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니, 만화, 영화 이야기/리뷰


 
 '시간을 달리는 소녀'를 감독한 호소다 감독의 신작 섬머 워즈는 가족 드라마+SF+로멘스 등이 복합적으로 결합된 작품입니다. 여름방학 선배와 함께 친가에 내려가서 선배의 연인 역할을 하는 주인공이 시끌벅적한 대가족이 만나면서 생기는 해프닝과 OZ라는 가상 공간을 중심으로 일어난 사이버 테러가 이야기의 두 축으로 나뉘어서 진행됩니다. 처음에는 별개였던 이야기가 점점 맞물려 들어가면서 하나의 이야기가 됩니다.

작품에서 가장 중요한 키워드는 '가족'입니다. 처음 주인공이 나츠키 선배의 본가로 가는 도중, 동행하는 선배의 가족들이 점점 늘어나는 인상적인 인트로에서 OZ에서 일어나는 사이버 테러의 대항하는 마지막까지, 거의 대부분의 가족들(혹은 가족의 지인)은 극중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습니다. 이는 이야기의 또 다른 축인 OZ라는 최첨단 가상공간 및 모든 일의 주범 해킹 A.I 러브머신과는 극명한 대조를 보여줍니다. 가족이란 것은 우리의 역사 이전에서부터 존재해왔으며, 혈연 및 지연으로 인간을 결속시킨 인류 최초의 커뮤니케이션 집단이라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섬머 워즈는 OZ라는 최첨단 커뮤니케이션과 가족 및 지연이라는 구식 커뮤니케이션 사이의 전쟁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실제로도 가족의 핵심이자 가장인 나츠키의 할머니는 OZ에서 러브머신이 일으킨 일련의 사건을 전쟁이라 보고, 여태까지 살아오면서 관계를 맺어온 지인들에게 현상황에 대한 문제점을 지적하고 이로써 OZ에서 일어난 문제가 현실에 직접적으로 미치는 것을 막습니다.

얼핏 이 장면은 '나츠키의 할머니는 대단한 인물이다'라는 환상을 심어주기 쉬운데, 실상 우리 일상 속에서도 이런 장면은 찾아보기 쉽습니다. 누군가 '사람이 자기 아는 사람을 따라 3명만 건너뛰어도 전세계 사람과 소통할 수 있다'라는 지적했던 것처럼, 인간과 인간 사이의 지연은 엄청난 인적 네트워크를 형성할 수 있습니다.[각주:1] 그렇기에, 나츠키의 할머니는 여태까지 살아오면서 만났던 사람들과 관계를 원활하게 한 케이스라고 볼 수 있는거죠. OZ에서 일어난 사이버 테러가 현실에서 실질적인 사상자를 내지 못했다는 점에서 구식 관계와 신식 관계 사이의 1차전은 구식 관계의 승리로 끝납니다.

그렇기에 사이버 테러의 범인이자 해킹 A.I 인 러브머신은 나츠키의 할머니를 제거[각주:2]하여 인적 네트워크의 접점을 제거합니다. 실상, '이성적'인 A.I의 입장에서 본다면 네트워크의 접점이자 구심점인 가장을 제거하면 자연스럽게 네트워크가 붕괴되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또한 가족들도 할머니의 죽음으로 큰 실의와 좌절에 빠지구요.

하지만, '가족'이란 쉽게 무너지는 존재가 아닙니다. 나츠키의 가족들도 그러한 슬픔을 넘어서 가족 사이의 유대를 확고히 하고, 러브머신에 대항하기 시작합니다. 여기서부터 가족들은 각자 자신의 직업과 특기를 발휘하기 시작합니다. 자위대에 근무하는 사람은 군용 안테나를 공수해오고, 전자상가 관련 일을 하는 사람은 연산을 위한 슈퍼 컴퓨터를 공수하고, 슈퍼컴퓨터의 전력을 공급하기 위해서 어부인 사람이 배를 끌고 오기까지 하는 등 각자가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합니다.

물론 그렇다고 작품에서 신식 커뮤니케이션을 마냥 부정적인 것만으로 그려내지는 않습니다. 작품의 마지막, 나츠키의 가족의 힘만으로 러브머신에 대항할 수 없게 되자, 전세계 사람들의 도움을 받는 장면은 새로운 기술과 커뮤니케이션이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어 사람을 하나로 모이게 하는 힘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동시에 힘없는 다수가 결집했을 때 얼마나 큰 힘을 낼 수 있는가를 보여주기도 합니다.

섬머워즈는 위와 같은 대립 구도를 어려운 소재나 표현을 끌어들이지 않고 쉽게, 그러면서 동시에 인상적이면서 재밌게 표현합니다. 가족 간의 화해와 단합을 보여주는 마지막 일전을 앞둔 식사 장면[각주:3]이나, 가족들이 처해있는 상황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야구 중개 장면, 그리고 마지막 이 작품의 진정한 명장면이자 백미인 고스톱 장면 등등... 그 외에도 섬머 워즈에는 멋진 장면들이 많습니다. 이야기 완급도 훌륭하고, 재미도 있고 잔잔한 감동도 있는 작품입니다. 올 여름 개봉한 일본 극장판 애니메이션 중에서는 꼭 봐야하는 작품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덧1.실상 일본 애니메이션에서 가족이라는 소재가 중요하게 등장한 적이 많았지만, 이렇게 대가족을 중심 소재로 삼은 케이스는 거의 없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재밌는 게, 이러한 일본의 대가족의 이미지가 우리가 가지고 있는 대가족의 이미지와 많은 점에서 유사하다는 점입니다. 어떤 점에서는 대가족이란 이미지가 세계적으로 어떤 공통된 이미지를 가지고 있지 않나라는 생각도 들더군요.

덧2.여태까지 나온 애니메이션 중에서 가족이 같이 밥을 먹는 장면을 정말 잘 잡아낸 애니메이션이라고 평하고 싶습니다.

덧3.어떻게 보면, 주인공이 대가족의 구성원으로 자연스럽게 들어서는 스토리로도 볼 수 있군요.

  1. 실상, 한국이나 몇몇 나라에서는 이러한 지연이 폐쇄적인 커뮤니티를 형성하여 사회발전을 저해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지연이라는 것이 많은 순기능을 가지고 있을 뿐더러, 사람이 존재하는 한 이는 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본문으로]
  2. 실제 러브 머신이 할머니를 죽인다는 직접적인 언급은 없지만, 러브머신이 나츠키 가족의 존재를 눈치채는 부분 뒤에 돌아가셨으니 그렇게 생각해도 좋을거 같습니다. [본문으로]
  3. 특히 할아버지의 첩의 자식이자 러브머신 개발을 담당한 와비스케가 마지막 식사 장면에서 식탁에 자연스럽게 들어오는 장면을 통해서 그와 가족이 서로 화해했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줍니다.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