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이야기

 

여신전생 시리즈는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시리즈였으며, 수많은 파생작들을 통해서 노하우들을 쌓아올린 프랜차이즈였다. 87년 처음 나온 디지털 데빌 스토리 여신전생을 시작으로 한 여신전생 시리즈는 이후 진여신전생 시리즈(슈퍼 패미콤에서 PS, 닌텐도 3DS까지)를 거쳤고, 그 과정에서 아틀라스를 도산의 위기에서 살린 외전인 페르소나 시리즈(특히 3과 4)와 데빌 서머너 시리즈, 소울 해커즈, 파엠과의 콜라보인 환영이문록, 쿠즈노하 라이도우 시리즈 등등 여신전생 시리즈의 방계라 불릴 수 있는 작품들은 지난 25년간 수도 없이 나왔다. 그리고 이들이 쌓은 노하우들은 서로 공유되고 전승되면서, 마치 시리즈 속 악마들이 강해지는 것처럼 시리즈의 완성도를 점차 조금씩 늘려가고 있었다.

그러한 시리즈의 노하우와 완성도가 정점에 달해 판매고라는 목표와 함께 맞물린 케이스가 바로 페르소나 3일 것이다. 페르소나 자체는 여신이문록으로 분류되며, 직접적으로 여신전생 시리즈와 맞닿아있진 않지만 악마 합체나 프레스 턴 시스템과 같은 여신전생 시리즈만의 시그니처 시스템들은 공유하고 있기 때문에 이를 여신전생 세계관의 일부로 봐야할 것이다. 여기에 학창생활과 커뮤니티를 통한 관계의 발전과 전투에의 영향, 이를 뒷받침하는 자잘한 시스템들이 맞물리면서 '이상적인 학창생활'을 구현함으로 여신전생 특유의 칙칙하고 암울한 세계관을 탈피해서 대다수에게 어필할 수 있었다. 그리고 페르소나의 성공은 당연하게도 여신전생 시리즈의 메인스트림으로 부각되면서, 다른 작품들을 '방계'로 밀어버리는 상황을 만들어버렸는데, 정통의 계보라 할 수 있었던 진여신전생 시리즈는 3편 녹턴 매니악스 이후로 위자드리 스타일로 싸게 만드는 등(진여신전생 4편과 4 파이널, 스트레인지 저니 같은) 다소 찬 바람을 맞았기 때문이다. 물론 진여신전생 시리즈가 서구권까지 포함해서 50만장 이상 ~ 100만장 미만으로 팔릴 때, 페르소나 4는 플2 황혼기에 나와서 거의 단독으로 200만장을 찍었기 때문에 이러한 편향은 어쩔 수 없는 것이었지만, 진여신전생으로 여신전생 시리즈를 기억하는 사람들에게는 페르소나 일변도로 진행되는 여신전생 프랜차이즈의 상황은 딱히 좋지 않게 보였다.

진여신전생 5는 4 이후 근 10년 만에 나온 완전 신작이다. 특히나 진여신전생 4가 3에서 3D 폴리곤 형태로 악마를 묘사했던 것과 달리 위자드리와 같이 초상화 띄워놓고 효과만 그 위에 겹쳐놓는 형태로 간단하게 만들었기 때문에, 3편과 유사한 느낌으로 회귀하는 것에 대해서 사람들이 많이 환호했다. 물론 스위치 발매가 된 2017년 이후 첫 트레일러 공개가 되고 나서 아무런 소식없이 4년을 기다리긴 했지만, 2021년 11월 드디어 게임이 발매되면서 진여신전생 신작에 대한 염원은 마침내 이루어졌다. 전체 시리즈에 대한 노하우가 집약되었고, 이전  시리즈의 게임들에서 찾아볼 수 없는 규모감도 존재하는 것이 진여신전생 5다. 하지만, 동시에 4년의 기다림에도 불구하고 미완성된 느낌을 지울 수 없는 작품이기도 했다.

진여신전생 5나 여신전생 시리즈는 고전적인 JRPG의 구조를 따르고 있다. 공간은 던전과 마을로 이원화되어 있고, 던전 내에서 플레이어는  탐색을 하면서 던전을 돌파하고, 그 과정에서 만나는 역경인 몬스터들을 사냥해서 점차 강해지는 구조를 취한다. 그리고 던전을 클리어하거나 던전에서 자원을 소비하는 경우, 스토리를 진행하거나 자원을 보충하기 위해서 마을에 복귀하여 이를 보완하여야 한다. 고전적인 RPG에서는 육성이 보통 레벨업과 맞물려 있기 때문에 '몹을 잡는다 - 레벨업을 한다 - 더 많은 몹을 잡는다 - 레벨업을 한다 - ....' 라는 식의 단조로운 패턴으로 이어지기 십상이었다. 하지만 여신전생의 시리즈의 경우에는 이러한 단조로운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서 프랜차이즈 전체를 관통하는 독특한 시스템인 '악마회화'와 '악마합체' 시스템을 도입하였다

악마회화와 악마합체는 쉽게 이야기해서 플레이어의 동료가 '소모품이자 스킬을 계승하는 용도'의 악마가 되는 부분이다. 전투 시 레벨업을 통해서 더 강해지기 보다는 던전과 상황에 맞춰서 각각의 역할과 목적에 맞게 악마를 합체시키고, 악마를 합체시키기 위해서 전투중에 조우하는 적 악마들과 대화하고 교섭해서 이들을 동료로 끌어들여 합체 소재로 쓰든가, 아니면 레벨업을 시키고 스킬을 얻든가 등의 다양한 활동을 통해서 진여신전생 시리즈는 기존의 RPG 시리즈와는 차별화된 강점을 갖는다.

진여신전생 5는 위와 같은 내용을 집대성하고, 여기에 몇몇 변화점을 추가한 작품이다. 5편의 큰 변화점들은 오픈맵, 심볼 인카운트, 던전 구성, 마가츠히 시스템들이다. 이러한 시스템들이 모두가 유기적으로 묶여서 진여신전생 5편의 게임 플레이를 구성하는데, 이러한 완급이 상당히 잘 짜여져 있어서 재밌는 게임이 된다. 다만, 몇몇 치명적인 문제점들 때문에 아쉬운 부분들이 존재하는 게임이기도 하다.

진여신전생 5는 기본적으로 오픈 맵의 구성을 취한다. 기본적으로 진여신전생 시리즈는 기믹이 있는 던전과 마을이라는 공간으로 이원화된 케이스였다. 그러나 진여신전생 5는 이를 바꿔서 오픈맵 형태로 변화시킨 것은 시리즈 최초다. 진여신전생 5의 필드를 오픈월드가 아닌 맵으로 표현한 것은 최근 자주 보여지는 오픈월드의 개념과는 다르기 때문이다:일단 게임의 규모 측면에서 트리플 A 게임이라고 분류할 수 없고, 오픈월드에서 보여지는 세계와의 상호작용 같은 요소나 자유로운 탐색들은 찾아보기 힘들다. 그리고 5편은 심볼 인카운터를 도입해서 '내가 원하는 때 싸울 수 있다/전투를 피할 수 있다' 라는 관점에서 편의성과 쾌적함을 추구하였다.

흥미로운 점은 진여신전생 5가 복층구성의 거대한 던전에 가깝다는 점이다. 반대편에 있는 젤다의 전설 야생의 숨결과 비교해보자. 야생의 숨결에서 하이룰은 거대한 세계이며, 그 세계를 구성하기 위한 원칙들을 게임의 규칙으로 구현하는 시뮬레이션의 모습을 보인다. 그리고 한 장소에서 다른 장소로 가는 플랫포밍 요소가 있을 때도, 자원의 관리(스테미너)나 속력이나 위치 등의 다양한 요소들이 맞물려서 다양한 결과를 만들어내는 것이 야생의 숨결이었다. 하지만 진여신전생의 세계는 과거 던전의 형태에 가깝다. 점프하여 층을 옮길 수 있는 플랫포밍 요소가 있긴 해도, 달리면서 점프를 할 필요가 없고, 정해진 위치에서 정해진 점프를 하면 층을 바꿀 수 있다. 흥미로운 점은 진여신전생 5에서 맵은 작은 복수의 빌딩 던전이나 구역으로 나뉘어져있고, 거기까지 도달하는데는 '단 하나의 정답 루트'만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진여신전생 5는 예산이 적게 들긴 했지만 기존 시리즈에 대한 노하우와 폐허에 대한 기믹을 활용한 게임이라 할 수 있다. 하나의 오픈맵으로 보이지만, 수많은 던전맵들의 조합으로 구성되어 있고, 어떻게 갈 것인가? 라고 고민하면서 맵을 찾아 돌아다니는 재미가 있는 게임이다. 다만 최근 오픈월드 게임의 전통에 익숙해진 사람들이 보면 다소 오해가 있을만한 디자인들이라 할 수 있고, 이러한 부분에 대해서 맵에 대한 불만이 생길 수 있다. 이 부분을 이해하고 게임을 플레이해야 게임 진행이 수월해진다.

전투, 레벨업, 육성 부분에서 진여신전생 5는 생각보다 많은 변화점이 발생한 부분이다. 변경된 부분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기존 여신전생 시리즈를 들여다 봐야 한다. 3편에서 프레스턴 시스템을 도입하여 "약점을 찔리면 죽는다"(약점을 찌르면 늘어나는 데미지+상대 턴이 늘어난다)라는 개념이 있어서 적이나 플레이어나 '한 대만'이라는 독특한 긴장감이 있는 작품이었다. 3편에서 4편으로 넘어오면서 내성, 무효, 반사 스킬들을 악마에게 계승하는 것이 쉬워져서 방어적인 측면에서 상당히 쉬워진 게임이라 할 수 있는데, 중반 이후 급락하는 난이도를 후반에서 만능 속성으로 난이도를 재조정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하는 등 전반적인 난이도 측면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다. 3편의 프레스턴이나 전투에서의 숫자감각 등은 이후 많은 시리즈들에게 영향을 끼쳤는데, 스케일링 되는 수치나 악마 관리 육성 등의 감각 등은 페르소나 시리즈로 넘어와서도 공유되는 부분이다.

5편은 진여신전생 시리즈상 가장 잘 조율된 게임이다. 다양한 요소들에 세밀한 조정이 가해졌는데, 이러한 조정들이 어우러져서 기존의 여신전생 전투의 페러다임을 바꿨다고 할 수 있다. 5편에서 프레스 턴 시스템은 턴의 연장이라는 측면에서는 전작들과 동일하지만, 턴을 연장하기 위해서 3~4편과 달리 약점 이외에도 '크리티컬'이 중요하게 적용한다는 점에서 큰 차이가 있다. 기존 작품에서도 크리티컬이 프레스턴을 유발하긴 했지만 낮은 확률로 발생하기 때문에 게임에서 적극적으로 운용하기에 어려웠다면, 5편에서 크리티컬은 무조건 크리티컬이 터지는 기술이나 속성과 물리 공격이 섞인 기술들, 더 나아가 관통물리나 필중 크리가 등장하는 등 물리 기술 폭이 증가하고 크리티컬을 운에 의존하지 않고 플레이어가 원하는 곳에 이용할 수 있다는 강점이 생겼다. 

5편에서 크리티컬 요소를 강화하는 추가 요소로 "마가츠히"가 있다:마가츠히가 모이면 모든 공격이 크리티컬이 되거나, 강력한 능력을 쓸 수 있는데 중요한 점은 이 마가츠히를 모아서 모든 공격이 크리티컬 되는 요소는 아군이나 적군이나 양쪽 모두 가능하다는 점이다. 이 말인 즉슨, 상대가 마가츠히를 발동하면 무조건 프레스턴이 발동된다는 것인데, 상성의 유불리를 떠나서 가드를 따로 하지 않으면 강제적으로 프레스턴이 발동하기 때문에 5~10레벨 이상 플레이어가 들고 있어도 방심하다가 전멸당해버리는 일이 비일비재 하다. 그렇기 때문에 전작에 비해서 가드를 더 적극적으로 섞고, 마가츠히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프레스턴을 철저하게 계산하고, 더 나아가 상대의 공격 패턴(관통 능력 있는지 여부)을 정확하게 파악하는게 중요하다.

전투에서 또다른 흥미로운 점이 있다면, 아이템이나 스킬에서 일시적으로 방어를 강화하는 부분이 있고 그것이 상당히 어울린다는 점이다. 물리 공격을 방어하는 물장석, 마법공격을 반사하는 마반경 등등의 아이템들이 있고, 추가적으로 스킬로 그러한 요소들도 있다. 이러한 부분들이 플레이어의 운신을 폭을 늘려주는데, 4편의 초반 수문장이라 할 수 있는 메두사와 5편의 초반 수문장인 히드라를 비교해서 보면 더더욱 그러하다. 4편의 경우, 내성이나 무효 속성이 거의 없고 약점을 막을 수 없기 때문에 메두사가 불가능하다 싶을 정도로 어렵게 느껴졌다면, 5편의 경우 아이템인 물장석/화장석 같은 무효화 아이템만 재때 써주고 약점 찌르면서 프레스 턴만 벌어주면 어떻게든 클리어하는게 약간 어렵긴 하지만 불가능한 수준은 아니다. 이렇게 방어 상성 관점에서 유연성을 주고 있다는 점에서 진여신전생 5는 방어 전략에서 유연성을 주고, 플레이어가 계속해서 머리를 굴리고 준비하게끔 만든다.

육성 관점에서 진여신전생 5는 악마 합체와 스킬전승, 내성 맞추기 등이 4편 기반이긴 하지만, 여기에 허물 시스템과 향이라는 아이템을 새로 추가하였는데 이것이 편해지는 요소와 불편해지는 요소로 동시에 적용되었다. 허물은 악마가 레벨업 할 때 일정 확률로 드롭하는 아이템인데, 주인공에게 스킬을 옮겨주는 용도뿐만 아니라 내성도 옮길 수 있다는 점에서 내성 관리를 이전작들보다 더 수월해지게 한 부분이 있다. 하지만 동시에 허물 수급이 쉽지 않기 때문에 함부로 내성을 바꿀 수 없다는 문제가 있다. 그리고 악마 육성에 능력치 없과 레벨업을 쉽게 할 수 있게끔 하는 향과 경전을 추가하고, 탐색 등을 통해서 지속적으로 수급할 수 있게끔 하여서 악마 육성을 쉽게 해주는 부분이 생겼다.

전반적으로 진여신전생 5는 훌륭하지만, 몇몇 치명적인 문제로 완벽하지 않은 게임이 되었다. 첫번째 문제는 구조적인 문제다. 앞서 이야기했듯이 고전적인 RPG 구조는 던전과 마을의 이원화된 구조, 그리고 던전 내에서는 사냥과 탐색, 육성이 전투라는 연결 고리를 통해서 사이클을 돌면서 게임이 진행된다. 진여신전생은 던전 내에서는 완벽한 사이클을 보여준다. 문제는 내리터브 사이클을 관장하는 마을의 영역에서 발생한다. 진여신전생 5에서 플레이어는 폐허가 된 도쿄를 던전으로, 마을이라 할 수 있는 도쿄가 다른 한 축으로 구성되는데 게임의 모든 회복, 상점, 육성 등의 모든 요소들이 던전 내의 세이브 포인트인 용혈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마을로 돌아갈 일이 없어지고, 내러티브를 진행할 사이클이 구조적으로 약해진다는 문제가 있다. 덕분에 게임의 거대한 규모에 비해서 서사가 매우 짧게 느껴지는데, 5~6개의 챕터 구성으로 되어있고 도쿄를 거대한 폐허로 5분할 하는 야심찬 모습도 보여주지만 정작 게임 내에서 굵직한 사건이라고 할 수 있는게 고작 5개 정도라 맵 크기만큼 서사를 못채우는 문제가 있다.

물론 던전 내에서 일어나는 스토리라인을 집중하여 진행하면 문제가 없을지 모르겠지만, 이러한 구조 때문에 진여신전생5에서는 스토리의 중심이라 할 수 있는 NPC가 희미해진다는 문제가 있다. 진여신전생 시리즈들은 각각의 스토리라인(뉴트럴, 카오스, 로우)에 대응하는 인물들이 있고, 그 인물들의 편을 들어주면서 스토리를 전개하는 특징이 있다. 진여신전생 4편 역시 그러한 특징이 있었는데, 플레이어가 자연스럽게 선택하는 대화선택지나 내용에 따라서 스토리 라인 분기가 갈리게 되고, 그 분기에는 일부의 진실만이 담겨있어 플레이어가 전체를 보고 싶으면 여러번 게임을 클리어해야 했었다. 하지만 진여신전생 5에서는 플레이어의 플레이에 따라서 성향이 갈려도 마지막 엔딩 전의 선택지에서 엔딩 분기를 선택할 수 있고, 선택지를 돈내고 바꾸는게 가능한(!) 시리즈 사상 초유의 분기처리를 보여주었다. 결국은 플레이어의 성향이 게임에 잘 녹아들지 않고, 플레이어가 선택하는 행위와 결과가 납득가능하게 구성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이런 초유의 선택을 보였다. 

결국 이것은 게임 자체가 미완의 스토리와 구조를 지니고 있기 때문에 생긴 문제다. 게임 극후반부라 할 수 있는 지고천의 레벨 디자인이라던가, 스토리 전개, 레벨링 구조상 비어있는 부분(70~90 레벨링이 거의 불가능한) 등이 이를 뒷받침 한다.

결론을 내리자면, 진여신전생 5는 정말로 완급조절이 뛰어난 작품이고, 훌륭한 작품이 될 수도 있었지만 근 5년의 개발기간에도 불구하고 분명하게 미완성된 부분이 있는 작품이었다. 재미는 분명히 있고, 플레이할만한 가치도 있다. 제노블레이드 2와 같은 작품들과 비교해봐도 미완성이긴 하지만 분명 꿀리지 않는 최고의 작품 중 하나이긴 하다. 하지만 미완성된 부분들의 단점이 너무 크고, 장점이 너무 빛나기 때문에 그 단점이 더 눈에 부각되는 문제가 있다. JRPG를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한 번 시도해볼만 하지만, 여신전생 시리즈 특성 상 완성판이 나올 수 있으니 그 완성판을 기다려보는 것도 방법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