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타 혹은 스포일러, 반전 까발림 등에 대한 전설적인 에피소드들 중에서 이런 것이 있습니다. 정확히는 기억이 안나지만(아마 십중팔구 김영하의 영화 평론집이라고 생각합니다), 유주얼 서스펙트를 보러 간 어떤 한 사람의 이야기였습니다. 여러명의 범죄자가 나와서 '어떤 놈이 진범일까'를 두고 두뇌게임을 벌이는 것이 영화의 주요 내용인데, 그 사람은 그런 류의 영화를 대단히 좋아했기 때문에 영화에 대한 많은 상상과 기대를 하고 영화관에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영화관 벽에 걸린 포스터ㅡ인물들이 일렬로 쭉 서있는ㅡ에 누군가 한 인물에 얼굴에 동그라미를 쳐놓고 '이 새끼가 범인'이라고 써놓는 바람에 그 사람은 영화를 보는 내내 집중하지 못했다고 하더군요.
흔히 네타는 리뷰나 리뷰를 읽는 사람들에게 있어서 하나의 금기시 되는 코드입니다. 그도 그렇죠. 이미 작품의 핵심 또는 중요 내용, 감상의 포인트를 미리 알게 해서 재미를 반감시키는 그런 부작용도 있으니까요. 하지만,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과연 네타가 작품 감상에 항상 부정적인 영향을 주는것일까? 라구요.
사실, 네타는 작품에 있어서 결론을 까발리는 겁니다. 그리고 여러분들은 기본적인 영화에 대한 사전지식을 가지고 영화를 관람하겠죠. 만약 여러분이 네타를 당하고, 거기에 사전지식을 덧붙여서 가지고 있다면 과연 여러분들이 그 영화에 대해서 알고 있다고 결론 내릴수 있을까요? 물론, 여러분들은 전제(영화적인 사전 지식)와 결론(네타)을 동시에 가지고 있습니다. 전제에서 결론을 도출하는 것은 일반적인 이성과 상식을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구요. 어찌보면 여러분들은 그 작품에 대해서 보지 않고도 모든것을 파악하고 있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작품을 보기전에 작품을 다 본것과 같은 느낌을 주어 작품 감상에 방해를 주는 경우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접근하는건 어떨까요? 여러분들이 미로를 풀고 있다고 가정해봅시다. 그렇다면, 여러분들이 미로의 출구와 입구를 알고 있다고 해서 미로를 다 풀었다고 결론 내릴수 있을까요? 아닙니다. 여러분들은 직접 선을 그려 입구를 따라서 출구로 나오기 전까지는 그 미로를 풀었다고 할 수 없습니다. 영화 또한 그렇습니다. 영화는 전제에서 시작된 이야기가 어떤 방식으로 표현되는가, 어떤 과정을 거치는가, 어떤 이야기를 내포하는가 등의 과정을 통해 결론을 내게 됩니다. 즉, 영화 자체는 전제와 과정, 그리고 결론의 유기적인 결합체이고 단순히 전제와 결론을 알았다고 해서 영화 전체를 알았다고는 할 수 없는 겁니다.
예를 들어보죠. 영화 '살인의 추억'은 명백히 우리가 영화적 전제와 결론을 알고 있습니다. 영화는 실제 화성 연쇄살인 사건에 근거하고 있고, 범인은 잡힐 수 없다는 것을요. 그렇다면, 우리는 이 영화의 전제와 결론을 다 알고 있으니까 이 영화를 다 보았다고 할 수 있을까요? 그건 아닙니다. 영화는 결과적으로 절망적인 엔딩에 다다를 수 밖에 없음에도 불구하고 다양한 시도를 꾀합니다. 이렇게도 생각할 수 있지 않을까? 저건 저런데서 빈틈이 있지 않을까? 이런식으로 영화는 관객을 영화 속 인물들에 감정이입을 시키고, 우리가 익히 아는 결말ㅡ연쇄살인범은 잡히지 않는다ㅡ에 대해 극적인 긴장감과 분노ㅡ제발 그 놈이 범인이라고 말 해달란 말이야!ㅡ를 안겨줍니다.
그렇기에, 영화의 시작과 끝을 알았다고 해서 여러분이 영화의 모든 것을 알고 있다고 말은 할 수 없는 겁니다. 결과적으로 그걸 풀어내는 '과정'이 없기 때문이죠. 물론, 그렇다고 네타 그 자체가 좋은 것이다 라고 인정할 수 는 없습니다만(누군가 미리 내용을 말하는 거 만큼 김새는 건 없죠), 그렇다고 해서 네타 그 자체가 감상에 있어 항상 방해가 되거나 해가 되는 악질적인 요소는 아니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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