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니, 만화, 영화 이야기/리뷰



영화 더 레슬러는 퇴물 레슬러 랜디와 그의 변두리 인생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1980년대 한 때 프로레슬링이 유행할 때 그는 잘 나가는 레슬러였지만, 시대가 바뀌면서 프로레슬링이 쇠퇴하면서 같이 퇴물이 되어버립니다. 여기에 설상가상으로 랜디는 심장에 문제가 오게 되고, 이를 계기로 레슬링을 관두려고 합니다. 그러면서 그는 여태까지 자신이 살아왔던 인생을 반추하고,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를 쌓으려 합니다. 하지만 랜디는 그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다시 링으로 돌아가고, 그의 생애 마지막 경기를 벌이게 됩니다.


이와 같이 레슬러는 구태의연한 신파물의 스토리를 따라가고 있습니다. 한 때 잘나갔지만 이제는 완전히 퇴물이 된 주인공. 그리고 그 주인공이 걸린 고칠 수 없는 병. 어릴 때 버리고 떠났던 자식. 프로레슬링의 세계 바깥에서 유일하게 소통할 수 있는 여인 등등...이와 같이 전형적인 요소가 많이 들어있습니다. 하지만, 그러한 신파적인 코드를 기저에 깔고 있다고 해서 더 레슬러가 평범한 3류 신파물이 되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그러한 식상한 스토리와 소재를 이용함에도 불구하고, 더 레슬러는 관객들에게 식상하다는 느낌을 주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쥐고 흔듭니다.


더 레슬러와 비슷한 컨셉을 가지고 있는 영화들이 있다면, 그것들은 이준익 감독의 음악 3부작(저는 패배자 3부작 이라고 부르지만)ㅡ라디오스타, 즐거운 인생, 님은 먼 곳에ㅡ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둘의 공통점은 신파 코드를 끌어오면서도 동시에 신파 코드 그 자체를 뛰어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는 신파와 인생에 대한 철학, 혹은 이들에 대한 따뜻한 감성이 근저에 깔려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구태의연한 소재를 끌어오면서도 새로운 영화를 만들어 낼 수 있었던 것이죠.


더 레슬러와 이준익 감독의 음악 3부작 사이의 차이점이 있다면, 그것은 랜디가 이 세상에서 완벽하게 철저히 소외당했다는 것입니다. 이준익 감독의 음악 3부작에서는 적어도 이 세상과 소통할 수 있는 일말의 희망, 일탈 같은 부분을 남겨두었지만, 더 레슬러에서 데런 아르노프스키 감독은 주인공인 랜디를 세상에서 소외시킵니다. 몇 년만에 찾은 딸과는 좋지 않게 해어지게 되고, 클럽에서 서로 좋아하던 스트리퍼 댄서와는 이어지지 못했으며, 은퇴한 뒤에 동네 샐러드 바에서 일하는 자신을 알아보는 사람 때문에 상처 받습니다. 결국 이로 인해서 랜디는 자신이 있을 곳이 링밖에 없다는 것을 깨닫고, 다시 링 위로 올라섭니다.


이러한 과정을 감독인 데런 아르노프스키는 대단히 저자극적으로 보여줍니다. 몇몇 극적인 사건들도 일말의 호들갑 없이 담담한 시점으로 보여주고 있고, 일상생활 등을 거친 핸드핼드의 카메라를 통해서 사실적으로 보여줍니다. 이는 그의 예전 작품이었던 레퀴엠(2000, 관련 리뷰는 여기)과 극단적으로 대조됩니다. 레퀴엠에서는 온갖 MTV 스타일의 자극적인 카메라 기법을 동원해서 현대 사회의 중독에 대한 고찰을 드러내었지만, 더 레슬러에서는 그러한 촬영 기법을 핸드헬드 이외에 거의 쓰지 않으니까요.


하지만, 데런 아르노프스키 감독은 현실적인 영화 분위기에 랜디와 세상 사이의 간극을 드러내는 영화적인 장치를 적절하게 삽입합니다. 이는 그가 그리워하는 그의 전성기인 1980년대와 현대 사이의 간극을 보여주면서 완성됩니다. 일례로 랜디가 자신의 이름을 딴 NES(혹은 우리나라 일본 등지에서는 FC로 알려진) 게임을 동네 꼬마를 불러서 할 때, 동네 꼬마는 콜 오브 듀티 4 이야기를 하죠. 어찌보면 80년대를 풍미했던 NES가 현재 관점에서 보았을 때는 완전히 퇴물이 된 것이고, 랜디 또한 그러하다는 것을 잘 드러냅니다. 그리고 랜디의 트레일러의 붙어있던 영 엥거스의 AC/DC 포스터와 딸의 집에 붙어있던 Vampire Weekend(2008년에 유행한 밴드 중 하나) 포스터 등등 랜디와 현재 세상의 간극을 잘 보여주는 영화적 소품이 많습니다. 그리고 미장센 또한 이러한 랜디의 상황을 잘 보여주는데 일조하죠.


그러나 감독의 적절한 연출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미키 루크의 연기입니다. 원래 주인공 역에 실베스타 스텔론이나 니콜라스 케이지를 후보로 두었지만, 결과적으로 미키 루크가 주인공으로 정해졌죠. 만약 실베스타 스텔론이나 니콜라스 케이지가 주인공을 맡았으면, 이 영화는 절대로 지금 같은 완성도를 보여주지 못할 겁니다. 한 때, 1980년대의 나인 하프 위크 등에 출연, 색스 심볼로서 느끼함과 근육으로 한 시대를 풍미했던 미키 루크. 하지만 1990년대 이후로는 마약과 문란한 사생활 문제로 완벽하게 망가지게 되었고, 더 이상 배우로써 재기가 불가능하다고 생각될 정도였습니다. 물론 2000년대 이후로 신시티에 등장해서 배우로서 아직 살아있음을 보여주었지만, 만화적 이미지가 주된 영화인 신시티에서는 연기의 완성도를 논할 부분이 없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더 레슬러에서 미키 루크는 말 그대로 퇴물입니다. 80년대의 탄탄한 근육과 매끈한 피부, 잘생긴 얼굴, 말총머리 등 한 때 섹스 심볼이라고 볼 수 있는 부분은 모두 망가져서 나옵니다. 축축 늘어진 근육과 주름 잡힌 얼굴, 푸석푸석한 머리까지, 물론 어느정도 분장은 한 것이겠지만, 보는 사람들은 '과거의 미키 루크가 망가졌구나'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하지만, 그러한 망가진 모습이야 말로 랜디 역에 어울리는(미키 루크 본인에게는 좀 미안한 이야기지만) 모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영화 내에서 미키 루크는 완벽한 망가진 중년 퇴물 레슬러의 모습입니다. 그러면서 이 영화에 어울리는 연기를 보여주고 있죠. 덤덤하게 저자극적인, 그러면서 자신의 감정이나 성격을 스크린에 서있는 것만으로 드러낼 수 있는 놀라운 경지의 연기를 보여줍니다. 이는 더 레슬러의 랜디와 미키 루크 본인이 걸어온 삶이 결과적으로 같다고 할 수 있기에, 미키 루크가 자신의 인생경험을 이입한 것이라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미키 루크=랜디'의 공식은 영화의 마지막 랜디가 링 위에서 마이크를 잡고 연설을 할 때, 가장 극적으로 드러납니다. 자신이 한때 젊어서는 뭣도 모르고 설쳤고 좀 더 순탄하게 살 수 있었지만 그렇지 못했다는 것, 그리고 자신은 이제 완전히 퇴물이 되었고 더 이상 갈 데도 없게 되었지만 결국 링 위에서 관객들의 받은 환호를 잊지 못해 돌아온 랜디. 이는 랜디의 자기 고백이자 동시에 미키 루크의 자기 고백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부분이야 말로, 이 영화의 백미이자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영화의 마지막, 링 위에서 마무리를 짓기 위해서 뛰어내리는 랜디의 모습을 끝으로 스텝롤이 오르고, 브루스 스프링턴의 'The Wrestler'가 흘러나옵니다. 이 노래를 끝으로 리뷰를 마치고자 합니다.

 

Bruce Springsteen "The Wrestler" - Official Video



Have you ever seen a one trick pony in the field so happy and free?
-당신은 벌판 위에서 묘기 부리는 행복하고 자유로운 조랑말을 본 적이 있나요?
If you've ever seen a one trick pony then you've seen me
-당신이 그 묘기 부리는 조랑말을 보았다면, 당신은 나를 본 것입니다.
Have you ever seen a one-legged dog making its way down the street?
-당신이 외발인 개가 거리를 내려가는 것을 본 적 이 있습니까?
If you've ever seen a one-legged dog then you've seen me
-당신이 그 외발 개를 보았다면, 당신은 나를 본 것입니다.

Then you've seen me, I come and stand at every door
-당신은 나를 보았고, 나는 와서 모든 문 앞에 섰죠.
Then you've seen me, I always leave with less than I had before
-당신은 나를 보았고, 나는 항상 잃는 삶을 살아왔습니다.
Then you've seen me, bet I can make you smile when the blood, it hits the floor
-당신은 나를 보았고, 나는 내가 피투성이가 되었을 때 당신을 미소짓게 할 수 있죠.
Tell me, fan, can you ask for anything more?
-이야기해보세요, 더 이상 당신이 뭘 더 물어볼 수 있죠?
Tell me can you ask for anything more?
-이야기해보세요, 당신이 뭘 더 물어볼 수 있죠?

Have you ever seen a scarecrow filled with nothing but dust and wheat?
-당신은 먼지와 밀짚단 밖에 없는 허수아비를 본 적이 있습니까?
If you've ever seen that scarecrow then you've seen me
-당신이 그 허수아비를 보았다면, 당신은 나를 본 겁니다.
Have you ever seen a one-armed man punching at nothing but the breeze?
-당신은 항상 헛손질하는 외팔이 복서를 본적이 있습니까?
If you've ever seen a one-armed man then you've seen me
-당신이 그 외팔이를 보았다면, 당신은 나를 본 겁니다.

Then you've seen me, I come and stand at every door
-당신은 나를 보았고, 나는 와서 모든 문 앞에 섰죠.
Then you've seen me, I always leave with less than I had before
-당신은 나를 보았고, 나는 항상 잃는 삶을 살아왔습니다.
Then you've seen me, bet I can make you smile when the blood, it hits the floor
-당신은 나를 보았고, 나는 내가 피투성이가 되었을 때 당신을 미소짓게 할 수 있죠.
Tell me, friend, can you ask for anything more?
-이야기해보세요, 더 이상 당신이 뭘 더 물어볼 수 있죠?
Tell me can you ask for anything more?
-이야기해보세요, 당신이 뭘 더 물어볼 수 있죠?

These things that have comforted me, I drive away
-나를 안락한 것들을 모두 갖다 버렸네.
This place that is my home I cannot pay
-내 집이라 할 수 있는 이곳은 내게 더 이상 감당이 안되네.
My only faith's in the broken bones and bruises I display
-내 유일한 신념은 내가 보여주는 부러진 뼈와 멍에 있다네.

Have you ever seen a one-legged man trying to dance his way free?
-당신은 한 다리로 자유롭게 춤추려는 외다리 사나이를 본 적이 있습니까?
If you've ever seen a one-legged man then you've seen me
-당신이 그 외다리를 보았다면, 당신은 나를 본 겁니다.


덧1.아.. 가사 번역 뭔가 어색해ㅠㅠ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