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이야기



데스티니의 성공 아닌 성공 이후로 MMO(Massively Multiplayer Online)의 문법을 콘솔 패키지 게임에 융합시키려는 시도는 큰 흐름이 되었다. 하지만, 데스티니의 핵심적 문제는 MMO의 문법을 적용시킨 것에 있다기 보다는 콘솔 게임의 속성과 MMO의 속성이 서로 부합하는가에 있었다:MMO는 서비스로서 지속적인 업데이트와 이벤트를 통해서 게이머의 관심을 끌어야 하고, 콘솔 게임은 하나의 패키지로써 완성된 상품을 게이머에게 제공해야 한다. 말하자면 데스티니는 이것도 저것도 아닌 어중간한 중간의 영역에 속했었다. 그런 어중간한 부분의 매력이 동시에 수백만의 게이머를 끌어들일 수 있었지만, 동시에 이 속성이 데스티니라는 게임이 더 나아갈 발목(DLC 정책이나 업데이트, 이야기의 문제 등등. 과연 어디에 스탠다드를 잡을 것인가?)을 잡았다고 본인은 판단한다. 그렇기에 데스티니가 우리에게 던져준 화두는 다음과 같다:과연 서비스로서의 MMO 게임과 상품으로서의 게임 사이에서 균형을 찾을 수 있는가?


디비전은 데스티니가 가졌던 어중간한 속성을 다른 방향으로 풀어내고자 한 것처럼 보인다. 디비전 게임 자체만 놓고 본다면 게임은 전형적인 RPG를 베이스로하고 엄폐-사격의 TPS를 섞어넣은 작품이라 할 수 있다. 두 개의 스킬을 선택하고 동료들과 함께, 혹은 게이머 혼자서 미션을 진행한다:이미 매스 이펙트 2부터 내려져 온 유구한 전통의 게임 플레이 스타일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매스 이펙트 등과 다르게 디비전의 공간은 현실의 뉴욕을 게임으로 이식한 것이기 때문에 우리가 익히 경험했던 게임의 스테이지와는 조금 다른 형태를 띈다. 현실 세계의 뉴욕이 대로와 거리로 구성되어 있는 선과 블록의 세계인 것처럼, 디비전 속의 뉴욕도 선의 공간이라 칭할 수 있다. 오픈월드 특유의 '면'의 개념과는 다르게 디비전의 공간은 대로가 대로 서로 교차하며, 이 대로가 하나의 스테이지와 권역(권장 레벨에 따른 접근 지역)을 구축한다. 이 선형적인 공간은 트리플 A 게임에서 흔하게 찾아볼 수 있는 세밀한 디테일로 구성되어 있다:버려진 자동차들로 이루어진 엄폐물들, 정교하게 배치된 오브젝트, 아이템들이 리스폰되는 건물, 폐허가 된 뉴욕을 구성하는 폭도들과 난민들까지. 디비전의 공간은 전형적인 오픈월드 액션 게임의 공간을 대로라는 형태로 재구성하였다. 어떤 의미로는 새롭긴 하지만(현대적 도시 공간의 재해석) 동시에 현실의 뉴욕을 게임속에 이식하는데 집중하여 어딘가 어색하고 불편한 느낌을 지울 수 없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디비전이라는 게임에 있어서 주목해야 하는 부분은 다크존이라는 공간이다:다크존 자체만 본다면 MMORPG의 사냥터에 모든 게이머가 똑같은 게임에 동기화되어 들어가는 완벽한 동기화 멀티플레이가 아닌 다크소울식로부터 강하게 영향을 받은 선별적인 동기화 멀티플레이를 보여주는 디비전의 다크존은 어떤 의미에서는 '사회적' 실험이라 칭할 수 있을 정도로 독특한 흐름을 보여준다. 설정상 디비전의 요원이 사실 모두 디비전 요원이 아니라 디비전 요원의 장비를 훔친 가짜가 숨어있을 수 있고, 서로의 얼굴이나 정체를 모르는 디비전 기관의 특성상, 디비전 장비를 지닌 요원이나 같은 그룹내의 아군이 사실은 가짜고 적일 수 있다라는 설정을 반영한 다크존이란 공간은 플레이어들이 서로 믿을 수 없는 불신의 공간을 만들어낸다. 예를 들어서 다크존에서 얻는 아이템들은 좋은 것들이 많으며, 추출이라는 특별한 과정을 통해서만 이 아이템을 게이머가 회수할 수 있게 되어 있다. 하지만 이 과정은 같은 지역내의 모든 게임 플레이어에게 고지되며, 이 순간은 게이머는 모든 타인들에게 표적이 된다. 중요한 점은 디비전이 이러한 과정에서 게이머에게 어떤 성향을 강제하지 않는다는 점이다:무엇을 선택하든 게이머의 자유다. 그러나 게임은 은근슬쩍 게이머의 옆구리를 찌르면서 한번 배신해보라고, 옆에서 평화롭게 사냥하고 있는 동료 디비전 요원을 쏴보라고 유혹한다. 


디비전의 경험은 어떤 의미에서는 데이Z 등의 각종 서바이벌 MMOFPS에서 찾아볼 수 있었던 게이머와 게이머의 신뢰의 문제를 대규모 자본이 들어간 트리플 A 게임의 형태로 풀어낸 것처럼 보인다. DAYZ의 경우처럼 유튜브에서 초보를 사냥하는 유저나 벤딧을 사냥하는 유저나 혹은 초보를 도와주는 유저처럼 이들 게임은 자신의 행위가 자신을 결정한다. 이는 바이오웨어나 베데즈다 RPG 등에서 볼 수 있는 시스템으로서의 가치 체계, 카르마 체계와는 다르다. 디비전이 다크존에서 만들어내고자 하는 재미는 경제적인 딜레마(효율적인 아이템 획득을 위한 신뢰의 파괴)와 도덕적인 딜레마(공격도 하지 않는 사람을 먼저 쏴서 내 개인의 이득을 챙겨도 되는가?)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균형을 통해서 긴장감과 재미를 추구한다고 볼 수 있다. 단지 베타만이긴 하지만, 디비전의 다크존은 보상(아이템)과 처벌(로그 에이전트 사냥) 사이에서 줄다리기를 잘 수행하여 매력적인 게임을 만들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즉, MMO만이 갖는 소셜 미디어로서의 게임의 속성(타인과 나의 관계)와 하나의 완결된 상품으로서의 게임(싱글 컨텐츠나 혼자 즐길 수 있는 요소 등) 사이에서 디비전은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그 어떤 게임도 실제 나와보기 전까지는 그 완성도를 평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디비전은 한번쯤은 시도해볼만한 가치가 있는 것처럼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