형'으로 불리게 될 날이 올것이라고 단언할 수 있다.


솔직히 영화 마스터는 완벽하지 않다. 영화는 극히 섬세한 감정들과 섬세한 위치들을 만들어내기 위해서 너무나 많은 것을 갖다 붙였다. 물론 감독 폴 토마스 엔더슨은 이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는데 성공하였으나, 문제는 극 자체를 즐기기에는 영화가 너무나 어려운 무언가가 되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스터는 아름다운 영화다. 그것은 단순하게 한쪽이 옳다거나 양비론으로 이어지지 않는 인간 '교화'의 문제를 훌륭하게 다루고 있으며, 여태까지 교화를 다룬 고발 영화(시계 태엽 오랜지 라던가)와 다른 자신의 지점과 미학을 공고히 한 작품이다. 기회가 되신다면 꼭 감상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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