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니, 만화, 영화 이야기/애니에 대한 잡생각



1.볼 기회가 충분히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항상 뒤로 미루어 두었던 SAC 1기 및 2기를 감상하고 있습니다. 결론만 이야기하자면 이거 물건이군요. 사실 여태까지 감상을 미루어 왔던 이유는 공각기동대라는 애니메이션이 제게 있어서 여러가지로 큰 의미를 가지고 있고, 과연 SAC가 그에 부합할 수 있을까 라는 의문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SAC는 원작과는 별개로 나름대로의 작품관을 구축했더군요.

2.SAC 자체는 원작 공각기동대의 페러렐 월드 격입니다. 즉, 공안 9과가 어떤식으로 활약하였는가 라는 컨셉으로 만들어진 것이 SAC입니다. 이를 표현하는데 있어서 공안 9과의 독특한 입장과 거기서 오는 정치적인 코드, 그리고 시로 마사무네가 구축한 SF 의 신세계에서 일어나는 신종 범죄와 사회 문제, 철학적 문제 등을 조화시켜서 하나의 작품으로 만들려 했고, 그러한 시도가 성공적이라고 저는 봅니다.

3.일단, 공안 9과라는 특수 비밀 조직이 다른 조직들과의 알력 다툼이나 정경 유착, 국제 테러리즘 등의 정치적인 사안을 두고 어떤식으로 이를 풀어내는가는 이야기의 핵심입니다. 기본적으로 에피소드 각각이 이러한 정치적인 문제 등의 외골격을 두고 이야기를 풀어나가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정치적인 문제를 이야기의 핵심에 둔 것으로 인해 이야기는 무게감과 사실성을 지니게 됩니다. 즉, 어디서 지구 정복을 노리는 외계인이나 악의 군단 이야기 보다는 정치가에게 로비하는 다국적 기업 이나 이념에 미친 테러리스트, 마피아, 썩은 정치가 들이 공안 9과의 적이라는 것이 작품을 매력적으로 만드는 것이죠.

또한 21세기 최첨단 SF 세계도 결과적으로 20세기 인간들의 세계의 연장선상(썩은 정치인, 돈만 밝히는 다국적 기업, 마피아 등이 넘치는 세계)이라는 인식을 심어줌으로서 감상자들이 작품에 더 몰입할 수 있도록 만듭니다. 그렇기에 이야기는 허황되거나 장황하게 늘어놓지 않고 우리가 이해하고 인식할 수 있는 범위선에서 풀어내게 됩니다.

4.그러나 이러한 정치적인 색깔을 강조하게 된다면, 이야기가 자칫 무거워지고 볼거리가 줄어드는 문제가 있을 수 있기에(애니메이션에 있어서 볼거리가 없다는 건 치명적이죠), 작품은 공안 9과가 맞딱뜨리는 범죄들이 인간의 능력의 확장으로 인해서 우리가 지금 상상할 수 없는 특이한 상황으로 설정하고, 여기서 작품의 볼거리 및 SF 적인 흥미를 유발합니다.

 사실, 저는 작품을 보면서 근 20년전 시로 마사무네가 만들어낸 공각기동대라는 작품이 얼마나 신선하고 참신한 세계관을 가지고 있는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인간의 인지 능력, 신체 능력, 지각 능력의 극단적인 발달과 육체의 소멸, 육체의 대체재화, 인간과 기계의 경계 모호, 영혼의 문제 등등...지금은 보편적인(?) SF적 개념이 되었지만, 이런 소재와 이야기는 항상 생각할 가치가 있고 흥미를 동하게 만드는 소재임에는 분명합니다. 그리고 SAC는 이를 말이 아닌 하나의 구체적 상황(범죄 등)으로 표현함으로서 자칫 지루한 이야기가 될 수 있는 소재들을 흥미있게 포장하고 있습니다.

5.개인적으로 1기 및 2기 통틀어서 笑い男(웃는 남자, Laughing Man) 에피스도가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따라서 작품 전반은 리뷰하지 않더라도, Laughing Man 에피소드 자체만은 따로 리뷰로 다루도록 하겠습니다. 사실, 이게 가장 인상적인 이유는 역시 이 에피스드에서 일어난 현상이 고스란히 대한민국에서 일어났다는 점이겠군요. 

6.1기는 감상이 완료되었고, 2기는 현재 감상중. 사실 2기는 너무 정치적인 색체를 강조한 거 같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