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이야기/게임 리뷰





*스포일러 있습니다.


크라이텍의 성공적인(?) 데뷔작이었던 파 크라이가 UBI 개발 및 퍼블리싱으로 넘어간 이후로 시리즈의 미래는 불투명해졌습니다. 사실 파 크라이 2는 실패와 성공이 공존하는 형태이었고, 3편은 크라이텍의 손을 떠나 UBI의 개발진에게로 넘어갔으며 이들은 검증받지 못한 상황이었죠. 사실, 파 크라이 3는 게임 발매 전까지는 다른 기대작들에 비하면 상당히 조용하게 넘어가는 분위기가 강했고 마케팅도 상대적으로 조용한 편이었습니다. 하지만, 게임 발매 이후 게임에 대한 웹진들의 호평들과 게이머들의 호평이 이어졌죠. 저 역시 유저들의 호평을 보고 산 쪽이었으니까요.


파 크라이 3는 기본적으로 '오픈월드' FPS입니다. 지금까지 수많은 오픈월드 게임들이 있었지만, 오픈월드 FPS는 드문 케이스라고 할 수 있죠. 파크라이 3의 기본적인 뼈대는 여타 오픈월드 게임들과 비슷합니다. '섬'이라는 공간을 주고, 여기 저기에 사이드 퀘스트와 수집 요소, 레이싱, 메인 미션 등등을 배치합니다. 사실, 뼈대 자체만 놓고 본다면 파 크라이 3는 여타 오픈월드 게임들에서 FPS라는 요소만 더한 조금 특이한 케이스 정도로 이해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파 크라이 3가 다른 오픈월드 게임들과 차별적인 경지에 이를 수 있는 것은 바로 게임의 주요 공간인 '정글'을 구현하는 방식에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여타 오픈월드 게임들이 대부분이 강력한 주인공과 한꺼번에 쓸어버리는 막강한 화력이나 능력에 기반을 두고 있다면(혹은 GTA 같이 아슬아슬한 추격전을 집어넣거나), 파 크라이 3의 주인공 제이슨 브로디는 상당히 '약하다'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모든 능력을 다 개방한 후반부에는 그 누구도 주인공 제이슨 브로디를 막을 수 없습니다. 하지만 파 크라이 3의 모호한 체력회복 시스템(과거 FPS 식의 체력 게이지와 구급약을 이용한 회복, 그리고 제한적인 콜옵식의 자동 회복), 그리고 엄청난 화력과 똑똑한 인공지능을 자랑하는 적들 때문에 파 크라이 3는 콜옵이나 여타 다른 FPS 같은 람보식 무쌍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고 할 수 있습니다. 


파 크라이 3는 신중한 접근을 게이머에게 요구합니다. 침투해야 하는 지역이 있으면, 높은 위치를 잡은 뒤 카메라로 적을 마킹해서 적의 움직임을 파악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적들은 강하고, 숫자도 많으며, 아웃포스트 점령전 이나 몇몇 미션의 경우 적들에게 발각될 경우 귀찮은 일이 많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게임 자체가 하드코어한 수준으로 어렵지는 않아요. 파 크라이 3는 다른 게임들 같이 '잠입'이라는 요소를 적극적으로 도입하지만, 잠입의 컨셉이 여타 다른 게임들과 다릅니다. 덤불이나 자신의 키 높이의 식물 근처에 있으면 바로 적들 바로 코앞이 아닌 이상, 아무도 알아차리지 못하죠. 사실 어찌보면 '사기에 가까운' 잠입요소라고도 볼 수 있지만, 주인공이 정글 먹이사슬의 최강자라는 타이틀을 갖고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덤불 속의 숨어있는 괴물'의 이미지를 생각하면 이러한 잠입요소는 컨셉과 게임 플래이를 적절히 조화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 덕분에 파 크라이 3는 람보식으로 쓸어담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곳에서 한놈 한놈 농락하는 게임 진행의 핵심입니다. 실제 '암살' 개념이라고 할 수 있는 테이크다운의 성능이 거의 괴랄할 수준으로 강하고(난간 및 공중 테이크다운, 연속 테이크다운, 테이크다운 후 수류탄 까기, 테이크다운 후 나이프 투척 암살, 테이크다운 후 권총 헤드샷 싹슬이 등등...), 손맛이 짜릿하기 때문에 게이머는 게임 내내 적을 모두 마킹한 뒤에 덤불속에 숨어서 저놈들 뒤를 어떻게 잡을까 이것만 고민하게 됩니다.  


또한 파 크라이 3는 '정글'이란 환경을 단순한 텍스쳐 덩어리가 아닌 하나의 생태계로 만듭니다. 물론 복잡한 형태가 아닌 '먹히는 자-먹는 자'라는 아주 단순한 구도지만요. 게임 초반부 사냥이라는 컨텐츠를 반 강제적(?)으로 게이머에게 강요함으로서, 게임의 흐름과 생태계에 대한 이해를 게이머가 체득하게 만듭니다. 탄약 보유량+무기 슬롯+소지금을 늘리기 위해서는 먼저 사냥을 해서 소재를 모으고 슬롯을 늘려야 합니다. 하지만 레드 데드 리뎀션(아직 어크 3를 안 해봤으니)처럼 말을 이용해서 사냥감을 손쉽게 추적할수도 없고, 정글에 있는 거의 대부분의 동물들이 주인공보다 달리기가 빠르며 일정 거리 내로 접근을 하거나 큰 소리를 내면(총을 쏜다던가...) 재빠르게 도망치기 때문에 사냥은 쉽지 않습니다. 결국 게이머는 몸을 낮추고 사냥감의 최대한 근처까지 살금살금 기어간 다음에 무성 무기로 최대한 빠르게 사냥감을 죽여야합니다. 이러한 사냥의 과정이 상당히 짜릿하다고 할 수 있으며, 딱 '이 짓을 내가 계속해야 하나'라는 의문이 들기 전에 사냥으로 만들어야 하는 것들을 다 만들 수 있다는 것은 UBI가 컨텐츠 분량 조절을 훌륭하게 해냈다는 느낌입니다.


파 크라이 3의 스토리는 여타 게임들의 그것과 비슷한 부분이 많지만, 본질적으로는 큰 차이가 있는 부분이 있습니다. 양민 주인공이 지상 낙원처럼 보이는 지옥에 던져진 이후, 극한의 레벨업을 거쳐서 섬을 통째로 뒤엎어버린다는 이야기는 사실 게임 스토리 치고는 이제 진부하다고 할 수 있을 정도죠.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 전반적인 스토리 라인이 아닌 섬이라는 공간과 그 내부의 케릭터 변화입니다. 섬은 현대 문명과 동떨어진 지옥입니다. 해적들이 원주민을 학살하고, 해적에, 노예무역까지 대놓고 일어나고 있죠. 여기에 원시의 문명을 유지하는 원주민 저항세력까지 합해지면서 섬은 준 내전 상태로 치닫습니다. 


이러한 원주민-해적 사이의 갈등 구조를 구체적으로 만드는 것은 바로 주인공이 만나는 인물들입니다. 완전히 정신이 나간 놈이라 할 수 있는 바스, 약쟁이 의사, 이국적이고 야만적인 분위기를 풍기는 시트라, 시트라에게 의존하는 데니스, 게이 살인 청부업자(겸 포르노 제작자), 진짜 CIA 요원인지 의심되는 인간 등등 게임이 진행되는 동안 섬은 점점 개판이 됩니다. 주인공인 제이슨 브로디 역시 시간이 가면 갈수록 폭력적으로 변하며, 환각과 현실을 구분하지 못할 정도로 광란에 빠지죠. 파 크라이 3의 환각 묘사는 약을 빨고 난 뒤의 하이한 그 느낌을 제대로 살리고 있으며, 환각 묘사를 통해서 이성으로는 이해가 안되는 기묘한 공간으로서의 섬(환각 속에서 미래를 본다던가, 앞뒤의 개연성을 이해할 수 없는 상황 등등)을 구축하는데 성공합니다. 몇몇 부분에서 너무 빠르게 진행되는 느낌(바스와 환각속에서 싸우고 일어나봤더니 바스가 죽음...적어도 전후 설명을 해줬으면 좋겠는데...)이 있습니다만, 전반적으로 시나리오 부분은 다른 블록버스터 게임들에 비해서는 출중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콘솔 기준으로, 파 크라이 3의 그래픽은 텍스처 디테일에 있어서 떨어진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으며, 심지어 프레임이 15~30프레임의 가변 프레임이라 뚝뚝 끊긴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습니다. 하지만, 게임은 프레임 저하로 인해 게임 플래이가 불가능하다 수준으로 프레임이 떨어지지는 않으며 텍스처의 디테일을 제외하면 전반적으로 파 크라이 3가 만들어내는 섬의 분위기는 대단히 훌륭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PC 버전의 경우, 극한의 그래픽을 감상할 수 있지만, 문제는 유플레이...자세한 설명은 생략하도록 하죠.


파 크라이 3의 가장 큰 문제점은 게임 내적 시스템의 문제가 아닌 게임 외적인 요소들입니다. 유플레이와 UBI의 병신 같은 서버 관리가 게임을 망치고 있습니다. 멀티 레벨 20을 찍을 동안 한번도 핑을 빨핑 이상 찍어본적이 없으며, 아무리 유럽/아시아 쪽만 발매했다고는 하지만 멀티에서 사람 구하기가 묘하게 빡셉니다. 멀티는 재밌어요. 콜옵 베이스에 자기 만의 이런저런 것들(단체 버프인 배틀 크라이 등등...) 섞었다고 할까? 하지만 그러면 뭐합니까. 멀티를 하기 위해서 게임 들어가는 과정 자체가 엄청난 스트레스에, 들어가서도 핑 때문에 에임 제대로 못하게 허공에 총질하기 일수인데.


파 크라이 3는 2012년이 가기 전에 나온 FPS의 대작입니다. 물론, 사실대로 이야기하자면 파 크라이 3는 혁신적인 작품은 아닙니다. 하지만 잘 겨냥된 컨셉과 컨셉에 맞게 짜여진 게임 플래이, 그리고 이와 맞물려 들어가는 게임 시나리오는 게임을 놀라운 경지까지 이끌어냅니다. 물론 멀티플래이나 코옵 서버를 정하는데 있어서 유플레이라는 사상최악의 단점이 맞물려 들어가서 게임을 망친다는 느낌도 있지만, 싱글 자체만 따지면 훌륭한 게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