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이야기



*핸즈온 카테고리는 게임 리뷰 전의 일종의 프리뷰를 다루는 글 카테고리입니다.

*중간에 시리즈 정리한 글은 제가 썼던 글을 인용하여 올리는 글입니다.

*정식 리뷰는 두편으로 나눠서 따로 올라갑니다.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코나미와 코지마의 불화는 어떤 의미에서 전설적이었다:요즘같이 모든 정보들이 빠르게 퍼져나가고 파급력이 강한 세상에서 어떻게 이런 이전투구식의 싸움이 게임이 개발되는 중에, 그것도 모든 게임 팬들과 미디어가 지켜보는 와중에 일어날 수 있을까? 한 때 시대를 이끌었다고 평가받고 지금도 자기만의 독특한 철학으로 수많은 사람들에게 영감을 준 게임 디자이너를 단지 트렌드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 말이다. 그렇기에 팬텀패인은 단순하게 게임 그 자체가 아니라 일종의 메타적인 상징을 갖게 되었다:버려진 게임 개발자와 버러진 병사, 그리고 버려진 자들의 복수. 아이러니하게도 팬텀패인의 훌륭한 평가들은 코지마의 코나미를 향한 마지막 복수처럼 보인다. 퇴물로 취급받는 게임 개발자가 어떻게 게임 역사에 한 페이지를 장식하는 게임을 만들 수 있는가에 대해서 말이다.


-오픈월드라는 개념에 대해서 코지마가 비상한 관심을 보였던 것은 이미 오래전부터 알려진 사실이다. 게이머가 스스로 무엇을 할 것인지를 판단하고 정하고, 게임 내의 모든 것이 가지고 놀 수 있는 것이 된다는 오픈월드-샌드박스, 사실은 분리하기 힘든 이 두 개념은 거대한 환경을 스크린 상에서 구현해내는 기술적인 부분과 거대한 공간을 채우는 철학이자 게임 디자인적 부분, 양측 모두에서 일정 이상의 성과를 얻어야만 결과물을 뽑아낼 수 있다. 그렇기에 빠르게 사라져버린 많은 게임들이 오픈월드-샌드박스를 만들고 실패하며,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갔다. 팬텀패인에서 사람들이 우려한 부분은 코지마가 뛰어난 게임 디자이너임에도 불구하고 그의 커리어가 전적으로 제한된 스테이지 형식의 게임에 집중되었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팬텀패인은 그러한 문제를 훌륭하게 극복하였다. 시간에 따라서 자연스럽게 변화하는 기상 상황, 거대한 사헬란트로푸스가 맵상에서 자연스럽게 움직이는 점 등등에서 기술적인 쾌거를 볼 수 있다. 또한 피스워커의 뒤틀린 분신이자 완성형태로써 게임은 피스워커의 유전자를 갖고 오면서도 오픈월드-샌드박스의 게임 시스템을 훌륭하게 메탈기어의 일부로 끌어들인다.


-스토리적 측면에서 보았을 때, 이미 2년전부터 예견된 반전들을 사용하기에 반전 자체의 충격은 크지 않은 편이다. 하지만 피스워커의 어두운 분신으로써, 세상의 선의를 믿었던 자들의 이야기가 세상의 악의로 뒤틀려버린 이야기를, 그리고 이쪽도 저쪽도 아닌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룰 것으로 보여진다. 흥미로운 점은 게임이 '백경'의 모티브를 차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아합과 이스마엘, 그리고 초반에 등장한 불타는 고래의 이미지까지 등장하면서 백경이 갖고 있었던 모티브, 신에게 도전하는 인간, 어느 한 쪽만이 존재할 수 밖에 없는 대결구도, 그리고 이를 지켜보는 생존자 이스마엘, 어떤 의미에서 이 백경의 모티브는 게임 전체의 이야기 구조를 관통한다. 한쪽은 신으로부터 버림받아 선택받은 자들에게 적대하는 자들을 구성하였고(성경에서의 이스마엘), 다른 한쪽은 신에게 대립한 불경한 자(성경에서의 아합왕)이다. 이 둘은 신(국가)에게서 버림받았다. 그 둘은 하나인 동시에 둘이며, 공통점을 가졌지만 분열되어 있다.


세계를 팔아버린 자들The Men Who Sold the World. 피스워커의 마지막처럼, 더러운 피를 묻혀서라도 자신들의 살 곳을 지키겠다는 빅 보스의 결심은 팬텀패인을 통해서 실현된다, 아니 이미 팬텀패인이 시작되기 전부터 시작된다. 이름조차 주어지지 않은 망령들은 80년대 특유의 퇴폐적인 팝송이 흘러나오는 버려진 땅들(중앙 아프리카와 아프가니스탄, 둘 다 대표적으로 끔찍한 정치상황을 보여주는 공간들이다)을 해매인다. 그리고 이전의 메탈기어 솔리드 게임들이 그랬듯이, 게임은 빅보스라는 인물을 조종하는 것이 아닌 빅보스의 환영을 조작한다. 케릭터이자 밈이자 환영으로서의 빅보스를. 하지만 그러한 자들에게도 고통이 있다. 그렇기에 게임은 논리적인 귀결, 예정된 파국(메탈기어 1, 2)으로 이어지게 된다.


-메탈기어 솔리드 시리즈의 배경과 메탈기어의 존재는 역사적인 맥락을 갖는다. 각각은 다음과 같이 볼 수 있을 것이다.


메탈기어 솔리드의 등장은 냉전의 망령들(핵, 핵을 쏘는 병기, 그리고 구세대의 유전자를 물려받은 병사들)의 마지막 싸움이었다. 그렇기에 겨울의, 비밀기지를 배경으로 게임이 진행되며, 육중한 핵병기 메탈기어 랙스와 핵은 게임 내에서 중요한 키워드로 등장한다. 이제는 시체밖에 남지않은 구세대의 유물, 빅보스의 유체와 핵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폭스 부대는 이중적인 의미에서 자신의 생존을 걸고 싸우게 되는데 하나는 게놈병의 짧은 수명이며 또 하나는 냉전시대의 종말로 인해 자신의 존재의의가 소멸하지 않게 만들기 위한 구시대의 영광에 대한 것이다. 하지만 메탈기어 솔리드의 이야기는 냉전시대와 유산의 패배로 끝이 난다. 엄밀하게 이야기하자면 그것은 스네이크의 활약 때문이 아닌 폭스다이라는 첨단 생화학 병기에 의해서, 전쟁이 바뀌었음을 은연중에 드러내면서 게임은 마무리가 된다. 


메탈기어 솔리드 2에서는 정보전과 이야기의 변형, 통제, 실험에 초점을 맞춘다. 애시당초에 핵을 쏘는 이족보행 병기가 메탈기어라는 원래의 의미가 변용되어서 '핵병기를 잡는 병기, 그러나 핵은 쏘지 않는'이라는 형태로 기묘하게 변한게 레이다. 이러한 레이의 파생된, 그리고 변이된 정의는 게임 전체를 관통하는 핵심 키워드다. 게임의 전체 구조는 메탈기어 솔리드 1편의 인용인 동시에 변용이다. AI 애국자들에 의해서 만들어진 통제된 연극 세트로써의 빅쉘에는 그 무엇도 '자신 그 자체'인 것이 없다. 포춘과 전자기 재머, 스네이크와 플린스키, 리퀴드와 오셀롯, 라이덴과 폭스 부대, 캠밸과 로즈마리 등등 모든 것들은 서로가 아닌 것의 가면을 뒤집어 쓰고 있다. 그렇다면 과연 무엇이 진짜이고, 무엇이 거짓인가. 메탈기어 솔리드 2의 테마와 이야기는 바로 그러한 정보전, 이야기의 변형에 초점을 맞춘다.


메탈기어 솔리드 3에선 엄밀하게 메탈기어가 나오지 않는다. 하지만 대신에 메탈 기어 솔리드 3편은 메탈기어가 시작되는 모든 이야기의 시작을 다루고 있으며, 동시에 한 시대의 종말과 새로운 시대의 시작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여기서 우리는 왜 샤고호드가 2족 보행 병기가 아닌 캐터필러의 형태를 띈 '전통적'인 탱크의 형태를 띄었는지에 주목해야 한다. 탱크의 형태를 띈 샤고호드와 국가에 충성하는 군인 더 보스와 코브라 부대, 여전히 국가와 이념의 충돌에 모든 것을 거는 악역 볼긴 같은 존재들은 전적으로 냉전 이전의 시대, 모든 것이 악과 선으로 뚜렷하게 나뉘어졌던(혹은 그렇게 보였던) 2차 세계 대전의 부산물들이다. 하지만 더이상 국가의 이상과 가치도 존재하지 않는 시대, 병사가 더 위대한 가치나 선악을 위해 투쟁하는 것이 아닌 거대한 장기말에 체스에 불과한 시대가 도래함으로써 더 보스와 그 잔재들은 밀려나가게 된다. 그리고 그라닌이 지칭하였듯이, 병기란 시대를 움직이는 톱니바퀴라는 사상이, 더이상 병사와 이상이 시대를 좌우하는 세계가 아닌 얼마나 뛰어난 병기가 세상을 놀라게 만드는가라는 시대로 이행할 것을 은연중에 드러낸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전통을 깨부수는 새로운 패러다임의 등장, '이족보행 병기'이다. 그렇기에 메탈기어 솔리드 3는 메탈 기어라는 존재에 하나의 상징을 부여한다. 냉전으로 이행함으로써 테크놀로지에 의한 병기의 발전, 상호확증 파괴와 국가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그 어떤 가치도 저버릴 수 있는 사회와 국가의 상징으로서의 메탈기어를 말이다.


메탈기어 솔리드 4에선 전쟁의 관리, 통제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다. 3편이 전통적인 올리브 드랩 군복을 통해서 전통적인 군인들을 보여주었다면, 4편은 90년대 이후의 전쟁, 데저트와 디지털 카모플라주, 중동 배경 등을 통해서 전쟁이 바뀌었음을 여실히 드러낸다. 여기서 메탈기어는 더이상 핵을 쏘거나 메탈기어를 파괴하기 위해 만들어진 병기가 아니다. 하지만 겟코는 이제 전장을 통제한다. 한때 국가만이 보유했었던 첨단 과학과 파괴력은 이제 작은 형태로 축소되었지만 누구나 접하고 목격할 수 있는 형태가 되었다. 게임 시점에서 이미 전차보다 더 많은 수가 보급된 겟코는 그라닌의 세계를 움직이는 톱니바퀴로써 전쟁도구의 이상을 충실하게 실현하고 있는 것이다. 그도 그럴것이 전장이라는 통제되고 극한의 환경에서 최적의 효율을 뽑아낼 수 있는 병기란 개념은 한 시대가 가질 수 있는 기술과 철학, 과학, 시각의 총 집합이다. 기술이 넓고 얕게 퍼지면서 모두를 통제할 수 있는 기제를 갖게 되는 점, 이 점에서 메탈기어 겟코는 새로운 시대의 전쟁을 표상하는 하나의 상징이 된다. 


그리고 이런 상황에서 냉전시대를 대표했었던 남자의 후계자인 솔리드 스네이크는 이제 너무 늙어버린 노병이 되고 만다. 단순히 빅 보스의 클론이라서 늙은 것이 아닌, 냉전의 끄트머리에서 냉전 이후 완벽하게 바뀌어버린 전쟁을 경험하는, 시대를 관통한다는 의미에서 그는 너무 늙어버린 것이다. 그리고 이야기는 노병의 끝으로 시리즈의 대미를 맞이한다:하지만 이는 엄밀한 의미에서 스네이크의 죽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맥아더가 이야기했듯이 노병은 죽지 않고, 다만 잊혀질 뿐이다. 모든 것이 통제되고 관리되는 시대의 집약으로써의 전쟁과 쉽게 병사가 장기말로 쓰여지는 시대의 전쟁을 모두 경험했었던, 모든 것을 경험하고 너무나 짧은 시간 내에 늙어버린 한 병사가 그런 세상이 아닌 더 나은 세상이 오기를 바라며 사라져가는 이야기가 바로 메기솔 4였던 것이다.


마지막으로 메탈기어 솔리드 피스워커는 꼬여있고 왜곡되어 있는 형태의 이야기다:국가가 군대를 갖지 않는 것, 현대의 일본 우익들이 간절하게 바라는 군대를 가진 국가, 전쟁을 할 수 있는 국가라는 것을 고려한다면, 게임의 배경이 되는 군대를 갖지 못하는 나라인 코스타리카는 '비정상' 국가라 할 수 있다. 하지만 그 '비정상'이 바로 세계 평화라는 '이상'에 근접한 형태이라는 기묘하고도 왜곡된 결론도 함께 도출된다. 피스워커의 도식은 현실은 정상적이지만 이상적이지 않으며, 비정상적인 것이 이상적인 것이라는 기묘한 전제에서 출발한다. 그렇기에 핫 콜드맨이 제시하는 억지력에 의한 평화, 핵의 핑퐁이 아닌 전면적 핵전쟁으로 곧바로 돌입하여 완벽한 핵의 억지력, 그 누구도 핵을 쏜다는 생각조차 하지 못하게 만든다는 미치광이적 평화론은 피스워커를 통해서 극대화된다. 국가와 신념, 가치에 아이콘이라 할 수 있는 더 보스가 이 미치광이 평화론의 중심에 서게 된다는 점을, 그것이 더 보스가 믿었던 총을 내려놓은 세상이라는 인류의 평화를 실현한다는(왜곡된 형태라도) 점에서 악의를 느낄 수 있다. 


그렇기에 피스워커의 이야기와 테마는 밝은 것 같지만서도 그 내부에서는 악의가 꿈틀거리는 일종의 블랙유머이자 비극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국경없는 군대는 군인이되 군인이 아니며, 용병이지만 동시에 용병이 아니다. 이 조국을 등진 망명자들이 마더베이스에서 유유자적 하면서 전혀 전장의 개들 같지 않은 평화로운 모습을 보여주는 점은 게임의 분위기를 밝게 만들기도 하지만, 동시에 이들이 모두 역사에 길이 남을 개새끼들이 될 것이라는 점에서(아우터헤븐, 잔지바랜드 봉기) 어딘가 모를 악의와 함께 씁쓸함이 느껴진다고 할 수 있다. 


피스워커를 지배하는 모순의 테제는 피스워커와 핫콜드맨의 평화론, 국가에 매여있지 않은 국경없는 군대와 군대 없는 국가 코스타리카 등등을 통해 구체화되며, 더 나아가 다시 더 보스, 인류의 평화를 위해서 스스로 파괴하여 총을 내려놓는 위대한 가치의 수호자를 통해 결말에 도달한다. 하지만 이 결과는 역설적이게도 더 보스라는 인물의 한계를 여지없이 드러낸다:더 보스의 모범생적이고 이상적인 모습은 대부분의 인간은 쉽게 도달하지 못한다. 그렇기에 더 보스의 가르침에는 두가지 선택지 밖에 없다:복종하거나(사이퍼=제로), 아니면 거부하거나. 스승과의 결투에서 자신은 무엇을 위해 싸우냐는 질문을 받았던 빅보스는 바로 그 모순을, 이상과 현실의 괴리를 발견하게 된다. 세계와 가치를 위해서 자신을 희생하였지만 세상은 변화하지 않는다. 이상을 위해서 싸우고 희생하였지만, 시대는 바뀌었고 남겨지는 자들은 상처만을 입은체 버려진다. 그렇기에 빅보스는 선언한다:더 보스는 자신을 배신하였다고. 전통적인 가치는 이제 변화하는 시대에서 자신들이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지 못한다고. 그렇기에 빅보스는 장기말로 버려진 자들을 위한 공간, 남겨진 자들을 위한 세계, 국가와 제도 바깥의 세계 아우터헤븐을 꿈꾸게 된다. 그리고 여기서부터 비극은 시작된다.


-그리고 이제, 모든 것이 부서지는 시대가 왔다. 국가와 언어, 그리고 신에게 대항하는 이야기를 통해서 이제 세상은 이미 예정된 결과로 도달한다. 그 어떤 프랜차이즈도 이런식의 이야기(악마가 어떻게 악마가 되었는가, 그리고 어떻게 그 악마는 파멸의 길을 선택하게 되었는가)를 구성한 적이 없었다:물론 메탈기어 솔리드가 이러한 모양새가 되는데 있어서는 많은 우여곡절과 우연이 개입하기는 했었다. 하지만 코지마는 거의 30년간 이어져왔던 이야기를 잇는 중요한 연결고리를 여기서 만들었다. 과거와 현재는 V를 통해 최첨단 기술과 트랜드로, 그리고 80년대라는 시대적 맥락으로 연결되었다. 스포일러와 현재 플래이하고 있는 느낌을 통해서 조심스럽게 추측하자면 메탈기어 솔리드:팬텀패인은 그만한 가치가 있는 게임으로 보여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