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이야기


* 모탈컴벳 X 리뷰를 참조하시며 보시면 도움이 됩니다.


21세기에 들어온 이후, 마블 코믹스와 DC 코믹스는 만화 뿐만 아니라 영화/게임 등 컨텐츠 시장에서 격돌하는 라이벌 관계였다. 마블이 디즈니에게 인수되고, DC 코믹스가 워너 브라더스라는 거대 미디어 자본과 손을 잡고 만화 이외의 컨텐츠 시장에 진출하였다. 게임 시장 측면에서 본다면, DC 측은 배트맨 아캄 시리즈와 함께 인저스티스 시리즈라는 강력한 프랜차이즈를 보유하고 있다. 인저스티스 시리즈이 시작은  모탈컴벳 시리즈 제작사 구 미드웨이가 만든 DC 유니버스 대 모탈컴뱃이다:이 게임이 발표되었을 때 사람들의 반응은 폭발적이었는데, 북미쪽에서 탄탄한 팬덤을 지닌 모탈컴벳과 DC 코믹스의 결합은 캡콤측이 만든 마블 대 캡콤 시리즈를 연상케하는 부분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구 미드웨이의 도산과 함께 DC 유니버스 대 모탈컴뱃 프로젝트도 같이 사라진 것처럼 보였지만, 구 미드웨이가 네더렐름으로 재편되고 인저스티스 시리즈가 나오고 흥행함으로써 DC 코믹스 쪽의 격투 게임은 그 명맥을 이어갈 수 있게 되었다.


인저스티스 2는 인저스티스 시리즈의 최신작이다. 기본적으로 인저스티스 1편의 시스템들(케릭터 파워 등)과 모탈컴벳 X의 강점만을 끌고 오고 있는 인저스티스 2는 게임 외적인 컨텐츠 측면에서 매우 눈여겨 볼만한 변화를 보여준 게임이다. 네더렐름은 모탈컴벳 최신작(모탈컴벳, 모탈컴벳 X)들을 통해서 지속적으로 업데이트 되는 타워 컨텐츠나 소셜 게임에서 찾아볼 수 있는 요소들(집단 레이드 등)을 도입한 팩션 시스템을 게임에 접목시켰다. 이를 통해 네더렐름은 격투게임이라는 장르를 단순히 '1:1 격투'에 국한시키지 않고 한계에 도전하였다. 하지만 인저스티스 2는 그보다 더 나아갔다. 그리고 이러한 변화는 많은 부분 앞서가기도 하였지만, 전통적인 격투 게이머에게 생리적인 거부감을 심어줄지도 모르는 부분이다.


기본적으로 인저스티스 2는 모탈컴벳과 모탈컴벳 X의 시스템을 많은 부분 차용한다:콤보 시스템이나 선입력 시스템, 상쇄 불가능한 장풍이나 텔레포트 공격 등등이 다른 격게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네더렐름 특유의 시스템이다.(이에 대한 상세한 이야기는 모탈컴벳 X 리뷰를 참조해주시길) 하지만 여전히 인저스티스 2에서 찾아볼 수 있었던 고유의 액션들과 특징들도 있다. 우선, 인저스티스 2도 4버튼 공격 체계는 유지하지만 약-강 펀치/킥 공격이 아닌 약,중,강 공격+케릭터 파워 공격으로 구성되어 있다. 각각의 케릭터 파워는 고유의 공격 모션과 메카니즘을 지니는데(가령 배트맨은 3기의 유도 배터랑을 불러내서 추적 장풍을 쏠 수 있다), 모탈컴벳 시리즈에서 케릭터들이 서로 유사한 부분들과 차이가 나는 부분이 있었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인저스티스 시리즈는 '케릭터만의 콤보/운영'을 더 중요시 여긴다 할 수 있다. 하지만 그러한 고유의 케릭터들의 운영이 매우 어려운 것은 아니다. 몇몇 케릭터들은 케릭터 파워나 콤보 자체가 단순하면서 강력하기 때문에 초보도 부담없이 게임을 운영하고 입문할 수 있다.


또한 모탈컴벳 X와 비교했을 때, 인저스티스 2는 몇몇 시스템적인 간소화가 이루어진 편이다:모탈컴뱃 X와 같은 버튼 가드 시스템과 텔레포트 공격이 인저스티스 2에도 존재한다. 하지만 개나소나 역가드 텔레포트 공격을 들고 나왔던 모탈컴뱃 X를 생각하면, 인저스티스 2의 텔레포트 공격은 몇몇 케릭터(슈퍼걸 같은)에 제한적으로 적용되어 있으며, 텔레포트와 함께 콤보로 이어가는 것이 더 빡세졌다. 그 덕분에 인저스티스 2는 버튼 가드와 함께 방향키를 뒤로 누르는 가드 시스템을 같이 사용하고 있는데, 이와 같은 점을 볼 때 모탈컴벳 X 때를 생각하면 운영이 더 쉬워진 측면이 있다. 또한 고화력 콤보를 위해 런캔슬을 익혀야 할 필요가 있었던 모탈컴뱃 X에 비교하면 인저스티스 2는 런캔슬 개념을 삭제하고 케릭터 파워를 이용해 콤보를 이어나가게끔 하고 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콤보나 운영 난이도가 낮아진 부분이 있다.


기본적으로 인저스티스 2는 모탈컴벳의 전통을 들고오면서 케릭터만의 개성과 차별화에 초점을 맞추고, 전반적인 운영난이도를 낮추었다. 하지만 인저스티스 2에서는 모탈컴벳, 아니 그 어떤 격투 게임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한 특징이 있다. 인저스티스 2는 각 케릭터 별로 장비를 맞출 수 있고, 장비를 통해서 케릭터에게 능력치(기본기/기술/체력/방어력 등)를 보정해서 '강해지는 요소'가 있다. 이는 대난투 시리즈 이외의 격투 게임에서는 쉽게 찾아볼 수 없는 시스템이긴 한데, 이러한 능력치들은 1:1의 진검 승부를 다루는 장르 특성상 벨런스 파괴를 일으키는 민감한 부분이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인저스티스 2는 싱글플레이 및 멀티플레이 개인 매치 이외에는 이러한 기어가 실제 능력치 보정을 주지않고 몇몇 퍽만 제한적으로만 적용되어 대전 벨런스에 큰 영향을 주지 않는다. 그러나 게임 마케팅 전면에 장비에 의해서 강해지는 케릭터와 운영 방식을 강조하는(Every battle defines you) 모습은 인저스티스 2에서 장비와 장비를 통해 강해지는 케릭터의 개념을 매우 강조한다고 할 수 있고, 이런 점에서 게임은 격투게임 전통의 대인전 외의 무언가를 염두에 두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실제 인저스티스 2는 대인전 이외에도 주요한 컨텐츠인 멀티버스가 존재한다. 멀티버스는 모탈컴벳 X의 타워 컨텐츠를 한층 더 확장하였으며, 기어 파밍과 레벨업을 통해서 더 높은 난이도의 컨텐츠에 도전하고 더 좋은 기어를 얻는 등의 과정을 거친다. 멀티버스는 단순하게 AI와의 공정한 1:1 격투를 강조하지만않고, 다양한 변수를 게임에 도입한다:주기적으로 플레이어에게 날아오는 유도 미사일이나 감전 바닥, 콤보 금지 등등 멀티버스는 각각의 라운드를 돌발변수로 채워넣는다. 물론 이러한 돌발변수들이 여타 격투게임에 비하면 얄팍한 깊이를 보여주는 것도 사실이다:게임에 대한 깊이 있는 고민을 하기 보다는, 외부의 돌발변수에 근거해서 게임의 흐름을 통제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이러니 하게도 격투게임 초보자들 기준에서 보자면 멀티버스의 이러한 변수들은 게임과 규칙에 대해서 생각하게 만들고 자신의 행동을 의식적으로 통제하게 만든다는 장점이 있다. 화려한 콤보나 이지선다가 없어도 멀티버스의 변수를 이해하고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것으로도 충분히 이길 수 있다. 멀티버스의 강점은 격투 게임의 컨텐츠를 모두가 즐길 수 있게 구성하였다는 점이다.


멀티버스를 통해 볼 수 있는 네더렐름의 목표는 격투 게임을 즐기는 플레이어의 저변을 넓히는 것이다:이미 네더렐름은 모탈컴벳 X의 타워나 팩션 컨텐츠를 통해서 대인전의 스트레스 없이 혼자서도 재밌게 놀 수 있거나 다른 사람과 경험을 공유할 수 있는 경험을 보여준 적이 있다. 하지만 모탈컴벳 X의 타워와 팩션 컨텐츠는 그 보상과 목표가 불분명한 부분이 있었기 때문에, 플레이어의 명예욕(팩션 페이탈리티나 카드/아이콘 같은)을 빼면 계속 이를 진행하게 만드는 동력이 부족했다 할 수 있다. 인저스티스 2의 멀티버스는 이러한 단점을 기어 파밍을 통해 자신의 외관을 꾸미고 더 강해진다는 '목적 의식'을 플레이어에게 부여하는 것으로 채워넣는다. 기존의 모탈컴뱃 시리즈에서 보여준 '격투 게임의 싱글 컨텐츠'의 이상향은 인저스티스 2를 통해서 보완되었다.


흥미로운 점은 인저스티스 2의 멀티버스와 기어 파밍의 흐름이 반복 노가다를 통해서 더 나은 기어를 구하는 모바일 게임의 그것과 유사하다는 점이다. 플레이어가 시간과 노력을 들인다면 자신이 좋아하는 케릭터의 레벨과 기어를 파밍할 수 있다. 하지만 그러한 일련의 과정이 귀찮다면, 플레이어는 모바일 게임과 같이 시간을 돈으로 살 수 있다. 인저스티스 2의 소액결제는 대부분 시간을 돈으로 사거나, 자신의 외관을 치장하기 위한(기어 외관 복사) 것에 집중되어 있다. 물론 인게임에서도 소액 결제 없이도 해당 화폐를 구할 수 있지만, 이는 매우 제한적이다. 물론 소액 결재를 통해서 유지되는 모바일 게임에 비교하면 인저스티스 2의 과금 유도는 매우 낮은 편이지만, 컨텐츠 소비 구조 자체가 모바일 게임에 기반하고 있다는 점은 게임 전체가 다소 이질적으로 느껴지게 만드는 부분이다. 


인저스티스 2의 가장 이질적인 부분은 바로 '자동전투'일 것이다:플레이어는 자신의 컨트롤이 부족한 경우, 장비를 세팅하고 컴퓨터에게 컨트롤을 맡기고, 플레이하는 것을 편하게 앉아서 지켜본 뒤 승리 보상을 얻을 수 있다. 이 자동전투의 개념은 인저스티스 2 뿐만 아니라 전체 격투 게임 장르의 역사를 통틀어서 전례를 찾아보기 힘든 부분이다:물론 아미보에 플레이 기록을 저장하고 강하게 키운 다음에 대전이나 스파링 상대로 써먹는 대난투의 경우가 있었지만, 인저스티스 2의 그것은 모바일 게임의 자동 전투를 연상케하는 구석이 더 많다. 물론 게임은 최후의 양심(?)이 있는 건지, 스테이지 클리어 후에는 수동으로 조작하여 넘어가줘야 하는 부분이 있지만, 이 때문에 인저스티스 2가 대전 격투 게임인건지 아니면 모바일 게임의 영향을 더 강하게 받은 기묘한 혼종인 건지 햇갈리는 경우가 많다. 물론 멀티플레이 등에서는 게임은 충분히 정상적으로(?) 작동하기 때문에 격투 게임 본연의 재미는 충실한 작품이기에 인저스티스 2가 단순히 모바일 게임과 결합한 혼종이자 문제작이라 하기에는 어폐가 있다.


결론만 놓고 본다면 인저스티스 2는 모탈컴벳 시리즈의 좋은 점을 이어받았으며, 멀티버스 컨텐츠를 통해서 혼자서도 즐길 수 있는 대전 액션 게임을 네더렐름이 만들었다는 점이다. 그러나 모바일 게임의 컨텐츠 소비 구조를 격투 게임에 섞어 둔 점은 다소 이질적이며, 자동전투나 이런 부분은 과연 꼭 그랬어야 했었나 싶은 느낌을 준다. 플레이어 대신 컨트롤을 잡고 싸워주는 컴퓨터와 보상만 뽑아먹는 과정을 보며(물론 어려운 멀티버스의 경우에는 이것이 스트레스를 덜 받긴 하지만) 참으로 기묘한 기분이 든다:이것이 정녕 격투 게임의 미래일까? 그 결과는 오로지 시간만이 알려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