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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일러 있습니다.



나치 점령기의 프랑스, 레지스탕스 대장인 필립 제르비에는 동료의 배신으로 체포되어 포로수용소로 보내진다. 가까스로 탈출한 필립은 마르세이유에서 펠릭스, 르 비종 등의 동료들과 합류하여 자신을 밀고한 배신자를 처형한다. 레지스탕스 활동을 계속하던 중 필립과 동료 뤽은 런던에서 드골 장군을 만나 훈장을 받는다. 리용에서 펠릭스가 체포되자 프랑스로 돌아온 필립은 동지들과 함께 펠릭스 구출작전을 벌인다. 하지만 철통같은 경비의 감옥에 접근하기는 쉽지 않은데...(네이버 영화 시놉시스)


장 피에르 멜빌의 대표작이자 동명의 소설을 원작으로 하고 있는 그림자 군단은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 치하에 있었던 프랑스를 배경으로 반나치 활동을 벌였던 레지스탕스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멜빌이 나치 압제 하에서 레지스탕스를 했던 경험도 들어갔다고 하는 영화는 레지스탕스 행위이 아닌 인물의 구체적인 행동과 미묘한 감정묘사에 초점을 맞추면서 멜빌 특유의 느와르의 분위기를 만들어내는데 성공했다. 그렇기에 새벽의 7인 등의 레지스탕스 활동에 초점을 맞췄던 기존의 영화와 다른 방향성을 지니며, 영화는 레지스탕스들 목숨을 바치면서 부르짖었던 대의와 정의가 아닌 더 '깊숙한 이야기' 속으로 들어간다.


누군가는 그림자 군단을 이렇게 표현했다:그림자 군단은 레지스탕스에 대한 영화가 아니다. 그림자 군단은 갱스터 영화다. 이것만큼 그림자 군단을 정확하게 표현하는 명제는 없을 것이다. 영화는 구체적으로 레지스탕스들이 어떤식으로 나치에 대항하는가를 다루지 않는다. 아니, 영화는 그들에게서 '정의'를 빼았는다. 물론 우리는 역사적으로 그들이 나치에 대항했던 열사들이었고, 나치의 압제라는 시대의 어둠 속에서 빛났던 자유의 상징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그림자 군단의 레지스탕스들은 객관적으로 봤을때, 그리고 그들의 적이 나치라는 점을 제외하면, 그들은 '음모자'들이며 범죄자들이다. 그들은 숨어서 비밀스러운 대화를 주고 받는다. 그들은 음모를 꾸미고, 실행하며, 자신의 선택에 고뇌하고 법과 제도의 탄압을 피해 숨는다. 이렇게 써놓으니 그림자 군단의 레지스탕스의 모습은 악당이자 음모자 쪽에 가깝고, 실제로도 그러하다.


멜빌은 그들에게 대중이 공감할 수 있는 대의를 빼앗는 대신에, 그들에게 실존적 '고독'을 선물한다. 그들이 하는 일은 정의롭지만, 세상은 그들을 이해하지 못하며, 심지어는 죽이려 한다. 하지만, 영화는 그들의 대의명분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그렇기에 그림자 군단에서 주인공들은 빛(대의명분)을 지향하는 것이 아니라 어둠속(고독)으로 침잠한다. 인물들의 잔잔한 독백과 감정을 억누른 조근조근한 대화들 등등을 통해서 영화는 영화 자체의 고독을 심화시킨다. 또한 영화 초반부 집단 수용소에서 도미노 게임을 한가롭게 하던 잡범들(?)의 모습이나 런던으로 건너갔을 때 야간 폭격이 빗발치는 가운데서 춤을 추던 영국군인들의 모습, 그리고 그들 바깥에서 외부자로 남던 제르비에의 대비되는 모습은 고독 그 자체이다. 심지어 제르비에를 밀고한 배신자를 처단할 때의 레지스탕스들의 모습에서조차 그들은 한 사람을 죽이는 공동의 행위자이자 공범들이 아니라, 각자의 고독 속으로 떨어지는 침통한 모습을 각기 다른 컷을 통해서 묘사한다.


레지스탕스라는 정치적 함의와 구체적인 행동을 제거한 자리에 들어차는 그들의 '고독'을 멜빌과 배우들은 이러한 고독을 예술적인 경지로까지 승화시킨다. 멜빌의 다른 영화인 한밤의 암살자에서 보여준 알랑 드롱의 극단적인 양복과 트랜치 코트 미학과 다르게, 그림자 군단의 이미지는 전적으로 생과 사 사이에서 아슬아슬하게 줄타기를 하는 자들의 피로와 우수에 가득차 있다. 영화 내내 그들은 음모를 꾸미고 실행을 할 때의 긴장감, 그리고 슬픔과 '어찌할 수 없는' 그 미묘한 감정들(동료들이 한명 한명 죽어나가고 누군가 배신을 할때 느끼는 상실감과 고통 등등)에 조용한 몸부림을 친다. 심지어 고문을 당하고 엉망진창이 된 인물들의 모습에서조차 고통이 아닌 피로감과 슬픔을 발견할 수 있을 정도다. 하지만, 영화는 이러한 멜로드라마 적인 요소들을 극단적으로 억제하고 터뜨리지 않고 다듬으로써 다른 영화들이 가지못한 경지에 도달한다.


이러한 고독과 몸부림 속에서 희미하게 빛나는 것은 바로 레지스탕스 '동지애'이다. 같은 속에서 같은 문제로 고민하는 동류의 인간들 사이의 이 희미한 동지애는 인물들 간의 극단적인 고독 속에서 서로의 존재를 확인해주는 유일한 기제이다. 하지만 영화는 여기에서조차도 멜로드라마적인 이야기를 거부한다. 동지를 구하기 위해서 자신을 고발하고 고문 당한 뒤, 동지와 같은 감방에 들어온 레지스탕스가 조용히 동지에게 청산가리를 권하는 장면은 각자의 고통과 피로속에 사로잡힌 존재들이 겨우 소통할 수 있는 가능성이다. 하지만 영화는 이들이 청산가리를 먹고 자살하는 장면조차 보여주지 않음으로서 이러한 죽음을 미화하지 않는다. 그리고 제르비에가 불시검문에 잡혀서 총살당하기 직전에 마지막 담배를 수감자들과 같이 태우는 장면에서는 서로가 발목에 족쇄가 채워진 체로 담배를 던지면서 담배를 나누어갖는다. 묶여있는 상태에서 간신히 담배를 나눠가지는 이 장면에서, 인물들은 각기 개별의 컷으로 나뉘어지거나 서로 거리를 유지한다.(족쇄 때문에) 죽음을 맞이하기 직전의 공포와 고독감 속에서 타자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제르비에가 나누어준 담배 뿐이다.


그림자 군단은 좀 색다른 부분에서는 샘 페킨파의 폭력 영화를 연상시키는 구석이 있다. 샘 패킨파의 영화들이 사라질 수 밖에 없는 것들의 마지막 장엄함(와일드 번치나 철십자 훈장 같이)을 보여주었고, 멜빌의 그림자 군단 역시 죽음과 파멸을 곁에 둔 레지스탕스들의 미학을 다루고 있다는 측면에서 비슷한 미학을 지녔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패킨파의 영화가 죽음을 앞둔 존재들이 사라지기 전에 자신을 불태우며 총을 맞으며 모두가 평등하게 하늘로 승천하는 미학(탄도 발레로 명명된 패킨파 특유의 연출 방식은 아이러니 하게도 엑스트라들이 총맞고 죽을때 가장 빛나는 연출이기도 하다)이라면, 그림자 군단은 자신의 신념과 행동을 끝까지 관철한 인간이 무저갱 속으로 끌려들어가며 '난 그럼에도 인간으로 죽고 싶다!' 라고 소리없이 외치는 미학이다. 총살을 당하기 전에 '내가 죽지 않는다고 믿으면, 난 죽지 않는 것이다'라고 읇조리는 제르비에의 모습이나, 나치 장교의 유혹(내가 신호하면 총을 쏠건데, 만약 총에 맞기전에 벙커 저편 벽까지 뛰어가는데 성공하면 총살은 뒤로 미루겠다)에도 뛰지 않기를 바랐던 제르비에의 모습은 끝까지 인간답게 당당하게 살기를 바랐던 모습이었다. 그리고 이러한 미학은 마지막 엔딩의 한 문장 '1944년 1월 13일, 제르비에는 이번에는 도망치지 않기로 결심했다'라는 문장으로 완성된다.


영화 그림자 군단은 레지스탕스가 왜 그런 활동을 하게 되었는가, 그리고 그러한 활동의 의의가 무엇인가라는 정치적인 이야기에 대해 일언반구도 하지 않지만, 동시에 레지스탕스들이 갖고 있었던 고독감을 극대화시키고 그들을 끝까지 인간답게 싸우고 살기를 희망했던 사람들로 묘사함으로서 오히려 레지스탕스들을 더 아름답게 빛내는데 성공한 영화이다. 그렇기에 예르지 스콜리모프스키 감독의 에센셜 킬링처럼, 전혀 정치적이거나 구체적인 내용이 없는 추상적인 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 더 정치적일 수 있는(그러한 조건속에서도 인간으로서 투쟁하고자 했었던 레지스탕스들) 영화기도 하다. 기회가 된다면 꼭 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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