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니, 만화, 영화 이야기




친구들을 대신해서 체포되어 교도소에 복역되었다가 출소한 후, 레오 핸들러는 이제 그의 인생을 다시 제대로 되돌려 놓고 싶다. 그러나 세상은 전과자에게 녹녹하지 않고 사촌이자 미묘한 동질감을 느끼던 에리카는 이미 자신의 오랜 친구 윌리와 결혼을 약속한 사이가 되어있는데. 레오는 지하철 회사를 운영하는 삼촌, 프랭크를 만나 윌리와 함께 새로운 일을 시작하지만 그는 자신도 알지 못하는 사이에 엄청난 이해관계가 얽힌 사건에 빠져들며 살인까지 이르게 된다. 이제 그는 이 세계 속에서 가장 냉혹한 조직의 공격대상이 되고,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음모를 발견하게 되는데.(네이버 영화 시놉시스)


더 야드의 네이버 영화 시놉시스는 대국민 사기극에 가까운 수준이다. 하지만 이는 제임스 그래이 영화의 특징이기도 하다:평범한 장르 영화처럼 보이는 이야기를 기반으로 한 것처럼 보이지만, 문제는 제임스 그래이의 영화들은 그러한 이야기들을 풀어내는 과정과 방점을 찍는 부분에서 여타 장르 영화들과 다르기 때문이다. 제임스 그래이의 영화들은 기존의 장르영화의 공식에 비추어 보면 전적으로 '엇박자'에 가까운 영화들이다. 그렇기에 제임스 그래이의 영화는 기본적으로 장르 영화가 갖고 있는 재미가 없다. 그러나 자신만의 박자로 만들어진 그래이의 영화는 다른 영화에서는 쉽게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하고 깊은 향기를 갖고 있다. 더 야드 역시도 그러한 부류에 들어간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제임스 그래이 영화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모티브는 그의 개인적인 경험에서 비롯된다고 할 수 있다:유대인 가족에서 자란 그는 자신의 배경 때문에 영화 감독으로서는 성공하지 못할거라는 반대를 부모로부터 받았었지만, 그러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영화감독의 길을 걸었던 복잡한 성장배경을 갖고 있다. 하지만 그러한 그의 성장배경이 그에게 있어서 가족에 대한 악감정과 트라우마만을 남긴 것은 아니다. 리틀 오데사나 투 러버스에서처럼, 가족을 향한 그의 감정은 트라우마를 내포하기도 하지만 사랑과 긍정적인 감정이 드러나기도 한다. 즉, 가족이라는 테마를 다루는데 있어서, 제임스 그래이의 접근방식은 '양가적'이다. 그리고 이 양가적인 접근이 서로를 양 끝으로 잡아당기면서 극에 붙잡혀 있는듯한 축축한 감성과 중력의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그렇기에 적어도 본인에게 있어서 제임스 그래이는 최고의 가족 영화 감독이다.


더 야드 같은 경우에는 제임스 그래이 버전의 '대부'라고 생각하면 편하다:여기에 오랫동안 가족을 떠나 가족에게로 다시 돌아온 탕자(레오)가 있고, 그 탕자는 가족 사업에 뛰어들면서 이런저런 문제에 휘말리게 된다. 하지만 대부와 더 야드가 근본적으로 다른 점은 전적으로 '가족'이라는 집단 내에서의 관계론의 문제다. 대부에서 콜레오네 패밀리의 관계는 돈 콜레오네-마이클 콜레오네라는 아버지와 그 밑의 자식들과 방계의 형제들(또는 조직원들)의 가부장적 관계가 중심이다. 제목인 대부Godfather에서도 볼 수 있는 것처럼, 가족의 수장이자 고독한 폭군이 주변인들에게 거절할 수 없는 제안을 하며 자신의 왕국을 지키는 것이 대부의 이야기 핵심축이 되며, 그렇기에 대부에 있어서 조직과 가족은 가족의 형태를 넘어서 작은 사회, 더 나아가 인생의 은유로서 기능하게 된다. 하지만 제임스 그래이의 더 야드는 가족이라는 관계를 수직이 아닌 '수평적인 관계'에 초점을 맞춘다.


더 야드에 있어서 가족의 관계는 가족의 수장과 그 밑의 하부 구성원들 사이의 수직적인 관계는 거의 드러나지 않는다. 분명히 레오의 이모부 프랭크가 회사와 가족을 이끌며 가족-정치의 구심점 같은 역할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프랭크는 가족 구성원들에게 일방적으로 명령을 내리지 않는다:오히려 그는 자신의 의견과 반하는 레오나 레오의 어머니의 견해에도 화를 내지 않으며, 그들의 의견을 존중한다. 오히려, 가족 내부에서도 배신과 음모가 판을 쳤던 대부의 가족과 다르게 더 야드의 가족은 분명하게도 서로를 진심으로 위하고 사랑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레오가 일을 망쳤을 때도 프랭크는 그를 제거하기 보다는 어떻게든 가족으로서 뒤를 돌봐주려 했었고, 망가지기 전의 윌리와 레오의 관계 역시도 서로의 뒤를 봐주는 밀접한 관계라고 할 수 있다.


즉, 더 야드의 인물 관계는 전적으로 '수평적'이다:프랭크와 그의 가족들, 레오, 윌리는 서로를 사랑하며 진심으로 위하려고 한다. 이렇게 본다면 그들의 관계에 있어서 비극은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 본다. 하지만 제임스 그래이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남긴 적이 있다:가족의 사랑이란 감정적인 지원과 함께 무시무시한 감정적인 파괴를 수반한다고. 더 야드에 있어서 관계는 역으로 모든 파멸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윌리는 레오를 친구와 친척으로서 사랑하지만, 동시에 에리카와 레오가 사촌 이상의 밀접한 관계일 수 있다는 의심이 레오와의 관계를 뒤틀어버리게 된다. 또한 프랭크 자신과 가족의 파멸, 에리카의 죽음 역시도 이러한 사랑의 양면적인 부분에 근거한다고 할 수 있다.


재밌는 점은 더 야드의 가족과 인물관게를 넘어서 암흑가와 세계를 움직이는 법칙 역시도 '수평적인 관계'에 기반을 두고 있다는 것이다. 윌리가 자신이 속한 세계를 레오에게 설명할 때, '서로 원하는 것을 주고 받는다'라는 호혜적이면서 단순한 원칙으로 묘사한다. '내가 거절못할 제안을 하지'라고 이야기하는 대부의 관계와 다르게(왕과 신하의 관계) 더 야드의 암흑가는 서로가 원하는 것을 해주면서 지속되는 관계에 가깝다. 하지만 이 수평적인 관계는 서로에 대한 '평등한 의심'으로 가득차 있다:윌리와 거래하는 위원장이 도청을 두려워하여 옷을 벗고 알몸으로 거래를 하는 장면에서 드러나듯이, 바깥의 세계는 호혜관계로 유지되지만 동시에 그 관계는 호혜가 끊기게 될 때 위태로워진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영화에서 이야기의 균형이 무너지고 위험에 처해지는 순간은 경쟁사에게 매수당해 윌리의 제안을 거부하는 역사 관리인이 등장할 때와 같이 '더이상 서로에게 필요가 없어질 때'이다. 


이렇게 영화는 가족과 이를 둘러싸고 있는 세계를 윌리와 레오라는 두 주인공을 통해서 풀어나간다. 레오는 여타 제임스 그래이 영화에서 등장하는 주인공들과 비슷한 모습을 보여준다:그는 항상 우울하며 아버지(아버지에게 부재한 그에게 있어 이모부인 프랭크라고도 볼 수 있겠다)를 사랑하기도 하지만 동시에 거리를 두려하며, 어머니와 가족 내의 여성들에게 공감하기는 하지만 세계는 냉혹한 아버지의 방식으로 유지되기에 이 사이에서 갈등을 느낀다. 레오는 귀향 이후 성실하게 살고자 했었다:하지만 범죄자라는 낙인이 그에게 변변한 직업을 갖지 못하게 막았으며, 그리고 이모부의 호의를 쉽게 질 수 없었기에(누구라도 가족과의 관계에서 이런 경험을 했으리라 생각해본다) 윌리와 함께 암흑가에 발을 담게 된다. 재밌는 점은 영화가 진행될수록 레오는 자신이 어떠한 상황에 처해있는지를 파악하고 자신을 둘러싼 일들을 주도하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반면 월리의 경우에는 레오와는 대척점에 서있는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 그의 인생은 역사 관리인을 죽이기 전까지는 탄탄대로였었으며 레오와 다르게 쾌활하고 타인을 배려하며 일처리에 유능한 인물이었다. 그러나 그러한 그에게도 잠재되어 있는 불안 요소가 있다:그것은 바로 그의 외부자적 신원이다. 경쟁사 직원이 윌리를 도발하면서 '너는 절대로 그들처럼 될 수 없어'라는 말 한마디에서 분명하게 드러나듯이, 그는 라틴 계열이며 명백하게도 프랭크와 레오의 가족의 일원도 아니다. 그렇기에 그가 원하는 것은 에리카와의 결혼을 통해서 가족의 일원이 되는 것, 안정을 얻는 것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역사 관리인과의 관계가 틀어지듯이 그의 업적은 단 한번의 실수로 모두 사라지게 된다. 


윌리와 레오라는 케릭터는 어찌보면 제임스 그래이의 개인적인 경험이 두명의 케릭터로 쪼개어진 것이라 볼 수 있다. 늘 우울한 모습에 가족과의 사랑, 안정, 그리고 험악한 세상을 알아나가는 탕자의 경험을 레오가, 그리고 유대계열로서 사회에서도 겉돌고 그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기에 불안정했던 자신의 삶의 경험을(투 러버스가 개인적인 경험을 구체화 시킨 것이었다는 진술을 믿는다면, 제임스 그래이의 경험과도 이는 연결된다고 볼 수 있다) 실제 윌리가 이어나가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경험들이 직접적으로 사회 비판적인 부분으로 연결되는 것은 아니다:제임스 그래이의 영화는 어떤 의미에서는 정치적이면서 탈정치적이다. 이주민(유대인 또는 윌리 같은 라틴 계열)이라는 배경은 영화 내에서 서사를 구축하지 않지만 영화는 은연중에 그러한 배경을 깔아둠으로서 '이야기를 형성하지 않지만 무시할 수 없는'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그리고 이는 이야기의 배경에 존재하면서 하나의 '중력'을 형성한다:제임스 그래이 영화의 케릭터들은 이러한 중력으로부터 안정감을 느끼는 동시에 그로부터 탈출하고 싶어한다. 투 러버스나 리틀 오데사 같은 영화에서는 한명의 인물이 겪는 이 양가적인 감성은 배경에 젖어들어가며 탈출이 힘들어지는 축축하고 무거운 분위기를 구축한다고 볼 수 있다. 


물론 더 야드는 두 영화와 다르다고 볼 수 있다:한 명의 케릭터가 감당하는 이야기의 무게는 두명의 케릭터가 나눠서 감당하게 된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이 끝난 다음에 홀로 남겨진 레오가 지하철에 다시 앉아서 카메라 너머를 바라보는 장면에서 다른 제임스 그래이 영화에서 느낄 수 있는 기묘한 여운을 느낄 수 있다:레오는 아버지의 방식(프랭크의 방식)을 거부하였고, 모든 사건들은 정리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가 다시 평안을 찾을 수 있을까? 에리카는 죽었고, 윌리는 영원히 그의 곁을 떠났다. 오히려 둘이 함께함으로서 갖고 있었던 안정과 균형은 무너져버린 것이다. 그렇기에 영화 말미의 레오의 응시는 단순한 응시를 넘어서 어떤 무게를 갖게 된다.


결론적으로 더 야드는 제임스 그래이 영화의 연장선상에 있는 독특한 작품이다. 물론 개인적으로 제임스 그래이 영화의 최고는 투 러버스라고 생각하지만, 더 야드 역시도 그 나름대로의 매력이 있는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제임스 그래이 영화에 관심 있으신 분이라면 꼭 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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