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이야기





울펜슈타인 뉴 오더 리뷰(http://leviathan.tistory.com/1870)에서도 언급하였듯이, 잔인하게 이야기하자면 둠과 울펜슈타인 같은 현대적 FPS의 시조들에게 더이상 있을 자리는 존재하지 않는다:이들이 발매된 이후 근 20년 동안, 시장의 트랜드는 계속해서 바뀌어 왔으며 게임 업계의 패러다임을 바꾸었던 id 소프트도 주도권을 잃고 점점 지는 태양이 되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는 퀘이크 3의 하드코어한 게임 플레이를 정점으로 FPS의 트렌드는 점점 대중이 쉽게 플레이할 수 있는 게임으로 향해가고 있으며, 둠의 매력적인 싱글플레이(무지막지하게 많은 적과 무지막지하게 강력한 무기들, 넓은 맵에서 모조리 쓸어담는 것)를 훌륭하게 자신만의 방식으로 재해석한 작품들(시리어스 샘이나 페인 킬러 같은)도 많았었다. 더이상 둠과 퀘이크 같은 게임들은 유일한 게임들이 아니게 된 것이다. 하지만 둠과 울펜슈타인 같은 '시작점'들이 갖는 의미는 고유하다. 이는 단지 게임 자체의 평가만은 때문은 아니다:오래되었지만 새로운 것을 요구하는 시대에 하나의 이정표를 남길 수 있는 것은 때로는 역사적인 맥락을 가진 특별한 작품들에 의해서만 가능하다는 것을 우리는 다양한 사례를 통해서 보아왔기 때문이다. 특히 요즘같이 과거의 게임들을 벤치마킹해서 새로운 게임들을 만들어내는 것이 하나의 트랜드처럼 되어가는(콜옵이 점점 2000년대 근방 소위 하이퍼 FPS스러운 움직임을 보여주었다는 점에 주목해보자) 흐름에서 오래된 게임 프렌차이즈의 신작은 더더욱 눈여겨 볼만한 것이다.


오픈 베타를 통해 보았을 때, 둠 2016는 그런 의미에서 진정으로 의미있는 작품이다. 물론 그것이 긍정적인 의미만을 내포하지 않는다:둠 2016은 20년 전의 퀘이크 3를 기억하고 둠 오리지널을 기억하는 사람들에게 과거 게임에 최신 트렌드를 '타협'한 작품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게임은 전성기 퀘이크 3의 절반으로 속도가 줄었으며(심지어 패드로 게임을 플래이해도 문제가 없을 정도로), 콜옵식의 로드아웃(콜옵식이라기 보다는 헤일로 4에서 실패를 한 로드아웃 시스템에 가까운 형태지만)과 데몬룬 같은 일종의 파워플레이 시스템도 탑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퀘이크나 둠 순혈주의자에게 있어서 둠 2016은 거의 악마적 이단에 가까울 정도라 할 수 있다. 코어하지도 않고, 소프트하지도 않고 둠스럽다기 보다는 이미 우리가 20년간 보아왔던 수많은 게임들의 짬뽕이 바로 둠 2016의 정체다.


하지만 잠시 냉정을 되찾고 바라보자면, 둠 2016의 변화는 오히려 트렌드와 자신의 유산을 정확하게 이해한 결과물이라 할 수 있다:콘솔 게임 시장이 PC 게임 시장과 함께 코어 게임 시장을 양분하고 있는 이 상황에서 과연 콘솔을 배제한 게임을 만들어낼 수 있을까? 이전과 같이 키보드 1부터 0까지 단축키에 지정된 모든 무기들을 사용하면서 굳이 싸울 필요가 있을까? 혹은 마우스를 움직이며 점프를 하면 이동속도가 가속되었던 '버그성 테크닉'까지 다시 게임에 살려놔야 하는 것일까? 팬들은 너무나 쉽게, 그리고 너무나 잔인하게도 변화한 게임에 대해서 '이건 내가 좋아했던 게임이 아니야'라고 이야기를 한다. 하지만 문제는 지난 20년 동안 팬들이 사랑했던 그 게임의 유전자들은 다른 게임들에 의해서 더 정교하게 다듬어지고 계승되어 왔다. 그렇기에 둠의 잡탕스러움은 엄밀한 의미에서 자신이 흩뿌려놓은 유전자를 '회수'하는 과정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아마도 둠과 퀘이크의 멀티플레이의 적장자라 할 수 있는 트리플 A 게임은 바로 '헤일로' 시리즈라 할 수 있을 것이다(페인킬러나 시리어스 샘이나 그외 기타의 다양한 게임들에 대해서는 넘어가기로 하자. 그렇게 된다면 너무나 많은 흐름을 우리는 다루어야 할 것이다):그당시의 게임들의 움직임이나 맵을 돌아다니면서 무기를 주워먹는다던가의 흐름을 유지했었던 게임은 이제 헤일로 정도 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헤일로와 둠 2016은 많은 부분 흥미로운 공통점들이 있다:수류탄과 다양한 장비들을 추가한 점이나, 헤일로 4의 로드아웃 시스템을 적극적으로 차용한 점 등이 그러하다. 하지만 헤일로와 둠 2016은 중요한 부분에서 다른 게임이라 할 수 있다:4편의 로드아웃 시스템을 실패로 규정하고 다시 맵 상의 무기를 주워먹으러 돌아다니는 형태로 바꾼 헤일로 5 가디언즈의 멀티플레이는 얼마나 상대방의 머리를 노려서 헤드샷을 빠르게 따내는가라는 점을 두고 서로의 실력을 겨룬다는 측면에서 하나의 양식화된 스포츠처럼 느껴질만한 요소들이 많다. 이러한 부분을 상징적으로 드러내는 것이 바로 헤일로 5의 기본 부무장 매그넘이라 할 수 있다:매그넘의 한 발당 데미지는 막강하며 머리에 사격을 집중할 수 있다면, 그 어떤 주무기들에도 꿀리지 않는(물론 상황에 따라서 강력한 무기를 써야지만) 화력을 보여준다. 그렇기에 때로는 헤일로 5의 멀티는 서부의 무법자 같이 서로 권총을 뽑고 서로의 머리를 노리며 사이드 스텝을 밟는 양태를 보여주기도 하며, 이러한 모습을 통해서 서로의 기술과 피지컬이 얼마나 뛰어난지를 겨루는 스포츠를 연상케한다.


하지만 둠 2016은 헤일로와 다르게 여전히 과거의 둠이나 퀘이크 시리즈를 연상케하는 피튀기는 혈투의 양태를 띈다:퀘이크 3를 연상케하는 수직적인 움직임을 발판이나 텔레포트 패드를 통해 재현하면서도, 헤일로 5의 난간 잡기 플랫포밍을 도입하고, 여전히 다른 게임들에 비해서 더 빠른 움직임을 보여주는 등 차별화된 모습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흥미로운 점은 헤일로 4에서 실패했다고 판단된 로드아웃 시스템이 둠 2016에서는 정말로 이 게임에 알맞는 시스템이란 느낌을 준다는 것이다. 이는 둠 2016의 로드아웃 시스템이 퀘이크 3 멀티에서 자주 찾아볼 수 있는 플레이 스타일이기 때문이다:로켓런처를 쏘면서 스플레시 데미지를 주어 적의 체력을 깎아두고 근접하여 샷건으로 마무리 짓는다던가 등의 전법은 이미 과거에도 찾아볼 수 있었다. 즉, 과거의 게임에서도 두개의 무기를 하나의 세트처럼 묶어서 쓰는 전법은 이미 존재했었던 것이다. 둠 2016의 무기들은 하나같이 '극단적'이기 때문에 로드아웃 시스템은 각 무기의 극단적인 부분을 보완하는 시스템이자 초보가 좋은 무기를 찾아서 맵을 해메다가 고수에게 학살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일종의 공정한 경기장을 만드는 시스템이라 할 수 있다. 즉, 둠 2016은 단순하게 자기보다 앞선 자신의 후계자들을 그대로 배끼는데 치중하는 것이 아닌, 자신이 과거에 어떠했는가를 파악하고 그것을 현대적으로 재해석 하는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오픈베타를 통해서 본 둠 2016은 나름대로의 고민과 노력을 기울인 작품이다. 물론 둠 2016이 수많은 올드 게이머들이 싫어할만한 요소를 갖추었고 이러한 조합이 정말로 괜찮은 건지는 진짜 게임이 나오기 전까지는 알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둠 2016은 기대해볼만한 작품이고, 과거의 FPS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하고 있는 게임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는 요즘 같은 트렌드에서 눈여겨 봐야할 작품이란 점은 변함이 없을 것이다.


둠 2016은 5월 13일 발매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