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일러가 있습니다.
게임은 영화를 닮아가는 방향으로 발전해왔습니다. 그리고 게임이 영화를 닮아가는 롤모델은 바로 헐리웃 영화였죠. 하지만, 영화란 장르에도 다양한 하위 장르와 범주가 존재하고 있죠. 유럽영화, B급 영화, 홍콩 영화, 호러 영화, 인디 영화, 예술 영화 등등...이 모두가 다같은 영화라는 장르가 포괄하는 분야죠. 물론 메이저 게임 이외의 다른 게임들은 각자 나름의 시스템과 표현방식을 갖고 있죠. 스다 51의 롤리팝 체인소우는 어떤 의미에서 시대의 흐름을 거스르는 80년대 B급 병맛 영화의 테이스트를 보여주는 작품입니다.
사실 스다 51이란 게임 디렉터의 센스는 악명(?) 높습니다. 미카미 신지와 함께 만든 희대의 괴작 킬러 7이라든가, 괴랄한 센스를 자랑했던 쉐도우 오브 더 뎀드, WIi로 나오고 한글화까지 된 노 모어 히어로즈 등등 일본 제작자라기 보다는 서양쪽 제작자들이나 보여줄법한 정신나간 센스를 유감없이 발휘하는 디렉터였습니다. 사실, 롤리팝 체인소우도 그러한 연장선상에 있는 게임인데, 트레일러 공개때 부터 정신나간 센스를 보여줬죠. 머리빈 쭉방 미녀의 아이콘이라 할 수 있는 치어리더가 목이 잘려나간 그녀의 남친과 함께 전화기와 이것저것 잡다한 것이 많이 달린 전기톱을 들고 좀비들을 사냥한다구요? 이런 이미지들의 혼합은 B급 감수성을 넘어서 초현실적인 느낌마저 들 정도입니다.
롤리팝 체인소우는 기본적으로 게임은 데빌 메이 크라이 같은 액션게임을 지향합니다. 하지만 그런 게임들하고는 많은 부분에서 차이가 나죠. 일단, 콤보 개념이 없는데다가 띄우기, 공중 콤보 잇기 같은 요즘 액션 게임들의 기본적인 요소도 갖추지 않고 있습니다. 오히려 스케일이나 센스, 조작 느낌에서는 화려한 액션 게임이라기 보다는 과거 벨트스크롤 형식의 아케이드 게임에 유사합니다. 그대신 한번에 여러 마리의 좀비를 한번의 공격으로 동시에 처치하면 좀비메달+코스튬을 모으는데 쓸 수있는 플래티넘 메달을 주는 스파클링 헌트 모드를 제공함으로써 나름대로 게이머가 신경쓰면서 플래이해야할 부분을 제공합니다.
하지만, 요즘 액션 게임들과 비교했을 때, 롤리팝 체인소우의 액션 파트 부분은 밋밋하다고 밖에 할 수 없습니다. 스파클링 헌트 모드를 감안하더라도 게임 기본 시스템 자체가 파고들만한 부분이 거의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원버튼 클리어가 가능할 정도로 게임이 녹록한 것은 아니지만, 센스만 있으면 게임은 상당히 쉽다는 느낌이 들 수 있을 겁니다. 그러나 롤리팝 체인소우의 장점은 액션이 아닌 바로 스테이지 구성과 게임 전반에 깔린 정신나간 센스에 있습니다.
사실, 롤리팝 체인소우를 논할 때, 정신나간 센스를 논하지 않고서는 게임을 이야기하기 힘듭니다. 왜냐하면 게임 자체가 기존 대중 문화에 대한 장렬하고도 신랄한 뒤틀기의 산물이기 떄문이죠. 애시당초에 치어리더가 전기톱을 휘두르며 좀비를 사냥한다는 발상 자체에서도 확인할 수 있지만, 게임 내내 이어지는 닉과 줄리엣 사이의 만담은 10대의 연애담을 기괴한 형식으로 비틀어 놓은 결과물이며(네 머리에다 구멍을 뚫어서 아이팟을 달자구! 존나 멋지겠는데!), 케릭터들도 죄다 정신이 나가있으며, 심지어 생존자를 구해줄때마다 하는 대사들도 어딘가 나사가 빠져있습니다.(오늘밤 딸감은 너로 할께! 줄리엣!-실제 게임 내 대사) 보스들 컨셉도 그에 못지않게 기괴합니다. 육두문자로 공격하는 펑크락 좀비 보스, 스테이지 전반을 약빤 기운으로 지배하는 히피 좀비 보스, 데스메탈 좀비 보스, 목소리가 이상한 DJ 좀비, 자기 바이크와 5단 합체 변신을 하는 락스타 좀비 보스, 그리고 마지막으로 로큰롤의 황제 엘비스 프레슬리 좀비 (.......) 보스에, 심지어 가끔식 등장하는 특수 좀비들의 배경설정들도 완전히 맛이 가있습니다.(예시:빌리는 주변 친구들로부터 인기가 많았는데, 이는 그의 능숙한 펠라치오 솜씨 때문이었다)
스테이지 구성도 재미보다는 컨셉에 맞추어서 구성하려는 시도를 보여줍니다. 물론, 정상적인 게임 구조로만 따지면 솔직히 재밌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 스테이지 3의 경우 구간 반복이 심하다는 느낌이며, 몇몇 스테이지의 경우 많은 수의 좀비를 죽이기 보다는 이벤트 액션 부분을 진행하느라 액션 파트가 심심해지는 부분도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 어떤 게임에서 Dead or Alive의 You Spin me round를 들으며 콤바인으로 좀비를 갈아버리는 경험을 하겠습니까? 아이러니 하게도, 롤리팝 체인소우가 제공하는 게임의 경험은 재밌다기 보다는 상당히 '독특'하다고 보는게 맞으며, 이걸 이해할 수 있는 사람들에게는 게임 외적으로 재미를 줍니다. 하지만 그 때문인지는 몰라도 상당히 짧은 분량을 자랑하며, 개인적으로는 이 게임의 최대 단점은 분량이 아닐까라고 생각합니다.
이 게임에서 또 높게 평가해야 할 부분은 바로 '북미쪽 성우진'입니다. 저는 프리미엄 판을 기준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북미-일본 성우 모두 있지만, 아마 추후 발매될 일반판은 북미쪽 성우진이 베이스가 될 것입니다. 줄리엣 성우가 파워 퍼프 걸에서 버블스 역을 맡았던 타라 스트롱인데, 딱 텅빈 머리의 치어리더+맛이 간 분위기를 완벽하게 재현하고 있습니다. 그에 비해 일판 성우진은 문화적 차이 때문인지는 몰라도 발랄한 여고생 느낌은 나도 게임 전반에 깔려있는 광기를 재현하지 못하는 듯한 느낌. 게다가 북미 베이스로 해야 주인공이나 다른 케릭터들 대사가 순화되지 않은체로 나오기 때문입니다. 여러가지 의미에서 북미버전이 스다 51의 디렉터스 컷 같은 느낌이더군요.
그래픽적인 부분은 상당히 미묘합니다. PS2보다는 좋지만, 요즘 게임들이 보여주는 그래픽과 비교하면 한참 떨어지는 수준. 물론 전투시에 보여주는 정신나간 무지개 이펙트 등은 상당히 멋지지만 말이죠. 그에 비해서 배경음악이나 사운드 부분은 완벽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가볍게 통통튀는 팝에서부터 해비메탈 까지 거의 모든 장르를 소화하고 있으니까 말이죠. 게임 발매전 우려했던 타격감 문제는 진동과 골때리는 이펙트로 커버했더군요. 나름대로 베는 맛이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롤리팝 체인소우는 그 정신나간 센스를 이해할 수 있는 몇몇 게이머들에게는 최고의 작품입니다. 하지만 나머지에게는요? 글쌔요, 그 돈으로 딴 게임을 사셔야 할 겁니다. 솔직히 호불호를 많이 탈 수 밖에 없는 게임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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